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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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 / 108 · 삶 뒤에 남는 작업

오펜하이머, 재

빛은 먼저 왔지만 결과는 그 순간 끝나지 않았다. 바람 아래의 삶과 일본의 두 도시, 과학자들의 보고서와 문을 열지 못하는 출입증으로. 힘이 제한되어 있어도 책임은 있으며, 후회가 다른 사람의 상실을 갚아 주지는 못한다.

1. 빛이 소리보다 먼저 왔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의 아침이었다. 강한 빛이 먼저 닿고 소리가 뒤따랐다. 수많은 사람이 매달렸던 장치가 마침내 작동했다. 실험을 지켜보던 과학자들에게 그 섬광은 계산과 실험, 논쟁과 잠 못 이루던 밤의 끝이었다. 관측소 밖에서 살던 사람들에게는 달랐다. 그들에게는 결과를 헤아리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어떤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빛 바로 옆에 오펜하이머의 유명한 말을 붙인다. 자신이 죽음이 되었고, 세계를 파괴하는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장면은 이미 편집을 마친 듯하다. 폭탄이 터지고, 만든 사람이 죄를 깨닫고, 몇 초 만에 비극의 주인공이 탄생한다. 하지만 익숙한 영상은 그가 1965년에 실험을 회상하며 말한 것이다. 그날 아침과 카메라를 바라보는 얼굴 사이에는 20년의 경험도 놓여 있다.

그가 떠올린 구절은 『바가바드 기타』 11장 32절이다. 그곳에서 말하는 이는 크리슈나다. 산스크리트어 칼라는 흔히 모든 존재를 삼키는 ‘시간’으로 옮겨진다. 오펜하이머는 ‘죽음’이라는 표현을 골랐다. 행동과 파괴, 그 속에 놓인 인간의 자리를 묻는 오래된 대화가 20세기의 한 기억으로 들어왔다. 과학자에게 붙일 근사한 별명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막도 빈 종이가 아니었다. 실험장 주변과 바람이 불어가는 쪽에는 원주민과 히스패닉 공동체를 비롯한 사람들의 생활이 있었다. 밭과 가축이 있었고, 빗물을 모아 쓰는 물탱크가 있었다. 주민들은 실험과 방사성 낙진의 위험을 미리 충분히 안내받지 못했다. 계획 지도에서 비밀을 지키기 좋은 장소는 땅 위에서는 여전히 다른 누군가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말에는 서로 다른 길이의 시간이 들어 있다. 연구소는 기기가 예상한 수치를 보여 주면 성공을 선언할 수 있다. 바람 아래 살던 사람들은 그 뒤로도 오래 자기 몸과 땅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물어야 한다. 과학자 중심의 전기가 첫 번째 시간만 따라간다면, 두 번째 사람들의 삶 전체가 위대한 발견을 둘러싼 배경으로 밀려난다.

오펜하이머는 관심을 기울일 만한 사람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만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 빛은 그의 눈에 들어갔고, 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닿았다. 둘은 다른 경험이다. 후자의 삶이 전자의 괴로운 양심을 더 잘 보여 주기 위한 무대로만 등장할 수는 없다.

2. 힘의 일부는 분명 그의 손에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야윈 얼굴이 되기 전,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이자 선생이었다. 분자 이론과 양자물리학, 중력 붕괴 등을 연구했고 버클리에는 젊은 연구자들이 모였다. 그의 능력은 혼자 문제를 푸는 데만 있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질문을 알아듣고, 그것들을 어떻게 같은 탁자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힘도 있었다.

그로브스 장군이 로스앨러모스를 맡겼을 때, 그 능력은 전쟁의 압력 아래 놓였다. 연구소는 1943년에 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지역의 연구와 생산 시설, 공학자와 기술 노동자, 군의 자원과 보안 체계도 그 뒤에 있었다. 원자폭탄은 한 사람이 자연 깊은 곳에서 혼자 꺼내 온 물건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일을 조직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조직하는 일 자체도 권력이다. 누구에게 자원을 주고, 무엇을 먼저 해결하며, 어떤 이견을 듣고, 언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지 결정해야 한다. 오펜하이머가 폭탄을 투하하라는 최종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식 하나를 썼을 뿐인데 나중에 남들이 용도를 훔쳐 간 구경꾼도 아니었다. 무기를 만드는 일임을 알았으며 그 일을 매우 효과적으로 밀고 나갔다.

책임이 불편해지는 것은 이 지점이다. 더 간단한 설명 두 가지가 우리를 부른다. 전부 그가 저질렀다는 설명과 그저 과학을 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앞의 말은 국가적 사업 전체를 한 사람의 어깨에 올린다. 뒤의 말은 정말로 그의 손을 거친 선택까지 내려놓게 한다. 실제 자리는 그 사이에 있다. 권한은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 제한된 몫에도 무게는 있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 처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쓰임을 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전자기학에서 조명과 통신, 무기로 가는 길에도 설계와 돈, 제도와 선택이 놓인다. 지식이 저절로 온화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원자폭탄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물리 법칙이 아니었다. 쓰임으로 향하는 길의 구간마다 사람이 관여했다.

이것은 먼 핵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모델 하나, 지표 하나, 승인 한 건, 짧은 코드만 맡는 사업에 참여한다. 전체를 혼자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각자 자기 책상 귀퉁이만 보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알아본 결과를, 최종 결정권자는 내가 아니라는 말로 누구에게 넘기고 있는가. 그 질문은 우리 일자리에도 들어온다.

3. 책은 대신 서명해 주지 않는다

오펜하이머는 『기타』를 진지하게 읽었고 산스크리트어도 배웠다. 엄숙한 분위기가 필요할 때 꺼내는 문학적 소품이 아니었다. 작품 속 아르주나는 맞은편 군대에서 친족과 스승, 낯익은 얼굴을 본다. 그들을 모두 제거할 표적으로 바꿀 수 없어 활을 내려놓는다. 자신이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얼굴과 부딪친 것이다.

크리슈나는 행동과 의무, 행동의 결실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작품 전체를 명령에 복종하라는 한마디로 줄일 수는 없다. 한 명의 현대 독자가 다른 모든 독자를 대신해 뜻을 확정할 수도 없다. 오펜하이머는 그 책에서 자기 자리를 생각할 언어를 얻었다. 그렇다고 매번의 결정에 그 언어가 정확히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려 주는 내면의 녹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를 죽음 자체로 부르는 것보다 아르주나 곁에 놓는 편이 인간의 곤란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 다만 비유에는 위험도 있다. 신성한 대화가 오펜하이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증명이 된다면, 경전은 그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서류가 된다. 책은 선택을 감당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까지 지워 주지는 못한다.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무기를 얻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맨해튼 계획을 움직인 중요한 동기였다. 그 두려움은 허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은 1945년 5월에 항복했다. 트리니티 실험은 7월이었고 일본에 대한 투하는 8월이었다. 처음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달라진 뒤에도 일은 계속되었다. 계속하려면 새로운 판단이 필요했다. 최초의 이유가 뒤의 모든 페이지에 미리 도장을 찍어 줄 수는 없다.

큰 사업에는 이런 관성이 생기기 쉽다. 여러 해를 투자했고 동료들이 기다리며 장비는 거의 완성되었다. 멈추는 일이 모두의 노력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만큼 왔다는 말이 다음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대신한다. 관성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날씨가 아니다. 다시 묻지 않은 채 내려지는 결정들이 그 움직임을 이어 간다.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뿐인 것은 아니었다. 전쟁을 자기 뜻에 따르게 할 버튼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의 자리를 이해할 가치가 있다. 책임은 좀처럼 전능함의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제기할 수 있는 이의, 서명하지 않을 수 있는 권고,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불확실성. 그런 형태로 이미 손에 들어와 있기도 하다.

4. 6월의 보고서, 8월의 두 도시

1945년 6월 16일, 임시위원회에 자문하던 과학자 패널이 권고를 제출했다. 오펜하이머와 콤프턴, 로런스, 페르미가 서명했다. 과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으며 기술적 시범을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판단은 직접적인 군사 사용 쪽이었다. 전쟁을 끝낼 만한 시범을 제시할 수 없고, 직접 사용을 대신할 받아들일 만한 방안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문서에 남긴 판단이다. 훗날의 후회담이 아니다. 보고서는 정치와 사회, 군사 문제에서 과학자가 특별한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인정했다. 두 사실을 함께 보아야 한다. 오펜하이머에게 국가의 최종 권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앞의 사실만 남기고 뒤를 지우면 그의 자리가 가진 실제 어려움까지 사라진다.

8월 6일의 히로시마, 9일의 나가사키. 역사책에서는 날짜지만 그 도시들에서는 일터나 학교에 가고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화상과 상실, 질병, 그 이후를 살아 내는 시간이 남았다. 전쟁 종결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이 그들을 최종 손익계산서의 숫자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과학자의 후회는 카메라를 끌어당긴다. 우리는 이미 그의 얼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친 사람들은 천재의 도덕적 각성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 이름과 가족, 언어와 앞으로의 계획이 있었다. 두 도시가 오펜하이머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만 나온다면, 우리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삶을 다시 한번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괴로움은 진짜일 수 있다. 책임 역시 진짜일 수 있다. 둘은 서로를 상쇄하지 않는다. 전후의 그를 이야기할 때에도 두 사실은 탁자에 함께 남아 있어야 한다. 나중에 견디기 힘들어졌다고 해서 그전에 선택이 전혀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해악에 참여한 사람이었다고 해서 그가 나중에 내놓은 모든 경고가 무가치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질문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 뒤에도 어떻게 책임을 이어 갈 것인가이다. 기억하고 설명하고 반론을 받아들이며 다음 결정의 조건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어느 것도 죽은 사람을 대신해 이제 빚을 갚았다고 선언할 수는 없다.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그를 단순한 악인이나 갑자기 깨어난 성인 가운데 하나로 완성할 필요는 없다.

5. 반대했다고 참여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전후 오펜하이머는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위원회를 이끌며 핵 정책에 관여했고 국제적 통제를 위한 노력도 지지했다. 지식은 국가 권력의 도구가 되었다. 연구자들끼리 조심하겠다고 사적으로 약속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제도와 사찰, 여러 편을 함께 묶는 합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냉전이 진행될수록 그런 합의에 이르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1949년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의 전면적인 수소폭탄 개발 논의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그해 10월 위원회 보고서는 이를 단순한 성능 개선으로 보지 않았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 자원 배분, 외국의 반응, 민간인에게 미칠 결과가 함께 논의되었다. 위원들의 입장은 모든 점에서 같지 않았고, 결론에 이른 이유도 완전히 일치하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파괴를 경고하며 개발 추진에 반대하는 다수 의견에 참여했다. 별도 부록에서 페르미와 라비는 인간의 존엄에 근거한 윤리적 반대를 특히 분명하게 제시했다. 동시에 위원회는 다른 방향의 핵무장에는 찬성했다. 모든 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아니었다. 이미 무장한 세계 안에서 어떤 선을 그으려는 시도였다.

트루먼은 1950년 수소폭탄 개발을 계속하라고 지시했다. 1951년 새로운 접근법이 실현 가능성에 대한 평가를 크게 바꾸자 오펜하이머의 태도도 바뀌었다. 그는 작업을 앞으로 진행하는 쪽을 지지했다. 나중에는 기술적 해결책이 지닌 강한 매력을 인정했다. 이 전환은 그의 이야기에 남아야 한다. 위험을 아는 사람도 문제가 풀린다는 흥분에 다시 이끌릴 수 있다.

미국의 첫 본격적인 열핵 실험은 1952년에 이루어졌다. 그의 삶은 발명, 전면적인 반대, 평생의 속죄라는 일직선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군비 확장을 경고하면서도 안보와 기술적 진보의 언어 안에 계속 참여했다. 이 모순이 경고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경고하는 사람을 어떤 유혹도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울 수는 없게 한다.

할 수 있다는 말과 해야 한다는 말 사이에는 결정이 실제로 멈출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성공한 뒤 윤리적 소감을 덧붙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예산과 일정, 약속이 방향 변경을 거의 상상할 수 없게 만들기 전에 이견이 경로를 바꿀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를 기억하는 쓸모는 나중에 짊어진 무게에 감탄하는 일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일찍 물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있을지 모른다.

6. 출입증이 문을 열지 못하게 되었을 때

1954년의 보안 청문은 행정 절차였지 형사재판이 아니었다. 오펜하이머는 반역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도, 모든 과학 활동에서 추방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보안 인가 박탈은 기밀 정보와 핵 정책의 중심 논의에 접근하는 길을 크게 훼손했다. 한때 특별한 책임을 맡겼던 사람을, 그 자신도 만드는 데 관여했던 문의 바깥에 세웠다.

사건에는 이전의 정치적 교류, 관련 사건에 대해 그가 내놓은 일관되지 않은 설명, 수소폭탄에 관한 이견, 냉전기의 의심이 얽혀 있었다. 루이스 스트로스 등을 둘러싼 권력 다툼도 그 안에 있었다. 이를 한 번의 공개적 망신에 대한 복수로만 줄이면 제도는 화면 밖으로 물러난다. 윗자리에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문제가 풀렸으리라는 이야기가 된다.

훗날 에너지부의 검토는 중대한 절차상 결함들을 확인했다. 인가 박탈을 추진한 변호사들이 상대편 없이 심리 위원들과 사건을 논의했다. 최종 판단이 의존한 중요한 권고에 대해 오펜하이머의 변호인들은 응답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처럼 건조한 절차의 세부가, 한 사람이 정말로 자기 말을 들려주고 있는지 아니면 남의 결론이 완성되는 자리에 참석했을 뿐인지를 가른다.

충성심과 자격이 나뉘는 대목은 특히 눈에 걸린다. 미국에 대한 그의 충성심이 공식적으로 부정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문은 닫혔다. 관계는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판단을 요구하다가, 그 판단이 원하는 방향에서 벗어나면 조사할 결함이 된다. 생각하는 동료로 대접받았는지, 쓸 만한 부품이었는지는 반대하고 나서야 보이기도 한다.

잔 다르크나 와일드가 떠오를 수 있다. 그래도 종류와 정도의 차이는 지켜야 한다. 인가를 잃은 것은 처형도 투옥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직장과 동료, 공개적으로 말할 자리가 남았다. 그가 당한 부당함은 바로잡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 참여에 관한 무죄 증명서가 되지는 못한다. 한 가지 부당함이 다른 도덕적 질문의 답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1963년 페르미상은 공적인 명예를 돌려주었지 보안 인가를 회복시켜 주지는 않았다. 2022년 에너지부는 자체 규칙을 어긴 절차를 이유로 1954년 결정을 취소했다. 사후에 새 인가를 발급한 것이 아니었다. 늦은 시정이 중요한 까닭은 유명한 이름을 다시 빛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비슷한 문 앞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7. 수식이 종이 밖으로 나올 때

라마누잔은 수식을 썼고 오펜하이머는 무기 제작을 조직했다. 당장의 목적과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나 수학을 완전히 무해한 세계에, 물리학을 본래 파괴적인 세계에 배정하면 비교가 너무 편해진다. 수학도 컴퓨팅과 통신, 금융과 전쟁에 들어간다. 숫자가 생길 때 모든 미래 용도의 도덕성을 보증하는 증서가 함께 나오는 것은 아니다.

라마누잔 역시 신비로운 계시만 받아 적다가 증명하지 못해 무너진 사람이 아니었다. 계산하고 추론하고 추측하고 협력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어 갈 일을 남겼다. 오펜하이머도 자연의 비밀을 마지막까지 완성한 사람이 아니다. 폭탄에는 많은 발견과 여러 종류의 노동이 기여했다. 그 뒤에도 새로운 질문과 기술,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이 남았다.

차라리 두 사람을 탁자의 양쪽에 앉혀 보고 싶다. 종이 위의 한 줄이 갑자기 이해된다. 기쁨은 진짜다. 오래 붙들었던 문제가 풀리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이 잠깐 멀어지는 느낌은 있을 것이다. 위험한 것은 그 기쁨 자체가 아니다. 그 순간이 빛났으니 거기서 이어지는 모든 걸음도 빛날 것이라고 믿는 데 있다.

핵반응은 전기를 만들 수 있고 관련 지식은 의료와 연구에도 쓰인다. 그런 쓰임은 신중하게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 그러나 파괴된 도시와 도덕적 상쇄 항목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발전에도 안전과 폐기물 관리, 믿을 만한 제도와 충분히 정보를 얻은 시민이 필요하다. 불이 들어온다고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더 길고 덜 극적인 다른 일들로 바뀔 뿐이다.

전자기 지식에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 테슬라와 에디슨의 삶에서 비추는 일과 통제하는 일, 편리하게 하는 일과 상처 입히는 일은 서로 밀폐된 방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아는 것과, 그 힘을 누구에게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은 다르다. 과학적 성취가 두 번째 판단을 대신하지 않고, 사용자의 책임이 연구와 설계의 선택을 지우지도 않는다.

필요한 것은 영원히 순진무구하다고 선언된 지식의 왕국이 아니다. 지식이 생활 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질문이 살아남을 방법이다.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위험을 짊어지는가. 누가 거절할 수 있고 누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을 아는가. 모든 결과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더 일찍 물을 이유다. 묻기를 그만둘 이유는 아니다.

8. 평범한 의자 하나

실험장에서 평범한 사무 책상으로 시선을 옮겨 보자. 여기 놓인 의자는 우리의 상상이다. 책상 위에는 서명을 기다리는 권고안과 펼쳐 놓은 책이 있다. 앉는 사람이 서명할지 결정해야 한다. 의자가 연구소나 군 사무실, 대통령 옆에 있다고 해서 가구가 그 사람 대신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

좋은 책은 모순을 견디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회피를 그럴듯하게 꾸며 주기도 한다. 나는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며 결과는 내 몫이 아니었다고. 더 어려운 읽기는 누구도 전부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행동에 자신의 동의가 필요했는지 계속 묻는 것이다. 책이 그 질문을 선명하게 하면 도움이 된다. 질문을 없앤다면 아무리 엄숙한 문장이라도 잠시 멈춰 볼 만하다.

오펜하이머는 1947년부터 1966년까지 고등연구소를 이끌었다. 그의 후반생이 배제와 함께 시작된 것도, 침묵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학자들의 교류를 지원하고 지적 생활을 조직했으며 과학과 문화에 관해 쓰고 말했다. 점점 전문화되는 세계가 어떻게 여전히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로 남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일에는 그 일 자체의 가치가 있다. 다만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등가의 지불은 아니다. 예전의 책임이 해결되지 않아도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전기는 자꾸 회계를 하고 싶게 만든다. 좋은 일로 충분히 많은 칸을 채우면 앞선 기록과 균형이 맞으리라고. 인간의 상실은 그 환산에 좀처럼 응하지 않는다.

그는 1967년 2월 18일 프린스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예순두 살이었다. 지식과 무기, 제도와 논쟁은 그보다 오래 남았다. 되찾을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흠 없는 과학자의 자기상이 아니라 이미 잃어버린 사람들의 생명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화살이라는 비유가 쓸모 있으려면, 그 화살이 떨어진 집 쪽으로 눈을 돌리게 해야 한다.

상상 속 의자는 다음 사람을 위해 남아 있다. 앉기 전에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와도 좋겠다. 결정의 결과를 살아 내야 할 가능성이 높지만 평소에는 회의에 초대되지 않는 사람의 의자다. 의견을 듣는다고 정답이나 합의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누구의 삶이 결정 속으로 들어올 기회를 갖는지는 달라진다.

9. 재는 훈장이 아니다

이제 다섯 번째 악장의 상상 속 다리로 돌아가자. 오펜하이머는 버섯구름을 등에 지고 오지 않는다. 잔은 난롯가에 앉아 있고 라마누잔의 종이가 탁자에 놓여 있다. 여기 있을 자격을 보이려고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끝없이 재연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 오펜하이머의 과거를 가지런히 접어 상자에 봉인한 것도 아니다.

그는 하이젠베르크를 본다. 각자 무엇을 했고 무엇을 알았으며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물을 것이 많다. 양자 이론이 두 사람의 인간적 위치를 흐려 놓지는 않았다. 너도 똑같이 했을지 모른다는 말로 대화를 끝낼 수는 없다.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 실제로 벌어진 행동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보어는 국제협력을 이야기할 자리를 남겨 두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도 있지만, 자기들의 지식이 오직 빛으로만 향한다고 서둘러 증명하려 하지는 않는다. 흄은 백개먼 판을 접어 통로를 비운다. 자리를 내는 일은 작은 행동이다. 동의한다는 표시도, 더는 묻지 않겠다는 약속도 아니다.

맞은편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생존자, 뉴멕시코의 바람 아래 살았던 사람들의 자리가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용서의 대사를 써 줄 수는 없다. 과학자의 설명을 듣고 싶어 할 것이라고 가정할 필요도 없다. 자리를 남긴다는 것은 우선 그들의 질문과, 우리가 상상한 화해를 거절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오펜하이머는 자신도 괴로웠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른다. 말해도 된다. 다만 그 문장이 방 전체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 신뢰를 잃고 부당한 일을 당한 경험은 들을 가치가 있다. 다른 이들이 잃은 것은 출입 자격이 아니라 가족과 건강, 집과 살아갈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시야 밖으로 옮길 필요는 없다.

칸트가 가리키는 것은 빈 의자이지 면죄의 도장이 아니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한다는 데에는 잘못한 사람을 영원히 한 장의 꼬리표로 줄이지 않는 일도 들어 있다. 동시에 다친 사람들을 그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재료로 삼지 않는 일도 들어 있다. 오펜하이머는 앉아도 되고, 여전히 질문에 답해야 한다. 존엄과 책임은 서로를 쫓아낼 필요가 없다.

그가 손을 내려다보더라도 우리는 재가 훈장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말 뒤에 있던 것을 기억하게 한다. 옷과 방과 책장, 나무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유명한 이의 손 위에 있다고 상상한다고 해서 재가 더 고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난로의 불은 아직 타고 있다. 누군가 서명하지 않은 문서를 탁자 위에 놓는다. 그것은 미래의 문서이며 과거를 다시 쓰지는 못한다. 오펜하이머가 의자를 조금 뒤로 물려 다른 사람이 말할 자리를 낸다. 다음에는 먼저 듣는 일부터.

읽기 안내와 출처

1945년 6월 16일 과학자 패널 보고서와 11월 2일 연설, 1949년 일반자문위원회 보고서와 두 부록, 2022년 에너지부 명령 및 아래 기관 자료를 확인했다. 유명한 『기타』 영상은 1965년 회상이지 실험 당일 현장에서 한 말을 기록한 자료가 아니다. 11.32의 칼라/시간과 2.47의 행동·결실 구분을 참고하되 하나의 번역으로 전체 작품을 규정하지 않는다. 1951년 변화는 휠러의 1996년 회상도 참고했으나 기억의 거리를 남기고 회의 월이나 극적인 세부는 채택하지 않았다. 청문 기록 전권을 통독했다는 뜻은 아니다.

1949년 다수 의견과 페르미·라비의 별도 윤리 부록을 구별한다. 위원회가 모든 핵무장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1954년은 행정 절차이며 반역죄 판결이 아니다. 1963년 수상은 인가 회복이 아니고 2022년 결정 취소도 사후의 새 인가가 아니다. 바람 아래 주민들의 서술은 NPS와 NCI 자료에 근거하되 개인 질병의 원인을 단정하지 않고 오래되었을 수 있는 보상법 현황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무실 의자와 다섯 번째 악장의 다리는 명시적 상상이다. 박해나 후회로 전시 책임을 면제하지 않으며 피해자 대신 용서의 말을 쓰지 않는다.

트리니티 회상: 영상 발췌와 발언 기록 · 팰리 소장 목록: NBC 원폭 투하 결정 다큐멘터리(1965) · 『바가바드 기타』 11.32: 산스크리트어·어휘·영역 · 『바가바드 기타』 2.47: 행동과 그 결실 · 과학자 패널 권고(1945년 6월 16일) · 로스앨러모스 과학자협회 연설(1945년 11월 2일) · 일반자문위원회 수소폭탄 보고서와 두 부록(1949년) · 휠러가 회상한 오펜하이머의 입장 변화(1996년 녹화) · 1954년 결정을 취소한 미 에너지부 명령(2022) · 고등연구소: 오펜하이머의 활동과 유산 · 미 국립공원관리청: 트리니티 실험의 풍하 주민 · 미 국립암연구소: 트리니티 위험 연구의 지역사회 요약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