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 108 · 삶 뒤에 남는 작업
라마누잔, 꿈
익숙한 이력으로 보증받지 못한 편지 한 통은 어떻게 공동의 작업이 되었을까. 인도의 조력자들, 꿈과 증명, 1729 다음의 질문. 라마누잔은 놀라운 답과 함께 다른 사람이 생각을 이어 갈 자리도 남겼다.
I. 이 결과들을 한번 봐 주십시오
1913년 1월 16일, 마드라스 항만청의 한 직원이 케임브리지의 수학자 하디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봉급과 학력, 처지부터 설명한 뒤 수학적 결과들을 빼곡하게 적었다. 완성된 논문처럼 독자가 따라갈 길을 차근차근 정리한 글은 아니었다. 아주 먼 곳의 누군가가, 자신이 해 온 일을 진지하게 한번 봐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은 막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편지에는 스물세 살쯤이라고 썼지만, 대학 학위가 없고 정규 수학 교육을 마치지 못했다는 사정은 분명했다. 자신을 소개할 때 내놓을 수 있는 이력보다 종이 위의 작업이 훨씬 컸다. 상대가 아직 읽어 보지도 않은 일을 위해, 먼저 그 사람의 시간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하디와 리틀우드는 그 안에서 비범한 것을 알아보았다. 이미 알려진 결과도 있었고, 틀린 주장이나 조건을 더 붙여야 하는 식도 있었다. 그 사이에 놀랍도록 독창적인 관계가 나타났다. 완성품에 승인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들어가 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오류를 알아보되 오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판단이 필요했다.
하디가 훗날 표현한 경탄은 유명해졌다. 그러나 라마누잔의 삶을 바꾼 것은 경탄이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었다. 하디는 답장을 쓰고, 질문하고, 증명을 요청했다. 작업을 계속할 조건을 마련하는 데에도 힘을 보탰다. 편지가 바다를 건너 되돌아왔다. 받은 사람은 자신의 수학이 이제 다음이 있는 대화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책상에 놓인 낯선 사람의 편지 한 통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다음 동작이 가져올 차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형식이나 이력만 보고 분류해 버리면 질문은 읽히기도 전에 밀려난다. 하디는 수학을 들여다보았다. 인도에서 이미 라마누잔을 돕던 사람들에게도, 그 노력을 이어 갈 새로운 연결이 생겼다.
물론 답장 한 통으로 케임브리지에 갈 수는 없었다. 비용을 마련하고 가족의 걱정을 풀고 배편을 준비하는 데 시간과 여러 사람의 수고가 들었다. 수학은 종이 몇 장으로 먼 바다를 건넌다. 사람에게는 뱃삯과 음식, 설명이 필요하다. 남는 가족의 생활도 이어져야 한다. 초대장이 그 모든 문제를 저절로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편지의 의미에는 천재의 발견보다 소박한 사건도 들어 있다. 요청에 응답이 왔다. 라마누잔은 자신이 해 온 일을 내놓았고, 누군가는 그가 먼저 익숙한 지원자의 모습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않은 채 읽었다. 서로의 차이가 모두 정리되기 전에도 대화는 시작될 수 있었다. 그 시작이 다음 가능성을 열었다.
II. 종이가 여행하기 전에
라마누잔은 1887년 12월 22일 남인도의 에로드에서 태어나 쿰바코남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포목상에서 일했고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녔으며 이후 대학 과정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수학 이외의 과목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장학금을 잃었으며 학위를 얻지 못했다. 한 가지를 놀랍도록 잘한다고 해서 삶 전체가 저절로 정돈되지는 않았다.
십 대에 만난 G. S. 카의 《순수수학의 기초 결과 요람》은 넓은 작업장을 열어 주었다. 수많은 결과가 짤막한 설명과 함께 모여 있었다. 계산하고, 식을 바꾸고, 추측하고, 또 다른 연결을 찾아볼 수 있었다. 훗날 노트에 나타나는 압축된 기록 방식에도 이런 독서와 연습의 시간이 배어 있었다. 간결한 식 이전에 읽고 해 본 날들이 있었다.
독학이라는 말 속에도 그 시간을 남겨 두어야 한다. 라마누잔은 책으로 배웠고 많은 계산을 했으며 사람들을 찾아갔다. 인도수학회 학술지에도 글을 냈다. 베르누이 수에 관한 논문은 1911년에 실렸다. 영국에 편지를 쓰면서 수학자로서의 삶이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작업이 더 넓은 자리를 찾고 있었다.
라마찬드라 라오를 비롯한 후원자들이 생활을 도왔다. 항만청의 나라야나 아이야르는 수학을 함께 이야기했고, 지인들은 소개하고 추천하며 기회를 구했다. 노트의 모든 대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도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과 믿음을 내놓는 사람이 있었다. 유명한 만남 훨씬 전부터 작업의 지속은 이런 작은 응답들에 기대고 있었다.
가난은 계산하는 방식에도 드러난다. 먼저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석판에 풀고, 남길 만한 결과를 종이에 옮긴다. 석판은 다시 쓰면 되지만 종이는 아껴야 했다. 마지막에 남은 식만으로 그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전부 알 수는 없다. 어떤 생각의 어느 부분이 후대에 도착하는지에는 재료의 사정도 관여한다.
마침내 마드라스 대학의 연구 장학금이 좀 더 안정적인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여기서 돈이 하는 일은 구체적이었다. 장부를 붙들지 않아도 되는 오후를 사 주고, 한 문제를 늦은 밤까지 미루지 않게 했다. 연구할 자유는 때때로 평범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는 약속에서 시작된다. 큰 이상 이전에 오늘의 몇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식민지와 제국의 중심 사이 거리는 이런 장면에서 만져진다. 도서관도, 인정도, 그곳에 들어가는 통로도 고르게 놓여 있지 않았다. 라마누잔에게는 인도에서 해 온 일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케임브리지에는 새로운 중요한 기회가 있었다. 둘 다 사실이다. 나중의 만남을 소중히 여긴다고 해서 거기까지 걸어온 길을 지울 필요는 없다.
III. 꿈에는 꿈의 언어가 있다
라마누잔의 가족은 비슈누의 화신인 나라심하와 관련된 여신 나마기리를 숭배했다. 여신이 수학을 보여 주었다거나 꿈속에 공식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회고와 전기에 거듭 등장한다. 그런 이야기는 생각이 찾아오는 순간을 당사자와 가족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들려준다. 그들이 살았던 종교적 세계 안에서 경험을 말하는 방식이었다.
가족이 처음 해외로 떠나는 일을 망설인 데에는 바다를 건너는 행위를 금하는 종교와 카스트의 규범도 얽혀 있었다. 전기에는 어머니가 나마기리의 허락을 꿈에서 받은 뒤 아들의 출발을 받아들였다고 전해진다. 그 이야기는 가족의 기억으로 남겨 둘 수 있다. 떠나도 좋다는 허락조차 한 집안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
1914년 3월 배에 올라 4월에 영국에 도착했다. 노트와 함께 식습관, 신앙, 고향 사람들에 대한 걱정도 옮겨 갔다. 낯선 곳을 실제로 낯설게 만드는 작은 불확실성들이 기다렸다. 대학의 초대장은 끼니마다 무엇을 먹을지, 겨울 아침을 어떻게 보낼지, 혼자 남은 저녁을 어떻게 견딜지까지 알려 주는 문서가 아니었다.
꿈을 들을 만한 이유는 그것이 한 사람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편 수학적 결과가 성립하는지에는 수학적 이유가 필요하다. 누군가 자기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까지 단 하나의 허용된 언어로 말할 필요는 없다. 두 질문을 구별하면, 모두 비웃거나 모두 무조건 믿는 것보다 대화할 여지가 더 커진다.
하디의 종교적 입장은 라마누잔과 달랐다. 그래도 두 사람은 식을 사이에 놓고 조건과 계산과 증명을 살필 수 있었다. 함께 일하려고 상대의 세계관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바꿀 필요는 없었다. 어떤 질문을 같이 연구하는 동안 어느 차이는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그것을 아는 일이 협력의 힘이 되기도 한다.
꿈의 일부는 열린 채로 남아도 된다. 신의 보증도, 직관이라는 한 단어도 삶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읽기와 반복 계산, 기억, 어느 순간 드러나는 관계들 역시 그 이력에 속한다. 이름을 붙이면 경험에 관해 말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 이름에 경험을 가능하게 했던 모든 것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IV. 책상 양쪽에서 생각하는 사람들
1914년의 케임브리지에는 깊이 이야기할 동료와 책, 연구할 시간이 있었다. 라마누잔은 하디와 공동 작업을 했고 혼자서도 논문을 발표했다. 그곳에서 중요하게 발전한 일이 많았다. 동시에 그는 이미 자기 질문과 방법을 가지고 왔다. 그 질문은 책상 건너편에 앉은 사람의 작업도 바꾸었다. 교류에는 두 방향이 있었다.
두 사람은 정수의 분할을 연구했다. 양의 정수를 양의 정수들의 합으로 나타내되 순서만 다른 경우는 하나로 센다면 몇 가지 방법이 있을까. 4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4, 3과 1, 2와 2, 2와 1과 1, 그리고 1 네 개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질문이 곧 일일이 늘어놓기 어려울 만큼 커진다.
하디와 라마누잔은 분할의 가짓수가 증가하는 양상을 다루는 강력한 방법을 만들었다. 공동의 수학적 창조였다. 착상이 방향을 열고, 추정과 유도와 증명이 다른 독자도 그 길을 따라가게 했다. 한 사람은 영원히 계시를 받고 다른 사람은 검사를 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문제 안에서 역량이 만나, 함께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달라졌다.
증명을 미래의 독자에게 하는 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내 기억도 신앙도, 그 순간의 번뜩임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같은 결과를 스스로 확인할까. 단계를 보이면 독자는 천재의 이름만 믿지 않아도 된다. 반론에도 정확한 자리가 생긴다. 여기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걸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라마누잔 자신도 결과를 유도하고 증명했다. 노트에서 중간 단계가 빠졌다는 사실만으로 추론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성립하는 주장도 있고 수정하거나 조건을 좁혀야 하는 주장도 있다. 그의 비범한 작업 역시 배우고, 확인하고, 틀릴 수 있는 인간의 세계에 속한다. 오류가 없어야만 뛰어난 업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곧 전쟁이 영국의 일상을 바꾸었다. 채식에 맞는 음식과 요리, 어려워진 물자 사정, 고향과의 거리는 생활을 고되게 했다. 1917년 심하게 앓기 시작한 뒤 오랜 시간을 치료와 요양에 보냈다. 좋은 연구 기회가 몸과 식사와 외로움까지 저절로 돌보지는 않았다. 공동 연구의 책상 밖에는 실제로 신경 써야 할 삶이 남아 있었다.
1918년에는 왕립학회 회원과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로 선출되었다. 인정은 학계에서의 위치를 바꾸었지만, 병실의 하루에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했다. 결과를 높이 평가하는 기관은 그 결과를 가지고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곳에 오는 것은 몸 없는 아이디어 공급원이 아니라 몸과 습관과 필요, 취약함을 가진 사람이다.
V. 1729 다음에도 질문은 있다
하디는 퍼트니에서 요양 중인 라마누잔을 찾아간 날을 회고했다. 타고 간 택시의 번호가 1729였는데, 별로 재미없는 수 같다고 말했다. 라마누잔은 곧바로 특별한 성질을 알아보았다. 이 장면은 방문자의 기억을 통해 전해진다. 천재를 설명하는 신화가 되기 전에, 두 사람이 함께 보낸 한때로 읽을 수도 있다.
1729는 두 양의 정수의 세제곱의 합으로 서로 다르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작은 양의 정수다. 1³과 12³의 합, 9³과 10³의 합이다. 한쪽은 1과 1728이고 다른 쪽은 729와 1000이다. 두 합이 같다는 것은 금방 확인된다. 가장 작다는 사실에는 더 작은 후보들을 배제하는 일도 필요하다.
회고는 멋진 답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디는 네제곱의 경우를 이어 물었다. 라마누잔은 생각해 보고는 바로 떠오르는 예가 없으며, 최초의 수는 상당히 클 것 같다고 했다. 특별한 관계를 즉시 알아보는 사람에게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화를 이어 가도 누구의 자격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양의 정수들이 라마누잔의 개인적인 친구라는 표현을, 하디는 리틀우드의 말로 소개했다. 오래 알고 지낸 얼굴에서는 다른 사람이 그냥 지나치는 차이가 보인다. 수의 조합을 되풀이해 만나는 일도 그렇게 알아볼 수 있는 가능성을 늘린다. 숫자가 실제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 없이, 그 비유는 깊은 친숙함을 전달한다.
친숙함에는 재능과 더불어 일이 들어 있다. 하디는 방대한 계산, 사례에서 얻는 추측, 가설을 빠르게 바꾸는 방식도 기록했다. 즉각적인 답 뒤에 오래 주의를 기울인 시간이 있을 수 있다. 입을 여는 순간에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답을 준비한 과정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택시 이야기는 뜻밖의 수 관계와 모름이 허용되는 대화를 함께 남길 수 있다. 모든 질문에 즉답해야만 라마누잔일 수 있다면, 우리가 그를 우리 손으로 만든 전설 속에 가둔 셈이다. 모두가 외우는 답 옆에 그의 다음 질문을 위한 자리도 있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수학은 계속된다.
VI. 보는 일과 설명하는 일 사이
칸토어 역시 익숙한 세계에 낯선 깊이가 나타나게 했다. 그는 엄밀한 논증으로 무한의 크기를 구별했고, 라마누잔은 급수와 연분수, 분할과 함수 사이의 관계를 찾아냈다. 누가 더 많이 보았는지 순위를 매길 이유는 없다. 서로 다른 도구와 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수학적으로 물을 수 있는 질문의 범위를 바꾸었다.
두 사람의 병을 너무 많이 본 사람이 치르는 값으로 합칠 수는 없다. 지적인 대담함은 의학적 설명이 아니다. 고통을 천재의 정해진 운명으로 만들면 치료와 지원, 생활 조건에 관한 질문은 한숨을 부르는 배경으로 밀려난다. 작업은 이해받을 만하고, 질병은 질병으로서 관심을 받을 만하다. 둘은 따로, 동시에 중요하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작업을 받아 더 이어 가는 또 다른 관계를 보여 주었다. 패러데이에게는 이미 실험과 이론적 생각이 있었고, 맥스웰은 새로운 관계와 표현을 발전시켰다. 하디와 라마누잔의 책상에서도 양쪽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작업의 강점이 각자 무엇을 알아차리고 무엇을 더 내놓을 수 있는지에 영향을 주었다.
잔 다르크와 함께 읽으면 두 질문이 드러난다. 목소리나 환영을 당사자가 어떻게 말하는가와 그 주장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검토하는가는 다르다. 경험을 존중하면서 판단에는 질문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려면 비웃어야 하는 것도, 자신의 판단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두 질문을 함께 두는 대화가 가능하다.
와일드와 라마누잔은 모두 제국의 중심에 있는 문턱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고 같은 운명은 아니다. 와일드는 형사 처벌을 겪었다. 라마누잔에게는 중요한 협력과 인정이 있었고, 동시에 전쟁과 질병과 생활의 어려움이 있었다. 닮은 점은 질문을 열어 주고, 다른 점은 이미 마련해 둔 도식 속으로 사람이 사라지지 않게 한다.
방향을 알아보는 일과 그것을 분명히 보이는 일 사이에는 함께 일할 공간이 있다. 누군가는 패턴을 제안하고, 누군가는 반례를 낸다. 한 사람이 다른 때에는 두 역할을 모두 할 수도 있다. 좋은 만남은 할 수 있는 일을 늘린다. 각자에게 영원히 한 종류의 마음만 허락하는 역할표를 건네지는 않는다.
VII. 돌아온 사람과 계속 살아간 사람
1919년 라마누잔은 여전히 심하게 아픈 상태로 인도에 돌아왔다. 자나키가 돌봄을 도왔다. 병에 관해서는 당대와 후대의 해석이 다르다. 결핵이 의심되었고, 나중의 연구는 간 아메바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남은 기록에서 고통은 분명해도 진단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한 세기 뒤의 우리는 그를 다시 진찰할 수 없다.
1909년 결혼할 당시 자나키는 어린아이였다. 당시 풍습이었다는 짧은 설명만으로 그 사실을 지나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녀의 생애 전체를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 하나로 채울 수도 없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나이와 사정이 있었고, 남편이 죽은 뒤에도 긴 삶이 이어졌다. 수학자를 돌보았다고 자신의 삶이 부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훗날 연구자들은 그녀에게서 사진과 기억을 얻어 라마누잔의 모습을 보존했다. 계속 살아간 사람이 기억을 운반한 것이지, 전설이 자기 기록을 스스로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직 누군가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간직하고, 건네준 것에 기대기도 한다. 보존에는 유명한 대상뿐 아니라 그것을 해 온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1920년 1월, 라마누잔은 자신이 모의 세타 함수라고 부른 새로운 대상에 관해 하디에게 편지를 썼다. 용어를 다 몰라도 행동은 이해할 수 있다. 여전히 관계를 발견했고, 먼 곳의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다. 병이 관심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다만 계속 작업한 것은 그가 한 일이지, 명성이 그에게 지운 마지막 의무는 아니었다.
4월 26일,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종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일이 남았다. 업적 옆에 적힌 나이는 아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먼저 잃은 것은 한 사람의 삶이다. 앞으로 몇 개의 정리가 더 나왔을지 계산하는 것만으로는 다 말할 수 없다. 성과가 하나도 없는 평범한 날들을 더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귀향은 병을 없애지 못했고 영예는 간병을 대신하지 못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종이를 지키고 읽고 연구하면서 종이에 다 담기지 않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수학을 더 이어 가기 위해 병상을 제단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의 긴 여생도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 밖에 놓아두지 않아도 된다.
VIII. 노트가 살아간 그다음 시간
1976년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에서 자료를 보던 조지 앤드루스는 라마누잔의 말년 원고 뭉치의 중요성을 알아보았다. 훗날 잃어버린 노트로 알려진 자료였다. 저자가 죽은 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신비로운 유물은 아니었다. 다른 수학자들이 살피고, 보관하고, 정리하고, 옮긴 자료가 새롭게 읽힐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왓슨, 랭킨, 휘터커가 그 전달의 흐름에 속한다. 앤드루스의 회고에는 루시 슬레이터의 안내도 나온다. 발견은 누군가의 눈이 빛나는 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이를 남긴 사람이 있고, 문서고로 보낸 사람이 있으며, 관심을 가질 독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있다. 자료가 적절한 독자를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에도 조건이 있다.
앤드루스와 베른트, 수많은 협력자들은 증명을 찾고 성립 조건을 밝히며 이미 알려진 것과 새로운 것을 구분했다. 모의 세타 함수의 이해도 여러 세대를 거쳐 발전했고, 21세기 초 중요한 새 틀을 얻었다. 그 사이 수학 전체가 백 년 동안 잠든 것은 아니었다. 지속된 작업이 서로 떨어져 보이던 단서들을 더 넓은 그림으로 이어 주었다.
남아 있는 식은 결과이자 질문일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 성립하는가. 비슷해 보이는 식들이 왜 다르게 움직이는가. 더 일반적인 관계가 있는가. 뒤이은 연구는 가보를 반짝이게 닦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종이 위의 주장을 검토하고 반박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현재의 삶으로 다시 데려온다.
라마누잔이 착상에 이른 모든 길을 재구성할 수는 없다. 석판 계산은 지워졌고, 압축된 메모는 단계를 생략했으며, 회고에는 저마다의 시점이 있다. 그 역사의 일부를 모르는 채로 남겨 두어도 특정 결과의 증명은 가능하다. 발견의 이력에 대한 겸손과 눈앞의 논증에 대한 정확함은 한 사람 안에 같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제목의 ‘꿈’은 이 거리를 남겨 둔다. 완성된 논문이 한 사람이 질문에 이르기까지의 길 전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찾아낸 것의 일부는 전달된다. 같은 꿈을 꾼 적 없는 사람도 저자의 내면 전체를 재현하지 않은 채 그 작업에서 더 생각해 나갈 수 있다. 서로의 전부가 같지 않아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
IX. 이번에는, 아직 지우지 말고
이제 다섯 번째 악장의 상상 속 다리로 돌아가 보자. 라마누잔이 석판을 들고 걸어온다. 먼 길을 온 사람을 위해 누군가 책상 곁을 비운다. 앉아서 짐을 내려놓아도 된다. 옷과 몸, 여행의 피로, 아직 마음에 남은 질문이 함께 도착했다. 문밖에 두고 들어와야 할 부분은 없다.
패러데이의 장치가 있고 맥스웰의 종이에는 고친 흔적이 있다. 라마누잔은 석판을 기대 놓고 관계 하나를 쓴다. 일부를 이해하는 사람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아직 모른다고 의자를 내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의자를 내주었다고 모든 식이 참이라는 약속도 아니다. 환대와 검토는 같은 책상에 앉을 수 있다.
하디가 다가온다. 이 연작에 독립된 번호를 가진 인물은 아니어도, 상상의 손님으로 초대할 수 있다. 글씨를 읽고 한 단계를 가리킨다. 라마누잔은 분필을 들어 한 줄을 보탠다. 어느 쪽도 문제를 찾아낼 수 있고, 어느 쪽도 앉기 전에는 몰랐던 것을 배울 수 있다. 누가 배울지 미리 결정된 자리가 아니다.
칸토어도 자신의 종이를 가까이 옮긴다. 더 연구될 논증과 질문이 적혀 있다. 무한을 다른 모든 공식 위에 들어 올릴 필요는 없다. 책상은 서로 다른 문제들을 놓기에 충분히 넓다. 각자 이유가 필요한 곳에서 이유를 구한다. 하나에 주의를 기울인다고 다른 질문들이 사라지거나 존재할 허락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잔은 목소리를 말하고, 라마누잔은 꿈을 말해도 된다. 와일드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기로 한 문장이 있어도 된다. 자리를 얻기 위해 소중한 경험의 언어를 반납할 필요는 없다.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남아서 말한다. 한 판단을 묻는 일이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을 내쫓는 일로 바뀌지 않는 곳이다.
자나키에게도 의자가 있다. 물을 가져오거나 천재를 증언하라고만 초대한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을 이야기해도 되고 잠시 조용히 있어도 된다. 체호프는 먼저 누가 피곤한지 묻는다. 실제 사람을 살피기 위해 대화를 멈춘다고 책상 위의 수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쉬었다 돌아와도 식은 기다리고 있다.
라마누잔이 습관처럼 석판을 지우려고 손을 든다. 누군가 빈 종이 몇 장을 건넨다. 잠깐, 그 중간 줄들도 남겨 둘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생각을 보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과정이 종이 부족 때문에 당장 사라질 필요는 없다. 물질적인 조건 하나가 미래의 대화에 닿을 것을 바꾸기도 한다.
그는 다시 쓴다. 다른 사람들은 머릿속 모든 것이 어디서 왔는지 완벽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기다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한 걸음과 다음 걸음이 시작될 자리다. 꿈은 그의 것으로 남아도 된다. 종이는 다른 손으로 넘어가 여러 사람이 함께 살필 수 있는 무언가를 운반한다.
다리의 등불이 종이와 석판을 비춘다. 볼 수 있을 만큼의 빛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아는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라마누잔은 한 줄을 마치고 멈춘다. 이번에는 지워지기 전에, 다른 사람이 읽을 시간이 있다.
읽기 안내와 출처
첫 편지는 하디가 수록한 원문에 따라 1913년 1월 16일로 적었다. 편지에는 약 스물세 살이라고 했지만 생년월일상 스물다섯 살이다. 학위가 없었다는 사실은 대학에 다닌 적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1729와 이어지는 네제곱 질문은 하디의 회고에 나오며, 정수를 개인적인 친구로 부르는 비유는 리틀우드에게 돌린다. 노트의 증명 생략이 증명 능력의 부재를 뜻하지 않으며 모든 기록이 옳은 것도 아니다. 나마기리와 꿈 이야기는 가족과 전기의 증언으로 다루고 수학적 진리의 보증으로 삼지 않는다.
영국에서 중병을 앓은 시기는 하디의 기록에 따라 1917년부터로 두었다. 1918년 두 차례의 선출, 1919년 귀국, 1920년 1월 모의 세타 함수에 관한 편지와 4월 26일의 죽음은 별개의 사건이다. Young의 1994년 간 아메바증 가설은 회고적 진단이므로 본문은 불확실성을 남긴다. 잃어버린 노트는 말년의 낱장 원고이며 1976년 이전에도 보존과 연구의 역사가 있었다. 석판 사용만으로 빠진 논증이 모두 완성된 적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인물 비교는 필자의 독해이고 마지막 다리와 대화는 명시적인 문학적 허구다.
하디, 「스리니바사 라마누잔」(왕립학회 추도문, 1921, 편지와 1729 회고 수록) · 왕립학회, 라마누잔 선출 증서(EC/1918/18) · 왕립학회, 「라마누잔을 다시 만나다」(2018년 기록 전시와 자나키가 보관한 사진) · 브루스 베른트, 「라마누잔과 함께한 40년」(2019년 온라인 공개, 2020년 권) · 로버트 슈나이더,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 발견: 구술사」(2012) · 조지 앤드루스, 「라마누잔의 잃어버린 노트 발견」(회고와 당시 서신) · 브루스 베른트·아툴 딕시트 대담, 「라마누잔과 함께한 빛나는 50년」(2024) · 타밀나두주 나마칼 지구 정부: 나마기리 암만 사원 · D. A. B. 영, 「라마누잔의 질병」(1994년 회고적 의학 연구)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