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 108 · 삶 뒤에 남는 작업
샬럿 브론테, 사랑받되 소유되지 않기
청혼과 유산을 얻기 전에 제인은 자신이 동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랑받는 일은 삶을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가치를 만들거나 자신으로 갚아야 할 빚을 남기지는 않는다. 샬럿은 사랑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사랑을 얻지 못할 때에도 자신을 버리지 않을 가능성을 남겼다.
1. 정원에 선 사람
1847년에 나온 《제인 에어》의 23장. 여름 저녁의 대화가 이별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제인은 손필드의 정원에 서서 로체스터가 자신의 다음 일자리를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가 잉그램 양과 결혼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가까워지기 시작한 방들이 곧 자신의 일상에서 사라질 참이다.
로체스터는 아일랜드의 일자리와 거리, 헤어짐을 말한다. 제인의 마음을 떠보고 있기도 하다.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 새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 것은 충분한 배려일 수 있다. 하지만 제인에게는 여기서 느낀 모든 감정을 짐과 함께 부쳐 보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마침내 고용된 사람이 해야 할 대답만 하고 있을 수 없어진다.
가난하고, 이름 없고, 평범하게 생겼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자신에게는 영혼도 마음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녀의 마음은 그의 마음만큼 가득하다. 관습을 넘어, 무덤을 넘어, 하나님 앞에 서더라도 두 영혼은 평등하다. 지금 이미 평등한 것처럼. 평등은 더 좋은 세상이 올 때까지 미뤄지지 않고 이 불평등한 정원으로 들어온다.
‘이미’라는 말이 중요하다.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호의로 평등을 나누어 달라고 청하지 않는다. 청혼이 자신의 자격을 높여 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무슨 대답을 들을지 모르는 순간에 먼저, 여기 말하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세운다. 사랑받으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사람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그때 처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받고 싶다. 아플 만큼 간절하다. 그렇다고 그 말의 힘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자신을 존중하려고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척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몹시 남고 싶으면서도 말할 수 있다. 여기 있기 위해 감정 없는 물건이 되어야 한다면 나는 떠나야 한다고.
책 표지에는 커러 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인에게 그 목소리를 준 샬럿 브론테도 사람들이 여자가 할 수 있는 말을 미리 정하기 전에 자신의 말이 들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소설 속 인물의 말과 작가의 출판 과정은 서로 울린다. 그렇지만 둘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합칠 수는 없다.
2. 제인을 쓴 사람
샬럿은 1816년 요크셔의 손턴에서 태어났고, 뒤에 가족과 하워스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성공회 성직자였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이모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도왔다. 이 집은 황야를 배경으로 한 슬픈 윤곽만이 아니었다. 책을 읽고 가르치고 일하는 사람이 있었고 돈과 장래에 관한 의논도 있었다.
1824년 샬럿과 여러 자매가 코완 브리지의 성직자 딸들을 위한 학교에 들어갔다. 언니 마리아와 엘리자베스는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고 이듬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굶주림과 추위, 약한 아이들을 권위가 꾸짖던 기억이 뒤에 로우드 학교로 들어간다. 하지만 소설이 된 기억은 작가가 다시 만든 것이지 한 줄씩 대조할 학교 기록은 아니다.
남은 네 아이는 목사관에서 이야기를 지었다. 샬럿과 브랜웰은 앵그리아를 발전시켰고, 에밀리와 앤은 곤달을 만들었다. 작은 책장 안에 궁정과 전쟁, 다툼과 야심이 들어 있었다. 출판사가 기다려 주기 훨씬 전부터 서로가 독자였다. 이야기는 판매 부수로 재기 전에도 계속 쓸 이유를 갖고 있었다.
샬럿은 교사로도, 가정교사로도 일했다. 후자는 특히 어정쩡한 자리였다. 교육을 받았지만 고용주와 동등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과 가깝지만 집안의 요구에 따라야 했다. 남의 응접실에 앉아 있으면서 자기 하루의 모양을 정할 수 없는 기분을 그녀는 알았다. 그 경험은 제인에게 직업 하나를 붙여 준 것보다 깊이 목소리의 결을 만들었다.
1842년 에밀리와 브뤼셀로 공부하러 갔다. 교사 콘스탕탱 에제는 그녀의 문학적 능력을 진지하게 대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보낸 편지에는 강한 애착과 답장을 기다리는 고통이 남아 있다. 에제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이 기록에서 간절함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를 현실의 로체스터로 만들거나 다른 가족의 결혼을 소설가의 소유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녀는 기다렸고 일도 했다. 자매들이 학교를 열려던 계획에는 학생이 모이지 않았다. 1846년 비용을 들여 출판한 시집도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듬해 편지에서 샬럿은 일 년 동안 두 권이 팔렸다고 전한다. 그런 소식은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자매들은 더 당연하게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쓰는 일을 넘겨주지 않았다.
《교수》는 거절당했지만 《제인 에어》는 1847년 가을에 출판되어 곧 주목받았다. 성공은 갑자기 열린 문 같았다. 이제 편집자, 독자, 비평가를 상대해야 했다. 집에서 쓴 문장들이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이 모인 방으로 가 논쟁을 일으켰다. 출판은 일의 도달 범위를 넓혔다. 그 일을 가능하게 한 꾸준한 노동까지 지우지는 않았다.
그 뒤 1848년 9월 브랜웰이, 12월 에밀리가, 1849년 5월 앤이 죽었다. 일 년도 안 되는 동안 어린 시절 함께 세계를 만들던 세 사람이 모두 사라졌다. 병이 데려간 것은 각자의 삶을 가진 형제자매였다. 살아남은 언니의 전기를 더 감동적으로 만들 자료를 제공한 것이 아니다. 좋은 서평이 집의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했다.
샬럿은 이후에도 《셜리》와 《빌레트》를 썼다. 친구들과의 편지, 방문, 새로운 작업도 남은 삶에 속한다. 제인은 그녀가 창조한 사람이지 그녀 대신 인생을 마무리할 대리인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의 울림을 들으면서도 가장 유명한 소설이 다 말하지 못한 샬럿의 부분을 남겨 둘 수 있다.
3. 사랑받는다고 빚이 생기지는 않는다
정원의 평등 선언은 마음을 흔들지만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결혼식 날 제인은 로체스터에게 이미 아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버사 메이슨은 살아 있고 집 안의 방에 갇혀 있다. 이해하려고 애쓰던 웃음소리와 공포, 비밀에 다른 설명이 생긴다. 자신이 동의하는 데 꼭 필요한 진실을 듣지 못한 채 동의를 요청받았던 것이다.
로체스터는 여전히 제인을 사랑하며 남기를 바란다. 자기 불행을 말하고 다른 곳에서 함께 사는 계획을 내놓는다. 제인은 받은 상처의 일부를 용서하면서도 그가 이제 원하는 모든 것에 응하지 않는다. 용서하기, 사랑하기, 남아 있기는 서로 다른 결정이다. 하나에 답했다고 나머지 답까지 미리 서명해 준 것은 아니다.
가장 힘든 압박은 자기 안에서도 온다. 가족도 없는 여자가 어떻게 살든 누가 신경 쓰겠는가. 제인은 자신에게 대답한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긴다고. 외롭고 지지받지 못할수록 마지막 남은 발밑의 땅마저 내주어서는 안 된다. 아직 유산도 없고 체면 좋은 퇴로도 준비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자기 존중이 있다.
그녀는 떠나고 굶주림과 탈진으로 거의 죽을 뻔한다. 원칙을 지키면 보상이 저절로 주어진다고 소설은 말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나가려면 돈과 거처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중에 구원받았다고 그전 위험이 마땅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갈 길을 남겨 준다는 말이 얼마나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일인지 보이게 된다.
이후 삼촌의 재산을 물려받으며 자신을 도운 리버스 남매가 사촌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제인은 2만 파운드를 네 몫으로 똑같이 나눈다. 돈은 모두의 선택지를 늘리고 친족 관계는 재산을 혼자 지키는 숫자가 아니게 한다. 그녀는 돌아갈 집과 로체스터가 비용을 대지 않는 삶을 얻는다.
그 뒤 세인트 존이 다른 미래를 제안한다. 자신과 결혼하고 선교사의 아내로 인도에 가자는 것이다. 그는 제인의 능력을 높이 사지만 결혼을 자신의 소명에 필요한 일로 본다. 제인은 돕고 싶으며 신앙도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래도 쓸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생을 넘기면 그 유용함 속에서 숨이 막히리라는 것을 안다. 이 결혼을 거절하는 것이 모든 책임이나 자기 종교적 신념을 버리는 일은 아니다.
이 변화들은 로체스터와 다시 만날 때 중요하다. 하지만 그제야 제인이 갑자기 사랑받을 만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가난할 때도 같은 존엄이 있었고, 혼자일 때도 거절할 자격이 있었다. 유산은 선택의 조건을 바꾸었지 사람의 가격을 바꾸지 않았다. 여전히 사랑하므로 돌아갈 수 있다. 돌아가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받는 일이 열어 주어야 할 것은 이런 여지일 것이다. 누군가 내가 나를 돌보도록 도와주되 그 도움을 내 인생에 대한 청구서로 바꾸지 않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나는 돌봄을 받을 가치가 있다. 자신을 잘 지키지 못하는 때에도 그 가치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제인이 걸어간 먼 길은 채권자를 바꾸는 일에 그친다.
4. 커러 벨
커러, 엘리스, 액턴. 자매들은 각자 이름의 첫 글자를 남기면서 성별이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 이름을 골랐다. 샬럿은 나중에 사생활을 지키려는 마음과 여성 작가에 대한 비평을 믿기 어려웠던 이유를 설명한다. 모호한 이름을 쓰면 ‘여성’이라는 분류가 독서 대신 판단을 시작하기 전에 작품 자체가 닿을 수도 있었다.
당시에도 여성들은 소설을 출판하고 있었다. 여자 이름을 표지에 쓰지 못하게 하는 보편적인 금지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읽히는 방식이었다. 칭찬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용이 섞이고, 비평이 문장에서 사생활의 품행으로 미끄러진다. 남자에게는 힘으로 보이는 열정이 여자에게는 자기 처지를 잊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이름을 가린다고 이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물과 언어와 구성을 먼저 본 뒤 작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생각해 달라는 요청일 수 있다. 필명은 잠시 빌려 입은 외투와 같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쓰는 사람은 숨더라도 써낸 것은 더 공정하게 읽히기를 바랄 수 있다.
《제인 에어》가 나오자 추측은 더 커졌다. 사람들은 힘 있는 이야기에 끌리면서도 여주인공의 분노와 욕망에는 불편해할 수 있었다. 제인은 적절한 남자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는 얌전한 상품이 아니다. 관찰하고, 오해하고, 부끄러워하고, 판단하고, 반박한다. 읽으려면 마지막에 누구와 결혼하는지만 확인하지 말고 그녀의 의식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1848년 샬럿과 앤은 런던으로 가 샬럿의 출판사에 신원을 밝혔다. 인쇄된 이름이 사무실에 서 있는 구체적인 여자가 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과장된 놀라움의 대사를 써줄 필요는 없다. 독자들이 논하던 목소리는 그들이 상상한 작가의 몸과 닮아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 만남만으로도 충분하다.
본명을 밝히는 것도 자유이고 다른 이름을 쓰는 것도 자유일 수 있다. 모든 여자가 같은 방식으로 용기를 증명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이름만으로 작품이 미리 경멸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 말하고 싶은 사람이 실제로 자기 말을 보낼 통로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샬럿과 잔 다르크
잔 다르크 곁에 샬럿을 놓으면 자세부터 달라 보인다. 한쪽은 군사 활동과 공개 심문, 다른 쪽은 책상과 출판 사이에 있다. 그러나 잔은 권력이 있는 줄 몰라서 그 사이를 지나간 것이 아니다. 위험을 알아보고 대답을 골랐으며 두려움과 제약을 겪었다. 그녀의 용기를 인정하기 위해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을 빼앗을 필요는 없다.
샬럿도 주변을 가늠했다. 이름을 바꾸고, 편지를 보내고, 어떤 약속을 거절하고, 한 장을 다시 고치는 일은 제한된 조건 안에서 움직이는 방법이었다. 용기는 때로 정면으로 답한다. 때로는 내일도 대답할 수 있도록 우선 말하는 사람을 보호한다. 살아서 일할 힘을 남기는 궁리가 반드시 신념의 부족은 아니다.
누가 더 어려웠는지 순위를 매길 필요는 없다. 한 여성의 처형은 다른 여성의 글쓰기가 존중받기 위해 따라잡아야 할 높이가 아니다. 조용히 앉아 있다고 대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비교가 고통의 크기만 재면, 살아남은 사람은 최악의 결말을 피했는데도 자신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추가로 설명해야 한다.
더 의미 있는 공통점은 타인이 자리를 이미 정해 놓은 곳에 자기 판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판단이 옳아지거나 비판할 수 없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은 그녀가 실제로 한 말에 응해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애초에 말할 자격이 없다는 선언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
소설은 군대의 일을 하지 못한다. 공개적인 저항은 오래 읽는 경험을 대신하지 못한다. 둘은 서로인 척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은 한 시대가 처음으로 가능성을 보게 한다. 다른 사람은 방에 혼자 앉은 독자가 아무 청중도 없이 조금씩 자기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도록 돕는다.
6. 황야 너머
하워스에는 바람과 히스가 있었지만 빽빽한 주택, 노동, 질병,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목사관은 황야의 가장자리에 있었지 사회 밖에 있지는 않았다. 책과 잡지와 편지가 먼 세계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이들의 작은 책에도 뉴스와 역사에서 읽은 갈등이 이미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제인 에어》의 풍경은 해방적인 자연의 그림 한 장보다 복잡하다. 손필드를 나온 제인의 몸을 황야는 받아 주지만 빵까지 주지는 않는다. 그녀를 살리는 것은 사람이 열어 주는 문이다. 자연은 지배에서 거리를 두게 할 수 있다. 살아가려면 여전히 누군가 다른 사람을 버티게 하는 구체적인 돌봄이 필요하다.
책에는 먼 곳에서 온 사람도 있다. 버사는 자메이카 출신이며 그 결혼에는 집안의 재산이 얽혀 있다. 그런데 그녀 자신의 설명이 충분히 펼쳐질 공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주로 제인의 공포와 로체스터의 이야기로 버사를 본다. 그녀를 짐승에 가까이 놓는 묘사 역시 중립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질문해야 할 부분이다.
제인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버사를 치워도 되는 장애물로 줄일 필요는 없다. 그녀의 감금과 줄거리 뒤에 있는 카리브해 식민지 사회는 평등 선언을 향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누구에게 ‘나’라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고, 누구의 고통은 거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오는가.
그 질문 때문에 책 전체의 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인이 타인의 정의에 저항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었으므로 다른 여성에게 같은 기회가 없다는 사실을 지나치기 어려워진다. 작품은 스스로 충분히 답하지 못한 질문을 독자가 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 질문을 받은 뒤에도 다시 읽을 가치가 남을 수 있다.
따라서 샬럿이 남긴 것은 외우기 쉬운 정답만이 아니다. 귀 기울이는 연습과 그 연습이 아직 닿지 않은 장소가 함께 남는다. 다음 독자는 거기에 멈춰 조금 더 멀리 물을 수 있다. 작품을 존중하는 값으로 더는 질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
7. 서른여덟 살
1854년 6월 29일 샬럿은 아버지의 보좌 성직자 아서 벨 니컬스와 결혼했다. 한 번 청혼을 거절했다가 나중에 결정을 바꾸었다. 아버지의 생각,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자기 감정이 그 과정에 있었다. 소설의 인물에게 정해진 궤적을 완성하려고 제시간에 도착한 결혼식이 아니었다.
편지에는 결혼 생활을 관찰하는 말과 새로운 친밀함이 있다. 그녀에게 함께 살아갈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제야 사랑받을 권리를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언니, 친구, 작가, 결혼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보낸 삶도 실제였다. 남편이 자격을 확인해 줄 때까지 기다리는 임시 신분이 아니었다.
1855년 3월 31일 그녀는 임신 중에 세상을 떠났다. 서른여덟 살이었다. 심한 구토와 쇠약에 대한 기록 때문에 후대에는 임신오조 등 여러 설명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지난 추정을 병상에서 확정된 현대의 진단처럼 쓸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계속 살아갈 시간이 그녀에게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혼과 죽음 사이에는 아홉 달이 있었다. 드디어 사랑받았지만 너무 늦었다는 판결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짧음은 충분히 슬프다.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친구는 다음 편지를 받지 못했다. 책상 위의 일에는 다음 페이지가 영원히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상실은 도덕적인 장식을 달지 않아도 우리에게 닿는다.
한 인생은 결혼이라는 도장을 기다리는 신청서가 아니다. 그녀의 가치는 1854년에 시작되지 않았고 1855년의 죽음으로 더 순수해지지도 않았다. 잃어버린 미래를 아쉬워하면서도 이미 살았던 서른여덟 해를 지우지 않을 수 있다. 짧은 결혼 이전의 모든 시간을 대기실로 만들지 않을 수 있다.
8. 샬럿과 와일드
와일드는 법정에서 침묵을 강요받은 사랑에 공개적인 언어를 주었다. 샬럿은 소설에서 가정교사가 마음을 말하게 하고 수백 페이지 동안 독자를 그 여자의 관찰 곁에 머물게 했다. 한쪽은 형사처벌을, 다른 쪽은 성별과 계급에 얽힌 독서 습관을 마주했다. 서로를 비추지만 같은 상황은 아니다.
두 사람은 쉽게 못 본 척하던 한 가지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어떤 사람의 바람을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언해도 그 바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은 여전히 편지를 기다리고 이해받고 싶어 하며 식탁 옆자리를 비워 둔다. 그런 감정은 문학적 업적으로 바꾼 뒤에야 진지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지하게 대한다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 주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제인은 로체스터의 사랑을 원할 수 있지만 그에게 그렇다는 대답을 빚으로 지울 수 없다. 괴로운 편지를 받았다고 에제 자신의 삶이 취소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이 자기 이름을 말할 수 있는 것과 상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
거절은 아프다. 답이 없으면 자기 전체의 가치까지 의심하게 된다. 소설은 그 의심을 함께 지나갈 수 있지만, 네가 아직 사랑받을 만하지 않다는 말을 더 보탤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계가 내가 바라던 방식으로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인생 전부를 판결한 것은 아니다.
다섯 번째 악장이 살피는, 삶 이후에도 남는 작업은 때때로 이런 구별을 남기는 일이다. 다음 독자들은 작가의 곤경을 다시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녀의 옷을 입거나 그의 말투를 빌릴 필요도 없다. 책을 자기 일상으로 가져가 사랑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사랑이 없을 때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길을 시험할 수 있다.
9. 독자여
38장은 ‘Reader, I married him’으로 시작한다. 독자여, 나는 그와 결혼했다. 영어 네 단어의 무게는 그전의 긴 길에서 온다. 제인은 아니라고 말했고 떠났으며 도움을 받았고 로체스터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얻었다. 그러므로 ‘나’는 문법상 앞으로 나온 대명사에 그치지 않는다. 선택지가 있는 사람이 선택했고 그것을 스스로 이야기한다.
손필드는 불탔고 버사는 죽었다. 사람들을 구하려던 로체스터는 한 손과 시력을 잃었으며 뒤에 시력 일부를 회복한다. 그 장애를 남자가 충분히 약해져야 여자가 동등해질 수 있다는 교환 조건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제인의 존엄은 다른 사람의 몸이 손상되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결말에는 다시 선택한 관계의 따뜻함이 있을 수 있다. 동시에 버사의 죽음이 남긴 질문도 있다. 제인이 로체스터를 돌보기로 했다고 모든 여성이 돌봄으로 자기를 완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했다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이야기 중간에 멈춘 것도 아니다. 선택한 결말이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는 아니다.
이제 소설과 전기를 떠나 이 연작이 상상한 다리 어귀로 가보자. 샬럿이 종이 한 묶음을 들고 온다. 왜 한때 커러 벨이라는 이름을 인쇄했는지부터 설명하라는 사람은 없다. 여기까지 오는 길 가운데 하나였을 뿐, 들어오기 전에 고백해야 하는 정체성의 잘못이 아니다.
와일드가 곁의 자리를 비운다. 두 사람은 한 문장이 어떻게 오해되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고 책 이야기를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다. 작품을 발표했다고 남은 자신 전체까지 공적인 독서에 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종이를 내려놓으면서 자기 자신까지 전시할 필요는 없다.
잔 다르크가 가까이 서 있다. 불꽃도 없고 다시 답하라는 심문자도 없다. 샬럿은 누가 더 용감했는지 묻지 않는다. 떠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방이 남의 요구로 가득한 것 같을 때 자기 시간을 어떻게 남길지 같은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제인의 이름을 알아본 누군가가 그 사람을 계속 기다려야 하느냐고 묻는다. 샬럿은 종이를 놓지만 낯선 인생에 완성된 결말을 건네지 않는다. 책은 그가 생각하는 동안 곁에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해야 할 형편을 이해하는 일까지 대신 가져갈 수는 없다.
건너편에서 칸트가 듣는다. 사랑받을 자격의 조건표를 쓰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응답받은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다. 함께 있고 싶은 사람도 떠나야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처지도 그 사람을 다리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빈자리를 그 주인이 사랑받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샬럿은 빈 페이지를 편다.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모든 것을 《제인 에어》 마지막 장에 가둘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망설이고 누군가를 잘못 알아보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미 모범적인 결말을 가진 사람에게만 그녀가 시간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 위에 한 단어를 쓴다. Reader. 독자. 당신의 전부를 이미 안다는 약속이 아니다. 당신이 대답할 수 있는 자리를 여는 말이다. 자신을 알아볼 수도 있고 이 책은 아직 내게 닿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느 쪽 대답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렇다고 책이 닫히지는 않는다. 다음 문장이 올 자리를 남겨 두었다.
읽기 안내와 출처
소설 장면은 『제인 에어』 23장, 26~27장, 33~35장, 36~38장에 근거한다. 동등함은 이미 23장에서 선언되며, 2만 파운드를 넷으로 나누는 33장은 세인트 존의 청혼보다 앞선다. 마지막 장을 여는 영어는 네 단어이며, 문법적 위치만으로 주체성을 입증하지 않는다. 버사와 식민지 배경에 관한 논의는 이 글의 비평적 독해로, 본문이 확정하지 않는 인종적 정체성을 단정하지 않는다. 로체스터의 장애도 평등을 사는 벌로 해석하지 않는다. 전기를 떠난다고 명시한 마지막 다리 장면 여덟 문단은 문학적 허구다.
필명에 관한 설명은 개스켈 전기 1권에 인용된 샬럿의 1850년 전기적 기록을 따른다. 시집 두 권 판매는 1847년 6월 16일 편지에서 말한 출판 후 일 년의 수치다. 개스켈과 쇼터가 수록한 편지는 사료지만 편집자의 해석까지 중립적인 결론으로 보지는 않는다. 에제에게 보낸 편지는 애착을 보여 주지만 불륜이나 로체스터와의 일대일 대응을 입증하지 않는다. 두 언니는 학교에서 병을 얻은 뒤 집으로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샬럿은 1855년 임신 중 사망했으며 임신오조는 후대의 설명이지 당시 확정된 진단은 아니다. 결혼이 그녀의 가치를 부여했다고 보지 않는다.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원문 · 개스켈: 『샬럿 브론테의 생애』 1권, 1850년 필명 설명 포함 · 개스켈: 『샬럿 브론테의 생애』 2권과 출판·결혼·투병 편지 · 클레먼트 쇼터: 『샬럿 브론테와 그 주변』 수록 서신 · 영국도서관: 샬럿 브론테가 콩스탕탱 에제에게 보낸 편지 · 브론테 목사관 박물관: 브론테 가족의 삶 · 웨스트민스터 사원: 브론테 자매의 생애와 기념 연대 · 커러·엘리스·액턴 벨의 시집 원문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