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호메로스, 목소리와 문자의 문턱
한 천재가 서구 문학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긴 구전 전통이 ‘호메로스’라는 이름 아래 목소리와 텍스트 사이에 작품을 남겼다.
1. 얼굴보다 먼저 있는 이름
《일리아스》를 펴면 표지에 호메로스라는 이름이 있다. 단단하고 익숙하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나려 하면 바닥이 갑자기 불안해진다. 어디서 태어나 언제 죽었으며 누가 그를 알았는가. 현대 작가처럼 한 편의 전기로 조립할 수 없다.
두 서사시 뒤에 같은 한 사람이 있는지조차 쉽게 답하지 못한다. 호메로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작업의 어느 부분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일까. 확실해 보이는 이름 아래 빠진 기록이 많다.
고대의 여러 도시가 그의 고향이라고 주장했고 전해지는 목록도 달랐다. 그 경쟁이 그가 없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누구나 자기 땅과 연결하고 싶어 할 만큼 값진 유산이 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눈먼 가수라는 모습도 전승에 속한다. 이름을 실명과 연결하려는 설명이 있지만 어원만으로 전기가 확정되지는 않는다. 이름이 모습을 알려 준 것이 아니라 알려진 모습에 맞추어 이름을 설명했을 수도 있다.
확실한 얼굴이 없다고 사람의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목소리와 청중, 관용구와 선택, 나중에는 베끼는 손과 읽는 눈이 이 이름 주위에 모인다. 문학의 시작에는 천재 한 명뿐 아니라 잘 보이지 않게 된 많은 사람이 있다.
2. 기억은 만들어 낼 줄 안다
남아 있는 본문보다 훨씬 전부터 트로이아 이야기는 공연 속에서 살았다. 전쟁에 역사적 핵심이 있다면 대체로 청동기 말기를 생각하고, 서사시의 형성은 수백 년 뒤에 놓는다. 두 지점을 끊김 없이 이어 주는 기록은 없다.
가수가 일어선다. 거대한 책 한 권을 낱말 하나까지 외워서 재생했을까. 그렇게 상상하면 인쇄된 본문에 익숙한 우리의 방식을 다른 예술에 집어넣게 된다. 여기서 기억과 창작은 적이 아니다.
1930년대 유고슬라비아에서 밀먼 패리와 젊은 앨버트 로드가 조사한 가수들은 전통적 시구와 주제, 장면의 틀을 사용해 긴 서사시를 불렀다. 고정된 원문의 내적 사본이 없어도 긴 작품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포도주 빛 바다, 발 빠른 아킬레우스. 아름다운 표현이면서 운율을 받치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야기가 나아갈 발판을 준다. 도구임을 안다고 아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음악가가 익숙한 구절을 알아도 공연마다 똑같이 연주하지는 않는다. 전승과 변화는 함께 일한다. 많은 부분을 안정되게 지키면서도 다른 밤과 다른 청중에게 응답할 수 있다.
목소리는 글이 생길 때까지 형태 없이 기다린 재료가 아니었다. 이미 기술과 제약, 자유가 있었다. 글로 옮겨 가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질서를 먼저 들어야 한다.
3. 첫날의 사진은 없다
기원전 8세기 무렵, 페니키아 문자를 바탕으로 모음을 따로 표시하는 그리스 알파벳이 형성된다. 말에는 다른 자리가 생긴다. 한밤에 불린 한 줄이 그 밤을 떠나 다른 독자의 눈앞에서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글자는 억양과 쉼, 듣던 사람의 얼굴을 통째로 보관하지 않는다. 더 오래 남는 것과 모든 것을 옮길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기록의 이익에도 경계가 있다.
두 서사시는 어떻게 글이 되었을까. 뛰어난 가수가 서기에게 구술했다는 가설이 있다. 긴 형성 과정과 수정, 여러 단계의 정착을 더 중요하게 보는 설명도 있다. 우리는 최초 장면을 찍은 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
작품의 규모와 짜임은 놀라운 구성 능력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글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구전 연구가 가르쳐 준 것은 오히려 목소리로 구성하는 능력을 낮춰 보지 말라는 점이다.
쓰인 뒤에도 노래는 계속되었다. 사본은 달랐고 읽는 사람은 고치고 논쟁했다. 목소리와 글 사이에는 한 사람이 뒤에서 닫아 버린 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든 문턱이 있다.
4. 전하는 일은 이미 고르는 일
비교의 다른 편에는 공자가 있다. 《논어》는 그가 전하되 창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후대는 경전을 정리한 일도 그에게 돌렸다. 그러나 삼천 편을 본인이 삼백오 편으로 줄였다는 이야기를 확인된 편집 일지처럼 다룰 수는 없다.
동양은 전하고 서양은 창조한다. 공자는 물러서고 호메로스는 서명한다. 깔끔하지만 너무 깔끔하다. 중국 전통에도 저자를 중히 여기는 태도가 있고 그리스에도 무사 여신들과 가수들, 공동의 기억이 있다.
말을 남기는 데도 선택이 필요하다. 어느 판본을 반복할 것인가. 어떤 장면을 늘릴 것인가. 밤이 끝나기 전에 무엇을 뺄 것인가. 전승은 봉인된 상자를 나르는 일이 아니다.
반대로 창작도 빚 없이 시작되지 않는다. 호메로스의 시는 가정된 한 저자가 혼자 발명하지 않은 재료와 리듬, 청중의 기대를 물려받는다. 큰 설계와 긴 전통은 함께 있을 수 있다.
진짜 질문은 왜 많은 목소리가 한 이름으로 대표되느냐는 것이다. 그 이름 덕분에 작품을 찾는다. 그 이름 때문에 작품을 우리에게 옮겨 온 사람들을 놓치기도 한다.
5. 다른 사람들이 값을 치르는 분노
《일리아스》는 분노로 시작한다. 트로이아의 건국도 전군의 출발도 아니다. 십 년 전쟁에서 제한된 시간을 잘라 내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중심에 놓는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빼앗는다. 장수들에게는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명예의 문제다. 누가 누구에게서 빼앗을 수 있고 누가 그것을 보는가. 하지만 브리세이스 자신도 전쟁으로 노예가 된 사람이다. 남자의 위신을 표시하는 물건으로만 읽으면 그녀를 한 번 더 지우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전장을 떠난다. 가치를 모욕하면서 용기만 이용하게 두고 싶지 않다. 그 거부의 힘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그 값을 치르는 다른 사람들도 보게 한다. 싸우고 다치고 죽는 것은 그만이 아니다.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가 헥토르에게 죽는다. 분노의 중심이 옮겨 간다. 이제 모두 앞에서 빼앗긴 것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 중심이 된다.
돌아온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시신을 욕보인다. 이겨도 파트로클로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죽은 몸에 폭력을 반복해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힘이 스스로 고칠 수 없는 것을 만난다.
여기서 읽기를 멈추면 자기 상처에 갇힌 영웅이 남는다. 그러나 시는 끝나지 않는다. 한 노인을 그에게 오게 한다.
6. 아버지가 입 맞추는 손
마지막 권에서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받으러 적진에 간다. 요구만 보내지 않는다. 아들을 죽인 남자 앞으로 자기 몸을 가져간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끌어안고 손에 입을 맞춘다. 여기서는 읽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 아버지가 자기 아이를 죽인 손에 입술을 댄다. 협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이 아니다. 그 부탁을 위해 감당하는 참기 어려운 값이다.
프리아모스는 멀리 있는 아킬레우스 자신의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삶이 짧을 것을 안다. 앞에 있는 노인은 적의 왕만이 아니라, 아들을 기다리는 다른 노인을 보이게 한다.
두 사람이 운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를, 아킬레우스는 아버지와 파트로클로스를 생각한다. 잃은 사람도 처지도 같지 않다. 한쪽은 부탁하고 다른 쪽은 여전히 거절할 수 있다. 함께 운다고 그 차이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행동이 가능해진다. 시신을 돌려주고 장례를 치를 시간을 허락한다. 세계 평화가 아니다. 전쟁의 끝도 아니다. 죽은 한 사람이 마침내 자기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일리아스》는 목마나 트로이아의 함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이었던 헥토르의 장례로 끝난다. 시 전체를 도덕적 발전의 직선으로 줄이지 않아도 마지막에 그 자리를 내주는 무게는 들린다.
군사적 분류는 적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와서 무릎을 꿇자 그 분류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진영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진영이 한 사람을 전부 설명한다고 더는 믿을 수 없게 된다.
7. 돌아온다는 것은 도착만이 아니다
《오디세이아》는 한 남자로 시작한다. 폴뤼트로포스라는 말은 여러 전환과 기지, 긴 방랑 사이에서 움직인다. 에밀리 윌슨은 2017년 영어 번역에서 complicated를 골랐다. 어느 한 단어도 모든 방향을 붙잡을 수 없다.
오디세우스는 거짓말하고 변장하고 이름을 숨긴다. 퀴클롭스 앞에서는 ‘아무도 아닌 자’가 된다. 영리함이 살아남게 해 준다. 하지만 성공한 속임수라고 모두 정당하다는 보증을 시가 주는 것은 아니다.
아킬레우스는 곧장 가고 오디세우스는 돌아가는 듯하다. 그 비교에도 틈이 있다. 아킬레우스는 물러나고 프리아모스 앞에서 달라진다. 오디세우스는 굽이돌면서도 귀향을 원한다. 사람은 비교하기 편한 도식이 아니다.
이타케의 페넬로페도 가만히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선택하겠다고 하고 낮에는 짜고 밤에는 푼다. 자신에게 기대되는 집안일을 남들이 자기 삶을 결정하는 시간을 늦출 도구로 바꾼다.
삼 년 뒤 계략은 들통난다. 시간을 영원히 멈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얻은 시간은 공백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의 압박 속에서 스스로 만든 여지였다.
남자가 돌아와도 주변에서 맞다고 한다고 곧바로 인정하지 않는다. 뿌리박힌 올리브나무를 기둥으로 삼은 침대의 비밀로 그를 시험한다. 함부로 옮길 수 없는 침대에 대한 반응을 보고 남편을 알아본다.
귀환은 그녀 자신의 판단을 지나야 한다. 집은 영웅에게 돌려주는 소유물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계속 생각하고 저항하고 스스로 알아볼 능력을 지킨 사람이 있었다.
8. 소크라테스가 대화하고 싶었던 사람
플라톤은 시의 교육적 힘을 깊이 의심한다. 《국가》에서 미래의 수호자를 만드는 표현들은 검토되어야 한다. 무엇을 훌륭하다고 여기고 어떤 행동과 슬픔을 따라 배우는가.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호메로스가 비판에서 면제될 수는 없다.
모방에 대한 비판도 의심을 더한다. 시는 지식과 다른 권위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렇지만 플라톤 자신의 대화편도 장면과 이미지, 신화를 사용한다. 철학은 문학이 없는 방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는 죽음의 한 가능성을 상상한다. 죽은 이들을 만나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면 어떨까. 오르페우스와 무사이오스, 헤시오도스와 호메로스가 그 상대들이다. 여전히 묻고 살피고 만나고 싶다.
호메로스라는 한 이름이 나머지를 지우는 것은 아니다. 그 장면이 시인의 확실한 전기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람이다. 평생 질문해도 자기 세계를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성이 노래를 완전히 몰아낸 결말은 아니다. 철학은 시인의 권위를 따지면서도 함께 있고 싶어 한다. 그 대화가 지금 읽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이어진다.
9. 문턱에는 아직 사람이 산다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에서 모든 질문이 같지는 않다. 소크라테스는 확신을 묻고 공자는 전하면서 고른다. 노자와 장자는 너무 단단한 이름을 흔든다. 칸트는 한계를 살피고 니체는 물려받은 가치를 시험한다.
왕양명은 판단을 마음으로 돌려놓는다. 붓다의 뗏목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건넌 뒤에도 평생 짊어질 것이 아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고통 한가운데 용서를 둔다. 전부 같은 뜻이라고 하면 각각의 행위가 더 선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괴델은 특정 형식 체계의 불완전성을 증명했지 우리의 모든 철학적 비유를 보증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통일을 찾고 두보는 전쟁에 흔들리는 구체적인 삶을 시에 넣는다. 서로 바꿔 끼울 부품이 아니라 울려 주는 작업들이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에는 또 하나의 일이 모인다. 목소리를 글로 옮기고 글이 다시 목소리가 될 길을 남긴다. 상상하는 가수 뒤에는 다른 가수들이 있고, 앞에는 필사자와 독자, 배우와 번역자가 있다.
글은 한 줄을 먼 곳까지 남겨 둔다. 동시에 남은 판본에 권위를 주어 다른 판본이 잘 들리지 않게 할 수도 있다. 보존과 손실은 언제나 다른 작업이 아니다. 같은 손짓에서 일어날 수 있다.
구전은 혼돈이 아니었고 문자는 정지가 아니다. 관용구에는 이미 짜임이 있었고 사본과 번역은 계속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 문턱을 양쪽으로 건넌다.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손에 입 맞추는 천막에 들어간다. 첫 목소리도 고통 전부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래도 다른 목소리가 말을 받아 들고, 무엇인가가 아직 우리에게 도착한다.
읽기 안내와 출처
호메로스 서사시의 성립과 문자화에는 학술적 이견이 남아 있다. 이 글은 구전 전통의 핵심성을 받아들이지만, 하루의 구술로 정본이 완성됐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리 장면은 문학적 상상이다.
하버드 헬레닉 연구소: 구전 전통, 문자 텍스트와 저자 문제 · 하버드 헬레닉 연구소: 호메로스 문제 · 하버드 헬레닉 연구소: Homer Multitext · Perseus: 호메로스 『일리아스』 24권 · Perseus: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41a ·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23권 (Samuel Butler 영어 번역, Project Gutenberg)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