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 108 · 세계가 사람을 되빚을 때
일본 천황제, 빈 왕좌
황위는 변하면서 이어졌다. 질서를 안정시키기도 하고 권력과 책임이 빈자리 틈으로 빠져나가게도 한다.
1. 앉는 사람보다 오래 남는 자리
쇼군이 전쟁을 벌인다. 어떤 집안은 땅을 얻고 다른 집안은 잃는다.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은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많은 것이 바뀌는 동안 한 이름은 계속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천황이다.
같은 사람들이 수백 년 통치한 것은 아니다. 그 자리가 가진 권한도 그대로가 아니었다. 주변만 아니라 자기 정의까지 달라지는데도, 어떻게 하나의 자리는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일본서기》의 진무 즉위 기년은 기원전 660년으로 잡힌다. 그것은 신화적 왕통 서사에 속하지, 매 대를 끊김 없이 추적할 수 있는 기록은 아니다. 문헌으로 확인하는 역사와 기원을 말하는 이야기는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고 긴 연속성이 사소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세계 최고 기록으로 만들려 하면 가문과 왕조, 군주의 직위와 현대 헌법 제도를 같은 대상으로 비교하게 된다. 순위를 얻는 대신 질문을 잃는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이 제도는 바뀌지 않아서 지속된 것이 아니라 바뀌면서 지속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바뀌었을까.
2. 통치하지 않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왕좌를 비었다고 부르는 일은 위험하다. 실제로 통치한 천황도, 물러난 뒤 권력을 행사한 상황도, 분쟁의 당사자가 된 조정도 있었다. 그것을 잊으면 비유를 지키려고 역사를 지우게 된다.
헤이안 시대에는 후지와라의 섭관 정치와 함께 친정과 원정도 있었다. 뒤이은 무사 정권들이 큰 실권을 가져갔다고 조정의 역할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관직과 의례, 임명과 시가, 문화의 기억은 무활동이 아니다. 어떤 자리가 정당하며 누가 누구 위에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다. 세율을 정하지 않는 사람도 그 세금이 받아들여지는 질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서 비었다는 말이 가능하다면 제한된 뜻에서다. 일상의 통치 일부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도 상징적 중심은 남을 수 있다. 그 간격 덕분에 통치 집단이 무너져도 자리가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진시황과 비교하면 조금 선명해진다. 집중된 정치적 이미지는 권위와 구체적 정책, 그 비용을 단단히 묶는다. 하지만 진의 붕괴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다. 덜 일하면 오래간다는 법칙을 증명하는 사례는 아니다.
일본의 왕좌도 비판할 수 없는 곳이 아니다. 다만 자리와 정책이 나뉘면 비판은 막부나 내각으로 향하고 자리 자체는 남기 쉬워진다. 이때 옮겨 다니는 것은 업무만이 아니다. 책임도 함께 움직인다.
3. 누가 그 이름을 쓸 수 있는가
연극에서는 배우가 바뀌어도 무대가 남는다. 정치적 격변도 지배 집단을 쫓아내면서 그 지배가 인정받던 장소까지 없애지는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역사의 배우들은 무대도 뜯어고친다. 조정은 수동적인 나무판이 아니다. 후지와라와 미나모토, 아시카가와 도쿠가와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직위와 네 번 똑같은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의 직위를 받았다. 나중에는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도 존왕을 내세웠다. 같은 이름이 기존 질서를 지키는 쪽과 뒤집으려는 쪽을 모두 도울 수 있다.
각 전환에는 전쟁과 협상, 기존 제도가 있다. 승리한 사람들이 차례로 황실의 도장을 받으러 줄을 선다는 그림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다.
주목할 것은 계속되는 상징이 서로 다른 정치적 단절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징이라는 이유로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 누가 이름을 사용하고, 누구를 향해, 어떤 행동에 권위를 부여하는가.
4. 남긴다는 것은 그대로 둔다는 뜻이 아니다
1945년 패전으로 질문이 절박해진다. 제도를 폐지할 것인가.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침략전쟁은 천황을 주권의 중심에 둔 국가 체제 아래 수행되었다. 상징이라는 한마디로 왕좌를 역사 밖으로 옮길 수 없다.
연합국 안에도 일본 안에도 하나의 의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점령기의 질서, 개혁의 실행, 히로히토의 협조를 얻을 가능성이 판단에 작용했다. 맥아더의 역할은 컸지만 한 장군의 개인적인 철학 실험은 아니었다.
제도는 남았고 근거는 바뀌었다. 이른바 인간선언으로 불리는 1946년 새해 조서는 천황과 국민의 관계가 천황의 신격에 기초한다는 허구적 관념을 부정했다. 단순히 ‘나는 신이 아니다’라는 현대적 한 문장으로 끝나는 문서는 아니다.
새 헌법 제1조는 천황을 일본국과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두고, 그 지위가 주권을 가진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규정한다. 상징이 국민주권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상징의 지위가 국민주권에 기대고 있다.
제4조는 국정에 관한 권능을 부정한다. 제3조는 국사행위에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요구하고 내각이 책임지게 한다. 이것은 비어 있음에 저절로 붙는 미덕이 아니라 법으로 배치한 제약이다.
상징도 감정을 움직이고 나라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법률이나 전쟁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생기지는 않는다. 실제 영향력과 통치 권한의 부재를 함께 보아야 한다.
5. 정확히 무엇이 살아남았는가
진은 일찍 끝났지만 정비한 제도 일부는 다음 왕조들에 남았다. 로마는 변하고 나뉘었지만 법과 정치적 이미지는 더 오래 작용했다. 정권의 끝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영으로 돌리지 않는다.
헤겔이나 마르크스의 사상도 한 정권의 몰락으로 전부 반증되는 것은 아니다. 비판받고 다시 읽히고 이용된다. 사상과 정부는 같은 방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왕좌의 경우에는 정책이 실패해도 자리를 남길 수 있다. 실패한 것은 이전 통치 형태이지 그 자리가 상징하는 연속성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재해석의 능력이지 기적이 아니다. 혈통과 계승, 의례와 국가 정체성은 이미 내용이다. 아무 액체를 담아도 영향을 주지 않는 완벽한 빈 병이 아니다.
단절마다 무엇을 버렸고 무엇을 남겼는지 물어야 한다. 그러면 연속성도 일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이야기하고 법으로 정하고 때로는 거칠게 협상하며 만든다. 가만히 있어도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6. 책임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갈 때
유연성에는 값이 있다.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 의미가 사람을 보호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래된 상징은 민주적 제약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복종에 장엄함을 입힐 수도 있다.
침략전쟁과 난징대학살은 구체적인 제국 질서의 역사다. 같은 이름 아래 벌어진 일이라고만 해서는 부족하다. 누가 결정했고 명령이 어떻게 전달되었으며 누가 개입할 수 있었고 무엇을 선택했는지 살펴야 한다.
위험은 모두가 다른 곳을 가리킬 때 커진다. 실행자는 명령에 따랐고, 상관은 제도를 대표했을 뿐이며, 제도는 상징이었다고 한다. 질문이 여러 손을 거친 끝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빈 무대라는 비유도 그 도피를 도울 수 있다. 무대는 어떤 공연에도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그 공연을 가능하게 한 규칙과 사람들을 놓친다.
국민주권과 기본권, 평화에 대한 헌법적 원칙은 전후 제도를 제한한다. 그러나 원칙은 사람들이 실행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때 작동한다. 오래 존재한다고 직위에 양심이 생기지는 않는다. 기억과 책임을 조직하는 일이 필요하다.
7. 니시다를 왕좌에 앉히지 않기
앞선 글의 절대무의 장소를 떠올리면 비교하고 싶어진다. 자리를 그때그때 차지하는 내용과 구별하고, 하나의 입장으로 전부를 채우지 않는다는 데에는 울림이 있다.
거기서 잠깐 멈춰야 한다. 니시다는 주체와 객체, 규정들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묻는다. 왕좌에는 이미 법과 계승자, 의례와 배제, 역사라는 규정이 있다.
왕좌는 형이상학 개념의 정치적 실물이 아니다. 무도 권력이 입주할 수 있는 주인 없는 궁전이 아니다. 같은 구조라고 말하면 비유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싣게 된다.
철학의 무는 깨끗하고 정치의 빈자리는 더럽혀졌다고 나눌 수도 없다. 그러면 철학자만 역사에서 면제된다. 니시다의 정치적 모호함은 그런 쉬운 출구를 허락하지 않는다.
비교의 역할은 작아도 좋다. 자리와 내용에 주의를 돌린다. 행위와 책임을 말할 때는 사람과 제도, 자료로 돌아온다. 무라는 말이 대신 판단해 줄 수는 없다.
8. 바뀔 수 있다고 모두에게 열린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이 연작은 주로 사람을 따라왔다. 제도 앞에서는 질문이 달라진다. 누군가 무엇을 만들었는가뿐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 그 안팎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는가.
다시 해석할 수 있는 자리는 한 정책의 실패만으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회복력이다. 그러나 끈질기다는 것과 불멸이라는 것, 정당하다는 것은 서로 다르다.
계승 규칙과 국민 통합의 이야기, 전쟁의 기억에는 경계가 드러난다. 누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가. 누가 그 상징에서 자신을 보는가. 누가 거리를 둘 자유를 가져야 하는가.
새로운 답을 받아들여도 모든 사람을 손실 없이 포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려 있다고 선언해도 누군가 앞에 닫힌 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용을 바꾸는 일과 타인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일은 다르다. 두 번째 일에는 권리와 이의를 제기할 여지,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아무리 긴 역사도 그 일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9. 다리 옆의 의자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가 즉위하고 레이와 시대가 시작된다. 이어받은 상징들이 현대의 법적 틀 안에 놓인다. 연속성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 곧 고대의 하루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다.
국사행위와 상징적 활동은 있지만 통치 권한은 없다. 사람도 있고 행위도 영향도 있다. 다른 곳에 놓여야 하는 것은 정치적 결정권과 그 결정을 내리는 민주적 기관의 책임이다.
이제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로 가 보자. 마흔 삶을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의자가 먼저 보인다. 다른 이들은 그리고 쓰고 논쟁한다. 의자는 침묵하는 듯하지만 사람들이 주변에 서는 방식을 바꾼다.
누군가 앉는다. 그 얼굴도 선택도 직위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의자는 잠시 지나가는 개인보다 계속되는 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믿게 한다. 거기에 힘과 위험이 함께 있다.
비었다는 말은 우리를 안심시키기보다 더 주의하게 해야 한다. 누가 채우는가. 누가 그 이름으로 말하는가. 대답할 기회도 없이 누가 대표되는가. 연속성은 축하만 할 것이 아니라 살펴볼 대상이다.
왕좌가 남아야 하는지, 왕좌 스스로는 대답하지 않는다. 답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 앞에 말없이 앉아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거기에 포함된다.
읽기 안내와 출처
신화적 왕통과 기록 가능한 제도사를 구분했다. 전쟁 책임은 하나의 단정으로 닫지 않았으며, 빈자리와 다리는 분석적·문학적 비유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일본국 헌법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이른바 ‘인간선언’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국민주권과 천황제 ·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전후 헌법 개혁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