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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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플라톤, 그날 그는 없었다

《파이돈》의 빈자리에서 동굴과 도시, 학당으로. 스승의 목소리를 남기는 일과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정하는 일 사이를 읽는다.

1. 그날의 빈자리

기원전 399년, 아테네.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마지막 날을 보낸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는 친구들이 곁을 지키고 있다. 대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죽음과 영혼, 그리고 자신이 내놓은 논거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관해서다.

마침내 독약을 마신다. 몸이 식어 가는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바칠 수탉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장면이 생생해서, 쓴 사람도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대화편의 앞부분에서 파이돈이 참석한 사람들을 꼽다가 말한다. 플라톤은 아마 병이 났던 것 같다고.

그 조심스러운 말투는 이야기하는 파이돈의 것이다. 플라톤이 자기 병을 몰라서 머뭇거리는 문장이 아니다. 작품은 그의 부재를 전할 뿐, 그 병이 무엇이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거기에 평생 낫지 않은 마음의 상처라는 진단을 붙일 근거는 없다.

그래도 그 빈자리는 눈에 남는다.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스승의 죽음은, 현장에 없었던 작가가 서술과 사유를 통해 다시 만든 장면이다. 감옥 안을 녹음해 둔 기록이 아니다.

스승은 죽었지만 제자는 책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이어 간다. 많은 대화편이 그렇다. 전부는 아니다. 《법률》에는 소크라테스가 나오지 않고, 다른 인물이 논의를 이끄는 작품도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남기는 일도 어렵지만, 그 안에 자기 목소리가 들어가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일은 더 어려울지 모른다.

2. 그 이름으로 누가 말하는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그는 안다고 자신하는 사람에게 묻는다. 익숙하게 쓰던 말이 더는 익숙한 말로 넘어가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플라톤은 그런 불편하고도 중요한 태도를 우리에게 남겼다.

《파이돈》과 《향연》, 《국가》로 가면 적극적인 구상도 크게 펼쳐진다. 영혼의 불멸, 아름다움 자체, 좋음, 함께 사는 삶의 질서가 논의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로부터 플라톤으로의 이동을 읽는 것은 영향력 있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문장마다 실제 발언자를 가려 주는 대조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 소크라테스는 비교할 철학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작품의 집필 순서와 여러 목소리의 관계도 여전히 논쟁거리다.

더구나 소크라테스가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일, 영혼을 돌보는 일, 삶을 성찰하는 일에는 분명한 무게가 있다. 모른다는 인정은 모든 가치와 약속을 비워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이 연작의 비유로 말하면, 제자는 스승에게서 잘못된 확신을 허무는 도구를 받아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다만 스승은 허물기만 했고 제자는 짓기만 했다고 고정해서는 안 된다.

질문의 힘을 살려 두면서도 공동생활에 필요한 답을 생각할 수 있을까. 플라톤은 그 어려움에 응답했다. 그 답이 컸기에, 후대가 다시 물을 자리도 넓어졌다.

3. 표결이 결정하지 못하는 것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그 문제에 한 사람의 얼굴을 준다. 법정의 판결은 생명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만으로 불의가 정의가 되지는 않는다. 유죄 판단과 형량 결정도 별도의 단계였다. 논란 있는 표 숫자 하나로 전체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당장의 여론과 함께 뒤집히지 않는 기준을 찾으려는 마음이 이해된다. 오늘의 다수는 이것이 좋다고 하고, 내일의 다수는 반대를 말한다. 그 변화만으로 무엇이 옳았는지는 정해지지 않는다.

이데아에 관한 사유는 질문을 정치 바깥으로도 끌고 간다. 어떤 사물은 한 면에서는 아름답고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질서는 칭찬받다가 비난받는다. 그렇다면 아름다움 자체, 정의 자체를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찾는가.

조금 더 아름다운 물건 하나를 찾거나 다시 표를 세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눈앞의 책상과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주장도 아니다. 죽은 소크라테스가 자신만의 ‘소크라테스 이데아’로 이사했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데아와 영혼에 관한 논증은 연관되지만, 한 스승을 위한 피난처로 합쳐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 탐구 곁에 스승의 죽음을 놓고 읽고 싶다. 의견이 파괴할 수 없는 기준이라는 질문에 인간적인 절박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글의 읽기이지, 이데아론의 유일한 심리적 원인을 발견했다는 말은 아니다.

상실이 질문을 절박하게 만들 수는 있다. 답의 근거는 따로 검토해야 한다. 슬픔으로 철학을 증명할 수도, 슬픔 때문에 생겼다는 이유로 철학을 폐기할 수도 없다.

4. 밖으로 나간 사람의 귀환

《국가》 7권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묶인 채 그림자만 본다. 그림자에 이름을 붙이고 나타나는 순서를 익힌다. 그 안에서는 제법 능숙해질 수 있다. 시야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라도 숙련은 가능하다.

풀려나 고개를 돌리는 사람에게 처음 찾아오는 것은 고통이다. 동굴 밖에서도 곧바로 모든 것이 보이지는 않는다. 빛에 적응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태양을 바라볼 수 있다.

그 사이가 중요하다. 오래된 확신을 잃었다고 새로운 세계까지 이해한 것은 아니다. 배우는 사람은 한동안 전보다 서툴러 보일 수도 있다.

그는 다시 내려간다.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는 눈 때문에 옛 동료들에게 조롱받는다. 비유는 더 나아가, 그들이 자신들을 풀어 위로 이끌려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다면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스승의 죽음이 강하게 울리지만, 재판을 그대로 옮긴 기록도 아니고 그 죽음을 정당화하는 설명도 아니다.

이 비유를 풀이할 때 태양은 좋음의 이데아에 대응한다. 교육은 보지 못하는 눈에 시력을 넣는 일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안에 이미 있는 능력의 방향을 돌리는 일이다. 정답을 전달하면 끝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돌아가는 사람에게 끌리면서도, 이끄는 사람의 권위를 경계한다. 더 잘 보았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의 삶 전체를 배치할 자격까지 생길까. 길잡이가 빛을 잘못 보았다면, 아래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5. 말로 세운 도시, 현실의 권력

《국가》는 정의를 살피기 위해 말 속에 도시를 세운다. 통치자, 보조자, 생산자는 서로 다른 일을 맡는다. 앞의 두 집단이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는 특별히 엄격한 관심을 기울인다.

철학자가 다스려야 하는 까닭은 그가 가장 권력을 탐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관조를 계속하고 싶은 사람이 공동생활의 일로 돌아와야 한다. 통치를 사적인 보상과 떼어 놓으려는 이 시도는 비판할 때도 지우면 안 된다.

그러나 맡겨진 역할만으로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좋음을 아는 사람으로 뽑힌 통치자가 잘못 판단하면, 누가 그것을 알아보고 어떻게 고칠까.

진시황과의 비교는 이 연작의 비교다. 사람을 지나치게 빈틈없이 배치하려는 유혹을 함께 살펴보자는 것이다. 대화 속 철학적 도시와 특정한 역사적 제국이 같다는 뜻은 아니다.

고대 자료에는 세 차례의 시칠리아 여행이 전한다. 첫 여행은 디오니시오스 1세와, 이후 여행은 디온과 디오니시오스 2세와 관련된다. 동일한 철인왕 실험을 세 번 되풀이한 것으로 줄일 수 없다. 노예로 팔렸다는 전승도 두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 여행에 붙어 있다.

자료에는 시간적 거리와 논란이 있고, 《제7서한》의 저자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어려움은 보인다. 좋은 통치를 논증할 수 있다고 해서 현실의 권력이 기꺼이 배움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설계도는 현실에 비추어 검토될 수도 있지만, 지지자들에 의해 현실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계속 옮겨질 수도 있다.

6. 내가 멈추어 서는 한 걸음

통념보다 나은 이유를 찾는 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다수의 동의가 여전히 한 사람에게 부당한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나는 그다음 걸음을 경계한다. ‘이쪽이 더 낫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다’에서 ‘나는 최종 기준에 도달했으니 너희는 내 배치에 따르면 된다’로 넘어가는 걸음이다.

플라톤의 모든 작품이 똑같이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와 반론, 해결되지 않은 난점은 밀봉된 체계라는 그림보다 복잡하다. 그렇지만 철학자의 통치는 인식의 우월성과 정치적 권위를 밀접하게 잇는다. 바로 그 연결을 계속 물어야 한다.

이 연작의 말로 하면, 우리가 지은 것을 닫힌 완성품으로 여기지 않는 일이다. 일상의 말로 바꾸면 이렇다. 우리의 계획은 누군가의 사정이나 아직 보이지 않는 피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빠뜨릴 수 있다.

이 입장 역시 이유를 내놓고 반박을 받아야 한다. 앞서 마흔 명 넘는 인물을 읽었다고 이데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통계적 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제국의 붕괴는 존재론의 직접적인 반증이 아니다. 후대에 어떤 사상의 이름으로 범죄가 일어났다고 자동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너무 아팠기에 근본부터 틀렸다고 판결하고 싶지 않다. 그에게 구체적인 사람을 위한 자리를 요구한다면, 이 구체적인 플라톤에게도 우리의 판결문보다 넓은 자리를 주어야 한다.

7. 스승이 제자에게 되묻는다면

소크라테스가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이데아론을 받아들일까.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 근거를 다시 설명해 달라고 청하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플라톤 자신이 이미 비슷한 어려움을 써 놓았다. 《파르메니데스》에서 젊은 소크라테스는 까다로운 질문을 받는다. 아름다움과 정의에 이데아가 있다면 머리카락, 진흙, 오물은 어떤가. 하나의 이데아가 여러 사물과 맺는 관계는 무엇인가.

완성된 집 앞에 ‘비판을 환영합니다’라는 안내문만 붙인 것이 아니다. 집을 지탱하는 연결부가 실제로 삐걱거린다. 대화는 그 소리를 근사한 결론 하나로 곧바로 덮지 않는다.

이것이 모든 이데아를 포기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반대로 틀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속마음의 증거도 아니다. 적어도 그는 스승의 이름을 질문 면제권으로 삼지 않고, 어려움을 독자에게 건넨다.

계승은 충실한 녹음과 배신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공자의 제자와 후학도 선택하고 해석하고 발전시키며 다투었다. 플라톤을 돋보이게 하려고 다른 전통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계속 생각하는 제자는 스승이 이미 한 말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 한 걸음이 제자 자신의 걸음이라는 사실을, 뒤에 오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게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8. 벽에도 들어갈 문이 있다

플라톤이 거대한 건물을 남겼다는 말은 이 연작의 비유다. 이후 서양철학이 한 채의 집에서만 살았다는 역사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이데아의 이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헤겔도 단순히 한 층을 더 올린 사람이 아니다. 칸트는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다시 묻는다. 서로 닿아 있지만, 닿는다고 차이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음에는 흄을 만난다. 반복된 경험에서 반드시 그러하다는 판단으로 넘어갈 때, 무엇이 그 도약을 보증할까. 일상에서는 계속 추론하고 행동하지만 철학적 보증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욕구를 보게 한다. 사정을 알아도 왜 갈망은 계속 우리를 밀어붙일까. 동시에 그는 플라톤에게 깊이 빚진 사람이어서, 안에서 건물을 허무는 역할만 맡길 수 없다.

키르케고르는 살아 있는 한 사람을 데려온다. 체계가 아무리 거대해도 오늘 밤 그 사람의 선택과 불안, 책임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세 사람은 같은 구호를 입증하려고 불러 모은 증인이 아니다. 비유 속 벽에 서로 다른 입구를 낸다. 들어간 뒤에는 각자의 말을 따로 들어야 한다.

9. 학당과 설계도

기원전 387년 무렵,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남긴 것은 책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질문을 계속할 자리도 있었다.

그것은 현대의 대학이 아니었다. 창립부터 서기 529년까지 같은 기관이 중단 없이 아홉 세기 동안 운영되었다고 계산할 수도 없다. 철학 전통의 지속과 기관의 연속성은 다르다. 기하학을 모르면 들어오지 말라는 유명한 문구도 현장에서 확인된 간판처럼 다룰 필요는 없다.

그는 기원전 348년이나 347년 무렵, 대략 여든 살에 죽었다. 결혼 잔치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는 고대 전기가 보존한 한 전승이지, 확실하게 재현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은 아니다.

지금도 펼칠 수 있는 것은 대화편이다. 거기에는 아직 논거가 있고, ‘여기서는 설득되지 않았다’고 말할 자리도 있다. 단지 옛사람을 기리는 기념물로 남은 것은 아니다.

이제 이 연작이 상상해 온 다리 어귀로 돌아가 보자. 플라톤이 몸을 낮춰 도면을 그린다. 기둥과 길, 지붕이 자리를 잡는다. 소크라테스는 곁에서 본다. 곧바로 찬성하지도, 도면을 밟아 지우지도 않는다. 공자와 뉴턴, 먼저 도착한 사람들도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그것을 소크라테스를 다시 부당하게 죽이지 않을 도시의 그림으로 상상하고 싶다. 플라톤의 자술이 아니라 내가 만든 문학적 장면이다. 도면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 한쪽 구석을 가리킨다. 제가 저기 삽니다. 그런데 제 삶은 그려 놓으신 모습과 다릅니다.

플라톤이 고개를 든다. 그가 들으려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멈추자. 다음 사람들이 벌써 다리 가까이에 와 있다.

읽기 안내와 출처

《파이돈》 59b의 유보는 서술자의 말이며 플라톤의 병을 진단할 근거가 아니다. 대화편의 연대와 《제7서한》 저자는 논쟁 중이다. 학당의 전통과 한 기관의 900년 연속 운영은 구별한다. 건축과 진시황 비교, 다리 장면은 이 글의 해석과 문학적 상상이다. 완결을 경계하는 입장도 근거와 반박에 열려 있어야 한다. 아래는 이번 개정에서 참조한 자료다.

플라톤: 《파이돈》 59b, 115b–118a · 플라톤: 《국가》 7권 · 플라톤: 《파르메니데스》 130a–135d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3권 · 인터넷 철학 백과사전: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 ·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플라톤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