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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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 / 108 ·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피히테, 아는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는가

자기를 정립하는 자아에서 교육의 “우리”까지. 자유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다른 사람이 설 자리도 남길 수 있을까.

1. 칸트로 오해받은 사람

1792년. 저자 이름 없이 책 한 권이 나왔다. 『모든 계시에 대한 비판의 시도』.

많은 독자가 칸트의 신작으로 여겼다. 원고가 쾨니히스베르크를 거친 것은 사실이었다. 칸트가 읽었고 출판도 도왔다. 하지만 독자에게 도착한 책에는 쓴 사람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칸트가 공개적으로 바로잡았다. 내가 쓴 책이 아니다. 피히테라는 젊은이가 썼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서른 살. 리본을 짜는 직공의 아들. 후원 덕분에 공부했고, 가정교사로 일했으며,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제 독일 철학계가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칸트는 그에게 이름을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 인정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사람들이 처음 나를 본 까닭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면.

거기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피히테는 멀리 갔다. 칸트가 더는 함께 갈 수 없을 만큼. 1799년 칸트는 지식학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칠 년 전에는 그 사람이 쓴 책이라고 했다. 칠 년 뒤에는 그 길이 내 길은 아니라고 했다.

계속 칸트의 이름을 빌려 걸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칸트의 거부로 자신의 질문까지 끝낼 수도 없다.

그가 향한 곳에는 한 단어가 있었다. 나.

2. “자아는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

1794년부터 예나에서 강의하며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횔덜린이 들었고, 셸링과 노발리스, 헤겔과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응답했다. 결론만 받아 적어서는 부족했다. 그 사유의 움직임을 직접 해 보아야 했다.

콩트는 지식의 바닥을 놓는다. 포퍼는 추측을 시험한다. 디랙은 방정식을 듣는다. 굴원은 시에 목소리를 남긴다. 이제 시선을 돌려 보자. 누가 관찰하고, 누가 추측하고, 누가 듣고, 누가 쓰는가.

1794~1795년의 『전체 지식학의 기초』는 유명한 명제로 시작한다. 자아는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

가장 쉬운 오독은 이렇다. 경험적인 내가 먼저 눈을 뜨고, 의지로 나 자신을 만들어 낸 다음, 책상과 숲과 다른 사람과 우주 전체를 창조한다.

피히테의 말은 그것이 아니다.

여기서 ‘자아’는 우선 전기 속의 요한 피히테도 아니고 거울 속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개인도 아니다. 자기의식의 활동 구조다. ‘정립한다’(setzen)는 말은 대상을 제멋대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다. Tathandlung 또한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이 나중에 행위를 하나 더 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기의식에서는 사실과 행위가 분리되지 않는다. 완성된 실체가 먼저 있고 그 뒤에 ‘자신을 안다’는 속성이 덧붙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아의 탄생을 시간상의 첫 1초로 쓸 수도 없다.

‘처음에는 내가 없었고, 그 다음 생각이 나를 만들었다’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표상들을 ‘나의 표상’으로 묶는 자기관계가 이미 전제되어 있다. 피히테는 여기서 철학의 제1원리를 찾으려 했다. 뒤의 Wissenschaftslehre nova methodo에서는 방법을 더 직접적으로 다시 말한다. 자아를 생각하라.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지 관찰하라.

그러므로 인식하는 사람을 건너뛸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인식자가 분석을 면제받는 신비한 허가증을 얻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 위치가 성찰의 대상이다.

모든 것을 앞에 늘어놓고 그중 무엇이 나인지 찾는다. 그런데 늘어놓고 알아보고 비교하는 활동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나의 자리를 찾기도 전에 ‘나는 판단한다’가 시작된 셈이다.

말은 어렵다. 질문은 가깝다. 인식을 바깥에서 모두 설명하려 할 때, 설명하는 사람은 이미 그 안에 있다.

3. 틈은 발밑에 있다

이 악장의 길을 돌아보자. 콩트가 틈을 메우고, 포퍼가 선을 긋고, 디랙이 방정식을 듣고, 굴원이 물가에서 아름다움에 말을 걸었다.

우리는 무엇이 성립하는지, 어떻게 시험하는지, 아직 무엇이 담기지 않았는지 바깥을 보았다. 피히테에게 오면 시선이 발밑으로 내려간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관찰 기준을 세운다. 누가 세우는가. 이론의 경계를 그린다. 그 그림 어디에 연필을 든 사람이 있는가. 방정식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 아름다움을 알아본 사람은 누구인가.

앞선 사상가들이 인식자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포퍼의 기준 자체는 반증할 수 없다는 말 한마디로 그를 이길 수도 없다. 과학의 기준이 반드시 물리학 가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히테는 질문을 한 번 더 돌린다. 그림 속에 무엇이 있는지만 보지 말자. 그림을 그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도 보자.

틈은 널빤지 사이에만 있는 줄 알았다. 이제 내 발밑에도 있다.

몸을 관찰하고, 행동을 기억하고, 이유를 돌이킬 수 있다. 그렇게 자화상을 완성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남는다. 그림이 바라보는 활동까지 소진한 것은 아니다.

자아가 연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피히테는 바로 그것을 성찰하려 한다. 다만 성찰이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시작하는 척할 수는 없다.

세상을 보는 눈은 거울 속의 자기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친 눈과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카메라를 돌린다고 사각지대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는다. 적어도 화면이 전부인 줄 알지는 않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틈은 그런 것이다. 당신이 없다는 뜻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도 아니다. 당신이 그린 지도가 돌아서서 처음부터 당신은 필요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4. 무신론자로 몰린 사람

1798년. 피히테는 공동 편집하던 『철학 저널』에 신적 세계 질서에 대한 믿음의 근거를 묻는 글을 발표했다.

세상에는 제작자가 필요하니 하늘에 인격적 통치자가 있다고 추론하지 않았다. 종교적 확신을 도덕적 행위 안에 두었다. 자신의 행동이 도덕적 세계 질서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 것이다.

무신론이라는 비난이 돌아왔다.

같은 호에는 포르베르크의 글도 있었다. 익명의 소책자가 공격했고, 작센을 비롯한 여러 영방이 압박했다. 피히테는 해명하고 공개적으로 맞섰다. 견책을 받으면 사직하겠다고 했다.

물러설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상대가 대신 물러서 주지도 않았다.

1799년 예나를 떠났다. 서른일곱 살, 아내와 어린 아들. 인기 있던 교수는 다시 생계를 찾아야 했다.

베를린에서 사적인 강의와 집필을 이어 갔다. 1800년의 『인간의 사명』은 의심에서 앎으로, 다시 믿음으로 나아간다. 아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안 다음에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프로이센이 패하고 베를린은 프랑스군에 점령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807~1808년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강연하며 교육에 재생의 희망을 걸었다.

후대가 그의 말을 악용했을 뿐이라고 넘길 수는 없다. 그 자신이 독일의 언어와 사명에 특별한 지위를 주었다. 자유를 말하는 사람이 한 민족의 공동 미래를 그린다. 그 그림 바깥에는 누가 남는가.

1810년 새 베를린대학에서 가르쳤고, 1811년 총장으로 선출되었다가 이듬해 물러났다. 나를 말하는 사람은 학교와 출판, 정치와 타인의 삶 속에 계속 서 있었다.

1814년 1월, 쉰한 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초기 전기는 아내 요한나의 간호와 두 사람의 병을 연결한다. 부상자와 병든 군인들을 돌보던 그녀가 앓고 회복하는 사이, 그도 병이 났다는 것이다. 이 기록만으로 의학적으로 확인된 감염 경로를 만들 수는 없다.

남는 것은 구체적인 두 사람이다. 그녀는 다친 이들을 돌보러 갔다. 두 사람도 병들 수 있었고,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했다.

자아는 자신을 정립한다는 말이 그 말을 한 사람을 다치지 않는 존재로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바깥의 힘이 통과하는 관에 불과해진 것도 아니다.

5. 피히테와 칸트

피히테는 칸트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단순히 칸트가 ‘자아 설명을 잊었다’고 발견한 것은 아니다.

칸트는 이미 ‘나는 생각한다’, 통각의 통일, 표상들이 하나의 의식에 속할 수 있는 조건을 논했다. 피히테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물자체’를 정신과 독립되어 바깥에서 우리의 감각을 인과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비판철학은 자신의 기준상 정당하게 알 수 없는 원인을 다시 들여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피히테는 철학의 출발점을 더 철저히 주체의 활동으로 옮긴다.

이것은 ‘칸트는 결과만 있었고 피히테가 마침내 전제를 발견했다’는 순위표가 아니다. 라인홀트, 마이몬, 슐체 등이 함께 씨름하던 문제에 대한 응답이다. 비판철학에 하나의 통일된 제1원리를 줄 수 있는가. 자유와 필연, 실천과 이론을 한 체계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

자아 다음에는 비아가 있다. 활동은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한계를 만난다. Anstoß, 충격이자 저지인 것. 앞으로 가 보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작은 개인의 의지가 세계를 삼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한한 인식자는 그 제한 속에서 자신의 활동을 설명해야 한다. 자아를 철학의 시작에 둔다고 현실이 마음대로 다시 쓸 수 있는 종이가 되지는 않는다.

1799년 칸트는 공개적으로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지식학을 “전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체계”라고 했고, 순수 논리에서 실제 대상을 끌어낼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왕복이 ‘제자가 마침내 스승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보다 더 흥미롭다.

한 체계가 경계를 긋는다. 다음 사람이 그 경계를 그은 위치를 묻는다. 첫 저자가 말한다. 네가 찾아냈다는 위치는 이미 내 경계를 벗어나 있다.

어느 한 문장도 자동으로 마지막 표를 얻지 못한다.

인식자를 인식론 안에 넣는다는 것은, 그 인식자의 제1원리 역시 다른 사람에게 질문받을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지식학 자체도 피히테에게 한 번 쓰고 봉인하는 책은 아니었다. 1794/95년 이후 그는 그것을 여러 번 다시 강의하고 제시 방식을 반복해서 재구성했다. 현대 연구는 많은 연속적 판본과 강의 계열을 구별한다. 1800년 전후의 대중적 저작과 이후 강의들은 철학을 첫 문장을 외우면 끝나는 교리가 아니라, 질문이 바뀔 때마다 다시 제시되어야 하는 활동으로 보았음을 보여 준다.

이 점은 칸트의 공개적 거부를 더 무겁게 만들지만 최종 판결로 만들지는 않는다. 옛 스승이 ‘아니다’라고 말한 뒤에도 계속 고쳐 썼다는 사실은 피히테가 결국 옳았다는 증거가 아니다. 다만 철학적 반론이 한 체계가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인식자의 위치도 대답해야 할 질문이 변하면 움직일 수 있다.

6. 피히테와 이 악장의 사람들

앞에서 만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보자.

콩트는 관찰자를 완전히 투명한 창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론이 관찰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유리를 닦고 나면 물을 수 있다. 창틀은 누가 달았고, 왜 하필 여기에 달았는가.

포퍼는 사람이 추측한다는 것을 안다. 발견의 과정과 이후의 검증을 구분했다. 하지만 검증 절차만으로 왜 바로 이 질문을 떠올렸는지, 그 나까지 다 설명한 것은 아니다.

디랙은 방정식이 말하게 한다. 누가 듣는가. 누가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낯선 음의 부호를 따라가는가. 결과는 그의 마음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따라가는 사람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굴원은 『이소』 첫머리에서 가계와 아버지를 말한다. 목소리에는 내력이 있고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피히테는 그 목소리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묻는다. 시는 누가 말하는지 들려주고, 철학은 나라고 말한다는 것의 뜻 앞에서 멈추게 한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대신할 필요는 없다.

그 자아 역시 영원히 홀로 선 점은 아니다. 1794년 『학자의 사명』은 학자를 사회 안에 둔다. 배움은 타인에게 빚지고, 성과는 타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는 학자를 이끄는 사람으로도 여겼다. 그렇기에 이끌기가 언제 상대 대신 결정하기가 되는지 물어야 한다.

1796~1797년 『자연법의 기초』에서는 개인적 자기의식의 조건에 다른 자유로운 존재가 들어온다. Aufforderung, 요청 또는 촉구다. 물건을 밀듯 내 대답까지 만들어 버리는 대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나는 그 관계 안에서 나의 자유를 알아본다.

관계에는 몸이 있다. 내 행동에도 당신의 행동에도 공간이 필요하다. 당신의 인정을 요구하면서 당신이 설 곳을 전부 차지할 수는 없다. 상대는 내 체계를 완성하는 데 쓰는 거울이 아니다. 그의 자유가 실제로 움직일 자리가 있어야 한다.

메를로퐁티가 몸 없는 피히테에게 팔다리를 붙이러 오는 것은 아니다. 베유는 자기 필요를 조금 물려 고통받는 사람을 볼 수 있는지 묻는다. 아렌트는 무사유와 판단, 책임을 묻는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계속 간다.

피히테가 여기서 붙들어 두는 것은 건너뛸 수 없는 자리다.

인식자는 지워도 되는 괄호가 아니다. 인식을 받치는 토대다. 그 토대는 몸도 역사도 타인도 없는 돌이 아니다.

7. 자유의 첫 번째 체계

피히테는 자신의 작업을 자유의 첫 번째 체계라고 불렀다. 나를 결과로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유전과 환경, 교육과 만남은 많은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니 당신은 원인들이 흐르는 관일 뿐이라고 결론 내리면, 응답하고 돌아보고 행동을 책임지는 사람을 지워 버린다.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과 그렇게 환원하는 것은 다르다. 자유는 외부 설명이 모두 끝난 뒤 남는 찌꺼기가 아니라 출발점이어야 한다.

1797년 그는 어떤 철학을 선택하는지가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고 썼다. 관념론과 독단론은 책장에 놓인 두 권의 책만이 아니다. 자신의 활동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도 걸려 있다.

강하고, 자기 입장으로 기운 말이다. 논증을 버리는 암호로도, 반대자를 자유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구실로도 쓸 수 없다. 피히테는 계속 논증한다. 다만 자유에 대한 실천적 확신을 물건 옮기듯 밖에서 사람 안에 넣을 수는 없다고 본다.

여기서 나는 이 연작을 지나온 ‘그러지 않을 수 없음’을 떠올린다.

해야 한다고 믿는 말을 차마 삼킬 수 없다. 남들은 쓸모없다는 일을 계속한다. 누군가의 명령이 내려온 것도, 인과적 내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내가 향할 곳을 알아본 것이다. 내주어도 겉으로 보이는 하루는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무엇을 내주었는지 알 것이다.

물러설 수도, 말을 고칠 수도, 틀렸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판단을 빼앗는 내부 기계가 아니다. 판단과 책임을 내 손에 돌려준다.

여기가 내가 피히테와 만나는 곳이다. 같은 답이 이미 그의 제1원리에 쓰여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 방향을 되찾았다고 세상이 그 방향에 복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타인의 대답은 어떤가. 자유를 믿는 사람은 자기가 원한 것과 다른 답도 허용할 수 있는가.

국민교육에서 피히테는 도덕적 방향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을 기르려 했다. 교사가 학생의 미래 모습을 이미 결정했다면, 여전히 자유에 말을 거는 것일까. 아니면 믿을 만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일까. 공동체의 확신은 바깥사람만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의 사람도 침묵시킬 수 있다.

상호인정은 이미 그의 사상 안에 있다. 그렇기에 질문을 돌려줄 수 있다. 나의 출발점이 당신의 사라짐에 기대어 서서는 안 된다.

자유는 발밑의 저항을 모두 없애는 일이 아니다. 저항을 만나면서도 자신을 통째로 넘기지 않고, 타인도 자신의 재료로만 만들지 않는 일이다.

8. 다리 어귀

이제 이 연작의 상상 속 다리로 피히테를 맞아들이자.

큰 걸음으로 빠르게 온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나아가는 사람처럼.

다리에 올라 먼저 남을 보지 않는다. 자기 발을 본다.

콩트가 메운 틈, 포퍼가 그은 선, 디랙이 무언가를 들었던 균열이 있다.

피히테가 몸을 낮추고 손을 뻗는다.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선 곳도 다리의 설계도에 다 담기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듯하다.

몸을 일으켜 모두에게 말한다.

“지식이 무엇인지, 경계가 어디인지 오래 이야기했지요. 당신 자신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습니까? 그 질문을 하는 당신의 자리가 당신의 체계에 있습니까?”

콩트가 달력을 내려다본다. 명단을 완성해도 그 명단을 읽는 자신까지 다 설명한 것은 아니다.

포퍼가 미간을 좁힌다. 그 자리에 대한 설명도 비판할 수 있는지 아직 묻고 싶다.

피히테는 물러서지 않는다. 자신을 향한 질문을 면제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질문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굴원이 물가에서 고개를 든다. 나라고 말하는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지 않은 채 마주 본다. 시의 내력과 철학의 출발점이 여기서 만난다.

멀리 칸트가 있다. 피히테는 오래 바라본다. 자기 이름을 말해 준 사람. 자기 길에 아니라고 한 사람.

이제 칸트의 이름을 빌려 서 있지 않는다. 칸트도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지 않는다.

피히테가 자리를 고른다. 온전한 널빤지 한가운데가 아니다. 틈을 가로질러 양쪽 판에 한 발씩 놓고, 아래의 어둠을 향해 선다.

두렵지 않다. 그는 거기서 왔다.

읽기 안내와 출처

자기 정립은 자기의식의 활동이지 경험적 개인이 세계를 마음대로 창조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연법의 기초』의 몸, 촉구, 상호 인정이 핵심 근거다. 국민 강연의 교육 목적과 배타적 언어를 함께 남겼다. 칸트의 1799년 공개 반대는 원문이 있다. 1814년 피히테의 정확한 사망일은 초기 기록에 차이가 있으며 임종 장면을 재구성하지 않는다.

인물 사이의 비교는 필자의 독해이며 서로 다른 철학을 동일시하지 않는다. 작품과 수상, 후대의 명성으로 한 사람의 모든 판단이 옳았다고 증명할 수도 없다. 자료 링크는 아래에 있다.

8절 다리에서의 만남과 동작, 대화는 문학적 창작이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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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