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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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 108 · 하나의 세계 만들기

다윈, 생명 스스로 깎아 나간다

딱정벌레와 항해, 월리스의 편지에서 자연선택과 지렁이까지. 생명의 변화에는 예정된 설계도가 없고, 사람의 가치는 적응의 성패로 정해지지 않는다.

1. 목사가 되려던 사람

젊은 시절의 찰스 다윈은 목사가 되려고 했다.

농담이 아니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아들도 의학을 공부하기 바랐다. 다윈은 에든버러로 갔지만 수술실에서 목격한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 현대적인 마취가 널리 쓰이기 전이었다. 훗날 그는 두 차례의 끔찍한 수술을 회고했다. 한 번은 환자가 어린아이였다. 의학은 그의 길이 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다른 길을 제안했고, 그는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시골 교구의 목사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로 향했다.

그렇다고 신학을 내팽개쳤던 것은 아니다. 페일리의 종교적 논증을 꼼꼼히 읽었고, 『자연신학』의 치밀한 추론에도 감탄했다. 동시에 딱정벌레에 푹 빠졌다. 말년에 쓴 자서전에는 이런 일이 나온다. 양손에 한 마리씩 쥐고 있는데 세 번째 딱정벌레가 눈에 띄었다. 손을 비우려고 한 마리를 입에 넣자 자극적인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뱉어 낼 수밖에 없었고, 세 번째 벌레도 놓쳤다.

입에 딱정벌레를 문 예비 목사. 논증을 읽다가 들판에 쪼그려 앉는 사람. 생명에 관한 인류의 이해를 바꿀 인물은 여기서 출발했다.

2. 배

1831년. 다윈은 스물두 살이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영국 해군의 측량선 비글호가 남아메리카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장 피츠로이는 교양 있는 신사를 여행의 동반자로 원했고, 식물학자 헨슬로가 다윈을 추천했다. 그는 자기 비용으로 박물학 조사를 하는 연구자이자 함장의 동반자로 승선했다. 관찰하고 채집하고 기록하는 일이 차츰 여행의 중심이 되었다.

아버지는 반대했다. 외삼촌 조사이어 웨지우드가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힘을 보탰다. 다윈 자신이 기회를 잡기로 결정했다. 배에 올랐다.

거의 5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1831년 12월부터 1836년 10월까지, 비글호는 남아메리카 해안과 티에라델푸에고 주변, 칠레와 페루 앞바다를 오가며 측량했다. 이후 갈라파고스 제도에 들른 다음 태평양을 건넜다. 타히티,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인도양을 가로지르고 희망봉을 돌아, 마침내 영국으로 돌아왔다.

거의 5년. 목사가 되려던 청년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줄곧 배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육상 탐사 역시 이 항해를 빚어냈다.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남아메리카에서 그는 멸종한 거대한 포유류의 화석을 발굴하고 수집했다. 귀국 후 리처드 오언 등의 동정을 통해, 고대의 갑옷 같은 껍질을 지닌 동물과 오늘날 아르마딜로가 닮으면서도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료는 질문 하나를 눈앞에 밀어 놓았다. 같은 대륙에서 사라진 생명과 지금 살아 있는 생명은 왜 친척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갈라파고스에서는 섬마다 다른 흉내지빠귀가 먼저 눈길을 끌었다. 훗날 유명해질 핀치들도 채집했지만, 현장에서 그들이 가까운 친척임을 알아본 것은 아니다. 일부 표본에는 어느 섬에서 왔는지 명확히 기록하지도 않았다. 영국에서 존 굴드가 표본을 동정하고 동료 선원들의 수집품을 함께 살핀 뒤에야 그림이 이어졌다. 어떤 부리는 곤충을 잡기에, 어떤 부리는 씨앗을 먹기에 알맞았다. 나뭇가지나 선인장 가시로 나무 틈의 벌레를 꺼내는 딱따구리핀치의 행동도 나중의 연구자들이 관찰한 것이다. 다윈이 섬에서 이미 이해했던 장면은 아니었다.

공통 조상.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형태. 이 설명은 나중에 서서히 만들어졌다.

배 위에서 모든 것을 풀어낸 것은 아니다. 항해는 중요한 자료와 질문을 주었다. 귀국 후의 동정 작업, 품종 개량 연구, 편지 교환이 그 자료에 대한 이해를 계속 바꾸어 놓았다. 목사가 되려던 사람은 화석과 새 가죽, 공책, 그리고 자꾸 늘어나는 질문을 안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3. 20년

귀국 뒤 그는 항해와 지질학에 관한 연구를 잇따라 출판했다. 그러나 종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을 곧바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자연선택의 핵심 착상을 얻은 때부터 공개 발표까지는 약 20년이 걸렸다.

1837년, 공책에 가지가 갈라지는 나무를 그리고 곁에 “I think”, 곧 ‘나는 생각한다’라고 썼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그 그림은 종들 사이의 관계를 공통 조상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가지로 그려 보려는 시도였다.

증거가 쌓였다. 사육자가 선택을 통해 비둘기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했다. 따개비류를 연구하는 데 8년을 들여 전문서 네 권을 썼다. 식물의 꽃가루받이와 지렁이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런 질문은 『종의 기원』이 나온 뒤에도 계속 자라났다.

1838년 맬서스의 인구론을 읽으며, 생존과 번식에 제약이 있는 조건에서는 유리하고 유전 가능한 변이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될 수 있다는 생각을 얻었다. 1842년 개요를 쓰고 1844년에는 논문으로 늘렸으며, 몇몇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알렸다. 1856년에는 큰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론은 곧바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계속 쓰이고 논의되고 검토되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그는 질문의 무게를 알았다. 공통 조상이라는 설명은 종마다 따로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흔들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인간도 생명의 계보 속으로 들어와 다른 유인원과 조상을 공유하게 된다. 인간 특유의 능력은 여전히 연구할 수 있지만, 인간을 자연사의 바깥에 놓을 수는 없어진다.

아내 에마는 깊은 기독교 신앙을 지녔다. 두 사람의 편지에는 신앙의 차이에서 비롯된 걱정과 함께 서로를 향한 사랑과 돌봄도 남아 있다. ‘살인을 고백하는 것 같다’는 표현은 1844년 식물학자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다. 종도 변할 수 있다고 점점 믿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위험한 생각을 친구에게 털어놓는 연구자의 어조였지, 아내에게 출판을 알리는 편지가 아니었다.

증거 자체의 무게도 있었다. 어떤 관찰이 설명을 뒷받침하며 무엇이 반례가 될까? 그는 실험하고 읽고 편지를 썼다. 질병과 다른 연구도 시간과 힘을 요구했다. 신중함, 일의 배치, 사상적 부담이 뒤얽혔다. 하나의 두려움으로 이 20년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20년. 서랍 속 원고는 이미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지를 뻗는 연구였다.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은 것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변하고 있기도 했다.

4. 월리스의 편지

1858년 6월. 다윈에게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말레이 제도에서 현장 조사를 하던 박물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였다. 동봉한 논문에는 자연선택으로 종의 변화를 설명하는 생각이 독립적으로 제시되어 있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핵심 원리에서 만났다.

다윈은 생각이 닮았다는 사실에 놀랐고, 여러 해 동안 해 온 연구의 우선권을 잃을까 염려했다. 동시에 월리스를 공정하게 대하고 싶었다. 그 몇 주 동안 집에서는 아이들이 앓고 있었고, 막내아들 찰스 워링은 6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적 격변은 가족의 슬픔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라이엘과 후커는 다윈의 옛 논문 발췌, 1857년 에이사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 월리스의 논문을 묶어 린네 학회에 제출했다. 1858년 7월 1일 낭독되었지만 두 저자는 모두 없었다. 다윈은 아들을 잃은 직후였고 월리스는 여전히 해외에 있었다. 이 공동 발표를 통해 독립적으로 착상에 이른 두 사람이 이론의 공개된 역사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후 다윈은 더 짧은 ‘요약본’을 쓰는 데 집중했고 약 13개월 만에 주요 원고를 완성했다. 백지에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1856년부터 쓰던 대작과 오랜 세월의 자료가 뒤에 있었다. 『종의 기원』은 1859년 11월 24일 출간되었고 초판 인쇄 부수는 1,250부였다. 판매용 초판 물량은 출간 전 서점들의 주문으로 이미 소화되었다. 유통 단계에서 빠르게 팔렸다는 것과 독자 1,250명이 발매 당일 책을 샀다는 것은 다르다.

편지 한 통이 오랜 축적을 세상에 내놓는 속도를 바꾸었다.

노자가 관문을 떠나려 할 때 윤희가 글을 써 달라고 청했다는 전설이 떠오른다. 그러나 두 경우의 ‘말할 수 없음’이 같은 것은 아니다. 다윈의 설명은 공개적으로 논증하고 검토할 수 있어야 했다. 닮은 점은 다른 사람의 도착이 한 사람의 오랜 생각을 건네주는 순간으로 밀어낸다는 데 있다. 월리스는 단순한 재촉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이룬 발견을 가져왔다.

5. 변이와 선택

자연선택의 핵심은 이해하고 나면 놀라울 만큼 간결해 보인다. 헉슬리는 나중에 자신의 첫 반응을 회고했다. 왜 이걸 자신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먼저 세 가지 사실과 하나의 추론으로 나누어 보자.

첫째, 개체군 안의 개체들은 서로 다르다. 같은 둥지에서 난 새끼라도 부리 길이나 깃털 색이 다를 수 있다.

둘째, 그 차이 가운데 일부는 유전된다. 부리 길이 차이에 유전적 기반이 있다면 부모와 자손의 부리 길이 사이에도 관련이 생길 수 있다. 다윈은 후대 유전학이 밝힐 원리를 아직 몰랐다.

셋째, 생물은 많은 자손을 낳을 잠재력이 있지만 먹이와 공간을 비롯한 조건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자손이 똑같이 성공적으로 살아남고 번식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래 사는 것만이 아니라 자손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추론이 나온다. 특정 환경에서 어떤 유전 가능한 차이가 그것을 지닌 개체에게 평균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남기게 한다면, 그 차이는 세대를 거치며 개체군 안에서 더 흔해질 수 있다. 많은 세대 뒤에는 개체군의 특성이 달라진다. 이것이 자연선택의 기본 과정이다.

이 원리에는 미리 정해진 목표가 없다. 미래에 어떤 기관이 ‘필요해질’ 것이기에 변이가 설계도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선택은 현재 조건에서의 번식 차이와 관련되어 있으므로, 순전히 무작위로 다시 추첨하는 과정도 아니다. 길지만 유한한 시간이 작은 차이를 복잡한 적응으로 축적시킨다.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생명이 어떻게 변하고 적응하는가이지, 생명이 처음 어떻게 생겨났는가나 우주에 궁극적 목적이 있는가에 대한 판결이 아니다.

6. 생명은 깎고 구성한다

이제 이 연작의 말을 빌려 보자. 이어지는 ‘깎기’와 ‘구성하기’는 생각을 돕는 비유이지 생물학의 새로운 정리가 아니다.

변이는 깎기와 닮았다. 현대 유전학의 말로 하면 DNA 염기 하나의 변화, 일부 구간의 중복이나 결실이 새로운 차이를 낳을 수 있다. 재조합은 기존 변이들을 다시 조합한다. 이런 과정은 미래의 유용성을 겨냥하지 않으며, 매번 겉모습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형태에 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끌을 쥔 누군가는 없다. 생명의 재료 자체가 변한다.

선택은 구성과 닮았다. 어떤 섬에서 조금 긴 부리가 먹이를 얻는 데 도움이 되고 그 차이가 유전된다고 해 보자. 더 높은 번식 성공을 통해 그 특성이 세대를 거쳐 축적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새 한 마리 한 마리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유리한 변이도 우연히 사라질 수 있다. 자연선택 외에도 우연에 따른 유전적 부동과 개체군 사이의 유전자 흐름 등이 진화에 참여한다.

차이가 생기고, 일부가 쌓이고, 다시 뒤의 변화가 시작되는 자리가 된다. 깎기와 구성의 이미지가 되풀이된다. 제출을 기다리는 최종 설계도는 없다. 오랫동안 유지되는 상대적 안정, 갈라짐, 멸종도 모두 이 역사 안에 있다.

진시황을 돌아보자. 서적 금지는 서로 다른 판단이 오가는 길을 좁혔고, 나쁜 소식과 비판은 권력 중심에 닿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여기서 제도에 관한 질문이 생긴다. 질서가 스스로 수정할 여지를 줄일 때 어떤 위험이 커지는가? 진의 멸망에는 계승 문제, 전쟁, 부역, 통치 방식이 얽혀 있다. 왕조를 ‘변이를 거부해서 멸종한 종’으로 다룰 수는 없다.

워싱턴이 남긴 공화국도 보자. 발언과 비판, 개혁은 오류를 바로잡을 가능성을 남긴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민권 운동은 우연히 등장한 뒤 환경에 손쉽게 선택된 몇 개의 ‘좋은 변이’가 아니었다. 구체적인 사람들이 오랫동안 조직하고 싸우며 위험을 감수했다. 사람의 가치는 제도의 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로 정해지지 않으며, 권리도 ‘환경 적응에 유리하다’는 증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제국은 이견을 억누를 수 있고 공화국도 귀를 닫을 수 있다. 제도의 이름만으로 개방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비교하는 것은 비판을 받아들이고 권력을 제한하는 장치이지, 두 국가의 수명을 가지고 하는 자연선택 실험이 아니다.

다윈은 맬서스에게서 영감을 얻은 뒤 그 질문을 생물학 자료에 비추어 검토했다. 우리도 학문 사이의 경계를 넘어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져온 비유를 정치적 정당성의 증명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진화는 깎기와 구성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한다. 그것은 질문을 돕는다. 답은 여전히 각 분야의 증거로 돌아가 찾아야 한다.

7. 목적 없는 합목적성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나오는 ‘목적 없는 합목적성’은 아름다움을 말할 때 자주 쓰인다. 먼저 용도를 정하지 않아도 어떤 형식이 어울리고 잘 짜였다고 느끼는 것이다.

유기체를 논할 때 칸트는 다른 길을 간다. 부분과 전체가 서로 의존하는 생명의 조직을 ‘자연목적’으로 살피며, 우리가 목적론적 판단을 어떻게 하는지 묻는다. 미적 판단의 공식과 관련은 있지만 같은 명제는 아니다. 자연에 설계자가 없다는 단순한 선언도 아니다.

『판단력 비판』은 1790년에, 『종의 기원』은 1859년에 나왔다. 거의 70년의 간격이다.

다윈은 다른 종류의 설명을 눈앞에 가져왔다. 눈이나 날개처럼 복잡한 적응 구조는 생명의 역사에서 어떻게 생겼는가? 칸트의 직관 한마디에 답을 붙인 것이 아니다. 질문을 유전과 번식, 세대를 가로지르는 변화의 원리로 이끌었다.

‘보기 위한’ 눈, ‘날기 위한’ 날개. 기능은 현재의 쓰임에서 설명하기 시작할 수 있지만 그 유래는 역사로 돌아가 살펴야 한다. 자연선택이 눈을 미리 내다보지 않아도 빛을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전 가능한 차이는 차츰 쌓일 수 있다. 지금의 기능이 그 구조가 처음 생길 때의 기능과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문학적인 식으로 줄이면 이렇다. 앞날을 내다보지 않는 차이에 조건에 따른 축적이 더해져, 마치 용도에 맞추어 설계한 듯한 형태가 자라난다.

대왕고래와 세쿼이아, 인간의 뇌는 모두 길게 가지 뻗는 이 자연사에 속한다. 적응을 설명하기 위해 기관마다 외부의 설계도를 한 장씩 덧붙일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단어 몇 개를 합치는 것으로 생명의 기원, 모든 진화 과정, 신앙의 문제에 완전한 답을 얻는 것도 아니다.

이 그림을 장자의 혼돈 옆에 놓으면 대비가 나타난다. 우화 속 혼돈은 일곱 구멍이 뚫리자 실제로 죽는다. 개체가 입은 상처가 자동으로 새 종을 낳지는 않는다. 진화는 수많은 세대에 걸친 개체군의 변화를 다룬다. 여기서 빌려 오는 것은 질문이다. 형태는 어떻게 생기며 그전에 있던 가능성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다윈에게 장자의 결말을 다시 쓰게 할 필요는 없다.

괴델은 특정 수학 체계에서 증명의 한계를 물었고, 다윈은 생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물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증명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이 연작에서 만나는 까닭은, 이미 이루어진 구성이 이후의 가능성까지 모두 닫아 버릴 수 있는지 우리가 거듭 묻기 때문이다.

진화에는 우연과 상실이 있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대적 안정도 있다. 변화는 실패할 수 있고 안정은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열려 있다’고 부르는 종에도 영원한 생존의 보장은 없다.

8. 그 자신의 변화

다윈은 성인이 된 뒤 여러 해 동안 질병에 시달렸다.

그의 편지와 개인 기록에는 메스꺼움, 구토, 두근거림, 피로 등의 증상이 남아 있다. 후대에 여러 원인이 제안되었지만 여기서 확정 진단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고통은 실제였다. 그것을 출판이 두려운 사상가의 몸에 관한 우화로 줄일 수는 없다.

1842년부터 다운 하우스에 살며 일과 휴식, 산책을 나누어 배치했다. 하루에 몇 시간밖에 일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공개 모임에는 드물게 참석했지만 세계와 단절되지는 않았다. 표본과 편지와 손님이 끊임없이 도착했다. ‘다윈의 불도그’를 자처한 헉슬리는 공개적으로 진화를 옹호하면서도 자신의 판단을 지녔다. 다윈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도구가 아니었다.

다윈 역시 연구를 이어 갔고 책과 편지로 논쟁에 참여했다. 난초의 꽃가루받이, 덩굴식물, 식충식물, 지렁이가 토양에 미치는 영향. 하나의 질문이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1881년 출간한 마지막 책은 지렁이에 관한 것이었다.

인류의 생명관을 바꾼 사람이 만년의 책에서는 지렁이를 보려고 몸을 숙인다. 작은 움직임이 긴 세월을 거치며 발밑의 땅을 빚는 데 참여한다.

현실이 그를 깎아 과학자로 만들었다고 하면, 곤궁 속에서 시를 쓴 두보가 떠오른다. 그러나 현실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은 선택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윈은 항해를 원했고 자료를 모았으며 설명을 고치고 월리스에게 응답했다. 두보도 고난의 수동적 산물만은 아니었다. 목사가 되려던 사람은 잇따르는 만남에 응답하면서 우리가 아는 다윈이 되었다.

1882년 4월 19일, 다윈은 다운 하우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흔세 살이었다. 그곳에서 거의 40년을 살았고 처음에는 마을 교회 묘지에 묻힐 예정이었다. 이후 가족과 친구들의 노력으로 4월 2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가 치러졌으며, 뉴턴 가까이에 안장되었다.

창조와 자연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꾼 사람이 교회에 묻혔다. 과학적 논쟁, 개인의 신앙, 공적인 추모가 한 건물 안에서 만난다. 이 장면은 과학이 종교를 이겼다는 표어보다 복잡하다.

9. 생명 스스로 깎아 나간다

이 연작을 돌아보면 ‘깎기’는 사람마다 모습을 바꾸어 왔다. 다음은 이 글이 그들을 나란히 놓으며 만들어 내는 이미지다.

소크라테스는 안다고 여기는 것을 묻는다. 공자는 인 없는 예를 묻는다. 노자는 언어의 경계를 시험한다. 장자의 우화는 강요된 형태를 되묻는다. 칸트는 앎의 한계를 긋는다. 니체는 망치를 들어 가치를 다시 평가한다. 왕양명은 양지를 행동으로 돌려놓는다. 석가모니는 뗏목을 건네고, 건넌 뒤에는 내려놓으라 한다. 예수의 수난 이야기는 상처받는 중에도 내어 주는 모습을 보여 준다. 괴델은 수학으로 특정 형식 이론의 한계를 드러낸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물리학의 틀을 바꾼다. 두보는 현실의 압력 아래서 시를 쓴다. 호메로스 전통은 구전의 목소리를 문자로 옮긴다. 진시황은 질서로 다른 목소리를 억누르면서도 미완을 남긴다. 워싱턴은 제도를 세우고 개인의 권력에 한계를 둔다.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은 인간과 세계의 한계에 부딪힌다.

이 이미지들에서는 사람이 응답하고 행동한다.

다윈과 월리스는 다른 한 가지를 유난히 선명하게 했다. 생명이 달라지는 데는 사람이 먼저 경로를 정해 놓을 필요가 없다.

소크라테스가 먼저 질문할 필요도, 칸트가 먼저 경계를 그을 필요도 없다.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유전과 변이, 번식 성공의 차이는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 조건이 이어지는 한, 과정은 인간이라는 목격자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 글의 비유를 그대로 빌리면, 인간이 생명의 깎기와 구성을 발명한 것은 아니다. 인간 자신도 그 역사에서 나왔다.

이 시선의 전환은 ‘사람은 원숭이에서 나왔다’는 한마디보다 깊다. 인류는 생명의 계보에서 한 갈래이며 다른 유인원과 조상을 공유한다. 계보 바깥에 선 심판이 아니다. 우리는 그 안에 참여하면서도 의식적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유를 들어 아테네인의 확신을 묻는다. 자연선택은 번식 결과의 차이를 통해 개체군을 바꾼다. 앞의 사람은 자신의 기준을 성찰할 수 있지만, 뒤의 과정에는 스스로 ‘깎고 있다’고 아는 주체가 없다. 이 차이를 지워서는 안 된다. 둘을 함께 놓는 것은 인간의 질문이 어떤 생명의 역사에서 자라났는지 보기 위해서이지, 비판과 도태와 사람의 가치를 하나로 섞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상상하는 다리 어귀에 한 사람이 더 온다. 빅토리아 시대의 검은 외투, 긴 수염, 손에는 지렁이에 관한 책. 그는 잠시 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먼저 고개를 숙여 다리 아래의 흙을 본다. 그가 주의를 돌리게 하는 것은 다리 놓는 사람의 손에 든 도면만이 아니다.

이 비유 속에서 다리는 사람이 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리 스스로 자라고 있다.

읽기 안내와 출처

다윈의 자서전, 편지, 저작을 바탕으로 항해 중 관찰과 귀국 후 해석을 구별했다. 갈라파고스 핀치의 동정, 채집한 섬에 관한 정보의 보완, 딱따구리핀치의 도구 사용 기록은 서로 다른 시기에 속한다.

1838년의 착상, 1842년 개요, 1844년 논문, 1856년 시작한 대작, 1858년 공동 발표가 있었으므로 완전한 침묵의 20년은 아니다. ‘살인을 고백하는 것 같다’는 말은 1844년 1월 11일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종도 변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일을 가리킨다.

1858년 발표는 다윈의 옛 글과 그레이에게 보낸 편지, 월리스의 논문을 함께 실었다. 월리스는 구체적인 사전 준비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나중에 감사를 표했다. 『종의 기원』 초판 1,250부의 경우 서점 주문과 일반 독자에게의 소매 판매를 구별해야 한다.

자연선택은 유전 가능한 차이와 번식 성공의 차이에 관한 과정으로, 진화의 중요한 원리이지만 유일한 원리는 아니다. 돌연변이가 ‘무작위’라는 것은 미래의 적응적 필요에 맞추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지 물리적 원인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선택 또한 순전히 무작위인 과정은 아니다. 깎기와 구성, 정치적 비교는 저자의 해석적 비유이며 사람의 가치나 정치적 권리를 도출하는 근거가 아니다.

칸트의 미적 합목적성과 유기체에 대한 목적론적 판단을 구별해야 한다. 『판단력 비판』 §§10–17, 64–75 참조. 혼돈, 괴델, 다리 어귀의 인물들은 문학적 비교를 이루며, 학문을 넘나드는 증명이나 역사적 만남을 뜻하지 않는다. 괴델 정리에는 정해진 절차로 공리를 열거할 수 있고 산술을 충분히 표현하는 이론이라는 조건 및 해당 무모순성 조건이 따른다. 생물이나 정치 제도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

다윈의 오랜 질병은 편지에 충분히 기록되어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확정되지 않았다. 다운 하우스, 지렁이 연구, 웨스트민스터 안장 이야기는 질병을 천재성의 대가로 미화하거나 그의 신앙을 하나의 판정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다윈 자서전(프랜시스 다윈 편집, 1887년) · 다윈, 『종의 기원』 · 다윈이 후커에게 보낸 편지, 1844년 1월 11일 · 다윈이 라이엘에게 보낸 편지, 1858년 6월 18일 · 다윈과 월리스의 1858년 공동 발표 논문 · 케임브리지 다윈 서신 프로젝트: 『종의 기원』 집필과 출판 · 영국 자연사박물관: 갈라파고스 핀치 · 스탠퍼드 조류학자들이 설명하는 새의 도구 사용 ·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 유전적 부동 · 칸트, 『판단력 비판』 · 다윈 자신의 건강 기록 · 웨스트민스터 사원: 찰스 다윈의 안장 · 헉슬리의 1887년 회고(조 케인이 원문 재수록)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