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파스와 잘린 머리
마틸드는 1574년 처형된 보니파스 드 라 몰을 매년 기린다. 전설에 따르면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는 그의 잘린 머리를 거두었다. 그녀는 단지 사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귀족 사회의 권태를 넘어설 만큼 큰 열정을 살고 싶다. 가난하고 자존심 강하며 위험해 보이는 쥘리앵은 예측 가능한 귀족 청년들보다 그 배역에 잘 맞는다. 마틸드는 실제 남자를 보지만, 그를 알기 전부터 배우를 기다리던 이야기의 빈자리도 함께 본다.
위험을 욕망하다
장애물은 그녀의 욕망을 키운다. 쥘리앵이 복종하는 듯하면 지루해지고, 거리를 두어 놓칠 수 있을 때 다시 비범해진다. 마틸드는 지배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지배를 거부할 영웅을 원한다. 단순한 변덕이 아니다. 사랑은 위험으로 위대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서사가 그녀 안에 있다. 평온한 관계는 그녀가 되고 싶은 인물을 확인해 주지 못한다. 상대는 독립된 사람이면서 동시에 비범함을 표시하는 기호로 기능해야 하는 모순에 놓인다.
코라조프의 복사 편지
마틸드를 되찾기 위해 쥘리앵은 코라조프 공작의 계획에 따라 질투를 유발하는 편지를 베낀다. 내용과 수신인이 달라도 작동하는 기술이다. 관심을 거두고 경쟁자를 만들면 상상이 빈칸을 채운다. 이 전술이 성공하는 것은 마틸드가 이미 소유가 위협받아야 사랑이 커지는 이야기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쥘리앵은 그녀의 낭만성을 발명하지 않는다. 그 구조의 기술자가 된다. 두 사람의 연출은 서로 강화하지만 서로를 투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임신이 이야기를 제도로 바꾸다
마틸드의 임신이 드러나자 라 몰 후작은 사태를 행정적으로 수습하려 한다. 쥘리앵에게 가짜 혈통과 이름, 수입, 장교 계급을 준다. 어린 시절 꿈꾸던 붉은 군복과 귀족의 기호가 손에 들어온다. 하지만 정상은 비어 있다. 그는 사회의 표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 위에서 승인한 허구로 그 안에 편입되었다. 승리는 맞서려던 아버지의 허가에 달렸다. 레날 부인의 편지는 새 영웅의 도덕적 자격을 빼앗아 이 건축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연극적 동기가 치르는 실제 비용
체포 뒤 마틸드는 돈을 쓰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판결을 바꾸려 한다. 처형 뒤에는 쥘리앵의 머리를 거두어 조상의 전설을 완성한다. 행동은 연극적이지만 대가는 실제다. 반대로 큰 대가를 치렀다고 동기가 순수해지는 것도 아니다. 스탕달은 두 사실을 함께 남긴다. 마틸드는 전설 속에서 행동하면서 몸과 이름과 미래를 건다. 허구적 동기는 행동을 가짜로 만들지 않지만, 행동의 크기가 그를 역할 밖에서 만났음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이야기에 사는 것과 사람을 만나는 것
우리 모두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한다. 문제는 상대가 미리 쓰인 역할의 이상적인 배역으로만 남을 때 생긴다. 마틸드에게 용기와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기억될 만한 장면과 닮지 않아도 사랑이 가치 있을 수 있다는 언어가 부족하다. 그래서 마지막 충실함은 감동적이면서 불안하다. 그녀는 쥘리앵을 보존하지만, 오래된 전설이 요구한 바로 그 모습으로 보존한다. 잘린 머리의 영웅과 그 머리를 안은 여성으로.
이야기를 가지되 배역은 고정하지 않기
사람은 영화, 가족사, 과거 경험 같은 이야기 없이 자기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마틸드의 문제는 이야기를 사랑한 데 있지 않다. 이야기가 미리 결말과 배역을 정해 눈앞의 사람이 변하는 것을 받지 못한 데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서사를 살려 하는지, 그 안에서 상대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는지 물으면 허구는 구속뿐 아니라 자기점검의 도구가 된다. 좋은 이야기는 현실을 아름답게 닫는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사람이 예상 밖의 말을 할 때 줄거리를 고칠 여백을 가진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