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시녀 이야기』 다시 읽기
문학과 문화 ·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
총 4편 · 제1편

소유격으로 된 이름

오브프레드는 그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현재 어느 지휘관의 집에 생식 능력이 속해 있는지를 표시한다.

Aug 29, 2026 · Han Qin (秦汉)
스포일러 안내: 이 글은 작품의 핵심 설정과 결말을 포함한 전체 줄거리를 다룹니다.

사람이 아니라 소유 관계를 부르는 이름

오브프레드(Offred)는 고유명처럼 들리지만 문법을 풀면 ‘프레드의 것’이라는 소유 표시다. 다른 지휘관의 집으로 옮겨지면 이름도 바뀐다. 길리어드가 알고 싶은 것은 이 여성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지금 누구의 집에 그의 생식 능력이 배정되어 있는가이다. 이전 이름은 끝내 확실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애트우드는 정체성이 숨겨 둔 암호 한 개만 찾으면 복구된다는 쉬운 결말을 피한다. 더 강한 사실은 소유격이 처음부터 그를 다 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체제가 붙인 이름으로 말하는 모든 문장마다, 그 이름이 소유할 수 없는 경험이 넘쳐 나온다.

귀하기 때문에 더 철저히 사물이 된다

출산율이 무너진 길리어드에서 임신 가능한 여성은 국가의 가장 귀중한 자원이다. 시녀는 좋은 음식을 먹고 정기 검진을 받으며 혼자 걷지 않고, 이전 사회의 거리에서 겪던 성적 위협으로부터 보호된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말하는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전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질문은 돌봄이 진짜냐가 아니라 무엇을 돌보느냐이다. 건강과 외출, 옷과 식사는 임신 가능성을 보존하는 쪽으로 맞춰지고, 읽기와 돈, 혼자 움직이는 능력은 같은 기능을 어렵게 하는 위험이 된다. 한 사람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귀한 물건이 가장 세심하게 관리되는 것처럼 말이다.

의식이 몸을 세 역할로 나눈다

매달 열리는 ‘의식’에서 오브프레드는 세레나 조이의 두 다리 사이에 눕고, 지휘관은 종교적으로 정당화된 성행위를 수행한다. 한 침대에서 남자는 권위와 수정, 아내는 합법적 모성, 시녀는 가임성을 맡는다. 어느 누구도 자기 언어로 장면을 다시 정의할 수 없다. 오브프레드는 자신이 그 자리에 실제로 있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천장과 지루함, 세 사람의 불편함을 차갑고 때로 우스운 목소리로 묘사하는 행위가 바로 그의 존재를 드러낸다. 식민지에서 죽는 길과 시녀가 되는 길 가운데 ‘선택’했다는 사실도 자유로운 합의가 아니다. 강제가 피해자의 서명을 자기 책임으로 기록하는 방식일 뿐이다.

1인칭은 결백 증명서가 아니다

이 소설은 기자나 역사학자가 시녀 제도를 설명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기능으로 분류된 여성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1인칭 서사다. 오브프레드는 언제나 용감하거나 정확하지 않다. 거짓말하고 타협하며 욕망하고, 같은 밤을 여러 방식으로 다시 말하고, 기억과 꾸며 낸 부분을 스스로 구분한다. 이 불안정함은 증언을 약하게 하기보다 말할 권한이 아직 그에게 있음을 보여 준다. 국가가 원하는 모범 피해자의 깨끗한 목소리가 아니라, 비누 광고와 호텔 방, 루크와 딸, 어머니와 모이라를 오가는 쓸모없는 정신의 움직임이 남는다. 사람은 순결해서 기능을 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능으로 설명되지 않을 만큼 복잡해서 넘는다.

버터와 라틴어와 훔쳐 온 기억

오브프레드는 식판에서 버터를 감춰 크림처럼 얼굴과 손에 바른다. 벽장 안에서는 전임 시녀가 새긴 뜻 모를 라틴어 문장을 발견해 마음속에서 반복한다. 딸과 함께 달리던 숲, 루크의 얼굴, 모이라와 마신 커피를 계속 떠올리면서 기억이 반복할수록 닳는다는 사실도 안다. 버터는 탈출구를 만들지 못하고 학생들의 농담이었던 라틴어는 혁명 강령이 아니며, 회상은 딸을 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임신율과 복종을 계산하는 장부에는 이 항목들이 없다. 누구에게도 쓸모없기 때문에 무엇에 주의를 줄지 자신이 결정한 흔적으로 남는다. 무용성은 정치적 힘이 아니라 목적을 고르는 작은 소유권이다.

낯설음을 매일 보존하는 일

리디아 아주머니는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것이 평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거의 무엇에나 익숙해지므로 예측은 맞는다. 오브프레드도 방과 인사말, 정해진 길에 적응하면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의 내적 저항은 자주 탈출 계획이 아니라 ‘이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라는 차이를 매일 유지하는 데 있다. 과거를 떠올리고 잠긴 출구를 세며 라틴어를 반복한다. 기억만으로 제도를 멈추거나 거절에 효력을 줄 수 없으니 이를 영웅주의로 꾸밀 수는 없다. 그래도 ‘매달 일어난다’와 ‘옳다’ 사이의 거리를 보존하지 않으면 어떤 공동 행동도 시작될 수 없다. 길리어드가 가장 깊이 원하는 것은 그 차이가 당사자의 목소리에서도 사라지는 일이다.

알 수 없는 ‘당신’에게 말하기

오브프레드는 자주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당신’을 향해 이야기를 고친다. 그 사람은 믿지 않거나 잘못 이해하고, 언젠가 대답할 수도 있다. 이 불확실한 관계는 길리어드의 역할과 다르다. 지휘관과 세레나는 미리 정해진 반응을 요구하지만, 이름 없는 청자는 그의 몸이나 문장에 예정된 권리를 갖지 않는다. 이야기하기는 국가가 배정하지 않은 작은 사회적 관계를 만든다. 훗날 테이프가 발견되어 다른 순서로 편집된다는 사실은 그 자유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 준다. 그래도 누구에게 자기 경험을 빚졌다고 여길지 최초로 결정한 사람은 화자다. 그 선택이 소유격 이름 안에 끝내 들어가지 않는다.

대상 작품: 마거릿 애트우드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 통용 한국어판의 인명과 용어를 참고했으며, 중국어와 영어 원고를 문장별로 옮기지 않고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새로 쓴 독립 비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