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읽기
5 / 5

누구도 다른 사람의 구간을 대신 달릴 수 없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에 관하여: 중국어 원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총 23화의 TV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읽고, 필요한 곳에서는 미우라 시온의 원작 소설을 참고한다. 원문에는 예선 대회 방식, 간세이 대학 육상부, 하이지의 동기 등에 관한 수정이 반영되어 있다. 결말을 포함한 작품 전체의 스포일러가 있다.

중계소. 한 사람이 손을 내민 채 서서 기다린다.

이미 오래 서 있었다. 동료가 언제 나타날지, 어떤 상태로 나타날지 모른다. 몸을 풀고 시계를 보고 길목을 바라본 뒤, 다시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멀리서 누군가 달려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이미 20킬로미터를 달린 사람이다. 마지막 몇백 미터쯤에서는 대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자세는 흐트러지고 눈빛은 비어 있다. 어깨에 걸린 것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만 남아 있다.

그는 천으로 된 띠를 벗어 내민 손에 건넨다.

받은 사람은 곧바로 돌아서 달려간다. 건넨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춘다.

이 순간부터 건넨 사람은 더 이상 달리는 데 힘을 보태 줄 수 없다.

앞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다음 사람이 순조롭게 달리든 그렇지 않든, 자신에게 힘이 얼마나 남았든 서서 볼 수밖에 없다. 자기 구간은 끝났다. 끝났다는 것은 완전히 끝났다는 뜻이다. 몇 초 뒤 바닥에 쓰러지는 경우도 많다. 진행 요원이 일으켜 담요를 둘러 주고 옆으로 데려간다.

하코네 역전 한 대회에서 한 팀은 이 동작을 여덟 번 한다. 왕로에서 네 번, 복로에서 네 번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주자 사이에는 하룻밤이 있고, 돌아오는 경기는 다음 날 아침 시작된다.

이 글은 이 형식 자체를 다룬다.

열 사람, 열 개의 구간

하코네 역전의 구조는 간단하다. 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날은 다섯 사람이 이어 달려 도쿄에서 하코네로 간다. 이를 왕로라고 한다. 둘째 날에는 다른 다섯 사람이 이어 달려 하코네에서 도쿄로 돌아온다. 이것이 복로다. 총 열 구간에 대학별로 열 사람이 나서 각자 한 구간을 맡는다. 한 구간은 20킬로미터 안팎이며, 전체 거리는 200킬로미터가 넘는다.

각 구간에는 고유한 성격이 있다. 평지인 곳도, 바다를 끼고 가는 곳도, 긴 오르막도 있다. 5구간은 해발을 800미터 넘게 올려야 하므로 따로 ‘야마노보리’, 곧 산 오르기라 부른다. 그 구간을 맡은 선수는 팀 안에서 특별한 존재다. 바람이 센 구간, 사람이 드문 구간, 내내 남의 시선 안에 있는 구간도 있다.

하이지가 열 사람의 구간을 정할 때 맞추는 것은 이런 길의 성격과 사람의 관계다.

각 구간은 그곳에 배정된 사람이 직접 끝까지 달려야 한다.

대부분의 단체 종목과 다른 점이다.

축구에서는 한 사람의 상태가 나쁘면 다른 사람들이 더 뛰고 빈자리를 메우며 그 몫을 나누어 맡을 수 있다. 경기가 끝나도 밖에서 본 사람은 누가 누구를 떠받쳤는지 모를 수 있다. 농구에서는 공을 다룰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마지막 슛을 상태 좋은 선수에게 맡길 수 있다. 배구에는 로테이션과 교체와 작전 시간이 있다.

이 종목들의 공통점은 동료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경기장에 있으면서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전에서는 그럴 수 없다.

자기 20킬로미터에서 겪는 일은 무엇 하나 동료가 나누어 맡을 수 없다.

다리에 쥐가 나도 누가 대신 아파 줄 수 없다. 완전히 지쳐도 동료가 들어가 부축하며 달릴 힘을 보태 줄 수는 없다. 규칙도 그런 도움은 허용하지 않는다. 정해진 보급 절차 밖에서 팀원이 곁에 붙어 함께 달려 줄 수도 없다. 앞의 아홉 사람이 아무리 잘 달려도 열 번째 사람의 거리를 1미터 줄여 주지 못하고, 그 1미터를 조금이라도 쉽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

동료가 할 수 있는 것은 길가에서 소리를 보내는 일이다. 외치고 난 뒤에도 달리는 사람은 여전히 그 한 사람이다.

열 사람이 이루는 한 가지 일은 서로 독립되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열 번의 달리기로 이루어진다.

다스키란 무엇인가

열 구간을 잇는 것은 그 천 띠, 다스키다.

어깨에 비스듬히 걸치는 가벼운 띠다. 몸의 무게를 덜어 주지도, 속도를 높여 주지도, 거리를 줄여 주지도 않는다. 달릴 때는 오히려 조금 거추장스럽다.

유일한 기능은 증명하는 것이다.

앞서 달린 사람들이 각자 자기 구간을 끝까지 달렸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뿐이다. 체력도 기술도 행운도 건네지 않는다. 받아 드는 것은 실질적인 자원이 아니라 정보 하나다.

물리적으로는 아무 작용도 하지 않는 정보다. 그런데 이 경기의 구조 전체가 그 위에 서 있다.

많은 팀이 다스키에 무언가를 꿰맨다. 부적, 글자, 선배들이 남긴 표시 같은 것이다. 이것들도 물리적으로 아무 작용을 하지 않는다.

아무 작용도 하지 않는 천 띠 하나가 서로 별개인 열 구간을 잇는 유일한 물질적 연결이다.

연결이 끊길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규칙

하코네 역전에는 ‘구리아게 출발’이라는 규칙이 있다. 앞 주자를 기다리지 않고 출발시키는 제도다.

어떤 주자가 너무 늦어 정해진 시간 차를 넘기면 다음 주자는 더 기다리지 않는다. 이어받아야 할 원래 다스키 대신 대체 다스키를 걸고 먼저 출발한다. 원래 띠의 전달은 그곳에서 끊긴다. 이후 구간은 대체 띠로 달린다.

경기는 계속된다. 기록도 그대로 집계된다. 하지만 출발점부터 이어 온 것은 거기서 끊겼다.

연결은 끊길 수 있고, 그래도 일은 계속된다는 뜻의 규칙이다.

벌을 주기 위한 규칙이 아니다. 대회를 운영하기 위한 규칙이다. 하코네 역전은 일반 도로에서 열리고 교통 통제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뒤에는 다른 학교들도 달려온다. 중계소를 무한정 열어 둘 수는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필요 때문에 있는 규칙이다.

띠가 끊긴 팀에게는 보통 대회에서 가장 보기 괴로운 순간이 된다. 띠를 넘겨받는 동작이 일어나지 않는다. 앞 주자가 도착했을 때 중계소는 이미 비어 있다.

동시에 이 장면은 경기 형식의 성격을 분명히 보여 준다. 열 사람의 연결은 저절로 생기지도, 보장되지도 않는다. 열 사람이 저마다 자기 몫을 따로, 그것도 제시간에 완수해야 생긴다. 그중 한 번이라도 제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끊긴다.

경기가 그리는 모양

경기 일정을 펼쳐 놓으면 이런 모습이다.

첫날 아침, 1구간 출발선에는 팀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 서 있다. 앞으로 달릴 때 앞머리가 눈을 가리므로 머리를 묶었다. 자기 구간을 끝내면 첫 중계소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다스키를 건네고 멈춘다.

그 뒤로 2구간, 3구간, 4구간, 5구간이 이어진다. 다섯 번째 주자는 산을 올라야 한다. 왕로가 끝나면 다섯 사람 모두 각자의 거리를 달린 상태다. 앞의 네 사람은 다음 주자에게 다스키를 건넸고, 다섯 번째 사람은 받은 띠를 지닌 채 첫날 경기를 마친다.

다음 날 아침에는 하코네에서 돌아온다. 6구간, 7구간, 8구간, 9구간. 아홉 번째 주자는 카케루이며 같은 구간을 후지오카도 달린다. 열 번째는 하이지다.

열 구간. 코스 위에서 여덟 번의 전달, 그리고 하룻밤을 지나 다시 이어지는 경기.

여덟 번의 전달에서는 같은 동작이 일어난다. 한 사람이 달려오고 다른 사람이 달려간다. 그때마다 먼저 온 사람은 남은 경기에서 물러난다. 다만 다섯 번째 주자는 왕로를 마치고, 여섯 번째 주자가 이어 달리기 시작하는 때는 다음 날 아침이다.

마지막 주자가 끝까지 달릴 무렵에는 앞의 아홉 사람 모두 이미 물러나 있다. 결승선을 넘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선에 의미가 생기는 까닭은 앞선 아홉 구간이 이미 달려졌기 때문이다.

열 사람에게는 저마다 다른 일도 있다

이 열 사람을 다시 보자.

법학도는 사법시험에 이미 합격했지만, 학업과 앞으로의 진로에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4학년 하나는 취업 준비 중이고 면접 일정이 빽빽하다. 담배를 피우는 선배는 학교에 다닌 지 6년째라 학적이 문제다. 유학생은 만 킬로미터 떨어진 고향을 떠나 공학을 공부한다. 쌍둥이는 이제 막 1학년이 되었다. 만화광의 방에는 여전히 만화책이 가득하다.

이 일들은 그 1년 사이에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하코네에 나간다고 법학 공부가 저절로 끝나지는 않는다. 채용철은 누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지난해보다 빨리 달린다고 학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탄자니아에 있는 가족은 경기를 한 번 했다는 이유로 학위를 기대하지 않게 되지 않는다.

작품은 이런 것들을 줄곧 남겨 두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내밀게 한다. 누군가는 면접 때문에 훈련을 한 번 빠지고, 누군가는 한밤중 책상 앞에서 공부하며, 누군가는 집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는다.

해결된 일도 아니고, 두 가지를 다 해내는 청춘이라는 낭만으로 꾸며지지도 않는다. 그저 두 일이 함께 존재하며 각자 시간을 차지한다.

누구에게도 원래 삶을 포기하게 하지 않는다. 달리기 덕분에 원래 삶이 좋아졌다고 만들지도 않는다. 두 가지가 각자에게 따로 매달린 채 함께 있게 할 뿐이다.

끝까지 달리고도 열 사람은 같은 종류의 사람이 되지 않았다.

열 사람이 같은 일을 끝냈다. 그러나 그 일이 열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하이지의 구간도 같다

따로 짚을 점이 하나 있다. 이 규칙은 일을 꾸린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열 사람을 모으고, 각자에게 훈련을 짜 주고, 구간을 배정하고, 몸과 시간을 계산한 것은 하이지다. 이 일의 설계자다.

대회 당일, 이 형식은 그를 다른 아홉 명과 정확히 같은 자리에 놓는다. 10구간, 20여 킬로미터. 자신의 무릎으로 도쿄로 돌아오는 마지막 구간을 달려야 한다.

그 길에서는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앞서 해 놓은 모든 준비도 단 1미터를 덜어 주지 못한다.

한 사람이 일 전체를 설계하고 누가 어디를 달릴지 결정하며 모든 사람의 신체 자료를 쥘 수는 있다. 그래도 직접 그 길에 서는 순간 손에 남는 것은 다른 사람만큼 많고, 다른 사람만큼 적다.

작품이 그에게 벌을 내리거나 일부러 공평한 장면을 마련한 것이 아니다. 경기의 규칙이 모두를 똑같이 대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다.

두 문장

이제 이 연작의 시작에 있던 일과 끝에 있는 일을 나란히 놓자.

첫 번째 문장. 이 아홉 사람은 끌려 들어올 때 전체 사정을 몰랐다. 방세 이야기가 먼저였고 조건은 나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그 다리의 상태는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장. 이 아홉 사람은 끝까지 달렸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길에서 자기 다리로 각자의 구간을 달렸다.

이 이야기에서는 두 문장이 모두 참이다.

둘은 어떤 관계인가. 뒤의 일이 앞의 일을 바꾸었는가. 바꿀 필요가 없는가. 애초에 별개의 일인가. 이 글은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여기까지 읽은 독자 각자뿐이다. 아마 답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완성된 그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이 형식에 돌아가자.

열 사람이 있어야 끝낼 수 있는 일이면서,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 할 수 없는 일이다.

보통 이 두 말은 서로 부딪힌다.

우리에게 익숙한 함께 이루는 일은 대개 이런 모양이다. 일을 나누고 협력하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완하고,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이 메운다. 끝내 얻은 성과는 누구 것인지 분명하지 않고, 굳이 분명히 할 필요도 없다. 이 방식의 장점은 유연함이다. 한 고리가 느슨해지면 다른 고리를 당겨 버틸 수 있다. 대가는 개인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이다. 흐려지고 나면 누가 누구를 얼마나 대신했는지, 누가 누구에게 가려졌는지는 계산할 수 없는 장부가 된다.

역전은 두 가지를 한 구조 안에 넣는다. 열 사람이 필요하고 한 명도 빠질 수 없다. 동시에 누구도 다른 사람 대신 힘을 낼 수 없다.

유연함이 없다. 한 고리가 느슨해지면 그대로 느슨해진다. 다른 고리를 당겨 그 고리를 조일 수 없다.

완성된 그것은 어느 한 사람에게 있지 않다.

하이지에게 있지 않다. 그가 달린 것은 10구간이다. 카케루에게도 있지 않다. 그가 달린 것은 9구간이다. 왕자에게도 있지 않다. 누구의 것도 아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구간을 넘어서 달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존재하는 곳은 하나뿐이다. 열 구간을 모두 끝까지 달린 뒤다.

미리 존재할 수도 없다. 아홉 번째 주자가 달릴 때는 아직 없다. 마지막 한 걸음 뒤에야 비로소 성립한다. 그전의 매 순간에는 끝내 성립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사람이 필요하지만, 어느 한 사람의 것도 아니다.

그날 아침 1구간 출발선에는 한때 100미터조차 달리지 못했던 사람이 서 있었다. 앞으로 달릴 때 앞머리가 눈을 가려 머리를 묶었다.

다음 날 오후, 이틀의 달리기를 합쳐 열 시간이 넘게 흐른 뒤에 10구간의 결승점으로 무릎이 망가진 지 3년이 된 사람이 달려 들어왔다.

그 사이 여덟 구간에서 다른 여덟 사람은 각자의 20킬로미터를 끝까지 달렸다. 중계소에서 끝낸 사람은 멈춰 서서 다음 주자가 멀어지는 모습을 본다. 다섯 번째 주자가 도착하는 곳은 첫날의 결승점이다. 그 자리에서 다음 사람이 곧바로 출발하지는 않는다. 경기는 다음 날 아침 이어진다.

그것이 그 일의 전체 모습이다.

천 띠 하나가 코스 위에서 여덟 번 건네졌다. 경기는 하룻밤 쉬었다가 다음 날 아침 다시 이어졌다. 열 사람이 각자의 구간을 끝까지 달렸다.

그 집에서 맨 처음 벌어졌던 일, 방세와 조건과 감춰진 다리는 이 경기로 없어지지 않았다. 옳은 일이었다고 입증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이 일의 시작에 있다. 이 일의 끝과 함께 같은 이야기에 속한다.

바람은 여전히 그렇게 분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원작 미우라 시온(신초샤). TV 애니메이션 감독 노무라 카즈야, 각본 키야스 코헤이, 애니메이션 제작 Production I.G.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방영, 총 23화. 이 연작은 애니메이션을 기준으로 한다. 구리아게 출발은 하코네 역전에서 실제로 시행하는 경기 규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