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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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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영화 읽기 · 3 / 3

끝내 보여 주지 않은 얼굴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공개: 2026년 11월 8일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판

끝내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얼굴

천쭤첸은 이 집의 나리다. 네 부인이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람이 바로 그다. 두 시간 남짓한 영화 내내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찍은 쇼트는 하나도 없다. 배우 이름은 출연진 명단에 있고, 등장하는 분량도 적지 않다. 그런데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렷이 볼 수 없다.

그가 나타나는 방식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뒷모습, 먼 거리의 모습, 역광 속 윤곽. 문밖에 선 몸의 절반만 보이거나, 초점 밖을 지나간다. 쑹롄의 바로 맞은편에서 말을 하는 장면도 몇 번 있지만, 카메라는 끝내 그쪽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촬영 여건 때문에 생긴 일은 아니다. 배우가 그 자리에 있고, 연기가 진행되고, 대사도 들린다. 오직 얼굴만 주지 않는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원칙을 지키려면 장면마다 카메라 위치를 따로 설계해야 한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얼굴은 드러난다.

그래서 이 사람이 스크린에 존재하는 방식은 독특해진다. 몸이 있고, 목소리가 있고, 뜻이 있다. 언제든 내려질 수 있는 결정도 있다. 다만 똑똑히 볼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고,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얼굴만 없다.

네 사람이 평생을 걸고 다투는 그 대상에게, 영화는 얼굴 하나를 내주려 하지 않는다. 이 결정은 필름의 마지막 프레임까지 이어진다. 중간에 한 번도 놓치지 않으며, 어떤 중요한 장면에서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입을 열면 무엇을 말하는가

그의 대사는 많지 않다. 문장은 모두 짧다. 설명하지 않고, 제대로 의논하지도 않는다. 누구를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말이 언제나 사나운 것은 아니지만, 한마디가 떨어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되풀이하더라도 되풀이되는 것은 여전히 명령이다.

첫날 밤 그는 쑹롄에게 말한다. 발을 잘 두드려 놔야 남자를 잘 모시지. 이 말은 인과관계를 분명히 밝힌다. 발을 두드리는 일은 그녀를 위한 시중이 아니다. 그녀의 몸에 행하는 한 단계의 공정이며, 그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임신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말한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우리 천씨 집안에서 이런 방자한 짓을 하느냐고. 그리고 문을 쾅 닫고 나가며 짧게 내뱉는다. 등롱을 봉하라. 거짓이 드러나고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1분을 넘기지 않는다.

옌얼이 눈밭에 무릎을 꿇었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없다. 메이산이 위층으로 끌려갔을 때도 없다. 이 일들은 집사가 처리하고 부인들이 말을 전한다. 그는 어느 순간 그 단어를 입 밖에 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 과정은 알아서 끝까지 간다. 그가 지켜볼 필요는 없다.

그와 말을 나누는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그와 의논한 적이 없다. 그의 문장은 대화 속 문장이 아니다. 집행에 앞선 선고다. 말하고 나면 떠난다. 돌아올 말을 기다리지 않으며, 누구도 그가 답을 받아 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설득할 수 없는 상대

얼굴은 어디에 쓰일까. 얼굴이 있으면 마주 보며 말할 수 있다. 빌 수도, 대들 수도 있다. 어느 한순간 그 얼굴에 작은 흔들림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이 그 틈을 붙잡고 사태를 조금이나마 되돌릴 수 있다.

쑹롄에게는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쓸 만한 것이 많다. 열아홉 살이고, 배웠으며, 말을 할 줄 안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성격이 곧다.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을 배짱도 있다. 장소만 바뀌면 이 능력은 모두 밑천이 된다. 무언가를 얻어 낼 수 있다.

이 집에서 그 밑천은 한 번도 쓸모를 발휘하지 못한다.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을 마주하고 이치를 따지는 장면은 그녀에게 없다.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집사와 하인들, 다른 세 부인뿐이다. 그중 누구에게도 그 결정을 내릴 권한은 없다.

실제로 판결을 내리는 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집사를 통해 말을 전하고, 등롱으로 결과를 표시하며, “이 집의 규칙입니다”라는 한마디로 현실이 된다. 얼굴을 내보이지 않는 것을 설득할 수는 없다. 점수를 얻거나 잃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네 부인은 힘을 전부 서로에게 쏟는다.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힘을 가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지점을 정확히 찾은 것이다. 상대 부인 말고는 어떤 것에도 손이 닿지 않는다.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똑같이 다투고 있는 나머지 세 사람뿐이다.

메이산은 동트기 전에 노래한다

메이산은 이 집에 들어오기 전 극단에서 이름난 여주역 배우였다. 방도 무대처럼 꾸며 놓았다. 무대 의상과 경극의 분장 무늬, 소품이 모두 있다. 쑹롄이 처음 마작을 하러 갔을 때, 들어서자마자 한마디 한다. 역시 셋째 언니는 배우였군요.

메이산은 때를 가리지 않고 노래한다. 아직 날도 밝기 전에 무대 의상을 입고 안뜰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남들이 잠들었는지 묻지도 않고, 계절도 상관하지 않는다. 쑹롄이 막 들어온 며칠 동안 새벽에 들었던 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멀리서 흘러와 한 소절씩 또렷해지는 소리.

가오 의사가 그녀의 방에서 음반을 틀어 준 적이 있다. 메이산이 예전에 무대에 섰을 때 녹음한 것이다. 이 집에서 그녀의 과거가 나타나는 것은 그때 한 번뿐이다. 한때 그녀는 천씨 성을 쓰는 집이 아닌 곳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들린 목소리였다. 그때 그녀의 값어치를 정한 것은 이 안뜰이 아니었다.

천씨 저택에서 노래하는 일은 아무 쓸모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같은 방향을 향한다. 다투고, 물러서고, 참고, 계산한다. 오직 그녀의 이 한 가지 일만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다. 등롱 한 개로도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메이산이 고결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다툴 때는 그녀도 매섭다. 쑹롄의 혼인 첫날 밤 아픈 척해서 나리를 불러 간 사람이 바로 그녀다. 영화는 메이산을 결백한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다. 다만 남들보다 한 가지를 더 갖게 했다. 스스로 할 줄 알고, 게다가 아주 잘하는 일 하나다.

지붕 위의 작은 방

지붕 위에 작은 방이 있다. 안뜰에서 고개만 들면 보인다. 쑹롄이 저기가 어디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사람이 죽은 곳이라는 것이었다. 윗대의 첩 둘에게 무슨 일이 생겼고, 둘 다 저 위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대답은 거기까지다. 자세히 말하는 사람도, 분노하는 사람도 없다. 목소리를 낮춰 그녀에게만 따로 알려 주지도 않는다. 천씨 집안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발을 두드리는 시중과 요리를 정하는 규칙처럼 이곳의 일부다. 물었으니 이제 알면 된다.

작은 방은 내내 훤히 보이는 곳에 있다. 숨기지 않는다. 숨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면서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규칙은, 글로 적어 둔 규칙보다 훨씬 잘 작동한다. 쓰인 규칙은 찾아보고, 따지고, 고칠 수 있다. 이 규칙에는 적힌 조문이 없으니 손댈 곳도 없다.

메이산과 가오 의사의 관계가 발설된 뒤,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 데려와 그 방으로 끌고 올라간다. 영화는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보여 주는 것은 쑹롄이 지붕까지 따라가 문틈에 매달려 들여다보는 동작, 그리고 몸을 돌려 아래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메이산은 내려오지 않는다. 이튿날 아침 안뜰은 평소와 같다. 밥을 먹고, 마작을 하고, 하인들은 여느 때처럼 마당을 쓴다. 지붕 위 방문은 닫혀 있다. 고개를 들어 그 문을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너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

쑹롄이 안뜰에서 외친다. “사람을 죽였어요!” 이 말은 영화 전체에서 단 한 번만 나온다. 외치는 사람도 그녀뿐이다. 다른 부인들, 집사, 하인들 가운데 아무도 말을 받지 않는다. 뜻밖이라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도 없다.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무서우면 반응이 생긴다. 몸을 피하거나 서로 눈길이라도 주고받는다. 영화가 찍는 것은 반응 없음이다. 가던 사람은 계속 가고, 무언가를 나르던 사람은 계속 나른다. 이 일은 그들의 일상에서 따로 처리해야 할 사건이 되지 못한다.

나리는 질문을 잇달아 쏟아 낸다. 네가 뭘 봤는데? 대체 뭘 봤다는 거야? 허튼소리, 네가 뭘 봤어? 너는 아무것도 못 봤어! 미쳤구나. 너는 이미 미쳤어.

이 말의 구조는 나누어 볼 수 있다. 앞의 몇 마디는 질문이지만 마지막은 질문이 아니다. 판정이다. 그녀가 틀린 말을 했다는 판정이 아니다. 이제부터 그녀라는 사람 자체를 유효한 존재로 치지 않겠다는 판정이다. 입을 열어 말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듣지 않아도 되는 사람 쪽으로 밀려난다.

이 판정에는 증거도, 동의해 주는 사람도 필요 없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것이 판정을 내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살아간다. 이 집이 그 일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앞뒤를 합쳐도 하루를 넘지 않는다. 그 뒤로 메이산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셋째 부인의 안뜰에 귀신이 든다

메이산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 부인의 안뜰에 귀신이 든다는 소문이 돈다. 밤이면 그쪽에서 경극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하인들은 멀리 돌아가고, 날이 어두워지면 아무도 그쪽으로 가려 하지 않는다. 이 집이 내놓은 첫 설명이다. 유일한 설명이기도 하다.

소문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쑹롄이 축음기로 메이산의 옛 공연 녹음을 틀고 있다. 또 틀고, 또 튼다. 메이산의 방과 자기 방에 있는 붉은 등롱도 모두 켰다.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없고, 와서 말리는 사람도 없다.

그 모든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등롱은 상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켠 것이다. 걸었다고 오늘 밤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뜻도 아니다. 녹음 속에는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이 집에서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들리면 어서 멀어지고 싶을 뿐이다.

이 집에는 그 행동을 표현할 말이 없다. 총애를 다투는 일을 가리킬 말은 있다. 방자한 짓을 가리킬 말도, 실성한 상태를 가리킬 말도 있다. 오직 “누군가 죽은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말만 없다.

그래서 귀신이 들었다고 설명한다. 이 집이 가까스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비슷한 말이다. 덕분에 이 집이 가진 어휘의 한계도 드러난다. 점수를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곳에서는 부정한 것의 소행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다섯 번째 사람

이듬해 천씨 집안은 다섯째 첩을 들인다. 이름은 원주이고, 아주 젊다. 그녀가 들어오는 날의 의식은 일 년 전 쑹롄이 들어왔을 때와 똑같다. 더해진 것도, 줄어든 것도 없다.

안뜰은 다시 북적인다. 등롱을 틀마다 들여와 불을 밝히고 처마에 건다. 징과 북의 장단도 그대로 울리고, 하인들의 걸음도 그대로 빠르다. 절차 가운데 빠진 단계가 없고, 달라진 동작도 하나 없다.

원주는 들어오다 회랑 아래를 걷는 사람을 본다. 흰색과 검은색의 학생복 차림에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았다. 아주 천천히 걷는다. 원주가 묻는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옆에 있던 하인이 답한다. 예전 넷째 부인이십니다. 정신이 이상해지셨어요.

이때 영화는 원주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신부의 기쁨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 자신도 아직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조금 비친다. 영화가 얼굴 하나를 정면으로 찍는 마지막 순간이다. 그리고 그 얼굴은 막 출발점에 선 사람의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이 안뜰에서 두 사람이 죽었다. 새로 온 사람은 그것을 알 필요가 없다. 이 제도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힘으로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굴리는 힘은 날마다 저녁이면 누군가 문 앞에 서서 기다린다는 데 있다. 그리고 내일이면 누군가 다시 그 일을 할 것이다.

쑹롄은 긴 회랑을 걷는다. 문 하나에서 나와 다음 문으로 들어가고, 다시 그다음 문으로 들어간다. 넷째 부인의 안뜰은 등롱이 꺼져 있다. 다섯째 부인의 안뜰에서는 막 등롱이 켜졌다. 붉고 환하다.

이 글은 상영 시간 약 125분인 1991년판을 바탕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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