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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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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영화 읽기 · 2 / 3

만 박사에게는 돌아갈 사람이 없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공개: 2026년 10월 7일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판

중국어 원작: 간체·번체 · 원문

얼어붙은 행성에서 동면 캡슐 하나가 열린다.

만 박사가 눈을 뜨고, 천천히 쿠퍼의 얼굴에 시선을 맞춘다. 그는 눈앞의 낯선 사람을 붙잡아 가까이 끌어당기고, 얼굴을 맞댄 채 소리 내어 운다. 나중에 그는 일행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보는 일이 얼마나 좋은지, 당신들은 영원히 모르기를 바란다고.

그 감정은 진짜다. 뒤이어 드러나는 일들 역시 진짜다. 데이터 조작, 쿠퍼를 죽이려는 시도, 로봇에 함정을 설치해 로밀리를 죽게 한 일, 그리고 인듀어런스호를 찢어 놓은 무리한 도킹.

진심과 배신은 서로를 지워 버리지 않는다. 둘은 같은 고독 속에서 자라났다.

1. 모범으로 내세워져 떠난 사람

나사로 계획은 과학자 열두 명을 웜홀 너머로 보낸다. 각자 홀로 이주 후보 행성 하나를 조사하는 임무다. 모두 자원해서 떠났지만,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는 보장은 받지 못했다. 브랜드 교수는 전원에게 마음에 걸리는 가족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고집했다. 그의 제자 만은 나머지 열한 명이 뒤따르도록 고무한 인물이었다.

인듀어런스호가 도착하기도 전부터 만은 이미 “우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불린다. 영리하고 용감하며 절제할 줄 아는 사람, 인류의 존속을 위해 자기 삶을 기꺼이 도구로 내놓을 듯한 사람이다.

이 정체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훗날 만이 무너지는 과정은 단순히 사기꾼 하나가 거짓 명성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잘 판단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짊어진 명예 역시, 두려움이 도덕적 권위를 얻게 되는 과정에 힘을 보탠다.

2. 마음을 붙잡는 이도, 돌아봐 주는 이도 없다

영화는 열두 명 가운데 만 박사만 유일하게 가족이 없는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마음에 걸리는 가족이 없을 것’은 애초에 나사로 계획의 선발 조건이었다. 다만 그의 행성에 이르러서야 이 규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으로 드러난다.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자녀나 반려자는 없다. 그가 떠난 지 몇 년이나 지났는지 헤아리는 누군가의 모습도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동면에 들어갈 때 깨어날 날짜를 정하지 않았고, 깨어난 뒤 맨 처음 붙잡은 사람의 얼굴은 낯선 이의 것이었다.

만은 나중에 쿠퍼에게 연구 결과를 들어 설명한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자기 아이들을 보며, 그 아이들을 위해 한 번 더 살아 보려고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이 말이 가리키는 사람은 아버지인 쿠퍼다. 그의 생존 본능은 톰과 머피에게까지 뻗어 있다. 만은 자신도 그런 유대를 지닌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부족하다거나, 가족만이 유일하게 진실한 관계라는 뜻은 아니다. 영화가 실제로 보여 주는 것은 나사로 계획이 탐험가들을 집으로 끌어당길 가능성이 가장 큰 연결을 스스로 끊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임무는 그들이 추상적인 인류에게 온전히 속하기를 요구한 뒤, 아무런 대답도 돌려주지 않는 단어 앞에 한 사람씩 홀로 남겨 놓는다.

3. ‘인류’는 그의 변명이 된다

만은 착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행성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수년 동안 유혹에 맞섰다고 말한다. 하지만 끝내 거짓임을 알면서도 거주 가능한 행성이라는 데이터를 전송해 구조대를 이곳으로 불러들였고, 깨어날 날짜도 정하지 않은 채 동면에 들어갔다.

구조대가 도착한 뒤에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임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짜일 뿐이다. 만은 쿠퍼에게 생존 본능이 줄곧 인류를 움직여 왔으며 앞으로도 인류를 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쿠퍼가 질식하도록 얼음 위에 버려두면서도 자신은 모두를 위해 행동한다고 고집한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진심으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위험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인류’는 일종의 환산 장치가 된다. 살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이 사심 없는 의무로 바뀌어 표현되는 것이다. 반면 그가 지금 죽이려는 한 사람은 저울 반대편에 올려져, 감수할 만한 손실로 바뀐다.

추상적인 개념에는 눈이 없다. 인류의 미래와 자신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하나로 뒤섞어 버렸다고, 만에게 알려 줄 수 없다.

4. 브랜드 교수의 더 큰 거짓말

브랜드 교수의 기만은 만의 기만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구조는 같다. 플랜 A는 중력 방정식을 풀어 지상의 인구를 우주로 옮기겠다는 약속이다. 플랜 B는 거의 5천 개의 수정란을 가져가, 현재 지구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뒤 새로운 정착지를 세우려는 계획이다.

만이 지구를 떠나기 전, 브랜드는 이미 당시의 지식으로 풀 수 있는 방정식의 절반을 완성한 상태였다. 나머지 절반에는 블랙홀 내부의 양자 데이터가 필요했는데, 그는 그 데이터를 얻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플랜 A를 실현 가능한 희망으로 모두에게 제시했다. 영원히 만나지도 못할 후손들만 구하러 가자고 하면 사람들이 협력하지 않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머피는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그는 거짓말을 했고, 애초에 자신들을 진정으로 구할 생각도 없었다는 것이다. 만은 교수를 옹호한다. 인류라는 종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인간성을 희생했다고 말한다. 쿠퍼는 실제로 희생된 것은 교수가 가망없다고 판정한 지구의 사람들이라고 지적한다.

이 대화는 ‘인류’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비대칭을 드러낸다. 희생이 필요하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받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5. 대표자가 자신이 대표한다는 사람들을 삼킨다

쿠퍼를 죽이려 한 뒤, 만은 인듀어런스호로 향한다. 우주선을 빼앗고 다른 사람들은 행성에 남겨 둔 채 임무를 계속할 생각이다. 이때까지도 그는 이 충돌이 자신이나 쿠퍼의 생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이 스스로를 인류의 대표로 임명하는 순간, 만에게 반대하는 것은 곧 인류를 배신하는 일이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버릴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우주선의 기존 승무원들이나 미래에 세울 정착 공동체의 동의도 필요하지 않다. 구체적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임무 수행자’라는 정체성에 삼켜진다.

그는 잘못된 방식으로 수동 도킹을 시도하다 현장에서 죽는다. 폭발로 인듀어런스호의 모듈 하나가 파괴되고, 남은 우주선도 통제를 잃은 채 행성을 향해 추락한다. 자신이 거듭 내세우던 미래를 하마터면 직접 없애 버릴 뻔한 것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덧붙인 반어적인 벌이 아니다. 잘못을 바로잡을 길이 사라진 추상적 목표를 실행에 옮길 때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결과다. ‘인류’가 오직 만 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게 되면, 만 역시 자신에 대한 이해를 위협하는 어떤 정보도 더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6. 깨어났을 때의 울음은 여전히 진짜다

첫 장면에서 쿠퍼를 끌어안고 울던 만이 연기를 한 것이었다면 이야기는 훨씬 단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기하지 않았다. 물자는 바닥났고, 다시 깨어나리라는 희망도 버렸다. 구름마저 고체로 얼어붙은 행성에서 그는 여러 해를 혼자 지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은 그에게 정말로 한 번의 부활과 같았다.

이 사실이 그의 책임을 덜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그저 괴물로 만들어 버릴 필요도 없다. 이 사실은 실패가 어디서 일어났는지를 보여 준다. 만은 보편적 대의를 대표해 극한의 고독을 견디도록 선택되었다. 그가 더는 버티지 못하자, 그 보편적 대의는 오히려 사적인 두려움을 자기 자신에게마저 감출 수 있게 해 주는 언어가 되었다.

이에 비해 특이점 데이터는 구체적인 신뢰로 이어진 연결 고리를 따라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다. 타스가 데이터를 얻고, 쿠퍼가 머피를 선택하며, 머피는 시계를 알아보고 방정식을 완성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살아남지만, 참여자 누구도 먼저 자신을 ‘인류 그 자체’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인류라는 종은 행동이 향하는 먼 지평일 수 있다. 하지만 행동하는 사람에게 계속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관계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원문 저자의 작품·자료 안내: 이 글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하고 조나단 놀란과 크리스토퍼 놀란이 공동 각본을 쓴 2014년 영화 《인터스텔라》를 바탕으로 한다. 줄거리의 세부 사항은 정식 출판 각본과도 대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