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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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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영화 읽기 · 1 / 3

먼저 일부가 잘려 나가야 한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공개: 2026년 10월 7일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판

1924년, 베이징. 눈이 내린다.

한 여자가 아이를 끌고 길가로 나와 돌 위에 아이의 오른손을 눌러 놓는다. 그 손에는 손가락이 여섯 개다. 여자는 품에서 식칼을 꺼내고, 옷자락으로 아이의 머리를 감싼 뒤 칼을 내리친다. 비명이 천 속에 갇힌다.

눈 위로 피가 떨어진다.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어 종이 한 장에 찍는다. 아이의 몸을 넘기는 계약서다. 관 사부의 문하에 들어가 경극을 배우고 공연할 것. 맞아 죽어도 책임을 묻지 않을 것. 중도에 달아나지 않을 것.

손도장을 찍자 여자는 돌아서서 떠난다. 아이는 뒤쫓으며 엄마를 부른다.

《패왕별희》의 첫머리다. 음악도 없고 멈춤도 없다. 장면은 빠르게 흘러 몇 분 만에 지나간다. 그러나 세 시간짜리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이 몇 분에서 자라난다.

아이가 그 세계로 들어가려면, 먼저 자기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가야 한다.

1. 그 손가락은 결함이 아니다

손가락 하나가 더 있다고 경극을 못 할 이유는 없다. 목소리에도, 몸짓에도, 대사를 외우는 데에도 지장이 없다. 문제는 딱 하나다. 정해진 규격에 맞지 않는다.

관 사부는 한번 보더니 받지 않겠다고 한다.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의 기준에서는 그것 자체가 이유이기 때문이다. 경극 학교가 원하는 것은 아이 한 명이 아니라 명배우로 빚어낼 재료 한 덩이다. 흠 있는 재료는 받지 않는다. 그뿐이다.

그래서 그 손가락이 잘려 나간다.

여기서 순서를 잘 보자. 아이가 먼저 이곳에 설 자격을 인정받은 뒤, 조금 고치라는 요구를 받은 게 아니다. 합격할 몸으로 고쳐져야만 비로소 이곳에 설 수 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입장권을 얻지 못한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

손가락을 자른 뒤에도 한 단계가 남는다. 보고도 곧잘 잊는 대목이다. 아직 피가 흐르는 아이 자신의 손으로, 그 아이를 넘겨주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아이는 무엇에도 동의할 능력이 없다. 종이에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이의 피가 묻어 있다.

피해를 입은 아이의 피로 손도장을 찍은 문서가, 이제부터 그에게 가해질 모든 처분에 계약이라는 외양을 입힌다. 종이에 아이의 손도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동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2. 매질은 처벌이 아니라 제조 공정이다

경극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은 날마다 맞는다.

옛날 교육이 원래 엄했다거나 스승의 성미가 고약해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몇 장면만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잘못을 해서 맞는 것이 아니다. 맞는 일 자체가 훈련이다.

아이들이 허리를 뒤로 젖히면 선배가 옆에서 널빤지를 들고 지켜본다. 충분히 휘지 않으면 때린다. 매트 위에서 구르고 넘어지는 동작을 익힐 때도, 제대로 떨어지지 못하면 때린다. 대사를 외울 때는 한 글자만 틀려도 때린다. 나쁜 짓을 해서 맞는 아이는 없다. 아직 올바른 모양이 되지 못해서 맞을 뿐이다.

이것은 처벌과 다르다. 처벌에는 네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전제가 있다. 여기서 매질의 전제는 네가 애초에 잘못되어 있으니, 때려서 바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 사부의 유명한 말이 있다. 무대 위의 명배우는 모두 이렇게 견뎌내며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고, 숨김없는 말이기도 하다. 그의 눈에는 이 기술로 만들어내는 제품이 있다. 제품의 이름은 명배우이고, 아이들은 원료다.

카메라의 시선도 그렇다. 학교에서 훈련하는 대목에서는 아이의 온몸이 한꺼번에 잡히는 일이 드물다. 화면에는 다리만, 허리만, 매를 맞는 손만, 팽팽하게 뻗은 발등의 행렬만 보일 때가 많다. 이름을 알리고 명배우가 된 뒤에야 얼굴 전체를 보여준다.

제품이 되기 전에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3. 샤오라이쯔와 탕후루 한 꼬치

학교에는 샤오라이쯔라는 아이가 있다. 주인공도 아니고, 나오는 장면도 적고, 일찍 죽는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다.

샤오라이쯔는 두지와 함께 한번 도망친다. 밖으로 나간 두 아이는 공연을 보러 간다. 무대에는 이름난 배우가 있고, 징과 북이 울리자 객석 전체가 환호한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두지가 고개를 돌려 말한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배우가 됐을까? 얼마나 많이 맞았을까? 그리고 제 발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학교로 돌아온 두 아이 앞에는 방 안 가득 매를 맞는 아이들이 있다. 두 사람이 달아난 탓에 모두가 대신 벌을 받고 있다.

문 앞에 선 샤오라이쯔는 품에서 설탕을 입힌 산사 열매 꼬치, 탕후루를 꺼낸다. 한 알씩 입에 밀어 넣는다. 너무 서둘러 삼키느라 목이 메고, 연신 기침을 하고, 눈물이 흐른다. 먹으면서 중얼거린다. 다 먹을 거라고.

다 먹은 뒤, 아이는 줄을 찾아 목을 맨다.

이 아이가 제 뜻대로 한 유일한 일은 그 탕후루 한 꼬치를 끝까지 먹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안다. 경극도, 명배우가 되는 것도 아니다. 탕후루 한 꼬치와 매 맞지 않는 곳이다.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이 짧은 생애 동안, 아이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은 어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극 학교라는 곳의 가장 차가운 본질이 여기에 있다. 잔혹해서 차가운 게 아니다. 잔혹하다는 것은 적어도 누군가는 네 고통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이곳은 아예 묻지를 않는다.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아이를 집어넣고, 끝까지 나오는 아이는 명배우가 된다. 나오지 못하는 아이는 사라진다. 그 사이에 ‘이 아이 자신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샤오라이쯔가 죽은 뒤에도 공연은 계속되고 훈련도 계속된다. 아무도 그를 다시 입에 올리지 않는다.

4. 장 내관

두지는 마침내 《사범(思凡)》의 그 대목을 제대로 불러 나쿤의 선발을 통과한다. 이후 시투와 함께 장 내관의 저택에서 《패왕별희》를 공연하고 상을 받는다.

장 내관이 노래하라고 하자 아이는 노래한다. 장 내관은 잘한다고 칭찬한 뒤 아이를 안방으로 데려간다.

문이 닫힌다. 카메라는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 두지가 화면에 나타났을 때는 밖으로 보내져 나온 뒤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다.

이 장면에서 앞서 본 생산의 논리가 가장 냉혹하게 결산된다. 손가락을 자르고, 몸을 팔고, 때리고, 끝내 다른 말을 하게 만드는 모든 공정이 마침내 완제품 하나를 내놓는다. 그 제품은 검수를 받고, 사용된다.

아이 하나가 물건으로 만들어지고, 그 물건은 권력 있는 사람에게 넘겨진다. 그 어느 단계에서도 아이 본인이 원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 두지는 담벼락 아래 버려진 아기를 발견한다. 아이를 품에 안는다.

방금 물건처럼 사용당한 사람이 돌아서서, 다른 누군가가 내다 버린 사람을 안아 든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무겁게 가라앉는 배치다. 이 아기는 나중에 샤오쓰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두지에서 쳉데이가 된 그를 공개 비판과 공격이 쏟아지는 비판투쟁의 자리에 세우는 사람이 된다.

5.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 글에서 하려는 말은 사실 하나뿐이다.

식칼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훗날 검날이 자신의 목을 스치는 순간까지, 영화는 쳉데이에게 이 질문에 진짜로 답할 자리를 거의 주지 않는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으냐.

어머니는 묻지 않았다. 이 아이를 받아줄 것인가만 중요했다. 관 사부도 묻지 않았다. 이 재료로 쓸 만한 것을 만들 수 있는가만 중요했다. 나쿤도 묻지 않았다. 이 배우로 돈을 벌 수 있는가만 중요했다. 장 내관은 묻지 않았다. 말조차 길게 할 생각이 없었다.

훗날 그와 관계를 맺는 위안 나리와 두안 샬루에게도 저마다의 욕망과 자리가 있다. 시대는 더더욱 묻지 않는다. 일본의 점령, 국민당의 권력 인수, 신중국의 성립, 문화대혁명은 그에게 차례로 자신을 증명하고, 고치고, 부정하라고 요구한다. 질서는 몇 번이고 교체된다. 합격으로 인정되는 배역은 달라져도, 그 자신이 무엇이 되고 싶은지 말할 자리는 한결같이 모자란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주 곤란한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자신도 더는 묻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남이 집어넣은 것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게 된다. 누구보다 단단히 붙들고 지키게 된다. 그것 말고는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몸속으로 들어갔는지를 이야기한다. 담뱃대에서 담배를 담는 부분인 대통을 아이의 입안에 쑤셔 넣는 방식으로.

이 글은 첸 카이거 감독의 1993년 영화 《패왕별희》를 바탕으로 한다. 원작은 리비화의 동명 소설이며, 사건의 전개는 영화를 기준으로 삼았다.

중국어 원문·기존 영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