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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동화 읽기 · 13

신데렐라가 드레스를 입기 전―이미 있던 솜씨는 왜 늘 셈에 들지 않았을까

《신데렐라》―남의 밤을 준비할 솜씨는 인정해도, 자기 밤을 준비할 기회는 주지 않았다.

Han Qin ·

무도회에 갈 준비를 하는 두 자매가 신데렐라를 불러 어떻게 차려입어야 예쁠지 묻는다. 안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신데렐라가 먼저 돕겠다는 제안도 받아들여 머리를 맡긴다. 그 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놀린다. 너도 무도회에 가고 싶으냐고. 재투성이 소녀가 궁전에 들어서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우습다.

호박이 마차가 되기 전에 일어난 장면이다. 요정의 마술봉도 유리 구두도 없다. 낡은 옷을 입은 신데렐라도 옷을 맞추고 머리를 매만질 줄 안다. 일을 훌륭히 하면서, 자기를 비웃는 사람에게 망신을 줄 기회로 삼지도 않는다. 자매는 능력이 있는 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집에서 자기들을 위해 쓸 수는 있어도, 그 솜씨로 함께 무도회에 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페로의 이야기에서 소녀는 원래 온화하고 아름답다. 계모가 견디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장점이다. 그릇을 씻고 계단을 닦고 남들의 침실을 청소하면서, 자기는 다락방에서 잔다. 일이 끝나면 아궁이 곁의 재에 앉는다.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하소연할 엄두를 못 낸다. 아내에게 휘둘리는 아버지가 도리어 딸을 꾸짖을 것이라고 이야기는 말한다. 가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가족 안에 똑같이 보살핌받을 자리가 없을 뿐이다.

왕자가 무도회를 열어 번듯한 집안 사람들을 초대하자, 자매는 들떠 옷을 고른다. 신데렐라에게는 다림질과 정리할 일이 더해진다. 같은 초대가 세 사람에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 누구는 사람들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설지 상상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모습을 만들 세부만 정돈한다. 소녀도 무도회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계속 준비하는 쪽에 남겨져 있다.

자매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다 소녀는 마침내 운다. 대모가 이유를 묻자 너무 슬퍼서 바람을 끝까지 말하지 못한다. 무도회에 가고 싶으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한다. 뒤의 마법은 먼저 자신이 확인한 소망에 응답한다. 아무 생각 없던 소녀에게 남이 정한 길로 행복을 찾게 한 것이 아니다.

속을 파낸 호박이 금 마차가 되고, 생쥐들은 말이, 도마뱀들은 하인이 된다. 마부를 누구로 할지 대모가 아직 정하지 못하자, 신데렐라가 덫을 살펴보자고 제안하고 변신시키기 좋은 커다란 쥐를 데려온다. 모든 일이 저절로 끝나기만 옆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누군가 마술봉을 가졌다고 자기가 더 보탤 생각이 없는 척할 필요도 없다. 짧은 준비 속에서 돕는 쪽의 힘과 도움받는 쪽의 참여는 함께 일한다.

마차와 말이 갖춰진 뒤에도 신데렐라는 낡은 옷을 가리키며 이렇게 가느냐고 물어야 한다. 그제야 대모가 화려한 옷으로 바꾸고 유리 구두를 준다. 준비는 구체적인 단계로 나뉜다. 가고 싶은 마음도, 좋은 안목도 이미 진짜다. 그래도 어떻게 도착하고 무엇을 입고 입구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는 풀어야 한다. 소망이 그 조건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대모는 착한 아이가 되려는지도 묻는다. 페로가 품행을 가르치려는 의도를 버린 것은 아니다. 다만 마술봉이 착함과 지성과 미적 감각을 만들어 냈다고 쓰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미 있었고, 달라진 것은 그것들을 지닌 채 어디에 들어갈 수 있느냐다. 도우려면 받는 사람을 먼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과 소망 사이를 가로막는 몇 가지를 하나씩 처리하면, 본인이 아직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때도 있다.

낯선 귀한 손님이 도착하자 왕자가 직접 맞아 마차에서 내려 주고 손을 잡아 연회장 안으로 이끈다. 춤과 음악이 멎고 모두 바라본다. 옷에 감탄하고 몸가짐과 춤도 마음에 들어 한다. 이야기가 아름다움과 궁정의 우아한 몸가짐을 높게 여기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를 맞아들인 일을 모두가 갑자기 겉모습과 위계를 버린 순간으로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감탄받는 것이 전부 마법에서 빌려 온 것도 아니다.

자매 곁에 가서 왕자가 준 과일을 나누고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잘 아는 두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높은 신분의 손님이 자기들에게 이렇게 다정하다니 놀란다. 다락방과 아궁이 곁에 있던 같은 친절이 화려한 옷 속에 오자 다른 대우를 받는다. 신데렐라의 보살핌을 싫어한 것이 아니다. 보살피는 사람도 그런 신분으로 옆에 앉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첫날 밤에는 자정의 약속을 기억해 제때 집에 돌아오고, 대모에게 두 번째 무도회에도 보내 달라고 한다. 다음 밤에는 왕자와 너무 즐겁게 지내다 시간을 잊고, 종소리가 난 뒤에야 허둥지둥 달아난다. 쫓던 왕자는 따라잡지 못하고 유리 구두 한 짝만 줍는다. 옷은 낡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마차와 말은 사라진다. 조금 전 정중히 맞아 준 궁전을 떠나며, 다시 아무도 같은 눈으로 보지 않는 소녀가 된다.

문지기의 대답은 그 변화를 또렷이 보여 준다. 공주가 나가는 것을 보았느냐고 묻자, 아니라고 한다. 낡은 옷의 젊은 소녀 하나만 보았고, 귀한 여인보다는 시골 소녀 같았다고. 사람을 아예 못 본 것이 아니다. 본 사람이 질문 속에서 찾는 사람일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눈에는 모습이 들어왔지만, 그 모습을 누구와 연결할 수 있는지는 옷이 먼저 정했다.

문지기가 일부러 거짓말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이해한 신분에 맞춰 대답했고, 관찰이 정확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어려운 점은 여기에 있다. 사실이 이미 눈앞을 지나갔는데도 판단 안에는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질문 속의 번듯한 사람과 눈앞에서 본 남루한 소녀를, 미리 서로 이어질 수 없는 두 자리로 나눴기 때문이다. 필요한 변화는 한번 더 보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두 모습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열려야 한다.

나중에 유리 구두가 연결해 준다. 왕자는 낯선 물건 하나를 보고 발이 맞는 아무나 아내로 삼겠다고 멋대로 정한 것이 아니다. 이미 함께 지내며 사랑하게 된 손님을 찾고 있다. 왕명을 맡은 사람이 집집을 돌다가 신데렐라의 집에 온다. 자매의 발은 들어가지 않는다. 소녀도 신어 보고 싶다고 하자 두 사람은 또 웃는다. 전의 무도회 생각처럼, 그 희망도 우스워 보인다.

이번에는 그 웃음을 거절 이유로 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구두를 신겨 보는 담당자는 명령대로 모든 소녀에게 기회를 준다. 발에 맞자 신데렐라가 다른 한 짝도 꺼내고, 대모가 다시 옷을 바꿔 준다. 자매는 마침내 눈앞의 사람이 무도회에서 본 귀한 여인임을 안다. 낡은 옷의 소녀와 눈부신 손님 사이에 마음이 바뀐 것도, 서로 다른 안목이 생긴 것도 아니다. 남들이 더는 두 모습을 갈라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페로는 작품 끝에서 재치와 용기와 출신 같은 장점도, 삶에서 힘을 쓰려면 이끌어 주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많다고 이미 강조한다. 그러니 '사람에게는 기회가 필요하다'를 원작은 몰랐던 새 교훈처럼 내놓을 필요는 없다. 더 물을 것은 같은 능력이 이미 남을 위해 쓰였으면서, 왜 함께 참여할 이유는 되지 못했느냐다. 자매는 자기들을 더 예쁘게 만들어 줄 능력은 믿었지만, 신데렐라도 자기를 위해 준비한 밤 하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궁정의 감탄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왕자는 진짜로 사랑하고, 소녀도 다시 가기를 원하며, 끝내 행복한 새 삶에 들어간다. 외부의 도움과 옷과 신분이 그 행복에 들어갔다고,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니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기회를 막을 뿐이다. 자기 삶이 되려면 전부 혼자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자매의 사과를 받고 자기를 사랑해 달라고 말한다. 궁전으로 데려와 새 생활을 꾸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페로는 웃음 뒤에 복수를 숨기지 않고, 자매의 눈을 파거나 발을 베는 일도 쓰지 않는다. 새 자리에 선 뒤 관계를 회복하려는 진짜 선택일 수 있다. 그렇다고 똑같이 대접받은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전의 멸시가 마땅히 겪어야 할 교육으로 바뀌지도 않는다.

신데렐라는 남의 도움을 얻고, 남을 도울 힘도 얻는다. 도움이 어느 쪽으로 흐르는지만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 자기 소망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대모는 가고 싶다는 말을 듣고 갈 수 있는 조건을 준다. 앞의 자매는 자기들의 무도회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능력만 보았다. 소녀가 참여할 수 있느냐는 바로 이 두 관계 방식 사이의 거리다.

사람들은 자정 뒤의 구두 한 짝으로 이야기를 기억하기 쉽다. 소녀를 찾아 나설 만한 이유가 발이 맞은 뒤에야 생긴 것처럼. 하지만 드레스와 마차와 왕자 이전부터 조언하고 머리를 만져 주고, 멀어지는 차를 보며 자기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랐다. 구두는 남들이 알아보게 했고 대모는 무도회에 닿게 했다. 가고 싶어 하던 사람은 그들이 나중에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출처

현재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페로의 1697년 판본에 관한 해석이며 원작 전체의 번역은 아니다. 이미 있는 자질과 그것을 드러내며 참여할 조건을 나누되, 궁정의 아름다움·신분 평가와 품행 교육, 도움을 주는 사람의 필요에 관한 원래 교훈도 지우지 않는다. 행복과 용서가 진짜일 수 있음을 남기면서, 다른 피해자에게 같은 선택을 요구하거나 옛 멸시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텍스트는 페로의 1697년 〈Cendrillon, ou la petite pantoufle de verre〉를 따른다. 프랑스어 온라인 전사본을 확인한 중국어 원고에 근거하며, 앤드루 랭이 수록한 영어 번역의 전사본도 참조한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매가 먼저 안목을 묻고 머리를 맡기는 일, 대모의 품행 질문, 두 번의 무도회, 문지기의 대답, 왕명을 받아 구두를 신겨 보는 사람과 두 짝의 구두에 의한 확인, 자매를 용서하는 결말과 작품 끝의 두 가지 교훈을 남긴다. 그림 형제 판본을 섞지 않는다. 원작에서 기회가 품행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이 나누어 보는 것은 이미 있던 자질과 그것을 보이게 하는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