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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동화 읽기 · 06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약속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왜 딸의 손이 잘렸을까

《손 없는 소녀》―아버지의 오해와 두려움은 어떻게 딸이 치르는 대가가 되었을까.

Han Qin ·

방앗간 주인이 숲에서 낯선 이를 만났을 때, 집에는 방앗간 하나와 그 뒤의 사과나무 한 그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낯선 이는 방앗간 뒤에 있는 것을 넘겨주면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사과나무를 떠올리며 승낙하고 약속에 서명한다.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말한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는데 찬장과 궤짝마다 보물이 가득 차 있다고. 남편은 기뻐하며 있었던 일을 설명하지만, 아내는 겁에 질린다. 방금 방앗간 뒤에서 마당을 쓸던 것은 나무가 아니라 두 사람의 딸이었다.

이 오해 때문에 이야기에는 생략해서는 안 될 차이가 생긴다. 처음부터 아이를 넘긴다는 사실을 안 것은 아니므로, 딸인 줄 알면서 돈과 맞바꾼 사람과 똑같이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내에게 듣고 난 뒤에는 알았다. 낯선 이는 삼 년 뒤에 찾아오기로 했다. 재물이 들어온 기쁨과 아직 닥치지 않은 요구가 한집에 함께 머문다. 그 삼 년 동안 아버지가 약속을 풀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이야기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 결과를 실제로 감당할 사람이 누구인지는 차츰 뚜렷해진다.

딸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 약속한 날이 오자 몸을 깨끗이 씻고 둘레에 분필로 원을 그린다. 찾아온 자는 역시 악마였다. 가까이 갈 수 없자 아버지에게 딸에게 더는 물을 주지 말라고 명령한다. 겁에 질린 아버지가 따르지만, 딸은 눈물로 손을 씻는다. 두 번째에도 실패한 악마는 이제 손을 잘라 버리라고 한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럴 수 있느냐며 경악한다. 그러자 악마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버지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말을 바꾼다.

아버지는 그제야 딸에게 와서, 두려운 나머지 이미 약속했다고 말한다. 자신을 도와 달라고, 자신이 곧 딸에게 가할 상처도 용서해 달라고 청한다. 소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자식이니 뜻대로 하시라며 두 손을 내민다. 불편한 것은 이야기에 분명히 이 '승낙'이 쓰여 있고, 바로 그 승낙이 해를 가하는 과정 안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악마가 직접 자르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딸의 이해를 구하고, 딸이 부녀 관계를 이유로 받아들인 뒤에야 칼은 딸의 몸으로 내려온다.

아버지의 두려움은 진짜다. 우스운 협박을 들은 것이 아니라, 재물을 실제로 가져왔고 이제 목숨을 요구하는 악마를 마주하고 있다. 딸이 아버지를 돕고 싶은 마음도 진짜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쓸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가지가 모두 진실이라고 해서 대가가 똑같이 나뉜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끌려갈까 봐 딸을 해치는 데 동의하고, 딸은 아버지가 끌려가지 않기를 바라서 받아들인다. 실제로 잘려 나가는 것은 딸의 손뿐이다.

그러므로 두 손을 내민 행동 하나만으로, 아무 압박 없이 상처를 받아들이는 데 동의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거절한다는 것은 자기 몸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아버지가 악마에게 끌려가는 광경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도와 달라고까지 한다. 딸은 다치기도 전에 먼저 구조자의 자리에 놓인다. 의지가 전혀 없는 사람이어야만 부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버지 대신 대가를 치르는 데 동원되고 있다.

결국 악마는 딸을 얻지 못한다. 계속 흘린 눈물이 잘린 손목을 씻어 주자 다가갈 힘을 잃고 물러난다. 이 동화에서는 기도와 신앙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한다. 독자가 마음대로 떼어 낼 장식이 아니다. 다만 저항의 성공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손은 이미 아버지에게 잘린 뒤다. 악마가 딸을 데려가지 못했다고 해서, 이 집이 거래 전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재산이 딸 덕분에 생겼으니, 앞으로 평생 넉넉히 살게 해 주겠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돌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를 가했고 거래의 이득도 얻은 사람이 내놓는 제안이기도 하다. 소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더는 여기 머물 수 없으며 밖으로 나가겠다고, 선한 사람들이 살아갈 만큼은 나누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답한다. 여기서 아버지의 일생 전체에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의 나날을 이 재산 속에서 계속 보낼 필요는 없다고 분명히 결정한다.

떠나기 위해 아버지가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증명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는 겁을 먹었을 수도, 후회할 수도, 진심으로 먹여 살리고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딸은 더는 함께 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보상을 받으려면 다친 사람이 그 자리에 남아 계속 상대가 정해 주는 생활을 따라야 한다면, 그 보상은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의 필요에 맞춰졌다고 보기 어렵다. 소녀가 요구한 것은 더 높은 값이 아니다. 아버지가 마련해 준 풍족함에서 자기 미래를 떼어 낸 것이다.

하루를 꼬박 걸은 뒤, 밤이 되자 몹시 배가 고파 왕의 과수원에 이른다. 바깥에 수로가 있어 들어갈 수 없지만, 기도하자 천사가 수문을 닫아 물을 빠지게 한다. 소녀는 안으로 들어가 입으로 배 하나를 먹는다. 정원사는 두 손이 없고 곁에 흰옷 입은 천사가 선 모습을 보고 유령인 줄 알아 말을 걸지 못한다. 다음 날 왕은 과일 하나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이야기를 듣고 정원사, 사제와 함께 밤을 지켜보기로 한다.

사제가 영인지 사람인지 묻자, 소녀는 하느님 말고는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가련한 사람일 뿐이라고 답한다. 왕은 온 세상이 버리더라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하고, 궁전으로 데려가 은으로 된 손 한 쌍을 만들어 준 뒤 아내로 맞는다. 타고난 두 손이 다시 돋아나야만 사랑과 새로운 생활을 얻는 이야기가 아니다. 은손은 그 생활에서 받은 도움이지, 관계에 들어갈 자격을 얻으려면 먼저 몸을 고쳐야 한다는 증명서가 아니다.

뒤에 왕이 전쟁터로 떠나고 아들이 태어나자, 왕의 어머니가 기쁜 소식을 편지로 보낸다. 전령이 길에서 잠든 사이 악마가 편지를 바꿔, 아이를 끔찍하고 기이한 존재로 써 놓는다. 거짓 소식을 받은 왕은 슬퍼하면서도,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아내를 잘 보살피라는 답장을 쓴다. 악마는 그 답장마저 바꿔 모자를 죽이라는 명령으로 만든다. 앞에서는 아버지의 두려움을 통해 소녀를 해쳤다면, 이제는 남편이 보낸 것처럼 보이는 종이 한 장으로 새 가족이 그녀를 내치게 하려 한다.

왕의 어머니는 믿으려 하지 않고 다시 편지를 보내 확인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도 바뀐 답장이다. 끝내는 명령을 이행했다는 증거로 왕비의 눈과 혀를 보관하라는 요구까지 받는다. 거듭 확인했으니 반드시 따라도 되는 명령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무고한 두 목숨을 살리기로 하고 사슴의 눈과 혀로 대신한다. 아이를 젊은 왕비의 등에 묶어 모자를 내보내면서,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도 한다. 목숨을 구한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두 번째로 집을 잃는 일도 일어났다.

왕의 어머니는 앞의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서 같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두려움 때문에 직접 딸을 해쳤다. 왕의 어머니는 아들이 살인을 거듭 명령한다고 믿으면서도 실행을 거부했다. 자신이 파악한 상황에서는 모자를 공개적으로 남겨 둘 힘이 없었기에, 감추고 떠나보내 목숨을 지켰다. 이 보호에는 실제 한계가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젊은 왕비는 남편이 그런 명령을 한 적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이를 업고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품은 채 숲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악마가 바꾼 것은 단순한 정보만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미 내려졌다고 믿는 결정을 만들어 놓았다. 왕은 돌보라고 했다고 생각하고, 왕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이라고 했다고 생각하며, 왕비는 남편이 더는 자신을 머물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각자 행동의 바탕으로 삼는 관계가 바뀌었다. 진실을 확인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은 하필 당장 떠나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목소리는 있어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멀리 있는 남편의 대답을 다시 이어 볼 길은 없다.

천사가 다시 나타나 숲속 집으로 이끈다. 문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고 쓰여 있다. 흰옷의 보호자는 왕비를 알아보고 아이를 눕혀 모자를 돌본다. 오랜 세월 그곳에서 살고, 신의 은총과 신앙으로 두 손이 다시 자란다. 다시 일을 하거나 값을 치르거나 결혼을 맞바꿔 얻은 집이 아니다. 먼저 주어진 것은 살아가고 아이를 기를 시간이었다. 앞에서 두 차례 갑자기 넘겨지거나 쫓겨난 것과 달리, 재촉받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 자체가 이미 다르다.

궁전으로 돌아온 왕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편지가 바뀐 것을 안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아내와 아이 때문에 통곡하다, 둘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랜 여정에 나선다. 이 오랜 수색을 버티는 데도, 이야기에서는 신의 은총이 작용한다. 보통 여행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거짓 편지 한 장이 만든 현실을 더는 바꿀 수 없는 결말로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안전한 자기 자리를 떠나, 이제 혼자 힘으로는 궁전에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직접 찾아간다.

마침내 숲속 집에 도착한 왕은 지쳐 얼굴에 천을 덮고 잠든다. 왕비가 아들과 들어와, 아버지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천을 다시 덮어 드리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 사람을 모른다. 기도 속 하늘의 아버지만 알 뿐, 거친 차림으로 오래 떨어져 살았던 눈앞의 아버지는 알지 못한다. 어른들은 오해를 풀면 다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아이의 삶에는 설명만으로 그 세월이 곧바로 채워지지 않는다. 부자 관계는 실제로 있지만, 서로 알아 가는 일은 아직 시작해야 한다.

왕은 목소리를 듣고 일어나 묻는다. 아내가 누구인지 설명하지만, 두 손을 본 그는 오히려 망설인다. 자기 아내에게는 은손이 있었다는 것이다. 천사가 보관해 두었던 은손을 가져오고 나서야 확신한다. 알아보는 데 걸림돌이 된 것은 상처가 아니라, 헤어질 때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끝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까닭은 기억 속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해서가 아니다. 새 몸과 옛 물건이 함께, 그녀가 과거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 덕분에 회복은 모든 흔적을 지우는 일이 되지 않는다. 이제 일상에서 필요한 물건은 아니어도, 은손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을 확인하는 데 쓰인다. 손이 다시 자랐다고 아버지의 칼, 과수원에서의 굶주림, 왕이 처음 베푼 보호와 이별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옛 물건은 일상적인 쓰임을 마쳐도 삶에서 지워질 필요는 없다. 과거를 인정받기 위해, 평생 다친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궁전으로 돌아가 다시 혼례를 올리고, 이야기는 그 뒤의 행복한 삶을 약속한다. 이 결말은 받아들여도 된다. 상처가 심각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재회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마지막 기쁨에 이르기까지, 소녀는 자신이 머물지 떠날지를 다른 사람이 결정한 집을 두 번 떠났고, 낯선 오두막에서 어머니가 되어 손이 다시 자라는 세월을 보냈다. 돌아온 사람은 왕이 고쳐 주기만을 기다리던 옛사람이 아니다. 그 삶들을 살아 낸 채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오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처음 넘겨준 줄 알았던 것은 사과나무뿐이었다. 나중에 악마는 사라지고 재물은 남았지만, 딸은 이미 달라진 몸을 혼자 마주해야 했다. 이야기는 끝에 아버지가 궁전에 와서 설명하게 하지도, 행복한 결혼이 아버지 대신 설명을 마치게 하지도 않는다. 보관된 옛 은손은 적어도 이것을 기억하게 한다. 회복도 새로운 사랑도 진짜일 수 있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의 오해와 두려움을, 다른 사람이 애초부터 치러야 했던 대가로 바꿀 필요는 없다.

출처

현재 공개된 중국어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명시한 판본에 근거한 해석이며 원작 전체의 번역은 아니다. 사랑과 두려움이 진짜라는 사실을 상처에 대한 압박 없는 동의와 혼동하지 않고, 떠남을 아버지의 전 생애에 대한 단죄로 만들지도 않는다. 왕의 어머니가 목숨을 구한 일의 한계와 두 번째 상실, 왕의 진짜 답장과 위조된 명령, 종교적 회복과 남아 있는 과거를 구별한다. 신체의 회복 여부를 관계에 들어갈 자격으로 삼지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텍스트는 그림 형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1857년 제7판의 제31화 〈손 없는 소녀〉를 따른다. 독일어 정본과 마거릿 헌트의 영어 번역 제31화를 참조한다. 신앙, 천사, 은손, 여러 차례 바뀌는 편지와 재회가 모두 있는 완전한 판본을 사용하며, 되풀이되는 '칠 년'을 기계적으로 더해 정확한 연표를 만들지 않는다. 몸의 차이를 인격의 결함과 같다고 보지 않으며, 타고난 두 손이 다시 자라는 일을 사랑받을 자격의 전제로 삼지도 않는다. 왕의 어머니가 목숨을 구한 일, 왕의 어머니가 떠나게 한 일, 왕이 실제로 쓴 답장을 각각 구별하며, 더 짧은 1812년 텍스트를 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