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N|中文|繁體|日本語|Français|Deutsch|Español|한국어
← 착구 주기율·중국 제왕 시리즈
중국사·25편 · 25 / 25

제25편: 맺음말 — 잔여항은 사라지지 않는다

황제의 시대는 1912년에 끝났다. 하지만 이 연작은 제정의 역사가 아니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역사다. 제정이 끝났다고 해서 그 주기 법칙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제정은 구축이 취한 여러 형태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 형태는 사라졌어도 깎아내기와 구축을 움직이는 근본 역학은 그대로 남았다.

황제의 시대는 1912년에 끝났다. 하지만 이 연작은 제정의 역사가 아니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역사다. 제정이 끝났다고 해서 그 주기 법칙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제정은 구축이 취한 여러 형태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 형태는 사라졌어도 깎아내기와 구축을 움직이는 근본 역학은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이 연작은 푸이가 퇴위한 날에 끝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순간,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발발하기 직전인 1930년대 중반에서 멈춘다. 그때는 세 가지 구축 구상이 같은 시공간에 나란히 존재했다. 세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답을 대표했고, 일본의 군사적 압박은 모두에게 손에 든 패를 내보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에 멈추려 한다. 전면전에 들어서면 도덕적 판단이 구조 분석을 압도하고, 더는 차분히 들여다볼 수 없는 패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쟁 직전은 이 세 구축 유형을 구조적 대안으로 놓고 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 문을 지나면 역사의 법정이 이미 심리를 시작하고, 구조 분석은 도덕적 판결에 자리를 내준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판결이 아니다. 이해다. 2천 년에 걸친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이 여기까지 왔을 때, 잔여항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왜 사라지지 않는가.

1. 중화민국 초기, 운영체제 없이 보낸 16년

1912년부터 1928년까지, 푸이의 퇴위에서 북벌의 완성에 이르는 시기는 중국 정치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도 가장 자유로웠던 16년이었다.

혼란스러웠던 것은 운영체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3.5 버전은 삭제했지만 새 운영체제는 제대로 설치하지 못했다. 위안스카이는 강력한 지도자 중심의 대통령제를 설치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가 죽자 북양계는 여러 파벌로 갈라졌다. 제정을 다시 설치하려던 시도는 더 크게 실패했다. 83일 만에 끝났다. 국회가 설치하려던 의회민주주의 역시 실패했다. 국회는 해산됐다가 다시 열리고 또 해산되기를 거듭한 끝에 정치적 흥정의 도구로 전락했다.

군벌의 할거가 사실상의 일상이 되었다. 북양의 각 파벌, 곧 안후이파·직례파·봉천파가 돌아가며 베이징 정부를 장악했다. 남부의 각 성은 저마다 그 지역의 실력자가 지배했다. 전국을 아우르는 통일된 행정 체계도, 법도, 군사력도 없었다. 심지어 화폐조차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구축의 관점에서 보면 중화민국 초기의 군벌 정치는 오대십국의 축소판이었다. 군사적 강자 중심의 구축이 빠르게 다음 판으로 교체되는 과정이었다. 차이는 있었다. 오대의 군사적 강자들은 적어도 자신을 천자라고 내세웠고, 3.5 버전의 정당성 서사를 물려받았다. 공화국 초기의 군벌에게는 그런 서사조차 없었다. 그들은 천자도 아니고 선거로 뽑힌 대통령도 아니었다. 그저 어쩌다 총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정당성은 0이었다.

정당성이 0이면 안정성도 0이다. 어느 군벌의 지배든 오로지 폭력으로 버텼다. 폭력은 쌓아 둔 비축분과 같아서 다 쓰면 바닥난다. 정당성 서사가 없으니 이를 지속적으로 보충할 흐름도 없다. 그래서 군벌 정권의 수명은 오대의 왕조들보다도 짧았다. 오대가 평균 10년마다 바뀌었다면, 군벌은 평균 몇 년, 때로는 불과 몇 달 만에 바뀌었다.

그러나 혼란의 다른 얼굴은 자유였다. 통일된 권력 중심이 없다는 것은 사상을 일괄적으로 통제할 중심도 없다는 뜻이었다. 공화국 초기는 중국 근대사에서 사상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 시기 중 하나였다. 신문화운동과 5·4운동이 일어났고, 자유주의·아나키즘·마르크스주의·삼민주의·국가주의를 비롯한 온갖 사조가 들어와 논쟁을 벌였다.

그 구조는 춘추전국시대의 백가쟁명과 같다. 낡은 구축의 붕괴 → 권력 공백 → 여러 구축 구상의 경쟁 → 사상의 폭발. 춘추전국의 백가쟁명은 1.0 버전이 무너진 뒤에 일어났다. 공화국 초기의 사상적 폭발은 3.5 버전이 무너진 뒤에 일어났다. 두 차례의 폭발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동일했다. 어느 구상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했기에 모든 구상에 토론의 자리가 있었다.

사상의 자유가 열리는 시간은 권력의 공백이 지속되는 시간과 겹친다. 권력이 하나로 모이면 사상은 그 안으로 편입된다. 2천 년 동안 거듭된 법칙이다. 진은 통일 뒤에 분서갱유를 일으켰다. 한 무제는 이념을 통일한 뒤 유학만을 유일한 정통으로 높였다. 정치적 통일에는 어김없이 사상의 포섭이 뒤따랐다.

공화국 초기의 사상적 자유는 어떤 개명한 지도자가 베푼 선물이 아니었다. 권력 구도가 낳은 구조적 산물이었다. 누군가 권력을 통일하는 순간 그 자유는 끝날 터였다.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누가, 어떤 구축 유형으로 통일할 것인가.

2. 세 가지 설치 패키지

1920년대 중반에 이르자 공화국 초기의 사상 경쟁에서 세 가지 구축 구상이 차츰 두각을 나타냈다. 지식의 원천도, 사회적 기반도 달랐고, 잔여항을 처리하는 방식도 저마다 달랐다.

첫째, 당국가형 구축.

쑨원은 말년인 1920년대 초 소련의 도움을 받아 국민당을 개편했다. 레닌주의 정당을 본떠 조직을 다시 세우고, 황푸군관학교를 통해 당의 군대를 만들었으며, ‘군정 → 훈정 → 헌정’이라는 3단계론을 내놓았다.

3단계론의 논리는 이랬다. 중국의 백성은 아직 민주주의를 할 줄 모른다. 수천 년의 제정은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익힐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니 곧장 민주주의를 시행할 수는 없다. 먼저 군대가 천하를 장악하는 군정이 필요하다. 그다음 당이 백성에게 시민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훈정을 거친다. 백성이 다 배우고 나면 비로소 통치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헌정으로 넘어간다.

구축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구상의 밑바닥에는 아주 익숙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남보다 먼저 깨달은 집단, 곧 당이 존재하며, 이 집단은 무엇이 좋은지를 보통 사람들보다 잘 안다는 가정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이 ‘배울 때까지’ 그들을 대신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 배웠는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는가? 당이 판단한다. 언제 훈정에서 헌정으로 넘어가는가? 당이 결정한다.

이 구조와 제정 3.5 버전의 밑바닥 논리는 설계자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 제정은 말한다. 황제는 천명을 받았으므로 누구보다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다. 당국가는 말한다. 당은 선진 이론을 갖고 있으므로 누구보다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다. 천명은 이론으로, 황제는 당으로 바뀌었지만, ‘어떤 집단은 무엇이 옳은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안다’는 핵심 가정은 바뀌지 않았다.

1925년 쑨원이 세상을 떠나자 국민당 안에서는 그의 유산을 둘러싸고 분열이 일어났다. 쟁점의 중심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훈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훈정을 이끌 것인가.

둘째, 소비에트형 구축.

1921년 중국공산당이 창당되었다. 그들이 내놓은 구축 구상은 10월혁명 뒤 소련의 모델에서 곧바로 가져온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계획경제, 민주집중제에 기초한 레닌주의 정당 조직이었다.

이 구상은 당국가형 구축과 한 가지를 공유했다. 사회를 이끌 전위대, 곧 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차이는 그 전위대가 누구를 대표하느냐에 있었다. 당국가형 구축의 전위대는 ‘민족 전체’를 대표했다. 계급을 넘어선 민족 전체의 이익이었다. 소비에트형 구축의 전위대가 대표하는 것은 특정한 계급인 ‘프롤레타리아’였다.

이 차이는 단순히 말의 차이가 아니었다. 여기서 전혀 다른 사회 동원 방식이 나왔다.

당국가형 구축은 민족 정체성을 동원의 토대로 삼았다. 노동자든 지주든 상인이든 당신은 우선 중국인이고, 당은 모든 중국인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상층과 중산층에게 매력적이었다. 당신의 재산과 지위가 위협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층민에게는 매력이 제한적이었다. 나를 대표한다면서 정작 내 손에 쥐여 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소비에트형 구축은 계급 정체성을 동원의 토대로 삼았다. 당신은 가난한 사람이다. 가난한 이유는 부자가 당신을 착취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자를 타도하고 그들의 것을 당신에게 나눠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하층민을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땅이라는 구체적인 것을 내 손에 쥐여 주기 때문이다. 상층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내 재산을 몰수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잔여항 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두 구상은 하층의 잔여항인 농민의 빈곤과 분노를 전혀 다르게 다루었다. 당국가형 구축은 상층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하층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점진적 개량, 경제 발전, 교육 수준 향상이 그 수단이었다. 소비에트형 구축은 상층의 자원을 직접 재분배해 하층의 불만을 없애려 했다. 토지혁명을 일으켜 지주의 땅을 몰수하고 농민에게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전자의 장점은 새로운 대규모 충돌을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단점은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 밑바닥의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후자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고 동원력이 매우 강했다. 농민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면 농민은 즉시 따라나섰다. 대신 새로운 대규모 충돌이 생겼다. 재산을 몰수당한 지주와 중산층은 당신의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셋째, 개량형 구축.

당국가형 구축과 소비에트형 구축 사이에도, 두 유형이 이루는 스펙트럼 바깥에도 또 하나의 노선이 있었다. 대략 ‘개량형 구축’이라 부를 수 있는 길이었다. 중국은 점진적이고 평화로우며 제도적인 개량을 통해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비에트형 구축과 달리 폭력혁명이 필요하지 않았고, 당국가형 구축과 달리 일당의 훈정도 필요하지 않았다. 의회정치와 법치의 확립, 교육의 보급, 사회 개량을 통해 한 걸음씩 근대화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이 노선의 사상적 자원은 주로 영미 자유주의 전통에서 왔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들은 국민당 내부의 문인 계열, 독립 지식인, 일부 지방 실력자들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개량형 구축의 장점은 ‘인간은 목적이다’라는 원칙을 가장 존중한다는 데 있었다. 어떤 거대한 목표를 위해 자기 권리를 희생하라고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는 자신의 자유와 재산과 존엄을 지킨다. 사회의 진보는 어느 전위대의 지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환경에서 각 개인이 자발적으로 이루는 창조와 협력에 기댄다.

개량형 구축의 잔여항은 그것이 요구하는 환경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점이었다. 점진적 개량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수십 년, 어쩌면 1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임박한 군사적 위협이 없는, 기본적으로 안정된 외부 환경도 있어야 했다. 법이 지켜지고 계약이 이행되는, 최소한은 작동하는 내부 질서도 필요했다. 민주정치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시민층도 있어야 했다.

1930년대 중국은 이 조건을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밖에서는 일본이 한 걸음씩 압박해 왔다. 안에는 남은 군벌과 도적, 극빈에 시달리는 농민들이 있었다. 교육 보급률은 극히 낮았다. 이런 조건에서 점진적 개량을 하겠다는 것은 폭풍우 속에서 블록을 쌓겠다는 것과 같았다. 이론상으로는 당신의 설계가 가장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환경은 한 조각씩 천천히 쌓아 올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개량형 구축의 비극은 그 가치만큼이나 깊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을 ‘옳음’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옳음’에 가장 가까운 구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시에 당시 환경에는 가장 맞지 않는 답이기도 했다. 옳은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틈은 정치철학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틈이다.

3. 세 구축 유형의 긴장, 1930년대의 한 단면

1930년대 중반, 세 가지 구축 유형은 저마다 다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국가형 구축을 담은 그릇은 난징 국민정부였다. 1928년 북벌이 완성된 뒤 국민당은 형식상 전국을 통일했다. 하지만 이 통일은 후한 말의 ‘명목상 통일’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중앙이 통제하는 핵심 지역은 넓지 않았다. 주로 양쯔강 하류와 연해 지역이었고, 다른 많은 지역은 여전히 지방 실력자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국민정부가 추진한 법폐 도입을 통한 화폐 개혁, 도로 건설, 군대의 재편은 핵심 지역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그 영향이 뻗어 나가는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소비에트형 구축의 조직적 주체는 중국공산당이었다. 1927년의 청당, 곧 공산당 세력 숙청과 그 뒤의 무장투쟁을 거치며 공산당은 농촌에 장시 소비에트와 후베이·허난·안후이 소비에트 같은 여러 근거지를 세우고 토지혁명을 실행했다. 장정을 거친 뒤인 1935~1936년에는 서북 지역으로 이동했다. 근거지의 규모는 작았지만 조직은 극도로 촘촘했다. 공산당은 사회 저변의 사람들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전례 없는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도 조직을 유지하고 작동시키며 확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개량형 구축에는 하나로 통합된 주체가 없었다. 국민당 안의 온건파, 독립 지식인, 일부 실업가와 지방 실력자들 등 여러 세력에 흩어져 있었다. 사상적 영향력은 있었지만 군사력은 없었다. 도덕적 정당성은 있었지만 조직적 기반은 없었다.

세 구축 유형 사이의 긴장은 항일전쟁 전야에 정점에 이르렀다. 일본의 군사적 압박이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이 외부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당국가형 구축의 대답은 ‘먼저 안을 안정시키고, 그다음 밖의 적을 물리친다’는 것이었다. 내부 경쟁자인 공산당을 먼저 없애 국내 역량을 통일한 뒤 일본에 맞서자는 전략이었다. 군사적으로 아주 근거 없는 논리는 아니었다. 내부가 갈라진 상태에서 외부와 전쟁을 치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시간을 대가로 요구했다. 일본은 중국 내부가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소비에트형 구축의 대답은 ‘내전을 멈추고 일치단결하여 항일하자’는 것이었다. 도덕적으로 대단히 강력한 구호였다. 일본군이 문 앞까지 쳐들어왔는데 아직도 같은 나라 사람끼리 싸울 것인가? 그러나 그 속뜻도 분명했다. 내전을 멈춘다는 것은 ‘공산당 토벌’을 멈춘다는 뜻이었고, 공산당에게 숨을 돌리며 성장할 공간을 내준다는 뜻이었다.

개량형 구축의 대답은 ‘평화적으로 교섭해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다. 외교로 일본의 침략을 늦추는 동시에 국내의 근대화에 속도를 내자는 전략이었다.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필요했다. 일본의 팽창을 외교적 수단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 했다.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곧 드러났다.

일본의 군사적 압박은 프리즘처럼 세 구축 유형에 내재한 특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당국가형 구축의 핵심 관심사는 권력이었다. 누가 중국을 장악하느냐는 문제였다. 내부의 경쟁자를 외부 침략자보다 더 시급한 위협으로 보았다. 여기서 밑바닥 논리가 드러났다. 국가의 이익은 당의 이익에 종속된다. 또는 당은 자기 이익이 곧 국가의 이익이라고 여긴다.

소비에트형 구축의 핵심 관심사는 생존이었다. 포위 토벌을 당하는 처지에서 살아남는 일이었다. ‘일치단결하여 항일하자’는 구호는 민족의 대의와 자기 생존에 동시에 기여했다. 여기서 밑바닥 논리가 드러났다. 민족주의 담론을 포함해 모든 담론은 핵심 목표에 봉사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개량형 구축의 핵심 관심사는 질서였다. 기존 사회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위기에 대응하려 했다. 여기서 밑바닥 논리가 드러났다. 변혁보다 질서가 중요하다. 다만 변혁을 피할 수 없는 때에도 질서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된다.

세 가지 구축 유형, 세 가지 핵심 관심사, 세 가지 잔여항. 완벽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것도 하나도 없었다.

4. 여기서 멈추다

이 연작은 여기서 멈춘다.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은 아니다. 이야기는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다만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전면전과 그 이후의 역사로 들어서고, 구조 분석이 설 자리는 도덕적 판결에 밀려 거의 0이 되기 때문이다.

항일전쟁이 전면적으로 발발하기 직전의 이 순간에 멈추는 이유는, 바로 이때가 더없이 좋은 관찰 지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면 위에 2천 년에 걸친 깎아내기와 구축의 순환이 품었던 모든 주제가 동시에 놓여 있다.

3.5 버전의 밑바닥 논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제정이라는 형태는 끝났지만 권력을 집중시키는 논리는 끝나지 않았다. 세 구축 구상 가운데 둘, 당국가형 구축과 소비에트형 구축은 모두 하나의 핵심 가정을 품고 있었다. 남보다 먼저 깨달은 집단이 존재하며, 그 집단에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가정은 제정의 ‘천자가 하늘을 대신해 백성을 다스린다’는 관념과 구조적으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명칭은 천자에서 당으로 바뀌었다. 논증 방식도 천명론에서 역사유물론이나 삼민주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을 쥘 자격이 더 있다는 밑바닥 논리는 바뀌지 않았다.

3.5 버전의 형태는 삭제되었다. 그러나 그 논리는 잔여항이 되어 새 옷을 입은 채 계속 작동했다.

잔여항 보존은 여전히 작동한다.

세 구축 유형은 저마다 어떤 잔여항을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잔여항을 만들어 냈다. 당국가형 구축은 북벌을 통한 통일로 군벌 할거의 잔여항을 없앴지만, 일당독재라는 잔여항을 낳았다. 소비에트형 구축은 토지혁명으로 토지 겸병의 잔여항을 없앴지만, 계급투쟁의 확대라는 잔여항을 낳았다. 개량형 구축은 큰 잔여항을 만들지 않았으나, 이미 존재하던 잔여항을 없앨 힘이 없었다. 잔여항을 없애려면 힘이 필요했고, 개량형 구축에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힘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잔여항을 없앨 수 있는 구축 유형은 없다. 낡은 잔여항을 없애는 모든 방식은 새로운 잔여항을 만들어 낸다. 총량은 보존되고 형태는 바뀐다. 이 법칙은 요·순·우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작동해 왔다.

‘인간은 목적이다’라는 상전이는 여전히 가속하고 있다.

2천 년 전 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다’고 말했다. 1천 년 전 그 말은 유생들이 황제를 비판할 때 쓰는 수사적 도구였다. 100년 전에는 제정을 무너뜨리는 사상적 무기가 되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인간은 목적이다’라는 명제는 더 이상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상전이였다. 미국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적혀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평등·박애’를 외쳤다. 소련은 전 인류를 해방하겠다고 주장했다. 훗날에는 일본의 군국주의조차 ‘대동아공영’이라는 말로 자신을 포장해야 했다. 이제는 ‘너를 정복하겠다’고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다. ‘너를 해방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인간을 수단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는 거듭 실패했다. 진은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15년을 버텼다. 몽골의 원 제국은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97년을 버텼다. 위안스카이는 제정을 부활시켜 사람들을 다시 신민으로 돌려놓으려 했지만 83일을 버텼을 뿐이다. 상전이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을 다시 억눌러 놓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근대에 이르러 군주제 복고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는 뚜렷하게 좁아져 있었다.

이것이 연작 전체를 보이지 않게 떠받쳐 온 등뼈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깎아내기는 멈추지 않고, 구축은 닫히지 않는다. 근본 원인은 깎아내는 기술이 아직 부족해서도, 구축의 설계에 결함이 있어서도 아니다. 근본 원인은 인간이 목적이라는 데 있다.

인간이 목적이라는 말은 어떤 구축도 사람을 영원히 한자리에 고정해 둘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발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도 변하고, 인식도 발전하며, 자기 존엄에 대한 요구도 커진다.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한 구축이라도 지금 이 순간의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다. 사람은 변하는데 구축은 그대로라면 균열이 생긴다. 그 균열이 잔여항이다.

잔여항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발전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구축은 닫히지 않는다. 잔여항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깎아내기는 멈추지 않는다. 구축이 닫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끝없는 순환이다. 하지만 비관적인 순환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을 둘러싼 순환이다. 깎아내기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구축이 실패할 때마다 ‘어떤 제도도 영원히 인간을 수단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증명한다.

2천 년에 걸친 제왕들의 역사는 여기까지다. 깎아내기와 구축의 주기 법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계속 발전하는 한, 그것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쉬움이 아니다. 희망이다.

끝낼 수 있는 순환이란 인간이 발전을 멈췄다는 뜻이다. 더 나은 삶, 더 큰 자유, 더 깊은 존엄을 추구하기를 그만두었다는 뜻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다.

깎아내기는 멈추지 않는다. 구축은 닫히지 않는다. 잔여항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연작 완결)

한국어 독자의 맥락과 호흡에 맞춰 독립적으로 다시 쓴 판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