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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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경제
제22편 · 총 23편

스물두째 글. 나카모토 사토시와 암호화폐: 신뢰가 필요 없는 장부에도 쓸 사람은 필요하다

비트코인은 믿을 만한 중앙기관 없이 거래 순서를 합의하는 장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법정화폐 교환, 보관, 소프트웨어와 규칙 변경에서는 신뢰가 다시 사람과 기관의 세계로 돌아왔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사이퍼펑크는 코드를 쓴다

1990년대 초, 훗날 사이퍼펑크 선언으로 불리게 된 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이퍼펑크는 코드를 쓴다.

기술에 대한 낙관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나 기업, 그 밖의 어떤 공적 권위에도 사생활을 돌려달라고 청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제도를 소프트웨어 안에 직접 써넣으라는 말이었다.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나온 또 다른 글, 암호 무정부주의 선언에는 방향이 전혀 다른 예언이 적혀 있었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상호작용에서는 평판이 중심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두 문장은 같은 전통에서 나왔다. 앞의 것은 강령이었고, 뒤의 것은 예언이었다.

뒤의 문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눈여겨보아야 한다. 바깥의 비판자가 한 말도, 나중에 실패한 사람이 한 말도, 감독기관이 한 말도 아니었다. 이 전통의 안쪽에서, 그것도 가장 급진적인 글에서 나온 말이었다. 익명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사람이 익명성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까지 적어두었다.

이제부터 살펴볼 역사 전체는 앞의 문장이 극한까지 실현되는 동시에, 뒤의 문장도 극한까지 들어맞는 과정이다.

앞선 스물한 편에서 구축은 줄곧 같은 일을 했다. 같은 자 하나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눌러 넣어 셈을 맞추었다. 그때마다 들어가지 못한 부분이 넘쳐났고, 구축은 다시 그것을 처리할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나온 방법이 열 가지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 하려는 일은 잔여항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잔여항이 생겨나는 근원을 없애는 것이다.

그 근원에는 이름이 있다. 신뢰다.

진단 자체는 정확했다. 앞선 스물한 편에서 넘쳐난 것들을 끝까지 좇으면 거의 모두 같은 곳에 닿았다. 언제나 누군가를 믿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은 사람은 실수하고, 편을 들고, 돈을 받고 일을 봐주고, 가장 절박한 순간에 문을 닫았다. 신전은 규칙을 바꿀 수 있고, 관청은 자신이 발행한 종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신용평가사는 발행자의 돈을 받을 수 있고, 거래소는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 있다. 문제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면, 여기를 없애면 된다.

앞선 스물한 편의 장부에는 끝내 그것을 인정할 사람이 필요했다. 둘째 글의 점토판에 적힌 빚은 신전의 위계가 인정해주어야 했다. 여섯째 글의 교자는 관청이 인정해야 했다. 열일곱째 글의 달러는 사람들이 계속 그 장부를 인정할 뜻이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열여덟째 글에서 그 기계가 멈추었을 때에는 국가가 나서서 내가 인정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2008년에 나온 그 구상이 하려던 일은 바로 이 동작을 더는 필요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첫 문장부터 문제를 아주 분명하게 짚었다. 온라인 지급에도 여전히 금융기관을 거쳐야 한다면 가장 큰 이점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찾으려는 것은 신뢰가 필요 없는 전자 현금이었다.

2009년 2월, 글쓴이는 한 온라인 포럼에서 목표를 더 단호하게 밝혔다. 이 체계는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있고, 모든 것은 신뢰가 아니라 암호학적 증명 위에 서 있다는 말이었다.

이 시리즈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구축이 감행한 가장 대담한 시도였다.

잔여항에 궤도를 내줄 생각도, 선을 그어 문밖에 둘 생각도, 증빙을 내놓으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

잔여항이 생겨날 자리 자체를 없애려 했다.

아주 깔끔한 발상이었다. 앞의 열 가지 방법보다도 철저했다. 그 방법들은 모두 잔여항이 나타난 뒤에야 움직였다. 풀어주거나, 이름을 바꾸거나, 묻지 않거나, 환산해 없애거나, 경계를 안으로 거두거나, 궤도를 내주거나, 증빙을 요구하거나, 그 자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장부에 올리지 않거나, 넘쳐나는 근원 자체를 개조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생기지 않게 하려 했다.

2. 길들일 것인가 없앨 것인가

이 구상은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 연구자는 정확하게 요약했다. 거의 모든 기술적 부품의 전사를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학술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진짜 혁신은 어느 부품 하나가 아니라, 누구도 성공한 적 없는 방식으로 그 부품들을 맞추어놓은 데 있었다.

이 계보를 한번 따라가볼 만하다. 걸음마다 같은 문제 앞에서 조금 물러서거나 조금 나아갔기 때문이다.

첫걸음은 1983년에 있었다. 한 암호학자가 추적할 수 없는 지급을 위해 은닉서명이라는 기술을 제안했다. 그는 이미 그 글에서 자동화된 지급 체계와 개인의 사생활 사이의 충돌을 드러내놓았고, 암호학으로 지급의 익명성을 지키려 했다.

그 전자 현금의 어려움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돈을 내는 사람의 사생활은 지켜주었지만, 여전히 중앙화된 발행자나 은행 역할을 하는 서버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를 없앤 것이 아니었다. 그를 길들이려 했을 뿐이다.

길들이는 것과 없애는 것의 차이가 이 계보 전체를 관통한다. 걸음마다 없애는 쪽으로 조금씩 움직였지만, 그때마다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 하나씩 남았다. 이 흐름을 볼 때 누가 더 똑똑했는지는 볼 필요가 없다. 각자가 끝내 남겨놓은 것이 무엇인지만 보면 된다.

1990년대 초가 되자 그 사람들은 문제를 한 걸음 더 밀고 나갔다. 누군가는 추적할 수 없는 온라인 상호작용과 익명의 시장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극히 해로운 일부 시장까지 가능하게 하리라고 스스로 명시했다. 국가는 그래서 이 기술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할 것이며, 그런 우려 가운데 많은 것은 실제로 들어맞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점은 기억해두어야 한다. 나중의 비판자들이 억지로 끌어다 붙인 어두운 면이 아니었다. 처음의 문헌에 적혀 있었고, 당사자가 스스로 계산한 대가였다.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이 일을 뒤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술의 해악을 반대자들만 알아보았다면 설계자가 놓쳤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설계자가 먼저 해악을 적었고, 적고 나서도 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놓친 것이 아니다. 대가를 알면서 내린 선택이었다.

1997년부터 2002년 사이, 다른 한 연구자가 작업증명을 정치적 전망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도구로 밀고 나갔다.

본래 스팸 메일과 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먼저 검증할 수는 있지만 계산 비용이 상당히 드는 작업을 마쳐야 서버가 통과시켜주었다.

그 연구자는 글에서 직접 비유를 들었다. 이런 비용 함수를 실물 화폐를 주조하는 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비유에는 훗날 그 체계의 가장 핵심적인 충동이 이미 드러나 있다. 사회적 판단이나 기관의 심사, 가격 체계가 맡아온 문턱의 일부를 공통된 연산 비용으로 다시 쓰려는 충동이다.

그다음에는 거의 곧바로 결실로 이어지는 몇 갈래가 나왔다. 누군가는 탈중앙화된 디지털 화폐의 윤곽을 제시했다. 사보가 구상한 비트 골드는 훗날의 틀을 거의 분해해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먼저 일련의 도전값을 만들고, 작업증명을 구하고, 안전한 타임스탬프를 붙이고, 분산된 소유권 등록부에 기록한다. 앞의 결과열에서 다음 도전값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사보 자신도 이 체계에 약한 고리가 남아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타임스탬프 서비스와 소유권 등록부에 필요한 신뢰는 분산할 수 있을 뿐,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작업증명 토큰을 거듭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원격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전용 서버에 기대고 있었고, 서버 쪽의 중심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 그 구상이 나오기 전부터 디지털 현금은 이미 뚜렷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중앙의 발행자를 남겨두거나. 연산 비용을 입장권으로만 삼거나. 작업증명을 화폐 쪽으로 밀고 가면서도 타임스탬프와 등록부, 서버 같은 약한 고리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거나.

어느 길에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남은 자리는 매번 전보다 작아지고, 더 단단해졌다.

작아진 것은 세대마다 실제로 그 범위를 줄여왔기 때문이다. 단단해진 것은 마지막에 남은 그 조금이 대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거래가 먼저고 저 거래가 나중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어야 했다. 등록부를 지킬 사람이 있어야 했다. 어딘가에는 응답하는 기계가 한 대 있어야 했다. 큰 덩어리를 잘라내기는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마지막에 남은 작은 조각이다.

3. 10분

그 구상의 출발점은 소박했다.

디지털 서명으로 누가 누구에게 코인을 넘겼는지는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른 문제를 풀 수 없다. 같은 코인을 두 번 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전의 전자화폐 설계에서는 중앙화된 발행자나 청산기관을 들여와 모든 거래를 검사하게 하는 방식이 흔했다.

이번에는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를 쓰지 않았다. 그 대신 피어 투 피어 네트워크, 타임스탬프, 작업증명으로 거래의 순서를 못 박았다.

네트워크 전체가 인정하는 공통의 역사에 먼저 기록된 쪽이 유효하다.

이 말은 오래된 문제의 자리를 바꾸어놓았다. 둘째 글의 점토판에는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빚졌는지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점토판이 효력을 갖느냐는 어느 신전의 창고에 놓여 있느냐에 달려 있었다. 여기서는 어디에 놓였는지 묻지 않는다. 얼마나 먼저 기록되었는지, 그 뒤에 얼마만큼의 작업이 쌓였는지만 묻는다. 순서가 권위를 대신한다.

작동 방식은 세 가지였다. 거래를 묶어 블록을 만든다. 연산에 참여한 사람들이 블록 헤더에 대해 난이도 목표를 충족하는 해시값을 찾게 한다. 노드들은 누적 작업량이 가장 큰 체인을 유효한 역사로 받아들인다.

이 가운데 셋째는 가장 쉽게 지나치지만, 바로 거기가 핵심이다. 앞의 둘은 기술이고, 셋째는 규칙이다. 의견이 갈릴 때 어느 쪽을 인정할 것인가. 모든 장부는 이 물음에 답해야 했다. 이전의 답은 언제나 어떤 사람이나 기관이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의 답은 이렇다. 뒤에 더 많은 힘이 쌓인 쪽을 인정한다.

정직한 노드들이 과반의 연산 능력을 갖고 있는 한, 옛 장부를 고치려면 그 뒤의 모든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비용은 급격하게 늘어난다.

그 구상에는 제도의 호흡을 정하는 두 매개변수도 명시되어 있었다. 새 블록은 평균 10분에 하나씩 생긴다. 블록이 나오는 속도를 안정시키도록 난이도는 2,016개 블록마다 조정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보아야 할 것은 탈중앙화라는 말이 아니다.

공통의 척도를 다루는 방식이다.

앞의 자들은 모두 다른 것을 쟀다. 곡식 한 석, 하루 노동, 땅 한 무, 금 한 온스, 클릭 한 번을 쟀다. 이 자가 재는 것은 이 장부를 적는 데 들인 힘 그 자체다. 세상의 어떤 사물을 재려는 것이 아니다. 장부를 적는 동작의 비용을 잰다.

남용을 막던 장치는 본래 입장권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작업증명은 체계에 들어올 자격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발행 장치 자체가 되었다.

새 블록의 보상은 연산 능력과 전력과 시간을 곧바로 새 코인으로 환산한다.

그렇게 작업량은 화폐사에서 보기 드문 것이 되었다. 공통의 방식으로, 공개적으로 계량하는 화폐 주조의 자가 되었다.

글쓴이는 나중에 포럼에서 희소성을 설명하며 최종적으로 최대 2,100만 개만 존재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오자 화폐 공급, 지급의 순서, 결제의 최종성, 위조를 막는 비용이 모두 하나의 계산 논리 안에 눌러 담겼다.

열넷째 글에서 말했다. 금본위제가 사람을 설득한 까닭은 더 편리하거나 더 정확해서가 아니었다. 누가 정한 것이 아니라 금의 무게이며, 금은 땅속에 있고 어느 정부의 말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 그 설득의 방식이었다.

이번의 말도 같은 모양이다. 한 가지만 바뀌었다.

누가 정한 것이 아니다. 계산해서 나온 것이다.

앞의 말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금의 무게는 누군가 달아야 하고, 다는 사람은 속일 수 있다. 해시값은 달 필요가 없다. 누구든 어느 기계에서든 다시 계산하면 똑같은 값이 나온다. 검증도 몇 초면 끝난다. 셋째 글에서 각인을 검사하던 사람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정말 필요 없어졌다.

계산해서 나왔다는 말은 금의 무게보다 더 멀리 간다. 금은 누군가 캐고, 순도를 검사하고, 금고에 넣고, 두 나라 사이에서 배로 실어 날라야 한다. 걸음마다 사람의 손을 거친다. 해시값은 그럴 필요가 없다. 어디에서든 어느 기계로든 따로 다시 계산할 수 있고, 나오는 값은 완전히 같다.

금속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대가 자체를 해시 연산, 전용 하드웨어, 전기요금, 난이도 조정으로 추상화했다.

4. 장부의 첫 줄

2009년 1월 3일, 첫 블록이 기록되었다.

그 블록에는 그날 나온 타임스의 기사 제목 하나가 들어 있었다. 재무장관이 은행에 대한 두 번째 구제금융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제목은 두 가지 일을 했다. 타임스탬프로서 그날 이전에 이 블록이 만들어졌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동시에 하나의 태도를 드러냈다. 출발점을 세계 금융위기와 은행 구제금융의 그 순간에 못 박았다.

이 블록의 보상 50개는 나중에 쓸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 가지를 함께 놓으면 이 시리즈 전체에서 오직 여기서만 볼 수 있는 것이 드러난다.

앞선 스물한 편에서 장부의 첫 줄은 언제나 거래나 채무의 기록이었다. 보리 한 석, 소 한 마리, 갚아야 할 돈, 계약 한 건, 사람의 이름 뒤에 붙은 수량이었다.

그런데 이 장부의 첫 줄은 거래가 아니다.

문장 하나다.

그리고 그 문장 옆에 있는 코인 50개는 영원히 쓸 수 없다.

이 50개가 놓인 처지를 조금 더 들여다볼 만하다. 장부에 있고, 누구든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나갈 수 없다. 어떤 거래에도 들어갈 수 없다. 오로지 유통을 위해 만들어진 장부에서 첫 기록은 영원히 유통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놓친 부분이 아니다. 이후의 분석은 대체로 그렇게 설계한 결과라고 보았다. 장부를 연 사람은 첫 기록을 움직일 수 없는 표식으로 남겨두었다.

한 장부가 첫머리에서 자신이 무엇에 맞서려고 만들어졌는지 선언한다. 그러고는 첫 기록을 영원히 그 자리에 두어 유통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구축이 여기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자신은 구축에 맞서는 구축이라고.

그 인정에는 이미 이후의 운명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저 도구라면 누구든 가져다 쓸 수 있고, 누구도 거기에 입장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첫머리부터 무엇에 반대하는지 선언하면 첫날부터 적과 신봉자가 생긴다. 끝까지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태도도 생긴다.

가치가 처음 어떻게 숫자를 얻었는지도 살펴볼 만하다.

2009년 10월, 초창기의 한 웹사이트가 달러 환율을 제시했다. 전력 비용 공식으로 계산한 값이었다. 미국 가정의 평균 전기요금, 기계 한 대의 연간 전력 소비량, 그 기계가 지난 30일 동안 만들어낸 코인 수를 가지고 판매 가격을 추산했다.

처음 공개된 환율은 대략 1달러에 1,309.03개였다. 2009년 12월 28일에는 그 페이지의 숫자가 1달러에 1,578.77개로 바뀌었다.

두 숫자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계산했느냐가 중요하다.

가치는 처음부터 상업적 평판에서 나온 것도, 세금에서 나온 것도, 국가의 명령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먼저 전력 1킬로와트시마다 확인할 수 있는 생산비에 묶였다.

열한째 글에서 가치를 노동에 매달았던 생각은 여기서 기술적 형태를 얻었다. 당시보다 훨씬 정밀한 형태이기도 했다.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은 통계에 기대어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는 양이다. 기계 한 대가 30일 동안 전기를 얼마나 썼는지는 전력량계에 적혀 있다.

그런데 이 닻은 나중에 완전히 풀려났다. 가격은 전력 비용을 떠났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자 하나의 첫 눈금을 어떻게 정했느냐는 그 자가 나중에 무엇을 재느냐와 무관할 때가 많다.

앞에서도 나타난 일이지만 이토록 선명하지는 않았다. 셋째 글의 동전은 처음에는 그 무게만큼의 실제 금속에 대응했다. 나중에는 발행자의 신용에 대응했다. 열일곱째 글의 공통분모는 처음에는 금의 무게에 대응했다. 나중에는 몇몇 나라가 계속 장부를 인정할 뜻이 있느냐에 대응했다. 눈금을 처음 세울 때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무언가에 기대야 한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나면, 기대고 있던 것은 흔히 치워진다.

5. 잘해봐야 의심 섞인 환대

시간의 흐름을 한번 따라가볼 만하다. 전설처럼 이야기되곤 하는 일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31일, 그 구상이 암호학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왔다.

2009년 1월 3일, 첫 블록이 나왔다. 1월 8일, 소프트웨어의 첫 버전이 공개되었다. 공지에는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있으며, 서버도 중앙의 권위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1월 12일, 첫 온체인 송금이 이루어졌다. 피니는 나중에 자신이 나카모토 사토시 말고는 처음으로 이 소프트웨어를 실행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70번대 블록을 채굴했고, 사토시가 시험 삼아 보낸 10개를 받았다고 했다.

2월 11일에는 완전한 탈중앙화와 암호학적 증명에 관한 그 말이 나왔다.

2009년 10월 5일, 첫 달러 가격이 제시되었다.

2010년 5월 22일, 누군가 코인 1만 개로 피자 두 판을 샀다. 당시 가치로 약 41달러였다. 보통 실제 상품과 교환한 최초의 유명한 거래로 여긴다.

2010년 7월 17일, 한 거래 플랫폼이 문을 열었다. 이 체계는 메일링 리스트와 피어 투 피어의 단계를 지나 거래 플랫폼의 단계로 들어갔다.

2010년 12월 11일, 위키리크스가 이 화폐를 사용할 가능성이 떠오르자 사토시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나중에 자주 인용되는 말을 남겼다. 말벌집을 건드렸고, 벌떼가 우리에게 날아오고 있다는 말이었다.

2011년 4월 23일, 그는 한 개발자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미 다른 일을 하러 옮겨갔고, 이제 이것은 그들의 손에 있다고 했다.

이런 퇴장은 드물었다. 앞선 스물한 편에서 자 하나를 세운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남았다. 남아서 설명하고, 고치고, 남들이 의심하면 나서서 말하고, 아니면 이익을 나누어 가졌다. 이번에는 구상을 쓴 사람이 그것이 막 제 발로 서자 떠났다. 그 뒤 돌아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흐름에서 특히 중요한 세부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피니의 그 회상이다. 그는 2008년 말 메일링 리스트의 반응을 잘해봐야 의심 섞인 환대였다고 말했다.

내놓자마자 동료들을 사로잡은 구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거창한 계획을 수없이 본 암호학의 노련한 사람들은 우선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둘째는 가격이다. 초기의 가격은 시장의 폭넓은 합의로 단번에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극소수의 참여자가 전력 비용을 계산하고, 포럼에서 물건을 바꾸고, 조촐한 거래 플랫폼을 거치며 조금씩 더듬어 찾아냈다.

화폐가 공통의 척도가 되는 일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거듭 계산해보고, 다투고, 값을 불러본 뒤에야 겨우 자리를 잡는다.

이 점은 시리즈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선 스물한 편에서 세워진 자들도 처음 설 때는 아마 비슷하게 어수선한 시기를 거쳤을 것이다. 다만 너무 오래전의 일이고 기록도 드물다. 뒤의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잡은 모습만 보니, 처음부터 마땅히 그랬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이번에는 다르다. 전 과정에 기록이 있다. 어느 날 누가 처음 값을 물었는지, 누가 처음 실물과 바꾸었는지, 첫 가격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처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망이 없다고 보았는지까지 남아 있다.

자 하나가 태어나는 현장이 이토록 온전히 남은 일은 드물다.

남은 기록의 거의 모든 대목이 앞선 스물한 편에서 생기기 쉬운 착각을 깨뜨린다. 자가 옳기 때문에 사람들이 받아들인다는 착각이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처음에는 냉대를 받았다. 그다음 몇 사람이 써보았다. 그다음 그리 믿음직하지 않은 값이 계산되었다. 그다음 피자 두 판과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왔다.

말벌집에 관한 말도 따로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다고 선언한 체계다. 그런데 그 창조자는 누구의 표적이 될지를 걱정하고 있다.

이 말은 그가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체계는 실제로 사회 밖에 있지 않았다. 살아남으려면 코드로 통제할 수 없는 바깥의 것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보아야 했다.

이 문제는 첫날부터 있었다. 아무 허가 없이도 작동하는 체계일지라도 어느 나라에서 거래소를 열 수 있는지, 은행과 연결할 수 있는지, 기계를 살 수 있는지, 전기요금이 비싼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다스릴 수 없는 곳에 매여 있다. 코드는 체인 위의 모든 것을 정할 수 있어도, 플러그를 누가 쥐고 있는지는 정할 수 없다.

6. 신뢰는 어디로 갔는가

지지하는 쪽의 가장 강한 주장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낯선 사람끼리, 신원을 전제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 없이도 가치를 옮기는 일을 처음으로 상당히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이다.

관련 학술 문헌을 종합한 연구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런 뜻에서 분명히 어떤 빈자리를 채웠다.

이 성취를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앞선 스물한 편의 장부 가운데 어느 것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두 당신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모두가 인정하는 기관이 먼저 가운데 서 있어야 했다.

그 무게는 앞선 글들의 구체적인 처지 속에 놓아보아야 선명해진다. 열셋째 글의 증빙을 대지 못한 사람들, 열여섯째 글의 명부에 없는 사람들, 스물한째 글의 신용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막히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같았다. 언제나 당신이 누구인지 먼저 확인하는 문이 있었다. 이번에는 그 문이 없어졌다.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그 서명 문자열이 맞는지만 본다.

다른 해석은 여기서 말하는 신뢰의 불필요함에는 언제나 경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연구자는 이것을 화폐를 사회생활에서 떼어내려는 기계화된 화폐의 상상이라고 불렀다. 다른 연구자는 공동체를 관찰한 뒤, 이용자들이 실제로 신뢰가 전혀 없는 세계에 사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기술이 사람보다 믿을 만하다는 공통의 믿음을 중심으로 신뢰를 다시 구축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신뢰가 필요 없다는 말은 실제로는 신뢰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닐 때가 많다.

믿는 대상이 옮겨갔다는 뜻이다.

은행가와 국가와 기업에서 프로토콜, 코드 저장소, 노드의 분포, 채굴자에게 주어지는 유인, 그리고 이런 기술적 대상을 둘러싸고 생겨난 공통의 믿음으로 옮겨갔다.

옮겨갔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점은 공정하게 말해야 한다. 공개된 코드를 믿는 것과 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기관을 믿는 것은 같지 않다. 코드는 누구든 읽을 수 있지만, 기관 안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대상을 옮긴 뒤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실제로 늘었다. 다만 확인할 수 있다고 모두가 확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 가운데 그 코드를 읽고 이해하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다.

경제학의 비판은 문제를 한 겹 더 밀고 나갔다.

한 중앙은행의 연구 글은 날카롭게 말했다. 암호화폐는 신뢰가 썩지 않도록 처리하는 대신 편리함을 치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기관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세계에 산다면 이 체계가 우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지급기관과 중앙은행을 믿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존 체계가 여전히 더 편리하다.

또 다른 연구자는 비용 구조에서 이 설계를 비판했다. 익명이며 탈중앙화된 이런 신뢰를 유지하는 데에는 큰 대가가 들고, 체계 안에 걸린 금액이 커질수록 비용도 선형적으로 늘어난다는 판단이었다. 더 큰 규모에서도 믿을 만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에 비례해 더 높은 보안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 점은 여기서 쓰는 틀에 중요하므로 뜻을 분명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덜어낸 신뢰가 0이 된 것은 아니다.

전기요금 고지서가 되었다.

케임브리지의 한 지수와 미국의 에너지 통계기관은 모두 채굴에 필요한 전력이 국가 차원의 통계와 정책 논의에 들어갈 만큼 커졌다고 지적한다.

신뢰가 필요 없다는 일 자체에 값이 있다는 뜻이다. 그 값은 다른 장부에 분명하게 적혀 있다.

자주 강조되지는 않지만, 이것은 이 체계의 정직한 면이기도 하다. 이전의 장부들은 비용을 다른 곳에 숨겼다. 지급을 보장하는 약속도, 구제금융의 가능성도, 한 나라의 신용이 얼마인지도 장부에 적지 않았다. 효력이 사라지는 날에야 한꺼번에 정산했다. 이번의 비용은 날마다 전력량계에서 돌아간다. 누구나 볼 수 있다. 더 비싸지만, 지불할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전의 장부에는 그것을 인정할 사람이 필요했다. 인정하는 동작 자체는 돈이 들지 않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인정할 사람이 필요 없다. 대신 10분마다 기계들이 전기를 태워야 한다.

열넷째 글의 자는 마지막에 떠받치는 역할을 금속과 몇몇 중앙은행에 옮겨놓았다. 이번에는 전력과 연산 능력으로 옮겨놓았다.

그런데 이 자 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은 바깥에서 줄곧 고개를 내민다.

거래가 확인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수수료는 언제 오르는가. 체인이 막히면 어떻게 하는가. 비밀번호를 잊으면 누구를 찾는가. 법정화폐는 어떻게 들어오고 나가는가. 채굴기 생산 능력은 어느 몇몇 업체의 손에 있는가. 채굴풀끼리는 어떻게 조율하는가.

어느 것도 프로토콜에는 적혀 있지 않다.

이 물음들을 열여덟째 글의 일곱 토막 난 사슬과 나란히 놓으면 모양이 같다. 거기서는 주택담보대출 하나가 일곱 단계로 나뉘었고, 이음매마다 신뢰 없이는 건널 수 없는 부분이 조금씩 남아 있었다. 여기서는 송금 하나가 프로토콜 안과 밖의 두 토막으로 나뉜다. 프로토콜 바깥쪽에도 마찬가지로 이음매가 일고여덟 개 있다. 다른 점은 그때는 위험을 팔기 위해 사슬을 나누었고, 이번에는 프로토콜이 자신이 다룰 수 있는 구간밖에 맡지 못해서 나누었다는 데 있다.

프로토콜이 맡는 것은 체인 위의 순서다. 하지만 그것을 쓰려는 사람은 먼저 이 열 가지 남짓한 것들을 지나야 한다. 그 하나하나가 그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한다.

7. 프로토콜은 누가 고치는가

신뢰가 되돌아오는 가장 선명한 통로는 거래소다. 이 통로에는 과정을 빠짐없이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프로토콜 자체는 당신의 지급을 청산하기 위해 어느 은행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법정화폐를 코인으로 바꾸고 싶거나, 코인을 법정화폐로 되돌리고 싶거나, 그저 개인키를 직접 보관하기가 번거롭기만 해도 수탁 플랫폼과 지급 처리업체, 지갑 서비스업체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2014년에 파산한 그 거래소가 이 과정의 전형이다. 한때는 이 화폐의 얼굴이 되었고, 사람들이 가격을 보고, 거래하고, 돈을 넣고 빼는 주된 입구였다.

회사는 2014년 2월 28일 공지에서 고객의 코인 약 75만 개와 회사 소유의 코인 약 10만 개가 사라졌다고 인정했다. 도난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은행 계좌에서도 약 28억 엔의 차액이 나타났다.

3월 20일에는 옛 지갑에서 약 20만 개를 되찾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실제로 사라진 수량의 추정치는 약 65만 개로 줄었다.

이후의 조사에서 도난의 흐름을 거슬러 추적하자,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 거듭 도난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서 벌어진 일은 프로토콜 차원의 이중지불 위기가 아니었다.

신뢰가 필요 없다고 하는 자산을 이용자들이 다시 신뢰해야 하는 중개자에게 맡긴 일이었다.

그러자 여러 해의 기다림, 자금 동결, 배상을 둘러싼 소송, 신원 확인이 모두 돌아왔다.

한 통신사는 이 사건을 되짚으며 분명히 썼다. 거래소의 붕괴는 그 공동체가 품은 자유방임과 규제 반대의 이상이 금융 서비스에 필요한 안정적인 운영, 규정 준수, 고객의 요구와 부딪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우연히 본궤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금융안정위원회는 탈중앙화 금융의 위험을 논하면서, 이른바 탈중앙화 금융과 중앙화된 거래·대출 플랫폼 사이에는 체계 전반에 걸친 연결이 있다고 지적했다. 많은 참여자가 바로 이 플랫폼들을 통해 온체인 체계와 법정화폐의 세계를 오간다. 위원회는 이런 지배구조가 흔히 불분명하고, 불투명하고, 검증되지 않았거나, 조작되기 쉽다는 점도 특별히 짚었다. 실제 탈중앙화의 정도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귀환의 통로는 더 근본적이다. 이 글 전체의 핵심이기도 하다.

한 연구자는 두 가지를 구분했다. 기반시설을 통한 통치와, 기반시설 자체에 대한 통치다.

앞의 것은 프로토콜이 규칙을 자동으로 집행하는 일이다. 이 부분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뒤의 것은 다른 문제다. 프로토콜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오류는 누가 고칠 것인가. 체인이 갈라질 때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노드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가.

프로토콜은 스스로 이 물음들을 없앨 수 없다.

다른 연구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의 블록체인 운영은 여전히 사람의 판단과 영향력, 비공식적인 통치에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그 안의 한 종류의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한 지배를 가리키는 표현까지 썼다.

이후의 블록 크기 논쟁, 세그윗의 활성화, 이용자가 주도한 소프트포크는 모두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이용자와 채굴자, 핵심 개발자와 기업이 암호학에 의해 완전히 대등한 입자들로 평평해진 것은 아니었다.

합의라는 것은 흔히 기술적 매개변수와 경제적 유인, 발언권과 여론 동원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여기까지 오면 이 역사가 앞의 틀에 되돌려주는 말을 꺼낼 수 있다.

구축은 모든 것을 정할 수 있다. 누가 그 규정을 고칠 것인지만 빼고.

앞선 스물한 편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말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때의 구축들은 한 번 쓰면 고칠 수 없게 자신을 적어두려 한 적이 없었다. 모두 고칠 수 있는 자리 하나를 남겨두었다. 그 자리에는 대개 사람, 의회, 중앙은행, 담당관, 신용평가위원회가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구축이 처음으로 그 자리마저 없애려 했다.

그런데 없앨 수 없다. 규칙은 자동으로 집행할 수 있다. 규칙을 고치는 일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열일곱째 글과 나란히 놓고 보아도 좋다. 그 국제협정의 본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조항 하나가 인쇄되어 있었다. 그 조항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구축이 자기 문서 안에 수정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었다는 뜻이었다. 앞의 구축들은 모두 이런 자리를 남겼고, 대개 누가 앉을 자격이 있는지도 적어두었다. 이번에는 남기지 않았다.

세 번째 귀환의 통로는 창시자의 명망이다.

이 화폐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창시자가 떠난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중에 개입할 가능성을 낮추었다. 많은 지지자에게 황제가 없는 신화의 공간을 남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역사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2016년, 다른 체인 위에 세워진 한 자율 투자조직에서 약 6,000만 달러어치의 토큰이 누군가에 의해 빠져나갔다. 공동체는 뒤이어 하드포크를 택해 그 사건의 영향을 되돌렸다. 그렇게 두 개의 체인이 남았다.

이는 코드가 곧 법이라는 말도 손실이 충분히 커지면 공동체의 정치에 의해 뒤집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뒤 2022년에는 한 스테이블코인과 그에 짝지어진 토큰이 함께 붕괴했다. 감독기관과 탐사보도는 창업자와 회사가 같은 말을 거듭해 어떻게 신뢰를 쌓았으며, 가격 연동이 깨진 뒤 어떻게 막대한 손실을 일으켰는지를 직접 겨냥했다.

더 극단적인 사례는 이 전통 전체의 거의 정반대에 서 있었다. 한 중앙화 거래소의 창업자는 개인적 명망과 브랜드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의 신뢰를 모았다. 결국 고객 자금을 유용하고, 사기를 저지르고, 불법으로 뒤섞어 사용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는 옛날의 그 예언과 묘하게 맞물린다.

익명의 체계는 평판을 없애지 않았다. 평판을 더 위험한 자리에 놓았다.

전통적인 감사, 예금보험, 분명한 기업 지배구조, 성숙한 구제 장치가 없는 곳에서는 창업자, 핵심 개발자, 거래소 주인, 감사에 대한 신화, 공동체의 문화에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가 실리기 때문이다.

평판은 더는 곁에 붙은 것이 아니다. 익명의 화폐를 다시 사회의 세계에 잇는 다리가 된다.

스물한째 글에서 말했다. 평판도 스스로 장부를 닫고 싶어 하며, 본래 화폐보다 더 너그러운 것은 아니라고.

여기서는 한마디를 더 보탤 수 있다. 어떤 것의 둘레에 공식 제도가 적을수록 평판 위에 얹히는 무게는 커진다. 무게가 커질수록 문제가 났을 때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도 많아진다.

8. 회복할 수 없다는 것

이 역사 전체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취향이 달라서 갈리는 것도 아니다.

첫째는 해방을 가져오는 탈중앙화인가, 투기를 위한 새로운 중개자인가 하는 논쟁이다. 지지자들은 은행도 청산소도 신원의 전제도 없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가치가 옮겨갔다고 강조한다. 금융위기, 자본 통제, 지급 검열, 법정화폐의 팽창에 기술로 응답했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현실의 거래량은 오랫동안 대부분 거래소와 투기적 용도에 몰려 있었다고 지적한다. 어떤 연구자는 오늘날 가장 큰 규모의 암호화폐 활동은 바로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중개자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익명성과 탈중앙화된 신뢰의 이점을 실제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직접 썼다.

둘째는 신뢰가 필요 없다는 것이 제도의 사실인가, 홍보의 언어인가 하는 논쟁이다. 처음의 문헌이 신뢰를 암호학적 증명으로 대신하는 일을 중심에 놓았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연구들은 그 말이 코드와 공동체, 공통의 믿음을 둘러싸고 생기는 사회적 신뢰를 놓친다고 본다. 옛 중개자 일부를 없앴는가를 놓고 갈리는 것이 아니다. 옛 중개자를 없앤 뒤에도 남은 의존을 여전히 신뢰라고 불러야 하는지를 놓고 갈린다.

셋째는 기술에 의한 통치가 정치에 의한 통치를 대신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다. 낙관하는 쪽은 프로토콜의 규칙, 공개된 소스코드, 노드의 선택, 시장 경쟁이 충분히 강한 자기조직적 질서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의심하는 쪽은 공개 체인이 실제로 돌아가려면 언제나 소수의 핵심 개발자, 채굴풀, 기반시설 업체, 여론 주도자에게 기대야 한다고 지적한다. 분기는 허점이 아니라 구조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넷째는 화폐에 더 가까운가, 투기적 자산에 더 가까운가 하는 논쟁이다. 지지자들은 코인 10개를 시험 삼아 송금한 일부터 코인 1만 개로 피자를 산 일까지의 역사를 든다. 실제로 지급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지 시험해보았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이후 그 주위에 형성된 사회적 실천은 비축, 거래, 레버리지, 가격을 둘러싼 이야기에 더 자주 무게를 두었다고 지적한다. 한 연구자는 날카로운 판단을 내놓았다. 자신의 이념적 목표를 완벽하게 이루면, 오히려 현실의 화폐 기능에서는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판정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판정하지 않는 이유가 특히 분명하다. 네 논쟁은 같은 것을 묻고 있지 않다. 첫째는 실제 용도가 어디에 놓이는지를 묻는다. 둘째는 어떤 말을 어떻게 정의할지를 묻는다. 셋째는 제도 설계가 가능한 경계를 묻는다. 넷째는 그 대상의 성격을 묻는다. 이들을 한데 뭉쳐 암호화폐가 되는 것인가 안 되는 것인가 물으면,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 네 논쟁 바깥에는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앞선 글의 끝에 이어지는 일이다.

스물한째 글에서 말했다. 모든 점수 체계는 끝내 회복이라는 이름의 장치를 만들어낸다고. 회복이라는 말은 자백이라고. 사람은 달라질 수 있지만 기록은 과거를 압축한 것이며, 둘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이 체계의 설계는 정반대다.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자랑한다.

거래가 체인에 기록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 개인키를 잃으면 코인도 잃는다. 누구도 대신 찾아줄 수 없다. 체인에는 이의를 제기할 창구도, 고객센터도, 설득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미 쓰인 어느 한 줄을 고칠 권한이 있는 사람도 없다.

결함이 아니다. 안전성 전체가 여기에서 나온다.

장부를 인정할 사람이 필요 없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그 장부를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건드릴 수 있다면 건드릴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믿어야 할 사람도 생긴다.

그러니 회복할 수 없다는 것과 신뢰가 필요 없다는 것은 같은 일의 양면이다. 한쪽만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2016년 다른 체인에서 일어난 그 사건에서는, 손실이 충분히 커지자 문이 강제로 열렸다.

공동체는 토론하고, 투표하고, 하드포크를 해서 빠져나간 토큰을 되돌렸다. 되돌리는 일은 프로토콜이 자동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결정한 일이었다.

그 뒤에는 두 개의 체인이 남았다. 하나는 되돌리기를 받아들였고, 하나는 처음의 역사를 바꿀 수 없다고 고수했다.

두 체인은 그 뒤에도 모두 계속 돌아갔다.

그 논쟁이 만들어낸 것은 답 하나가 아니라 갈림길이었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복할 수 있는 세계를 택했고, 어떤 사람들은 회복할 수 없는 세계를 택했다. 어느 쪽도 상대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 갈림길 자체가 어느 한쪽의 승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은 논증으로 확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뜻이다. 선택이라면 선택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선택할 사람이 필요해지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구축은 사람을 장부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보냈던 사람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것도 결정을 내리라고 안으로 불러들였다.

나카모토 사토시가 하려던 일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 돈이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갈 때, 그 누구도 믿을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 일의 큰 부분을 이루었다. 그 체인은 오늘도 10분에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간다. 누구도 그것을 멈추지 않았고, 누구도 이미 쓰인 줄들을 고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쓰려는 사람은 여전히 어딘가에서 법정화폐를 코인으로 바꾸어야 한다. 개인키를 어딘가에 두어야 한다. 지갑 프로그램을 쓴 사람들이 뒷문을 남겨두지 않았으리라 믿어야 한다. 체인이 막히면 내일은 수수료가 내려가리라 믿어야 한다. 이 체계를 바꿀 때가 오면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몇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모두 프로토콜 안에 없다. 프로토콜은 장부를 맡는다. 장부를 쓰는 사람이 어떻게 장부 앞까지 오는지는 맡지 않는다.

장부는 그것을 인정할 사람이 필요 없도록 만들 수 있다.

그것을 쓸 사람까지 필요 없게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쓰는 한 실수하는 사람이 생긴다. 도난당하는 사람, 한밤중에 문자열 하나를 잃어버리는 사람, 한 차례 붕괴가 지나간 뒤 일을 되돌려달라는 사람이 생긴다. 그날이 오면 누군가는 나서서 되돌릴지 말지를 정해야 한다.

앞선 스물한 개의 장부는 모두 자기 안에 회복이라는 문을 냈다. 얼마나 오래 걸어야 하는지,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해야 다 걸어온 것으로 칠지도 정했다.

이 장부는 그 문을 내지 않았다.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안전성 전체의 근원으로 써넣었다.

그런데도 그 다른 체인에서는 한 번 문이 강제로 열렸다.

문을 들이받아 연 것은 프로토콜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연 회의였다.

셈은 아직 맞지 않는다. 장부는 지금도 쓰이고 있다.

중문 원문의 논증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의 호흡에 맞게 구성과 문장을 새로 짠 독립 편집·재구성판이다. 中文・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