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말은 보통 사람에게도 건네진다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信言不美,美言不信。知者不博,博者不知。善者不多,多者不善。圣人无积:既以为人,己愈有;既以予人,己愈多。故:天之道,利而不害;人之道,为而弗争。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다
여든한 장을 읽어 이 길의 끝에 왔다. 기억에 남은 말도 있고, 이미 잊힌 말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책이 생활에 남는 방식은 외울 수 있는 문장의 수만이 아니다. 화를 내려던 순간, 공을 차지하려던 순간, 남을 대신해 결정하려던 순간에 문득 한 호흡 늦추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연재는 통행하는 장 번호를 따라 여기를 마지막 장으로 삼았다. 마왕퇴 백서본은 편과 장의 배열이 다르므로, 노자가 마지막으로 쓴 말이라고 증명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걸어온 독서의 마지막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마무리로 잘 어울리는 장이다. 앞의 세 대조에서 쌓아 두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고 내어 주는 사람으로 나아간 다음, 끝에는 행위의 방식이 놓인다. 말과 인식에서 실천으로 앞선 이야기를 돌아보는 길로 읽을 수 있다. 다만 고서에 오직 하나의 빈틈없는 설계가 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끝까지 읽었다고 욕심도 화도 없이 언제나 양보하는 성인을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깊이 있어 보이는 표정을 갖게 되는 일보다 평범한 하루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조금 늘어나는 일, 그 정도의 변화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2. 듣기 아프면 진실인가
‘信言不美,美言不信.’ 회의에서 누군가 말한다. “문제없습니다. 일정대로 끝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말한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두 군데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기한을 못 맞출 수도 있습니다.” 앞의 말을 들으면 회의실이 가벼워진다. 뒤의 말을 들으면 새로운 판단이 필요해진다.
‘미(美)’에는 아름다움, 꾸밈, 듣기 좋음 같은 뜻의 폭이 있다. 경계할 것은 아름다운 표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사실의 자리에 들어서는 일이다. 부드럽고 명료하며 잘 다듬은 말도 정직할 수 있다. 거칠고 상처를 주는 말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을 말해서 말투가 세다’는 면허가 될 수 없다. 정직함에는 근거가 필요하고, 전달 방식에 대한 책임도 필요하다. 일의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말하는 것과 그 사람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말하기 어려운 사실을 전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장치도 솔직함을 지탱하는 조건이다.
앞의 회의에서 믿을 만한 보고는 나쁜 소식만 던져 놓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것, 고칠 수 있는 것, 누구의 결정이 필요한지를 가능한 한 나누어 전한다. 위로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만으로 현실을 덮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마주할 때도 그 세심함을 써도 좋다.
3. 아는 것을 더 알지 않을 이유로 삼지 않기
‘知者不博,博者不知.’ 흔한 독법은 참으로 요점을 파악하는 일과 지식을 넓게 모으는 일을 구별한다. 많이 보고 들었다고 깊이 이해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독법을 밀어내고 여기의 ‘지(知)’는 오직 자기가 안다고 여기는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바탕 논고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확신이 배움을 닫는 경험이다. 이미 안다고 여기는 사람도 계속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자료를 모은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옛 판단의 증인으로만 초대된다. 맞지 않는 증거는 읽기도 전에 볼 가치가 없는 쪽으로 분류된다.
이것은 이 연재의 철학적 확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적게 알수록 좋다는 말이 아니다. 이미 아는 것을 새로운 배움을 거절하는 이유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71장에서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와 만났던 지점도 거기였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취지다. 널리 알려진 짧은 표어를 그대로 그의 발언인 양 인용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열려 있다는 것은 영원히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현재의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어떤 조건이 바뀌면 다시 보아야 하는지도 기억할 수 있다. 지도를 자세히 그리는 것과 지도 바깥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지식을 지닌 채 다시 놀랄 여지를 남길 수 있다.
4. 일을 할 때마다 내 가치 전부를 걸지 않아도 된다
채택 본문은 ‘善者不多,多者不善’이며, 통행본에는 ‘善者不辩,辩者不善’이라는 형태가 있다. ‘선’을 잘함으로, ‘다’를 높이 평가함으로 연결할 용례가 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 장이 기술과 자기평가만 말한다고 확정되지는 않는다. 통행본이 선과 변론 사이에 던지는 질문 역시 무관하다며 밀어낼 필요가 없고, 모든 논의를 나쁘게 만들 필요도 없다.
기예에 주목하는 독법에서는 익숙한 걸림돌이 보인다. 일을 잘하고 싶었는데 어느새 실수를 하나도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안을 고치는 것이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자백처럼 느껴지고, 질문하는 것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고백처럼 느껴진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자기 지위를 두고 재판이 열린다.
실천을 방해하는 것은 능력 부족만이 아니라 매번 짊어지는 자기 증명의 무게일 수 있다. 물론 불안에는 자원 부족이나 불공정한 평가도 작용한다. 무엇이든 개인의 자의식 문제로 돌리면 환경을 고쳐야 할 책임이 사라진다.
그래도 결과물과 사람을 조금 떼어 볼 수는 있다. 이 글은 수정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쓴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잘하지 못했다. 그것이 다음 시도를 잃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연습하고 구체적인 조언을 받으면서 자기 존엄도 지킨다. 잘하기 위해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패에 존재의 허가를 맡기지 않는 것이다.
5. 내어 주는 사람에게도 생활이 있다
‘圣人无积:既以为人,己愈有;既以予人,己愈多.’ 여기의 ‘기(既)’에는 이미, 다함, 어떤 일을 마친 뒤라는 해석의 길이 있다. 현대어의 ‘예를 들어’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예를 통해 생각할 수는 있다.
남을 가르치다가 설명되지 않는 대목을 발견한다. 다시 알아보고 전하면 자기 이해도 깊어진다. 동료에게 도전할 기회를 넘겼더니 독립해서 일할 사람이 팀에 늘고, 다른 일도 가능해진다. 지식과 역할을 전부 손안에 가두지 않음으로써 혼자 소유할 때보다 풍부한 관계에 들어서는 경우가 있다.
제7장에서 생각했던, 언제나 나를 맨 앞에 놓지 않아도 오히려 내 자리가 안정될 수 있다는 경험과도 이어진다. 다만 반드시 이익이 돌아오는 교환 장치는 아니다. 도와도 감사받지 못할 때가 있다. 건넨 기회가 정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과 돈과 체력은 선의 때문에 무한해지지 않는다.
‘무적(無積)’을 저축도 보수도 여력도 갖지 말라는 명령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소유만을 유일한 안전의 근거로 삼지 않는 일, 나눌 수 있는 지식과 공간을 나누는 일은 자기 생활의 기반을 지키는 일과 함께할 수 있다. 자신이 텅 빌 때까지 내어 주고 나서 상대가 희생에 보답하지 않는다고 탓하면, 도움이 다른 형태의 빚 독촉으로 바뀐다.
주는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주는 행위의 조건이다. 감사를 계약으로 만들지 않고, 한계를 수치로 만들지도 않는다. 지속할 수 있는 너그러움에는 그 여지가 있다.
6. 해치지 않고 이롭게 한다는 방향
‘天之道,利而不害;人之道,为而弗争.’ 시야를 하늘까지 넓힌 말이 다시 사람의 행위로 돌아온다. 앞부분은 대상을 손상해 자기 힘을 증명하기보다 그것이 자라도록 돕는다는 철학적·윤리적 기준으로 읽을 수 있다.
실제의 햇볕도 화상을 입히고 비는 홍수를 일으킨다. 자연이 사람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온화한 풍경만 늘어놓아 우주가 무해의 법칙을 증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상에 행위를 어떻게 가까이 가져갈지가 우리에게 남은 일이다.
‘위이불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동의 일을 해내면서 모두의 기여를 내 지휘가 훌륭했다는 증거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도우면서 그 아이가 걸을 길을 전부 내 계획 안으로 거두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힘을 쓰되, 결과가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게 되는 것도 받아들인다.
정당한 임금이나 이름 표기, 안전을 요구하는 일까지 금지되지 않는다. 불공정을 거절하는 것과 언제나 남보다 위에 서려는 것은 다르다. 앞의 행동은 함께 살아갈 조건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 뒤의 집착은 할 가치가 있던 일마저 누가 누구보다 위에 있는지 계산하는 일로 만들어 버린다.
7. 여기에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는 것
마지막 구절은 통행본에서 ‘圣人之道,为而不争’이라는 형태로 알려져 있지만, 이 연재는 ‘人之道,为而弗争’을 채택한다. 나는 그 ‘인(人)’에서 친근함을 느낀다. 높은 곳의 이상적 인물만이 아니라, 출근하고 아이를 키우고 사람 사이의 거리를 배우는 보통 사람에게도 건네는 말로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서의 성인도 보통 사람이 배울 수 있는 이상일 수 있다. 닫힌 신분 계층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글자 하나로 통행본은 소수만을 위한 것이고 채택 본문만 처음으로 모두에게 문을 열었다는 큰 이야기를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제77장의 ‘인간의 도’와 나란히 놓으면 생각할 틈이 생긴다. 거기서는 부족한 데서 덜어 남는 데 보태는 사람의 경향이 나타났다. 여기서는 사람 역시 일하면서 다툼에 삼켜지지 않을 방향이 열린다. 현실의 경향을 보는 일과 그것을 그대로 두지 않는 실천이 서로를 비춘다.
고서의 저자가 전체를 미리 그렇게 설계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걸어온 독서에는 좋은 출구가 된다. 사람의 한계를 안다고 사람을 싫어하는 데서 끝낼 필요는 없다. 하는 방식 때문에 많은 것이 나빠진다면, 하는 방식에서부터 바꿀 수 있는 것도 있다.
8. 책을 덮고 나면 한 가지만
모든 습관을 동시에 바꾸지 않아도 된다. 다음 보고에서 아직 모르는 부분을 하나 말한다. 다음 논의에서 내 의견에 맞지 않는 증거를 끝까지 읽는다. 다음에 실수하면 인생 전체를 변호하기 전에 고칠 수 있는 곳부터 손댄다.
누군가를 돕기 전에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줄 수 있는 양을 확인한다. 도움의 대가로 감사를 미리 요구하지 않고, 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한다. 너그러움으로 우위에 서지 않으며,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경쟁에 지쳐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면, 상대를 이기는 것 말고 그 일의 가치가 남아 있는지 다시 볼 수 있다. 남아 있다면 힘을 그쪽으로 돌린다. 다툼에 휩쓸렸을 뿐이라면 떠나도 좋다. 무의미한 경쟁에서 물러나는 것은 삶에서 물러나는 일이 아니다.
모두 연습이 필요하고, 여러 번 이전 습관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 문장을 이해했다고 오래된 버릇이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음에는 조금 일찍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뒤 조금 다른 행동을 하는 일이다. 더는 노력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다.
9. 여든한 장 뒤에도 당신의 생활은 이어진다
제1장에서 도를 말 안에 가둘 수 없다는 입구를 지나, 제3장의 평가와 욕망, 제8장의 물, 제22장의 다투지 않는 태도를 만났다. 제66장은 바다의 낮음에서 높은 자리를 생각했고, 제68장은 힘과 허세를 구별했으며, 제77장은 남는 것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말들은 서로를 비추지만, 생활이 정답 하나만 남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만 가져간다면, 일을 하는 것과 모든 다툼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남과 사는 것과 그 사람의 생활을 전부 내 계획 안에 넣는 것도 다르다. 하고 싶은 일, 지킬 경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삶을 지닌 채, 상대에게도 같은 여지를 남길 수 있다.
어려움이 사라진다는 약속은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 반사적으로 사람을 작게 만드는 방식을 하나 줄이고, 다시 보고 듣고 선택할 틈을 조금 늘리는 일이다. 책은 당신을 대신해 마지막 한 걸음을 걷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그 걸음은 아직 당신의 것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함께 읽어 주셔서 고맙다. 책을 덮어도 밥은 먹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며, 내일은 또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그중 어느 한순간 오래된 말에서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면, 이 긴 길을 걸어온 의미는 이미 생활 속에 있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9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 제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