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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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74장 · 총 81장

도끼를 넘겨받을 때, 무엇을 맡는가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若民恒且不畏死,奈何以杀惧之也?若民恒且畏死,而为畸者吾将得而杀之,夫孰敢矣?若民恒且必畏死,则恒有司杀者。夫代司杀者杀,是代大匠斫也。夫代大匠斫者,稀有不伤其手矣。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이 일은 내가 정하겠다는 말

담당자가 설명하는 중에 상사가 끼어든다.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며 자신이 결정하겠다고 한다. 회의는 빨리 끝난다. 결단력 있는 사람이 복잡한 문제를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내 말하지 못한 설명 안에 고장이 나는 조건이나 이용자의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짧아진 것이 회의뿐은 아니다. 판단에 쓸 수 있는 정보까지 줄었을 수 있다.

이런 장면을 전문성의 무시라고 부를 수 있다. 제74장은 더 손에 잡히는 그림을 내놓는다. 숙련된 목수를 대신해 도끼를 휘두르면 자기 손을 다치기 쉽다는 것이다.

다만 이 도끼는 본래 일하는 방식만 이야기하려고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 장이 다루는 것은 형벌과 죽임이다. 일상으로 가져오기 전에 되돌릴 수 없는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2. 사람의 생사에 미치는 힘

본문은 여러 가정을 쌓는다.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죽이겠다는 말로 어떻게 겁을 줄 것인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질서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 뒤에 죽임을 맡는 자와 그를 대신하려는 사람이 나온다.

여기의 살(殺)을 가벼운 문제 해결의 비유로 희석할 수는 없다. 누군가의 목숨을 끝내는 힘은 잘못을 나중에 바로잡을 여지까지 없앤다. 고전을 읽는 일이 그 시대의 형벌을 그대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담당자나 직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위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 허용된 것, 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 통치를 위한다는 목적을 세우면 그 구별을 생략해도 될까. 이 질문은 고대의 권력에도 오늘의 책임 있는 자리에도 향한다.

이 글은 현대 제도가 이미 이 장에 다 쓰여 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힘을 가진 사람 자신이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 생각한다. 이를 위해 이 장의 엄중함을 빌리려 한다.

3. 더 겁주어도 돌아오지 않는 것

‘若民恒且不畏死,奈何以殺懼之也.’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죽임으로 어떻게 두렵게 할 것인가. 채택 본문에는 ‘恒且’와 ‘以殺’이 있지만, 차(且) 하나만으로 오랜 억압 때문에 이미 만성적으로 두려움을 잃었다는 과정까지 문법상 확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 가정이 보여 주는 어려움은 분명하다. 상대가 잃기 싫어하는 것에 의존하던 지배가, 상대의 살아갈 길을 막으면서 자기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더는 잃을 것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같은 벌을 더 크게 말한다고 관계가 복구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받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심리 법칙은 아니다. 공포는 남고 위협은 여전히 사람을 해친다. 두려워하는 피해자의 약함을 탓하려는 말도 아니다. 질문을 받는 쪽은 위협 말고 다른 방법을 잃은 사람이다.

제72장의 ‘民之不畏威’와 함께 읽으면 가정과 일터에도 물음이 생긴다. 부모나 상사가 센 말을 거듭하는 동안 상대는 설명하지 않게 된다. 반론이 사라진 것을 성공으로 세기 전에 말할 자리가 없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마지막 카드보다 더 강한 카드를 찾는 일만이 아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안전과 선택지와 의논할 자리를 어떻게 회복할지 생각하는 일이다.

4. 전문적인 역할과 정당한 권한은 다르다

‘若民恒且畏死’ 뒤에는 ‘恒有司殺者’가 나온다. 사살자(司殺者)를 하늘이나 자연의 생사 질서와 연결하는 해석도 있고, 형벌 담당자나 전문적인 직무로 읽는 방향도 있다. 뒤의 독해로 권력의 분담을 생각할 수 있지만 앞의 해석을 오류라며 지워서는 안 된다.

현대의 사법 독립과 비교하더라도, 권력자 개인의 뜻이 타인의 생사를 직접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적인 사상적 대조다. 독립된 심리, 이의를 제기할 권리, 보호와 감독의 제도가 고전의 한 단어에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는 오히려 전문성 존중만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수단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곧 사용할 권리까지 갖는 것은 아니다. 직책을 가진 사람에게도 설명과 검증이 요구된다. 맡기면 된다는 말은 권리와 책임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대목의 ‘爲畸’는 통행본에서 ‘爲奇’가 된다. 어떤 행위를 비판하는 것과 한 사람을 영원히 나쁜 부류로 정하는 것은 다르다는 윤리적 질문을 여기서 넓힐 수 있다. 그러나 기(畸)는 반드시 행위만 뜻하고 기(奇)는 반드시 인격을 단정한다는 글자 뜻의 대립이 입증되지는 않는다.

이 행위가 누구를 다치게 했는지 물으면 중단과 배상과 재발 방지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정하면 개선해도 연기이고 실패하면 역시 그렇다며 같은 딱지를 붙인다. 제27장과 제62장의 사람을 버리지 않는 태도는 책임을 없애지 않으면서 영구적인 낙인을 피하는 길로 읽을 수 있다.

5. 도끼는 직함을 보고 가벼워지지 않는다

‘夫代司殺者殺,是代大匠斫也.’ 죽임을 맡는 자를 대신하는 것은 뛰어난 목수를 대신해 도끼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 ‘稀有不傷其手矣’는 그 대행의 위험을 세게 말한다.

나뭇결을 읽고 힘과 각도를 조절하며 멈출 때를 안다. 이런 감각은 설명을 한 번 들은 것과 같지 않다. 그렇다고 배울 수 없는 비전도 아니다. 시범과 연습과 피드백과 시간이 있으면 기술은 익힐 수 있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그 과정만 건너뛸 수는 없다.

전문 분야 밖의 결정을 밀어붙인 사람이 맨 먼저 대가를 치르는 것도 아니다. 실행자와 이용자가 먼저 다칠 수도 있다. 도끼의 비유를 월권한 사람이 언젠가 벌을 받는 이야기로만 끝내지 말고, 결정에 참여하지 못한 누가 위험을 떠맡는지로 돌리고 싶다.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모두 대신하면 나중에 원망받느냐 이전에 자녀가 판단하는 기회를 잃는다. 관리자가 담당자를 건너뛰어 결정하면서 결과의 책임은 담당자에게 남기면 일의 분담 자체가 깨진다.

어려운 것은 내가 하는 편이 빠르다는 말이 사실일 때다. 능력도 선의도 있고 시간은 급하다. 비상시에는 넘겨받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번 그 자리의 속도만 고르면 상대가 다음에는 할 수 있도록 배울 시간이 사라진다. 돕던 손이 어느새 자리를 차지하는 손이 된다.

대신하는 사람이 다치기 쉽다는 문장에서 목수 자신도 반드시 다친다는 결론을 거꾸로 끌어낼 수는 없다. 그와 별개로 숙련된 사람에게도 위험한 일은 주의가 필요하다. 기술을 존중하는 것과 기술을 틀릴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일은 다르다.

맡기는 것도 방치는 아니다.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자원을 주며 안전을 확인하고, 학대나 중대한 위험에는 개입한다. 개입의 이유와 범위를 설명하고 필요가 사라지면 상대의 책임 있는 자리를 돌려준다. 그 수고는 도끼를 전부 빼앗는 것보다 조용하고 어렵다.

6. 손을 내밀기 전에 끝까지 듣기

다음에 일을 가져오려 할 때 먼저 설명을 끝까지 들어 본다. 끊어 버린 절반에 나중에 큰 대가를 치르고 알게 될 조건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내가 급한 이유도 구분하고 싶다. 당장 막아야 할 위험이 있는가, 아니면 나와 다른 방식을 견디지 못하는가. 앞의 경우에는 행동이 필요하지만 뒤의 경우는 반드시 내가 주도권을 가져갈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일을 넘겨받는다면 책임도 분명히 한다. 내 지시로 진행했다고 나중에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향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결정 전에 듣는다. 훗날 사과할 각오는 지금 타인에게 불이익을 주어도 된다는 동의를 얻은 것과 다르다.

판단을 반복해서 빼앗기는 쪽이라면 체면 문제만이 아니라 일의 조건으로 경계를 말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정하는지, 공동 판단이 필요한 곳은 어디인지, 위험을 어디에 보고하는지다. 전문가도 모든 검증을 간섭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신뢰할 만한 분담에는 능력과 질문이 함께 남아 있어야 한다.

7. 수단에서 생활 조건으로

제29장과 제64장은 강제로 조작하고 움켜쥐는 일에 대한 경계를 말했다. 내 손에 들어오면 반드시 좋아진다는 확신을 한 번 풀 필요가 있다. 대상이 사람의 삶이라면 더욱 그렇다.

제72장의 위압에서 이 장의 죽임으로 오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벌을 더 무겁게 해야만 유지되는 질서는 애초에 사람을 어떻게 살게 하는가.

다음 장은 굶주림과 다스림의 어려움과 살아갈 부담을 윗사람의 행위에서 다시 묻는다. 사람에게 더 견디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무게를 어떻게 줄일지로 시선이 옮겨 간다.

도끼를 받기 전에 그것이 어디로 떨어질지 생각한다. 책임은 끝난 일에 자기 이름을 쓰는 데만 있지 않다. 움직이기 전에 다칠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그 자리에 넣는 일에도 있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제9논고와 Zenodo 판을 참고할 수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 제8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