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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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60장 · 총 81장

작은 생선을 자꾸 뒤집지 않는다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治大国若烹小鲜,以道莅天下。其鬼不神?非其鬼不神也。其神不伤人也?非其神不伤人也,圣人弗伤也。夫两不相伤,故德交归焉。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돌보고 있다고 생각한 손

작은 생선을 굽고 있으면 자꾸 손이 간다. 익었을까, 눌어붙지는 않았을까, 밑은 어떨까. 조금 들어 올리고 자리를 바꾸고 다시 뒤집는다. 내버려 둔 것도 아닌데 살은 점점 부서진다.

부족했던 것은 관심이 아니다. 무언가 움직이는 것으로만 관심을 확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살피는 시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 불안을 달랠 때마다 생선에 손이 닿는다.

‘治大國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 ‘烹’은 넓게 조리함을 뜻하므로 고문이 반드시 오늘날의 프라이팬에서 굽는 장면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살이 연한 생선을 거듭 뒤집는 부엌 풍경은 이 비유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된다.

물론 불을 보지 않고 떠나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타려 하면 조치하고 필요한 준비는 해 둔다. 어려운 것은 돌봄을 그만두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손길을 줄이는 일이다. 팀을 이끌거나 아이를 키우고 관계를 돌볼 때도 같은 어려움이 있다.

2. 안정은 방치와 다르다

‘治大國若烹小鮮,以道莅天下.’ 왕필의 주석은 작은 생선의 비유를 어지럽히지 않는 일로 읽는다. 규모가 클수록 위에서 떠올린 작은 생각이 많은 사람의 하루를 크게 바꾼다. 계획을 다시 짜고 새로 배우며 생활에서 의지하던 전제를 잃는 사람도 있다.

어제는 속도를 요구하고 오늘은 형식을 고치라며 내일은 방향 자체를 바꾼다. 모든 지시에는 나름의 이유가 붙는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시작할수록 다음 변경에서 잃을 것이 늘어난다. 결국 가장 안전한 선택은 다음 지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된다.

‘도(道)에 따라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을 여기서는 세상을 손안의 재료로 다루지 않는 태도로 읽는다. 무언가 이루어지고 회복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판단에도 자리를 만든다. 관리자가 책임진다는 것과 모든 움직임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다르다.

57장은 규칙과 개입이 늘리는 부담을 물었다. 58장은 날카로운 감시가 사실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을 생각했다. 59장은 성과를 얻으려고 삶의 기반을 다 써 버리지 말라고 했다. 결과를 바라면서 그 결과가 자랄 조건을 거듭 망가뜨리지 말라는 흐름이 이어진다.

안정시킨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현상을 유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잘못된 방침은 고치고 현재의 피해는 멈추게 하며 아이가 위험하면 개입한다. 줄이고 싶은 것은 근거 없는 변경과 통제하는 쪽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움직임이다.

좋은 관리자는 방향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의견을 받을 통로를 마련한다. 바꿀 때에는 왜 바꾸며 무엇을 지킬지 설명한다. 그 밖의 시간에는 사람들이 관리받고 있다는 증거를 계속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에 무엇을 의지할 수 있을지 알기 때문에 자기 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3. 귀신의 이야기가 우리의 손으로 돌아온다

‘其鬼不神?非其鬼不神也。其神不傷人也?非其神不傷人也,聖人弗傷也.’ 이 연재의 본문은 첫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을 질문으로 나눈다. 귀신에게 신묘한 작용이 없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작용이 사람을 해치지 않는가. 단순히 그런 것이 아니라 ‘聖人弗傷’이라는 말로 나아간다. 이렇게 문장을 나누는 방식도 채택한 독해의 일부이며 고문에 유일한 문장 부호가 새겨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귀신은 옛사람이 화복과 질서를 이해하던 세계의 일부였다. 여기에 적혔다고 현대의 의미에서 그 존재가 입증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독자가 잠재적 위협과 다른 사람의 악의, 예측하기 어려운 힘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옛 세계 전체를 같은 것으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현대를 향한 유비다.

이 연재의 독해에서 받아들일 질문은 세상과의 관계를 언제나 서로 해치는 구도로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밖에 해를 끼칠 힘이 있음을 인정한 뒤, 내가 적의를 더하고 작은 차이를 승부로 바꾸고 있지는 않은지 본다. 위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늘리지 않아도 될 충돌이 있다.

동시에 널리 전하는 본문의 ‘聖人亦不傷人’이라는 읽기도 중요하다. 왕필의 주석은 성인 쪽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면 질문은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한 개인의 태도뿐 아니라 힘을 가진 쪽의 책임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힘이 바로 내 권한은 아닌가. 내가 조용하다고 여기는 곳에서 다른 사람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지 않은가.

‘聖人弗傷’을 성숙한 사람은 공격받지 않는다는 약속으로 만들면 책임이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온화해도 공격받는 사람이 있고 사고는 성격을 가리지 않는다. 보호하고 도움을 구하고 침해에 저항하고 위험한 자리를 떠나는 것은 적의를 불필요하게 더하지 않는 일과 함께할 수 있다.

50장의 ‘無死地’와 55장의 갓난아이도 만들지 않아도 될 위험에 눈을 돌리게 하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아기는 다칠 수 있고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도 보호가 필요하다. 선의는 보호받아야 할 것이지 이미 그 사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힘은 아니다.

4. 해를 줄일 때 돌아올 수 있는 것

‘夫兩不相傷,故德交歸焉.’ 양쪽이 서로 해치지 않으므로 덕이 함께 돌아온다. 고문의 문맥에서 양쪽은 귀신과 성인의 측면에 관계된다. 왕필은 두 쪽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거듭 읽는다. 이를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으로 바꾸어 양쪽이 같은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 사이로 넓혀 보면 서로를 소모시켜 자기를 안정시키지 않는 실천을 생각할 수 있다. 실수를 서로 탓하는 조직에서는 능력의 상당 부분이 자신을 지키는 데 쓰인다. 회의에서는 먼저 책임을 넘길 곳을 찾고 메일에서는 증거를 남기며 어려운 일은 휘말리기 전에 멀리한다.

누군가 책임을 맡고, 실수를 일찍 알려도 모욕받지 않으며, 고칠 절차가 마련되면 다른 움직임이 생길 수 있다. 나쁜 소식을 숨기기보다 전하고 도움을 구하며 원인을 함께 조사한다. 경계하는 데 쓰던 주의가 실제 일로 돌아갈 자리가 생긴다.

이를 ‘德交歸’에 겹쳐 볼 수 있다. 그러나 분위기가 화목해지면 인재와 재산과 행운이 자동으로 모인다는 뜻은 아니다. 신뢰에는 반복해서 지켜지는 약속이 필요하고 공정에는 실제 배분과 절차가 필요하며 상처 난 곳에는 회복이 필요하다. 다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해가 없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서로 해치지 않는 관계는 혼자 완성할 수 없다. 한쪽이 절제하는데 다른 쪽은 계속 침해한다면 온화한 쪽에 끝없는 양보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피해를 멈출 수 있고 이견을 말할 수 있으며 경계와 떠날 길이 있는 것이 함께 살아갈 조건이다.

51장의 길러도 소유하지 않는 일, 59장의 다 써 버리지 않고 기르는 일이 여기서 이어진다. 돌아오는 것은 누군가의 소유물로서의 덕이 아니다. 신뢰와 주의, 일할 능력, 다시 사람과 관계 맺으려는 마음이다. 그것들이 살아 움직일 조건을 반복해서 만드는 것이다.

5. 다시 손을 내밀기 전에

무엇에 개입하고 싶을 때 새로운 사실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내 속도로 진행되지 않아 불안한 것인지를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이 변경으로 무엇이 나아지고 누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가. 답에 따라 바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고 조금 더 지켜볼 수 있음을 알 수도 있다.

다음에는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본다. 반대한 사람을 곧바로 적의 편에 넣고 있지는 않은가. 불쾌한 한마디에 더 무거운 모욕으로 답하지는 않는가. 한 번만 불필요한 공격을 덜해도 아직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남을 때가 있다.

이는 방비를 풀라는 요구가 아니다. 실제 위협을 가려내고 필요한 기록을 남기며 도움을 구하는 일은 계속해도 된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일과 이미 존재하는 침해를 알아보는 일은 각각 필요하다.

책임을 맡은 사람이라면 마지막으로 자기 힘이 어디를 향하는지 물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살아갈 조건을 만드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계속 내 힘에 적응하게 만드는가. 아이는 부모의 성공을 보여 줄 작품이 아니며 팀은 상사의 능력을 전시할 도구가 아니다. 나라는 더더욱 다스리는 사람의 편의대로 뒤집어도 되는 한 접시가 아니다.

생선 곁으로 돌아간다. 불은 켜져 있고 지켜보는 사람도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열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살에 거듭 손대지는 않는다. 필요할 때는 움직일 수 있게 하면서 기다려야 할 시간에는 기다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모두 좋아진다는 결론은 아니다. 내 손으로 더하는 혼란과 해를 조금 줄인다. 그만큼 자랄 힘을 가진 것이 자기 조건 안에서 조금 더 온전하게 자랄 자리가 생긴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일곱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