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 버리기보다 길러 두기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治人事天莫若啬,夫唯啬,是以早服。早服是谓重积德,重积德则无不克,无不克则莫知其极,莫知其极可以有国,有国之母可以长久,是谓根深固氐长生久视之道也。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쉬는 날은 늘 다음 일 너머에 있다
이것만 끝나면 쉬자. 하나를 끝내면 다음 일이 이미 시작되어 있다. 마감 전날에만 하던 밤샘이 평소의 방식이 되고 조금 빈 시간에도 밀린 일을 넣는다. 쉬는 날을 잃었다기보다 계속 미래로 옮기는 셈이다.
다 써 버리는 것은 노력의 증거로 보이기 쉽다. 늦게까지 남고 바로 답하며 부탁받은 일을 모두 받아들인다. 하지만 오늘의 성과만 보면 그것을 얻으려고 내일의 무엇을 가져다 썼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59장의 입구에는 ‘嗇’이라는 글자가 있다. ‘治人事天,莫若嗇.’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껴 기름만 한 것이 없다. 여기서는 함부로 다 써 버리지 않고 기르며 남기는 방향으로 읽는다.
밭을 떠올려 보자. 올해 얼마나 거둘 수 있는지만이 아니라 내년에도 무엇이 자랄 땅인지 본다. 흙을 쉬게 하고 돌보며 필요한 것을 보충한다. 기르는 시간은 수확이 없는 빈 시간이 아니다.
사람과 조직에도 같은 질문을 가져올 수 있다. 이 일을 마친 다음 무엇이 남는가. 다시 일할 힘만이 아니라 음식을 맛보고 사람과 이야기하며 자기 생활을 살 여지가 남는가. 장은 그 질문에서 뿌리를 깊게 하는 길로 나아간다.
2. 필요한 것까지 아끼지는 않는다
‘治人事天’에는 다스림과 하늘을 섬겨 그 작용을 따르는 뜻이 들어 있다. 여기서는 밖으로 책임을 맡는 일과 자기 삶을 기르는 일로 넓혀 생각한다. 다만 ‘事天’이 현대의 자기 관리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생활을 넘어서는 조건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넓이도 남겨 두어야 한다.
‘색(嗇)’을 모든 지출과 사용을 꺼리는 인색함과 같게 만들면 뜻이 뒤집힌다. 도구를 고치지 않고 필요한 임금을 주지 않으며 식사와 돌봄까지 줄이면 당장의 지출은 줄어도 지속할 조건은 손상된다. 사람을 더 배치하고 교대할 수 있게 하며 쉴 시간을 마련하는 데 자원을 쓰는 일이 기르는 일이 될 수 있다.
‘夫唯嗇,是以早服.’ 이 연재는 ‘早服’을 일찍부터 쓰임을 절제하고 기르는 방향으로 읽는다. ‘服’을 그저 엎드린다는 뜻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왕필 주는 늘 그러한 바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하상공 주는 천도를 먼저 얻는 쪽으로 풀이한다. 옛 주석의 차이를 남겨 둔 채 여기서는 이르다는 뜻을 일상의 시간으로 가져온다.
한계가 와서 처음 멈추는 대신 아직 조정할 수 있을 때 일정을 돌아본다. 44장의 멈출 줄 앎, 56장에서 한 가지에 전부를 맡기지 않던 태도, 58장의 변화에 응할 여지가 여기서는 생활의 리듬이 된다.
그러나 그 여지를 빼앗긴 사람도 있다. 생계와 돌봄, 직장의 힘 관계 때문에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한다. 색은 그런 사람에게 절도를 권하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을 배분할 수 있는 쪽에도 왜 누군가를 다 써 버려야만 유지되는 구조인지를 물어야 한다.
3. 두터움은 반복되는 돌봄에서 생긴다
‘早服是謂重積德.’ 일찍부터 기르는 것을 덕을 거듭 쌓는다고 한다. 적덕을 선행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계좌에 점수가 더해지는 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이 장에서는 앞으로도 생활을 이어 갈 조건이 조금씩 두터워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충분히 쉰 다음 날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차분히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일정에 빈틈이 있는 팀은 급한 문제가 생겨도 매번 같은 사람의 희생으로 구멍을 메우지 않아도 된다. 평소에 응답이 있는 관계에서는 의견이 달라질 때도 곧바로 상대가 적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저축이 아니다. 기술은 연습으로,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일로, 땅은 알맞은 손질로 길러진다. 덕을 체력이나 돈, 충전량 가운데 하나로 줄이면 서로 다른 돌봄의 방식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기 여유만 쌓으면서 다른 사람을 계속 소모시키는 것은 이런 두터움과 다르다. 누군가를 도우려고 시간을 쓰는 일이 서로 의지할 관계를 기를 수도 있다. 자원을 쓰지 않고 가두는 대신 사용할 때도 어떻게 회복되고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본다.
51장의 ‘德畜之’는 생명이 길러지는 데 눈을 돌렸다. 밭은 한 번 쉬게 했다고 영원히 비옥해지지 않고 사람도 하룻밤 잤다고 늘 활기차지는 않다. 쌓이는 것은 돌봄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보다 돌봄을 반복할 습관과 관계다.
4. 여력이 있으면 대답이 하나만 남지는 않는다
‘重積德則無不克,無不克則莫知其極.’ 덕을 두텁게 쌓으면 이겨 내지 못할 것이 없고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고문은 길러진 힘을 큰 이상으로 그린다. 제대로 축적한 사람은 어떤 질병과 재난, 현실의 제약도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아니다.
일상으로 옮기면 여력이 늘리는 것은 승리보다 먼저 선택지다. 문제가 왔을 때 도망가거나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조사하고 의논하고 분담을 바꾸며 이번에는 계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할 시간과 연결이 남아 있는 것이다.
한 사람만 모든 것을 아는 팀은 그 사람이 쉬기만 해도 흔들린다. 평소 지식을 나누고 서로 대신할 수 있게 준비했다면 갑작스러운 변화를 받아 낼 자리가 늘어난다. 두터움은 영웅이 얼마나 버티느냐만이 아니라 영웅 한 사람에게 전부 기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莫知其極’에서 밑바닥을 숨겨 상대를 겁주는 기술을 꺼낼 필요는 없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아도 어려울 때 아직 생각할 방법이 있고 응답해 줄 사람이 있다. 그 깊이는 겉으로 꾸민 강함과 다르다.
그래도 한계는 있다. 도움을 구하고 부담을 줄이며 물러나는 것이 가장 나은 응답일 때도 있다. 여력이 부족한 사람이 덕도 부족한 것은 아니다. 조건에 따라 쌓아 둘 수 있는 것이 다르다. 기르는 지혜는 이 차이를 보지 않고 사람을 채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택할 자리를 넓히기 위해 있다.
5. 커질수록 뿌리를 놓치지 않는다
‘莫知其極,可以有國;有國之母,可以長久.’ 논의는 나라를 지니고 유지하는 데로 나아간다. 오늘의 큰 책임에 겹쳐 보면 한 번 힘차게 시작하는 기세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생활을 이어 갈 조건을 지키는 능력이 요구된다.
축적이 많은 사람에게 통치할 권리가 저절로 생긴다는 뜻으로 읽지 않는다. 재산과 체력이 있다고 다른 사람을 소유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조직에 적용할 때 보아야 할 것은 규모의 매력보다 책임의 무게다. 사람을 공동 사업에 초대한다면 그것을 유지하는 비용을 누구에게 지우는지 살펴야 한다.
‘有國之母’는 시선을 규모에서 근원으로 되돌린다. 52장의 어머니와 자식을 떠올릴 수 있다. 가지와 잎이 뻗으면 뻗은 만큼 물과 흙을 생각한다. 왕필도 여기서 어머니를 나라가 안정될 수 있는 근본으로 읽는다.
회사 매출은 커지는데 고객과의 신뢰는 얇아질지 모른다. 조직의 명성은 높아지는데 받치고 있는 사람은 지쳐 가고 교대할 사람도 자라지 않을지 모른다. 밖으로의 확장만 보면 이런 변화는 한동안 가려진다.
뿌리를 지키는 일은 초심이라는 말을 내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가. 자원을 공정하게 나누는가. 문제를 알리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가. 일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 받칠 수 있는가. 뿌리는 일상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약속과 배치 속에 있다.
6. 오래 사는 것과 죽지 않는 것
‘是謂根深固氐,長生久視之道也.’ 뿌리를 깊게 하고 밑동을 튼튼하게 하는 것, 그것이 장생구시의 길이라고 한다. 장의 긴 연결은 여기서 나무의 모습으로 모인다.
장생구시에는 실제로 오래 사는 일과 몸을 기르는 전통의 의미도 있다. 전부 추상적인 지속으로 바꾸어 옛사람은 장수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정확하지 않다. 여기서 더하는 것은 살아갈 조건을 덜 손상시키려는 독해이지 불로불사의 방법을 꺼내는 독해가 아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도 폭풍에 쓰러질 수 있다.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도 병들고 늙는다. 그 결과에서 거꾸로 그 사람의 수양이 부족했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돌봄이 필요한 것은 모든 우연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한정된 조건 속에서도 자랄 가능성을 스스로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연결을 다시 따라가 보자. 색은 소모를 절제하고 조복은 그 절제가 일찍부터 작용하게 한다. 중적덕은 돌봄이 남기는 두터움이다. 무불극과 막지기극은 그 두터움이 넓히는 대응의 가능성을 크게 그린다. 가이유국에서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고 유국지모에서 그 책임은 다시 뿌리와 연결된다. 그 끝에 근심고저와 장생구시의 이미지가 놓인다.
도착점은 언제까지나 일하는 기계가 아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을 포함해서 삶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휴식과 놀이, 누군가와 그저 함께 있는 시간까지 다음 성과의 연료로 만들 필요는 없다.
7. 내일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첫째로 힘을 다한다는 일의 끝을 다시 볼 수 있다. 지쳐 쓰러질 만큼 하지 않았으면 진심이 아니었다고 정하지 않는다. 집중해서 일할 시기가 필요하더라도 그 계획 안에 끝과 회복, 교대가 보이게 한다.
둘째로 조정을 조금 앞당긴다. 모두가 버틸 수 없게 된 뒤에 업무량을 의논하기보다 아직 말할 수 있을 때 말한다. 망가진 뒤에만 고치지 않고 평소에 손본다. 당장 큰 여유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확보할 수 있는 지지대 하나를 찾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셋째로 무엇이 두터워지고 무엇이 얇아지는지 본다. 바쁜 시간이 지난 뒤 기술과 신뢰, 다음에도 쓸 수 있는 방법이 남았는가. 아니면 피로만 늘었는가. 눈에 보이는 성과가 늦게 나오는 일도 있기에 가끔 다른 잣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 일이 커질수록 그 기반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족의 지지와 동료의 신뢰, 몸의 작용은 끝없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키려면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 이번에는 보태지 않겠다는 판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휴식에는 그 자체의 가치가 있다. 내일 생산량이 늘어난다고 증명해야만 오늘 쉴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다음 납품만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밭은 내년에도 작물을 길러 낼 터전이다. 우리에게도 내년의 생활이 있다. 덜어 내는 것은 삶을 작게 좁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눈앞의 불을 키우려고 앞으로의 생활까지 미리 태워 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자세한 주석과 본문 비교는 일곱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