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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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知道德經解 · 한국어 편집·재구성판
제50장 · 총 81장

삶을 지키느라 삶이 좁아질 때

秦汉(대지) · Han Qin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出生入死。生之徒十有三,死之徒十有三,而人之生动皆之死地之十有三,夫何故也?以其生生也。盖闻善执生者,陵行不遇兕虎,入军不被甲兵。兕无所揣其角,虎无所措其爪,兵无所容其刃,夫何故也?以其无死地焉。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 장의 바탕이 된 논문 읽기 (영어·중국어)

1. 잘 살기 위한 계획으로 하루가 찬다

몸을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건강에 관한 글을 읽고 기록을 적고 남이 권한 것을 시험하려 했다. 그런데 어느새 매일 해야 할 항목이 늘고 하나만 못 해도 불안하다. 먹고 쉬는 시간마저 누리기보다 제대로 실행했는지 확인하는 과제가 된다.

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실수를 막으려고 모든 것을 직접 확인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오는 일을 다 맡는다. 미래를 안전하게 하려고 오늘의 여유를 조금씩 내준다. 모든 계획에 삶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는데 삶 자체는 계속 계획 뒤로 밀린다.

50장은 이 역설 앞에 서게 한다. 살아갈 것을 지키려는 행동이 어떻게 살아갈 힘을 소모하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지친 사람을 찾아 너무 힘을 준다고 재판하려는 질문은 아니다. 필사적으로 지키는 사람에게는 잃어버린 경험과 실제로 부족한 보장이 있을 때가 많다. 진정하라고 하기 전에 그 방식이 여전히 당사자를 보호하는지, 혼자 떠안지 않아도 되는 부분은 없는지 보고 싶다. 쥔 손을 나무라기보다 무엇이 그 손에 놓여 있는지 살피는 데서 시작한다.

2. 숫자로 운명을 나누지 않는다

장은 ‘出生入死’로 시작해 ‘生之徒十有三,死之徒十有三,而人之生动皆之死地之十有三’으로 이어진다. 삶과 죽음이 맞닿고 그 사이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반복되는 십유삼은 눈에 띄지만 여기를 간단한 인구 통계로 만들면 읽기는 일찍 좁아진다.

왕필은 열에 셋으로 읽는다. 반면 하상공은 아홉 구멍과 네 관문에 연결해 열셋으로 읽는다. 옛 해석부터 차이가 있었다. 뒤의 풀이를 현대 의학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숫자의 뜻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아 두자는 것이다.

열에 셋을 택해도 타고나서 오래 사는 삼 할, 노력해도 짧게 사는 삼 할, 스스로 망치는 삼 할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남은 일 할을 결코 다치지 않는 고수로 만드는 근거도 없다. 병과 수명을 그 사람의 지혜나 마음가짐에 대한 성적표로 삼을 수는 없다.

나는 세 번째 구절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살아가려고 행동하는데 그 행동이 위험한 곳으로 자신을 데려간다. 고정된 종류의 인간보다 누구나 맞을 수 있는 국면으로 읽는다. 어제는 쉼의 중요성을 알던 사람이 오늘은 퇴보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무리한 일을 맡을 수도 있다.

어떤 운명의 무리에 속하는지보다 지금의 방식이 어디를 향하는지 묻는 것이다. 앞의 질문에는 답을 기다리기 쉽지만 뒤의 질문에는 의논하고 도움받고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남는다.

3. 보호가 새로운 부담이 된다

‘夫何故也?以其生生也.’ 왜 그러한가? 생을 살리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생은 삶을 유지하고 풍부하게 하려는 관심에 관한 말이며, 여기서는 그 관심이 끝없이 힘을 더하는 모습이 될 때를 생각해 본다.

건강을 돌보고 필요한 진료와 보살핌을 받는 일까지 물리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거를 확인하지 않은 건강법과 출처 모를 제품을 잇달아 더해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게 되었다면 전문적인 판단을 구할 의미가 있다. 정보 흐름이 날마다 불안거리를 정하게 하기보다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정리하는 것이다. 건강을 지키려는 추가가 평범하게 먹고 쉬고 살 시간을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본다.

과도한 업무 통제에서는 다른 순환이 생긴다. 내가 확인해야 안심이 되니 맡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판단할 기회가 줄고 모든 것이 내게 돌아온다. 그 모습을 보고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은 되었지만 쉴 수 있는 사람은 아니게 된다.

기회를 잡을 때에도 몸과 시간은 마지막까지 잘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새 사업은 매력적이고 예전 일도 놓기 아깝다. 모임에는 인맥이 있지만 쉬는 오후에는 성과가 없는 듯하다. 기회가 진짜여도 동시에 감당할 양에는 한계가 있다. 46장의 충분하냐는 질문은 여기서 그 기회들이 약속했던 생활을 누릴 힘이 남아 있느냐는 질문이 된다.

안전을 위한 비축과 경계도 현실의 불안에서 나올 수 있다. 대비를 버리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추가한 방어가 위험을 줄이는지, 생활 전체를 경계하는 시간으로 바꾸는지를 도움받으며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 환경이 불안정하다면 안심할 조건을 늘리는 일도 함께 있어야 한다.

삶을 지키려는 마음이 나쁜 것이 아니다. 수단이 무거운 짐이 되었을 때 이렇게 불안해하는 나는 잘못됐다는 짐까지 더하지 않도록 수단 쪽을 다시 보는 것이다.

4. 위기의 영웅이 아니어도 된다

‘盖闻善执生者,陵行不遇兕虎,入军不被甲兵.’ 삶을 잘 지키는 이는 땅을 걸으며 무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군대에 들어가도 무기에 다치지 않는다고 한다. 위험이 그에게 손을 댈 수 없는 듯한 강한 이상적 이미지다.

이 이미지에서 일상으로 가져오고 싶은 것은 위기에 빠진 뒤의 멋진 대응만을 살아가는 능력으로 삼지 않는 태도다. 벼랑 끝에서 버틸 힘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위험을 일찍 확인하고 아예 끝으로 밀려나지 않을 준비에도 다른 가치가 있다.

나서기 전에 조건을 확인한다. 일을 맡기 전에 일정에 여유가 있는지 본다. 함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누가 무엇을 책임질지 이야기한다. 모두 극적인 구조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 걱정이 많고 소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준비 덕분에 나중의 대소동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잘 사는 사람은 언제나 안전한 길을 안다고 말하면 이상적 이미지를 현실의 사람을 비난하는 도구로 바꾸게 된다. 길의 사정을 모두 예측할 수 없고 전쟁 속에서는 길을 고를 자유조차 없을 수 있다. 운과 자원, 사회적 조건과 남의 행동도 결과를 좌우한다. 다친 사람이 지혜롭지 못했다고 거꾸로 계산할 수는 없다.

삶을 잘 지키는 일은 그래도 중요하다. 위험을 없애지 못한다고 줄일 수 있는 위험을 줄일 가치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구하고 폭력에 저항하고 지키기 위한 용기를 어리석다고 부르는 것도 아니다. 피할 수 있는 상처 안으로 강함을 증명하려고 다시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5. 벽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兕无所揣其角,虎无所措其爪,兵无所容其刃.’ 뿔로 받을 곳, 발톱을 둘 곳, 칼날을 넣을 곳이 없고 마지막에는 ‘以其无死地焉’이라 한다. 나는 과장된 힘을 가진 이 이미지에서 한 번의 실패로 조정할 여지까지 잃는 자리에 스스로를 고정하지 않는다는 실천적 읽기를 얻는다. 경문의 뜻을 호랑이가 있는 길을 미리 알아 다른 길로 갔다는 이야기로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위태로운 담장 밑에 서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맹자』 「진심상」의 원문은 ‘是故知命者,不立乎巖牆之下’이다. 익숙한 ‘君子不立于危墙之下’는 그대로의 인용은 아니다. 담장이 위험함을 안다면 실제로 무너질 때까지 서 있을 필요는 없다는 방향에서 이 장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

돈에 관해서는 상황이 흔들려도 제때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 잘되지 않았을 때 무엇이 남는지 본다. 빌린 힘으로 거래를 키우는 구조는 결과가 불리해질 때 부담도 크게 할 수 있다. 여기의 질문은 특정 투자 대상을 고르는 법보다 한 번의 변화가 생활과 재정비할 여지까지 가져가는 구조인지에 있다.

갈등에서는 매번 화해를 잘하는 기술뿐 아니라 반복되는 위협과 모욕, 강요를 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 떠나기 어렵다면 믿을 만한 사람과 지원받을 길을 찾을 수 있다. 위험이 보인다는 것과 그곳을 나갈 조건이 있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 내 능력 부족으로 전부 떠안을 필요는 없다.

사업에서는 모든 약속을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한 결과에 얹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사정이 달라졌을 때 규모와 순서를 바꿀 수 있다면 매번 회사의 생존을 건 영웅적인 수습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화려한 역전보다 역전극이 필요 없게 하는 준비에 관심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위태로운 담장 밑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떠나라는 한마디만 아니라 안전한 주거, 노동 보호, 의지할 창구다. 피하는 지혜를 개인 능력으로만 만들면 누구에게 물러날 길이 있고 누구에게 아직 없는지 놓친다. 위험에서 벗어날 조건을 만드는 일도 삶을 보호하는 일에 포함하고 싶다.

6. 삶을 지키는 두 방식

이제 대조는 오래 사는 사람과 짧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삶을 지키려는 두 가지 힘의 사용법이 된다. 한쪽은 생활에 절대 안전을 요구한다. 불확실하면 통제를 늘리고 잃을 가능성이 있으면 더 세게 쥔다. 방어가 늘수록 유지할 일도 늘고 보호받아야 할 본인은 보이지 않게 된다.

다른 쪽은 위험이 남음을 인정하며 다룰 수 있는 부분을 성실하게 다룬다. 일정을 세우고 같은 일정에 쉴 곳도 둔다. 나쁜 경우를 생각하지만 매일을 최악의 사태에 대한 예행연습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 계획에 넣고 혼자 버티는 것만 성공이라고 하지 않는다.

둘 다 살고 싶어 한다. 뒤의 사람이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방어를 더하면 누가 도움받는지, 비용이 막으려는 일보다 무거워진 것은 아닌지 다시 물을 수 있는 것이다.

44장의 지족과 지지는 여기서 장수 처방이 아니라 일상에 여유를 남기는 판단으로 작용한다. 46장의 반드시 얻고 싶은 것에는 영원한 안전도 들어갈 수 있다. 그 목표가 지금의 방식을 고칠 권리까지 가져가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싶다.

지켜야 할 날이 있다. 지금까지 지키던 방식을 멈춰야 할 날도 있다. 어느 쪽을 영원히 옳은 자세로 만들기보다 지키고 싶었던 생활에 계속 답을 묻는 것이다.

7. 보호 안으로 생활을 돌려놓는다

두 질문을 가져가자. 첫째, 나를 위한 계획 가운데 나를 점점 힘들게 하는 것이 있는가? 줄일 수 없는 업무량, 더 세밀해지기만 하는 일상의 과제, 무엇이든 혼자 푸는 버릇일 수 있다. 하나를 골라 처음에는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지금도 도움이 되는지, 다른 방법과 함께 감당할 사람이 없는지 생각한다.

둘째, 이미 보이는 위험을 그때 가서 해결하겠다며 미루고 있지는 않은가? 미래를 전부 계산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맡을지 미리 확인하고 남길 수 있는 여유는 남기며 필요한 도움을 일찍 찾는 것이다. 매번 견뎌 내는 나에게 거는 것보다 조정할 길을 하나 갖는 편이 현실적일 때가 있다.

두 질문은 서로 반대가 아니다. 과한 경계를 늘리기보다 실제 도움이 되는 대비로 힘을 돌린다. 동시에 대비만을 위해 생활 전체를 내주지 않는다. 더할 것과 그만둘 것은 사람마다 달라도 된다.

그래도 병과 사고와 상실은 생길 수 있다. 한 장을 이해했다고 면제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불필요하게 나를 소모하는 일이 하나 줄고 도움을 구할 길이 하나 늘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고통을 전부 자기 책임으로 돌리지 않으면서도 바꿀 수 있는 부분을 바꿔도 된다.

처음의, 삶을 지키는 일정으로 하루가 찬 사람에게 돌아가자. 오늘 한 끼는 개선 과제로 삼지 않고 맛보는 시간으로 둘 수 있을지 모른다. 쉼의 유용성을 입증하지 않고 쉬고, 도움 요청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삶을 잘 지킨다는 것은 살 자리가 없어질 만큼 방어를 두껍게 하는 일이 아니다. 지키는 동안에도 문을 열어 지키고 싶던 생활을 다시 안으로 맞는 일일 것이다.


자세한 주석과 이 연재의 채택 본문 비교는 여섯 번째 논고와 Zenodo판에 있다. 앞선 논고: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