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면 울어야 한다
이 장의 중국어 원문
백서 정리본 · 이 주석에서 채택한 중국어 본문
夫兵者,不祥之器也,物或恶之,故有欲者弗居。君子居则贵左,用兵则贵右,故兵者非君子之器也。兵者不祥之器也,不得已而用之。铦袭为上,勿美也,若美之,是乐杀人也。夫乐杀人,不可以得志于天下矣。是以吉事上左,丧事上右,是以偏将军居左,上将军居右,言以丧礼居之也。杀人众,以悲哀泣之,战胜,以丧礼处之。
판본과 구두점에 관하여
저자의 『道德经注·君子不器』에서 채택한 백서 정리본을 따릅니다. 갑본과 을본을 함께 참고하고 글자를 교정하거나 보충한 본문으로, 어느 한 사본을 글자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장 번호는 통행본을, 구두점은 이 주석을 따릅니다. 읽는 언어를 바꾸어도 경문의 중국어 표기는 바뀌지 않습니다.
1. 먼저 손자를 내려놓자
이 장을 읽는 동안만큼은 ‘어떻게 이길까’를 잠시 내려놓자.
『손자』는 적의 꾀를 치는 일, 외교 관계를 깨는 일, 군대를 공격하는 일, 성을 공격하는 일을 구별한다. 싸우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고,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길로 섣불리 들어서지 말라는 경고로 읽을 수 있다. 31장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바꾼다. 승패는 이미 정해졌다. 이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의 집으로 가 보자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와 손자 중 누가 먼저였는지 확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꾀나 외교를 쓰면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말도 아니다. 옛 전쟁에는 완력만 있었고 후대 주석가들은 모두 병법 때문에 눈이 멀었다는 역사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다. 질문이 다르다. 승리는 무엇을 가려도 되는가.
‘손실’, ‘대가’, ‘불가피한 희생’은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다. 식탁의 빈자리는 그렇게 넘기기 어렵다. 버려진 밭은 다시 일굴 수 있다. 지도의 색이 바뀌었다고 아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무기는 상서롭지 않은 도구다. 그 사용을 아름다운 일로 만들지 마라. 이겼어도 애도할 자리를 없애지 마라. 이 장은 거기를 떠나지 않는다.
2. 무기는 상서롭지 않은 도구다
무기란 상서롭지 않은 도구다. 이를 싫어하는 존재들이 있으니, 도에 뜻을 둔 이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은 이 연재가 채택한 ‘有欲者’의 해석이다. 논쟁 없는 유일한 뜻이라고 내세우지는 않는다. ‘物或惡之’ 또한 모든 존재가 예외 없이 똑같은 표를 던졌다는 증명으로 넓힐 필요가 없다. 먼저 파괴를 겪는 쪽에서 무기를 보라는 요청으로 읽고 싶다.
무기는 정교할 수 있다. 가진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승리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을 다치게 하는 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편이 이겼다’는 이유로 흉기가 길한 물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물이 밟히고 농사가 끊기고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난다. 이는 승리의 보고 뒤에 덧붙이는 주석이 아니다. 승리하고 있는 바로 그동안 벌어지는 일이다.
앞선 장들과 주제를 이어 볼 수 있다. 28장은 박이 흩어져 그릇이 되는 일을, 29장은 천하라는 신령한 그릇을 말한다. 30장은 무력으로 천하에 강함을 강요하는 일을 제한하고, 31장은 무기를 불길한 도구라고 부른다. 다만 네 장마다 ‘器’가 한 번씩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30장 경문에는 그 글자가 없다.
도구가 있다는 것과 써도 된다는 것은 별개다.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해야 할 이유까지 생기지는 않는다.
3. 전쟁은 길한 일이 되지 않는다
이 장에서 군자는 평소 왼쪽을 높이지만 군사에서는 오른쪽을 높인다. 경문이 제시하는 의례의 배치에서 길한 일은 왼쪽, 상례는 오른쪽에 놓인다. 무기를 드는 순간 장면은 애도의 쪽으로 옮겨 간다.
모든 시대의 모든 의례에서 왼쪽은 생명이고 오른쪽은 죽음이었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장 안에서 벌어지는 전환이다. 평소 존중받던 사람도 전쟁에 나서면 축하의 빛을 그대로 두르고 있을 수 없다.
이 페이지가 채택한 경문 자체에도 ‘부득이해서 쓴다’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이 장이 모든 현실의 난제를 예외 없는 금지 하나로 해결했다고 요약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어려운 요구가 남는다. 부득이하다고 판단한 일도 그 때문에 좋은 일이 되지는 않는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말로 설명할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 누가 그렇게 판단했는가. 어떤 대안을 살폈는가. 누가 결과를 감당하는가. 전투가 시작된 뒤에도 질문은 남는다.
4. 살육을 볼거리로 늘이지 말 것
銛襲為上,勿美也。
여기서 채택한 본문은 ‘銛襲’이고 전래본에서는 흔히 ‘恬淡’을 만난다. 출토 문헌의 글자를 어떻게 읽고 빌려 쓴 글자를 어떻게 다룰지는 따로 검토해야 한다. 글자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한쪽은 전술, 다른 쪽은 후대가 전술을 마음 수양으로 바꾼 결과라고 확정할 수 없다.
앞선 글은 ‘銛襲’을 날카롭고 빠르게 끝내는 일로 풀면서 『설문해자』의 ‘臿屬’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이는 삽 종류를 가리키는 풀이여서, 그 자체로 속전속결이라는 군사 원칙을 증명하지 못한다. 살육을 오래 끌지 말자는 관심은 남기되 확정된 훈고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빠르다고 사상자가 적은 것도 아니다. 성급한 공격이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 무엇이 실제로 상처를 줄이고 무엇이 누군가의 승리하는 모습을 연장할 뿐인지 물어야 한다. 휴전과 대피와 치료가 멋진 결말을 위해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
어느 독법을 택하든 뒤에는 ‘아름답게 여기지 말라’가 남는다. 사람을 죽이는 일로 자신을 장식하지 마라. 남에게 계속 값을 치르게 하면서 자신의 무대를 늘이지 마라.
5. 아름다운 전쟁 그림에서 누가 빠졌는가
아름답게 여기지 말라. 아름답게 여긴다면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 문장은 아름다운 그림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떼어 놓지 못하게 한다. 대열, 불빛, 승리의 기세에 감탄하는 동안 누군가는 가족과 집을 잃고 몸을 다친다. 장면이 웅장할수록 묻게 된다. 누구를 화면 밖으로 밀어냈는가.
다만 침해에서 벗어나 안도하는 마음, 가족이 무사히 돌아온 기쁨, 사람을 구한 용기에 대한 감사가 곧 살인에 대한 즐거움인 것은 아니다. 이 장으로 모든 생존자의 속마음을 판정해서는 안 된다. 경계할 것은 죽음 자체를 영광으로 만들고 죽은 사람을 멋진 이야기의 재료로 쓰는 일이다.
사람 죽이기를 즐기는 이는 천하에서 뜻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이 말을 지배욕에 거는 제동으로 읽는다. 군사적 승리가 곧 사람들의 삶을 결정할 자격은 아니다. 두려워서 복종하는 것과 함께 살고 싶어서 따르는 것은 다르다.
잔혹한 사람이 현실에서 반드시 곧 망한다는 예언도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폭력으로 오래 권세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한계를 승패의 판정에만 맡길 수 없다.
6. 총지휘관은 애도의 쪽에 선다
경문은 부장군을 왼쪽에, 상장군을 오른쪽에 놓고 상례로 이 일을 대한다고 설명한다. 총지휘관이 차지하는 곳은 단지 가장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다. 죽음과 연결된 자리다.
우선 이것은 전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여 주는 이 장의 의례적 장면이다. 모든 고대 군대가 실제로 똑같은 절차를 지켰다는 사실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런 역사적 판단에는 다른 자료가 필요하다.
그 주장 없이도 장면은 충분히 무겁다. 명령이 자신에게서 나갔다면 애도를 남의 유족에게만 맡길 수 없다. 자신은 영광 한가운데 서고 먼 집들이 죽음의 뒷일을 홀로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전과 보고의 숫자를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돌려놓아 보자. 지휘관은 그때 어디에 서 있는가.
7. 이겼다면 울어야 한다
많은 사람을 죽였다면 슬픔으로 그들을 위해 울고, 전쟁에서 이겼다면 상례로 대하라.
‘泣’은 슬픔을 몸까지 데려온다. 승리 연설 끝에 ‘우리도 대가를 치렀다’고 한마디 덧붙인 뒤 곧장 박수로 돌아가는 것으로 죽은 사람을 정산하게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래본이 모두 ‘泣’을 ‘莅’로 고쳤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해 내려오는 왕필 주석본에도 ‘泣之’가 있다. 이문은 판본별로 확인해야 한다. 후대 사람들이 눈물을 지웠다는 단순한 역사로 만들 수는 없다. 전래 본문 대조.
우는 일은 감정 표현 시험도 아니다. 소리 내어 우는 사람도, 말없이 있는 사람도, 한참 뒤에야 울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눈물의 양을 검사하는 것이 애도는 아니다. 애도가 치료와 매장, 설명과 책임 규명을 대신할 수도 없다.
‘상례로 대하라’는 말은 승리를 죽은 사람 앞에 세운다. 상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할 수 있지만 이 한 문장이 복장과 절차를 하나하나 명시한 것은 아니다.
어느 편 사람이었든 죽음은 승리로 취소되지 않는다. ‘이겼다면 울어야 한다’는 제목은 바로 그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8. 미화하는 말을 알아보는 법
우선 실제 전쟁을 다룬 장으로 읽자. 서둘러 ‘사업에서 이겨도 겸손하라’는 비유로 바꾸면 실제로 죽은 사람들이 또 사라진다. 상업 활동도 해를 끼칠 수 있지만 무력 충돌과 구별 없이 바꿔 놓을 수는 없다.
남겨 둘 질문은 구체적이다. 지금 이 말 속에 대가를 치른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가. 기사 제목에는 있는가. 기념식에는 있는가. 승리를 통쾌하게 그리는 영화에는 환호하지 못하는 사람의 자리가 있는가.
저항이나 구조에 냉담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누가 보호받아야 하는지 살피고 학살이 멈춘 것을 기뻐하면서도, 그 이유를 더 죽이고 싶은 흥분으로 바꾸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선 장면을 상상해 보자. 깃발과 북소리와 환호 속에서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라고 요구받는다. 화면 가장자리에는 끝내 열리지 않은 문이 하나 있다. 노자가 특정 개선식을 직접 보았다는 사료가 아니라, 우리가 그려 보는 장면이다.
31장은 그 문 앞으로 시선을 돌려놓는다. 승리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그 사람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