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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협력의 실제 역사를 읽다 · 역사 읽기 10

발견된 환자가 없다는 것과 정말 없다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세계 천연두 퇴치 · 1967—1980년

보고서의 0은 일의 끝이 아니다. 의심 환자 수색과 접종 방식 조정에서 국제 인증까지, 질병이 사라졌음을 믿을 근거는 어떻게 만들며 그 성과가 현장의 모든 수단까지 정당화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Han Qin ·

실제 사건을 읽는 역사 수필입니다. 사실, 재판의 판단, 당사자의 설명, 필자의 해석을 나누어 보고 각 편이 정한 시기의 범위에서 읽어 주세요. 현재의 법률이나 외교·의료 실무에 관한 지침은 아닙니다.

성공을 선언하려는 사업이 마지막까지 ‘소문 등록부’를 꼼꼼히 보관했다. 축하할 숫자가 아니라 축하를 멈추게 할지도 모를 소식이 적혔다. 어디서 천연두가 다시 나타났을까. 의심 환자가 있다는데 확인하러 가야 하지 않을까.

세계보건기구는 1978년 1월 국제 천연두 소문 등록을 시작했다. 세계인증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79년 말까지 천연두가 없다고 여겨진 40개국에서 104건의 소문을 WHO에 직접 보고했다. 전 세계 모든 지역 보고의 총수도, 확진 환자 104명도 아니다.[1]

성공을 위해 나쁜 소식의 입구를 보관한다는 일은 우리 습관과 조금 다르다. 끝에 가까워질수록 새 문제가 결론을 흔들지 않기를 바라기 쉽다. 여기서는 정반대가 필요했다. 질병이 사라졌다고 말하려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어올 수 있어야 했다.

0은 찾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세계 천연두 퇴치 강화사업은 1967년에 시작되었다. 이후 실제로 크나큰 성과를 이루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자연 발생 환자는 1977년 소말리아에서 나왔고 WHO는 1980년 천연두 퇴치를 선언했다. 하지만 결과에서 거슬러 보면 모든 단계가 처음부터 끝을 알았던 길처럼 보이기 쉽다.[5]

당시 일하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편의가 없었다. 겉으로 같은 보고서 두 장을 구분해야 했다. 하나의 0은 정말 환자가 없다는 뜻이다. 다른 0은 환자가 보건체계에 들어오지 못했거나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거나 기존 수색 방식으로는 그곳을 볼 수 없어서 나왔을 수도 있다. 숫자는 같아도 일어난 일은 전혀 다르다.

접종 인원도 그 차이를 대신 설명해 주지 않는다. 몇 회 접종했는가는 얼마만큼 일했는지 답한다. 전파의 고리가 남아 있는가는 질병이 어디서 계속되는지 묻는다. 앞의 수치는 중요하다. 그렇다고 합산하기 쉽다는 이유로 뒤의 질문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사업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헨더슨은 1980년 회고에서 1967년 운영 지침이 이미 감시를 핵심으로 삼았다고 썼다.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 행동하며 결과를 관계자에게 되돌려 주는 일이었다. 나중에야 갑자기 환자를 기록하자고 생각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방법 안에 적어 둔 일이 실제 현장을 바꾸게 해야 했다.[2]

특히 보아야 할 대목이다. 지침에 옳은 말이 먼저 있었다고 조직이 실제로 같은 시간과 주의를 주었다는 뜻은 아니다. 조사가 필요하다고 동의하면서도 익숙하고 실적 보고가 쉬운 일에 매달려 조사할 시간을 잃을 수 있다. 방법이 적혀 있는 것과 그 방법이 우리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헨더슨은 나이지리아 동부 경험을 들었다. 전체 면역률이 매우 높지 않은 곳에서도 발생 지점을 겨냥한 봉쇄 접종과 보고로 전파를 끊을 수 있었고 비슷한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도 확인되었다. 전파가 어디서 일어나는지로 시선을 옮기자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이 생겼다.[2]

백신이 쓸모없으니 조사로 바꾸자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효과적인 백신은 여전히 중요한 도구였다. 달라진 것은 증거에 따라 도구를 쓰는 방식이다. 환자를 발견하고 접촉자를 찾아 제때 접종과 대응을 조직했다. 총량으로만 세던 일이 구체적으로 계속되는 전파를 향하게 되었다.

그 전환도 새 명령 한 장이 옛 방법을 즉시 대체한 이야기로 쓰지 말아야 한다. 헨더슨은 많은 국가 책임자와 고문이 대규모 접종에 익숙하고 그것을 신뢰했으며 감시에 충분한 관심을 돌리게 하는 일이 그 뜻을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인정했다. 현장의 깨달음이 조직 습관보다 앞설 수 있지만 옛 방식이 곧 자리를 비워 주지는 않았다.[2]

인도의 역사 연구는 이 과정을 더 세밀하게 나눈다. 산조이 바타차리야는 기록을 바탕으로 WHO 본부와 지역 인력, 인도 중앙·지방 기관 사이에 교섭과 마찰이 계속되었다고 설명한다. 변화에는 자원뿐 아니라 거듭 지지를 얻는 일도 필요했다. 국제 전문가가 정답을 가져오고 현지는 실행만 했다고 말하면 실제로 해낸 사람들과 그들이 한 일을 함께 지우게 된다.[3]

따라서 국제 협력의 능력은 멀리 있는 본부에만 있지 않다. 본부가 자원과 기술을 조정하더라도 개별 환자는 현지에서 발견해야 한다. 소식을 보내고 누군가 그곳까지 갈 수 있어야 한다. 이 연결이 없으면 세계적 목표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일에 그칠 수 있다.

마지막 환자 뒤에도 더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1977년 소말리아 환자가 마지막 자연 발생 환자였음을 안다. 당시에는 ‘마지막’이 하나 나왔다고 곧바로 그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 이후 다른 환자를 놓친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 인증에 필요했다. 앞의 환자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풀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국제 인증은 흐른 시간과 찾을 능력을 함께 보았다. 마지막 환자 이후 최소 2년이 지나고 환자를 발견할 만큼 충분한 감시가 있어야 했다. 달력 두 해를 채우면 합격증으로 자동 교환해 주는 것이 아니다. 못 찾은 이유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면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 그 0을 더 믿을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1]

생활에서도 이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방에 물건이 없다고 하면 어디를 보았는지, 불은 켰는지, 장 안도 찾았는지 물을 것이다. 영원히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번에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실제로 없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을 만한 이유가 얼마나 충분한지 묻는 것이다. 인증은 비슷한 진지함을 더 큰 일에 적용했다.

소문 등록부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보고서의 항목에는 뒤에 다른 질병이나 오래된 환자로 밝혀진 소식도 있었다. 확진된 천연두 두 건은 1978년 버밍엄의 실험실 관련 발생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마지막 자연 발생 환자’를 ‘이후 어떤 출처의 천연두도 발생하지 않았다’로 바꿀 수는 없다.[1]

의심 신고를 확인해 다른 질병임을 밝힌 것은 헛걸음이 아니다. 성공을 유지하려고 소식을 누르지 않았으며 소문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판단 전체가 무너졌다고 하지도 않았다. 발견과 조사, 결론은 세 단계다. 첫 단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뒤의 두 단계를 건너뛰는 것은 아니다.

검증에 여전히 판단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의심을 언제까지나 확진으로 세는 체계라면 일을 끝낼 수 없다. 0을 유지해 줄 자료만 받는 체계라면 그 0을 믿을 자격 자체가 없다. 소식이 들어오게 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위원회는 국가의 선언 위에 더 큰 도장을 찍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자료 심사와 현장 확인으로 충분한 근거를 마련하고 세계위원회가 그 증거를 모았다. WHO 보고서 서문에는 1980년 5월 8일 세계보건총회가 위원회의 퇴치 결론을 받아들였다고 적혀 있다.[1]

물론 무게 있는 결론이다. 그러나 믿을 만한 이유는 말한 사람의 지위가 높아서만이 아니다. 결론 앞에 질문할 수 있는 작업이 있었다. 왜 발견하지 못했는지, 놓친 것은 아니라고 어떻게 판단했는지, 다른 곳의 자료도 같은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 물을 수 있었다.

국제 협력은 여기서 구체적인 것을 만들었다. 다른 나라가 다 나았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믿을 필요도, 세계를 직접 전부 돌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못 믿을 필요도 없었다. 함께 찾고 검사하고 인증하는 일이 서로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모든 문제가 기술 조정만으로 풀린다는 뜻은 아니다. 환자를 볼 수 있게 된 다음에는 다른 질문이 들어온다. 숫자를 하루빨리 0으로 만들기 위해 현장의 사람을 어떻게 대할 수 있는가.

성과가 모든 수단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역사학자 폴 그리노의 연구는 1973~1975년 남아시아 천연두 퇴치 과정의 일부 위협·강제 사건과 그에 따른 저항을 돌아본다. 진지하게 대해야 할 구체적인 기록이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과 직원의 공통 방식으로 확대할 수는 없으며 개별 사례만으로 사업 전체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계산할 수도 없다.[4]

두 극단 중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천연두를 퇴치했다고 모든 가정 방문과 압박, 접종이 정당했다는 뜻은 아니다. 부당한 수단이 있었다고 백신과 수색, 국제 협력이 실제 생명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뜻도 아니다. 성과가 뒤의 질문에 대신 답할 수 없고 그 질문 때문에 앞의 성과를 부정할 필요도 없다.

전파 위험에 놓인 사람과 그 사람에게 조치를 취하려는 사람 모두 한마디로 밀어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거부한다고 건강 위험이 거부한 사람에게만 머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개입의 근거와 범위, 구체적인 방식을 설명할 책임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양쪽을 가볍게 지울 수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국가가 공동 사업에 참여하는 것과 개인이 한 번의 현장 조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같은 동의가 아니다. 국제 협력 문서로 개인의 찬성을 대신 만들어 낼 수 없다. 국제 목표만 보고 현지의 망설임은 무지에서만 나온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갈등을 판단하려면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알아야 한다.

수필은 이런 구분에 공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 성공한 일화에서 결점을 몇 개 골라 균형 잡힌 태도를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질문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질병은 퇴치되었는가. 어떻게 아는가. 누가 무슨 일을 했는가. 누군가가 받은 대우 가운데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은 없었는가.

퇴치 뒤에도 수색과 예방을 모두 없애지는 않았다. WHO의 후대 회고에 따르면 1980년의 후속 정책에는 의심 환자 조사와 실험실 바이러스 보유분 관리, 필요한 역량 유지가 포함되었다. 성공은 다음에 할 일을 바꾸었지만 모든 경계심을 불필요하게 만들지는 않았다.[6]

반대로 계속 조사할 수 있다고 실제 성과도 영원히 선언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증거가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만 바뀌어 누구도 근거에 따라 생활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추구할 것은 결론을 끝없이 미루는 일이 아니다. 근거 있는 결론을 내리되 나중의 관련 자료를 미리 무관하다고 하지 않는 일이다.

이 글의 역사는 1980년 인증과 후속 제도에서 멈춘다. 당시의 도구와 개입 방식을 오늘에 직접 권하지 않으며 한 질병의 경험을 모든 질병에 그대로 쓰는 모형으로 삼지도 않는다. 결말을 모르던 사람들이 행동하고 판단할 만한 근거를 어떻게 조금씩 만들었는지 읽으려는 것이다.

등록부로 돌아오자.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점은 항목들이 결국 퇴치 결론을 뒤집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아닐 것이다. 성공에 다가간 사업이 자신을 멈추게 할지도 모를 사람을 위해 여전히 입구를 남겼다는 점이다. 무게 있는 ‘해냈다’는 말은 그 뒤로 질문을 못 듣게 해야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사료와 읽기 안내

실제 역사를 읽는 수필이며, 장면을 꾸며 낸 글이나 현행법 안내가 아닙니다. 사료의 사실, 당시의 법적 판단, 기관의 자체 평가, 필자의 해석을 구별합니다. 기록에 없는 속마음과 대화를 덧붙이지 않으며, 여러 피해자를 합쳐 한 인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영어판은 영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썼고 간체·번체 중국어판에는 모두 전문이 있습니다. 한국어판은 현재의 중국어 수필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소재 선정에 도움을 준 초기 조사 보고서는 아래의 원기록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조직을 모두 이론상의 ‘공통의 강제적 상위자가 없는 협력’으로 간주하지도 않습니다. 원한다면 철학적 배경의 앞글 논문(영어·중국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선택해서 더 읽을 거리이지, 역사가 입증해야 할 결론은 아닙니다. 질문을 역사에 비추어 검토하려는 것입니다.

  1. WHO 『세계 천연두 퇴치』 세계인증위원회 최종 보고서(1980년, 루이지애나주립대 미러)

    WHO 원보고서이며 제공하는 대학이 쓴 연구가 아니다. 공식 IRIS 다운로드가 접근 안내 페이지를 반환해 이 미러로 122쪽 출판본의 제9장, 제11.1~11.5절, 부속서 12와 서문을 확인했다. 발견되지 않음과 부재, 인증과 경과 시간, WHO 직접 보고와 전체 지역 소문, 자연 전파와 버밍엄 실험실 관련 환자를 구별한다. 본문과 표의 수두·홍역 비율에 차이가 있어 그 비율은 쓰지 않는다. 공식 목록: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report-of-the-global-commission-for-the-certification-of-smallpox-eradication-wha33.3 .

  2. D. A. 헨더슨, 「천연두 퇴치」, Public Health Reports, 1980년, 422~426쪽

    CDC가 제공하는 참여자의 회고다. 특히 425~426쪽에서 1967년 지침, 나이지리아 동부 경험과 중점 전환의 어려움을 확인한다. 모든 수단에 대한 독립 판단이 아니다. 감시는 원래 강화사업에 포함되었으며 봉쇄를 중시했다고 접종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다른 질병에 대한 저자의 당시 견해를 현재의 지침으로 쓰지 않는다.

  3. 산조이 바타차리야, 「불확실한 진전: 인도 천연두 퇴치의 마지막 단계」, AJPH, 2004년

    기록과 서신에 근거한 원 역사 연구로 교섭과 자원, WHO·지역 인력·인도 기관 사이의 마찰을 살핀다. 학자의 연구임을 분명히 하며 인용된 비공개 서신을 별도로 직접 열람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화나 속마음을 덧붙이지 않는다.

  4. 폴 그리노: 1973~1975년 남아시아 천연두 퇴치의 위협·강제·저항, 논문 초록

    1995년의 원 역사 연구이며 DOI는 10.1016/0277-9536(95)00035-6이다. 접근 가능한 초록만 확인했고 일부 강제와 저항 사건을 다룬다는 범위에서만 사용한다. 원문 보관 링크는 다른 페이지로 넘어갔다. 초록으로 개별 장면을 복원하거나 세계적 발생률을 추정하지 않으며 모든 개입이나 성과가 강제에 의존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5. WHO: 천연두의 역사적 시점과 개요

    1967년 강화사업, 1977년 소말리아의 마지막으로 알려진 자연 발생 환자, 1980년 선언을 확인한다. 자연 발생 환자는 어떤 출처의 모든 환자와 같지 않으며 현재 업무에 관한 페이지 설명을 1970년대로 옮기지 않는다.

  6. WHO: 퇴치 이후, 2016년 6월 28일 회고

    1980년 후속 정책의 의심 환자 조사와 바이러스 보유분 관리, 역량 유지를 회고적으로 설명하는 데만 사용한다. 의료 조언이나 현행 백신 정책을 제시하지 않으며 퇴치가 미래의 모든 위험을 없앴다고 쓰지도 않는다.

철학적 배경 논문 · 영어 / 중국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