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 실제 역사를 읽다 · 역사 읽기 01
강물이 국경을 지난 뒤
불은 껐지만, 불을 끈 물은 유독물질을 싣고 하류로 흘러갔다. 라인강에 협력 체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있는 협력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불을 끄는 데 쓴 물이, 나중에는 하류 사람들이 피해야 할 물이 되었다.
1986년 11월 1일, 스위스 바젤 근처 슈바이처할레에 있던 산도스사의 창고에서 불이 났다. 농약을 비롯한 화학물질이 소방용수와 섞여 라인강으로 흘러들었다. 불은 한 장소에서 났지만 결과는 물을 따라 계속 움직였다. 수백 킬로미터에 걸친 강 구간에서 물고기와 다른 수생생물이 죽었고, 강물을 끌어 쓰는 시설도 영향을 받았다.[1]
국제기구가 일으킨 사고는 아니었다. 창고는 기업 소유였으며 사고 대응과 감독에는 각각의 책임이 있다. 여기서 보려는 것은 그와 다른 문제다. 사고의 영향이 한 나라 밖으로 흘러나갔을 때, 기존의 공동 체계는 거기에 맞추어 움직일 수 있을까. 나중에 협력이 거둔 성과로 최초의 사고에 관한 설명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
강가의 정수장은 불이 꺼졌는지만 물을 수 없다. 무엇이 물에 들어왔고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도착하며 자기 취수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상류에서는 일단 대응을 마친 긴급사태가 하류에서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
누가 먼저 소식을 받는지, 누가 검사 결과를 갖고 있는지, 누가 취수를 멈추기로 결정할 수 있는지. 기술적인 문제처럼 들리지만, 이것들은 누군가 평소처럼 수도꼭지를 틀기 전에 다른 사람이 그 물이 오는 길을 살펴 둘 수 있는지를 좌우한다. 취수구를 닫는 순간 상류의 사고는 하류의 일상이 된다.
사고가 나기 전에도 협력은 있었다
재난이 각국을 일깨워 마침내 한자리에 앉혔다고 쓰면, 중요한 절반을 빠뜨리게 된다. 프랑스와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는 이미 1963년 베른에서 협정에 서명했다. 그보다 먼저 설립된 국제라인강보호위원회에 국제법적 지위를 부여한 협정이었다. 강의 상태를 조사하고 대책을 제안하며 추가 국제협정을 준비하는 일도 이미 그 기구의 업무에 들어 있었다.[2]
그러니 제도가 비어 있던 곳에서 불이 난 것은 아니다. 회의를 맡는 사람이 있었고 조사와 협의를 할 곳도 있었는데 심각한 오염이 발생했다.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과, 중요한 순간에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게 보면 사고 뒤의 선택도 달리 보인다. 필요한 것이 반드시 위원회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은 아니다. 기존 기관에 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도 않는다. 무엇이 이어지지 않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공장의 예방 조치였는가, 사고 때 물을 다루는 방식이었는가, 소식을 전하는 과정이었는가. 아니면 소식을 받은 하류에서 제때 행동할 수 있었느냐의 문제였는가.
위원회의 사고 예방 자료는 한 가지 결과를 분명하게 기록한다. 네덜란드에 이르기까지 약 900킬로미터 범위의 정수 시설들이 취수를 중단했다. 이후에는 유역 안에서 위험물질을 저장하거나 생산하는 시설을 조사하고, 산업시설의 안전을 위한 권고를 마련하는 등의 작업이 추진되었다.[3]
그런 개선이 늘 거창한 모습을 띠는 것은 아니다. 새어 나온 물질을 모아 둘 설비, 섞어 보관해서는 안 되는 물질의 구분, 소방용수를 가두는 방법은 ‘앞으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보다 문제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다음번 비상 대응이 다시 위험을 더 먼 곳으로 떠넘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3]
당시 소방관들이 강 전체를 생각한 뒤에 불을 껐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긴급한 순간의 사람이 모든 결과를 현장에서 헤아려야만 하는 체계라면, 그 사람들을 위한 준비가 아직 부족한 것이다. 함께 생각해야 할 많은 일은 불이 없을 때 생각해 두어야 한다.
사고 뒤의 다른 과제는 하류에서 추측에 덜 의존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라인강 각료회의는 위원회가 유역의 수문위원회와 협력하여 오염 경보 모형을 개발하도록 요청했다. 갑자기 배출된 오염 덩어리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계산해 관련 기관과 정수장이 적절한 때에 대응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4]
모형이 정수장 대신 취수구를 닫지는 않는다. 대신 결정하는 사람에게 근거를 줄 수 있다. 한 나라의 판단을 통째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각국이 따로는 얻지 못하거나 충분히 모으지 못하는 정보를 연결한다. 각자 일하던 사람들이 지금 벌어지는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맞물리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데에도 협력의 쓸모가 있다.
함께 정한 일을, 누가 실제로 해내는가
1987년 라인강 행동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위원회의 후일 정리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00년 사이 우선 관리 대상으로 정한 오염물질 대부분의 점오염원 배출량이 70~100퍼센트 줄었다. 도시와 산업시설이 하수처리 시설에 연결되는 비율도 높아졌다.[5]
기록할 만한 수치이며, 정확히 기록해야 할 수치이기도 하다. 특정한 우선 오염물질 대부분의 점오염원 배출에 관한 값이지, 강의 모든 오염이 같은 비율로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비교 기준인 1985년은 사고 이전이다.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를 사고 이후 한 기관이 혼자 만들어 낸 성과로 줄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 나아지려면 여러 사람이 각자 맡은 부분을 해내야 했다. 공동 목표가 국내 인허가를 대신하지 않고, 국제적인 검사가 공장의 설비를 대신하지 않으며, 통보가 하류의 행동을 대신하지 않는다. 전부 각국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하면 조정의 역할이 사라진다. 전부 국제기구가 한 일이라고 하면 실행한 사람과 그 책임이 지워진다.
1999년에 서명한 라인강 보호협약은 이처럼 일을 이어받는 방식을 더 분명히 적었다. 제11조는 관련 조치의 결정을 권고 형태로 당사국에 전달하고 각국의 국내법에 따라 이행하도록 하며 보고와 협의도 요구한다. 이것은 나중 협약의 규정이다. 1986년에 이미 전부 이렇게 작동했던 것처럼 써서는 안 된다.[6]
권고라는 이름이 단순한 예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조항은 어디까지 이행했는지 밝히고, 하지 못했다면 이유를 설명하도록 요구한다. 함께 내린 결정에 관한 질문을 각국의 실제 행동까지 이어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이 체계가 각국 기관을 건너뛰어 유역의 공장을 직접 맡아 관리하는 공동 정부인 것도 아니다.[6]
주목할 것은 협력이 얼마나 국가를 닮았느냐가 아니다. 구체적인 일을 해내려면 어떤 능력을 함께 갖추어야 할까. 어떤 결정은 여전히 각국이 내릴까. 빠진 부분을 다른 쪽에서도 볼 수 있고 다시 설명을 요구할 수 있을까. 기관에 강하다거나 약하다는 도장을 찍는 것보다 이런 질문이 유용하다.
관측과 경보, 배출 관리와 이행 기록을 통해 체계는 더 촘촘해질 수 있다. 그것이 언제나 새로운 상급 기관의 형태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상급자가 없다는 이유로 협조에 의존하는 부분을 모두 장점이라고 칭찬해서도 안 된다. 협조가 부족하면 빠진 그 부분은 여전히 하류에 닿는다.
이 역사는 공동의 강제자가 없으면 협력이 반드시 더 좋다는 보편 법칙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자세히 볼 만한 사실 하나를 보여 준다. 국경을 넘는 문제 가운데에는 지속적인 조정과 공동 정보, 각국의 이행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일을 해냈다고 모든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이 나아진 뒤에도, 사람의 질문은 남는다
나중에 모은 배출 자료는 강 전체의 규모에서 상황을 본다. 그러나 사고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묻는 것은 지금 강이 어떤가만은 아닐 수 있다. 그때 왜 막지 못했는지, 자기 손실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받은 정보는 충분했는지를 물을 수도 있다.
이 질문들은 공동의 강 관리와 관련이 있지만 수질 그래프 하나에 모두 맡길 수는 없다. 오염물질을 줄이는 일도, 구체적인 사람이 설명과 시정, 배상을 받도록 하는 일도 필요하다. 한쪽이 다른 쪽의 일을 대신 끝내 주지는 않는다.
1999년 협약에는 비정부기구의 참여와 옵서버에 관한 규정이 있고, 당사국 사이의 분쟁을 다루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원회가 피해 주민이 직접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배상 판결을 받는 법원이 된 것은 아니다. 논의에 참여하는 길과 자신의 청구를 심리에 올리는 길은 서로 다르다.[6]
따라서 여기서 인용한 관리 자료만으로 모든 개인의 구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선언할 수 없다. 반대로 누구에게도 길이 없었다고 선언할 수도 없다. 구체적인 감독과 배상, 사법적 구제는 해당 국가의 제도와 개별 사건에서 따로 확인해야 한다. 강 하나가 나아졌다는 사실로 모든 개인 청구의 결말을 쓸 수는 없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해석이 있다. 재난을 겪고 체계가 좋아졌으니 그 재난은 개선을 위한 교훈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무엇을 배웠어도 죽은 생물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취수를 중단했던 날들이 미리 준비되어 있던 날들로 바뀌지도 않는다. 수습을 긍정하기 위해 과거에 그 일이 일어날 가치가 있었다는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
반대쪽에도 쉬운 해석이 있다. 사고를 막지 못했으니 그 조직은 처음부터 쓸모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고 뒤에 배운 일까지 지워진다. 이미 입은 손실을 되돌릴 수 없다고 해서, 앞으로 누출을 한 번 막거나 경보를 한 번 일찍 받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아지는 것은 아니다.
라인강의 역사에서는 협력이 덜 추상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위험물질을 함부로 물 가까이에 두지 않기, 소식이 한 나라에 머물지 않게 하기, 배출량을 함께 비교하기, 한쪽이 해내지 못했을 때 이유를 설명하기. 어느 하나도 전부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 뒤의 생활이 우연히 무사하기를 기다리는 데 덜 의존하게 만들 수는 있다.
이 특집의 다른 글은 아이티의 콜레라를 다룬다. 그곳에서는 국제적인 활동 자체가 피해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며, 피해자가 어떻게 답을 요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다. 두 이야기 모두 강물이 나온다고 같은 종류의 책임으로 묶을 수는 없다. 한쪽은 성공, 다른 쪽은 실패라고 점수를 매기려고 나란히 놓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고쳤고 누구의 문제는 아직 문밖에 두었는지를 계속 묻기 위해서다.
불은 한 장소에서 끌 수 있다. 공동의 체계가 정말 조금이라도 더 해낸 일이 있는지는, 물이 흘러간 곳에서도 보아야 한다.
사료와 읽기 안내
실제 역사를 읽는 수필이며, 장면을 꾸며 낸 글이나 현행법 안내가 아닙니다. 사료의 사실, 당시의 법적 판단, 기관의 자체 평가, 필자의 해석을 구별합니다. 기록에 없는 속마음과 대화를 덧붙이지 않으며, 여러 피해자를 합쳐 한 인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영어판은 영어 독자를 위해 독립적으로 썼고 간체·번체 중국어판에는 모두 전문이 있습니다. 한국어판은 현재의 중국어 수필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썼습니다. 소재 선정에 도움을 준 초기 조사 보고서는 아래의 원기록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조직을 모두 이론상의 ‘공통의 강제적 상위자가 없는 협력’으로 간주하지도 않습니다. 원한다면 철학적 배경의 앞글 논문(영어·중국어)도 읽을 수 있습니다. 선택해서 더 읽을 거리이지, 역사가 입증해야 할 결론은 아닙니다. 질문을 역사에 비추어 검토하려는 것입니다.
- 국제라인강보호위원회: 전환점이 된 산도스 사고
기관이 작성한 회고다. 1986년 11월 1일 사고와 오염된 소방용수, 수생생물의 죽음, 여론의 압력을 기록한다. 이것만으로 법적 책임을 나누지는 않는다.
- 국제라인강보호위원회: 1963년 베른 협정
1963년 4월 29일 서명, 기존 위원회의 국제법적 지위와 조사·제안의 책무를 확인하는 자료다. 1986년을 협력의 시작으로 쓰지 않는다.
- 국제라인강보호위원회: 사고 예방과 산업시설 안전
약 900킬로미터 범위의 취수 중단과 이후의 안전 권고를 기록한다. 나중에 얻은 경험을 사고 당시 이미 모두 적용되던 규칙으로 거슬러 쓰지 않는다.
- 국제라인강보호위원회: 라인강 오염 경보 모형
첫머리의 사고 후 모형 개발을 위탁받은 경위와 경보 기능을 참조한다. 현재의 정확도나 앞으로의 갱신 계획은 당시 역사에 끌어들이지 않는다.
- 국제라인강보호위원회: 1987년 행동계획과 2000년까지의 평가
70~100퍼센트는 1985년을 기준으로 한 우선 오염물질 대부분의 점오염원 배출량을 뜻한다. 기관의 평가는 단일 사업의 인과적 효과를 분리해 입증한 것도, 모든 오염을 합친 지표도 아니다.
- 라인강 보호협약: 1999년 4월 12일 서명 본문
제5·8조는 의무와 기능, 제11조는 이행(PDF 8쪽), 제14조는 비정부기구와 옵서버 참여, 제16조와 부속서는 당사국 간 분쟁을 다룬다. 제9조는 총회에 관한 것으로 이행 규정이 아니다. 이 자료는 영어 번역본이며, 제20조가 정한 정본은 네덜란드어·프랑스어·독일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