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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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구주기율(鑿構周期律) · 육상 · 한국어 독립 재구성판
제 19 편 / 전23편

같은 거리, 두 개의 장부

보스턴 마라톤의 코스는 정확히 잴 수 있다. 그런데도 세계기록에 필요한 지리적 조건은 충족하지 못한다. 같은 42.195km가 그렇게 대회의 역사와 기록의 역사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속한다.

Han Qin (秦汉)
이 글의 목차

1. 정확히 잰 코스와 세계기록을 낼 수 있는 코스

보스턴 마라톤의 코스는 정식으로 인증받은 42.195km다.

이 말은 사실이다. 보스턴육상협회는 홉킨턴에서 보스턴으로 이어지는 편도 코스가 세계육상연맹과 미국육상연맹의 규정에 따라 인증받았으며, 그 거리가 26마일 385야드, 곧 42.195km라고 명시한다. 정확히 측정했고, 표준 거리를 갖춘 마라톤 코스가 맞다.

그런데 제프리 무타이가 2011년 이 코스에서 달린 2시간 3분 2초는 당시 역사상 가장 빠른 마라톤 성적이었음에도 세계기록으로 공인받을 수 없었다.

그 성적이 무효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무타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판정도 없었다. 보스턴육상협회는 지금도 이 2시간 3분 2초를 당당하게 대회 코스기록으로 올려 놓고 있다. 다만 세계기록이 아닐 뿐이다.

이 두 사실 사이의 거리가 이 글의 전부다.

정확히 잰 코스와 세계기록을 낼 수 있는 코스는 서로 다른 것이다. 세계육상연맹에서 정확히 측정한 42.195km 마라톤이라는 명제는 세계기록을 세울 자격이 있는 마라톤이라는 명제와 같지 않다. 정확히 측정하고 정식으로 인증한 코스라도 별도의 기하학적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곳에서 나온 성적은 세계기록란에 들어갈 수 없다.

보스턴이 통과하지 못하는 검사는 두 가지다. 첫째, 결승점이 출발점보다 140m 낮다. 이 순낙차를 거리로 나누면 1km당 약 3.32m인데, 세계기록이 인정되는 코스의 상한은 1km당 1m다. 둘째,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의 직선거리가 전체 경기 거리의 약 91%다. 세계기록용 코스에서는 50%를 넘을 수 없다. 보스턴은 두 기준 모두 한참 넘는다.

보스턴은 거리에서는 합격이고, 기하학적 조건에서는 불합격이다. 세계기록이라는 범주에 들어가려면 거리가 맞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하학적 조건도 맞아야 한다.

앞선 제18편은 구조적으로 다른 두 경기가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기록표를 함께 쓰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그 반대다. 거리가 같고 둘 다 정확히 측정했는데, 기하학적 조건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두 장부에 나뉘어 들어간다.

우선 이 글에서 두 개의 장부가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해 두자.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보스턴의 경우다. 같은 코스에서 나온 성적을 한 장부는 코스기록으로 적고, 다른 장부는 세계기록 밖에 세워 둔다. 더 문자 그대로인 경우는 여자 마라톤이다. 같은 거리를 두고 남녀 혼성 경기의 기록과 여자 단독 경기의 기록을 따로 관리한다. 계시 속에 숨어 있는 장부도 있다. 총성과 함께 움직이는 시계가 하나, 내가 출발선을 넘을 때 움직이는 시계가 또 하나다.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구조는 같다. 비교 가능성과 관련 있다고 여기는 어떤 조건 때문에 하나의 대상을 서로 다른 장부에 나눠 적는다. 이 글이 묻는 것은 그 나눠 적기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남기는지다.

2. 자전거는 자기 바퀴를 믿지 않는다

이 기하학적 경계선을 이해하려면, 구축이 어떻게 비교 가능한 길이를 만들어 내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 방법 자체가 꽤 근사하다.

마라톤 코스는 교정한 자전거로 측정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자전거가 자기 바퀴의 둘레를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퀴에 기계식 계수기를 달아 회전량의 작은 변화들을 센다. 고전적인 존스 카운터는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20개의 눈금을 센다. 하지만 측정자는 바퀴에 표시된 지름으로 곧장 거리를 계산하지 않는다. 먼저 강철 줄자로 정확히 재어 놓은 교정 구간을 자전거로 여러 차례 오간다. 그렇게 반복해서 달려, 이번 측정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단위 거리당 계수기가 몇 번 움직이는지를 경험적으로 알아낸다.

이 과정이 이 방법의 핵심이다. 타이어 공기압, 자전거에 실린 무게, 노면 상태, 온도 변화는 모두 바퀴의 유효 둘레를 조금씩 바꾼다. 이 자전거는 그런 변화가 없는 척하지 않는다. 타이어에 인쇄된 치수도 덮어놓고 믿지 않는다. 그 모든 변화를 이번 교정에 흡수한다. 교정으로 얻는 값은 이 자전거의 영원한 상수가 아니다. 이번에, 이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상수다.

코스 전체를 측정한 뒤에도 다시 한 번 교정한다.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바퀴의 유효 둘레가 또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어가 닳았을 수도 있고, 공기압이 낮아졌을 수도 있다. 측정을 마친 뒤 다시 교정하면 그 변화를 찾아내고, 정해진 계산법에 따라 반영할 수 있다.

어떤 절대적 기준도 그대로 믿지 않는 방법이다. 바퀴에 표시된 지름도, 한 번 교정한 결과가 영원히 유효하리라는 생각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측정 현장에서 거듭 수행하는 경험적 교정뿐이다. 구축이 비교 가능한 길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한 번 만들어 영원히 쓰는 자가 아니다. 매번 새로 교정하며 그때그때의 조건을 경험적으로 측정하는 일이다. 이 연작이 줄곧 말해 온 것이 여기서 아주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비교 가능성은 완제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교정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똑같이 중요한 규칙이 하나 더 있다. ‘달릴 수 있는 최단 경로’다. 측정하는 것은 도로의 중심선도, 보통의 주자가 실제로 달리는 길도 아니다. 선수가 합법적으로 달릴 수 있는 가장 짧은 길이다. 굽은 길이나 모서리를 잘라 달릴 수 있는 곳에서는, 달리기가 허용된 노면 위에서 연석으로부터 약 0.30m 떨어진 곳에 측정선을 잡고 가능한 모든 합법적 접선을 따라간다. 지도에서 재기 편한 선을 따라서는 42.195km인데, 선수가 굽이마다 허용된 만큼 안쪽으로 파고들면 실제 거리는 그보다 짧아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구축이 재는 것은 누구도 그보다 더 짧게 달릴 수 없는 경로다.

최단 경로 규칙에는 측정법 전체를 관통하는 신중함이 깔려 있다. 이 규칙이 상정하는 선수는 도로 한가운데를 얌전히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왜 하필 최악의 경우를 기준으로 재는가. 기록이 대비해야 할 사람이 바로 그 이득을 남김없이 챙기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도로 중심선을 따라 42.195km인 코스에서 선수가 모든 굽이를 짧게 돌면, 실제로 달린 거리는 42.195km보다 줄어든다. 기록이 모자란 거리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구축은 평균적인 주자를 기준으로 재지 않는다. 경로를 가장 짧게 줄일 수 있는 주자를 기준으로 잰다. 대부분의 사람이 얼마나 멀리 달릴지를 재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를 잰다. 뒤에서 볼 거리 부족 방지 계수와 같은 방향의 신중함이다. 코스를 짧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라면 모두 미리 막아 둔다.

3. 조금 길어도 좋다. 짧아서는 안 된다

교정한 자전거로 재는 방법에는 알려진 정밀도의 한계가 있다. 측정 불확도는 약 1,000분의 1이다. 42km짜리 코스를 재면 수십 미터의 오차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오차가 짧은 쪽으로 나면 문제가 커진다. 42.195km라고 내세운 코스가 실제로는 그보다 짧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나온 성적은 규정 거리를 채우지 못한 코스에서 달린 결과가 된다.

구축은 ‘거리 부족 방지 계수’로 이 문제에 대응한다. 그 논리가 눈여겨볼 만하다.

계수는 1.001이다. 측정자는 교정 상수를 의도적으로 1,000분의 1만큼 늘린다. 그러면 측정선의 명목상 1km마다 1,001m에 해당하는 계수량이 들어간다. 마라톤 한 코스라면 의도적으로 42.195m의 여유를 더 두는 셈이다.

그렇다고 인증받은 모든 마라톤 코스의 물리적 길이가 정확히 42.237195km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측정상의 안전계수다. 오차를 의도적으로 해가 없는 쪽에 놓는 장치다. 어차피 측정에 1,000분의 1가량 불확실성이 따른다면, 실제 코스가 짧아질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조금 길게 재는 편을 택한다. 조금 길어도 좋다. 짧아서는 안 된다. 길면 선수가 수십 미터를 더 달릴 뿐, 기록의 성립에는 문제가 없다. 짧으면 성적이 부적격 코스 위에 놓이고, 기록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 설계 안에는 이 연작의 다른 이야기들과 통하는 선택이 숨어 있다. 없앨 수 없는 측정 오차 앞에서 구축은 오차가 없는 척하지도, 더 정밀한 방법이 나오기만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오차가 있음을 인정하고 가치판단을 내렸다. 틀릴 수밖에 없다면 어느 쪽으로 틀릴 것인가. 구축은 긴 쪽을 골랐다. 긴 쪽의 잘못은 무해하고 짧은 쪽의 잘못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제6편에서 전자 계시 성적을 더 느린 쪽으로 조정했던 선택과 같은 논리다. 오차를 피할 수 없을 때 구축은 기록의 공신력에 가장 안전한 방향으로 오차를 떠안는다.

여기서는 숫자가 우연히 겹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주 쉽게 오해를 부르기 때문이다. 거리 부족을 막기 위해 더하는 여유는 1,000분의 1이고, 세계기록용 코스에서 허용하는 순낙차도 1,000분의 1, 곧 1km당 1m다. 두 1,000분의 1은 전혀 다른 규제 문제에서 우연히 같은 숫자가 된 것이며, 서로 관계가 없다. 앞의 것은 측정 오차 때문에 코스가 짧아지는 일을 막는다. 뒤의 것은 코스의 경사가 성적을 도와주는 정도를 제한한다. 원래 자료들이 두 규칙에 제시하는 이유도 전혀 다르다. 둘을 같은 것으로 보거나 한쪽에서 다른 쪽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틀린다.

4. 그 기하학적 경계선은 생리학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제 두 기하학적 경계선 자체를 보자.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의 거리는 경기 거리의 50% 이내, 순낙차는 1km당 1m 이내다.

두 경계선의 목적은 분명하고, 근거 자료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나치게 내리막인 코스, 또는 뒷바람이 부당하게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설계한 코스를 막기 위한 것이다.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의 거리를 제한한다고 해서 편도 코스에는 언제나 뒷바람이 분다는 뜻은 아니다. 일정한 방향으로 주로 부는 바람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대부분에서 체계적으로 선수를 도울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순낙차를 제한하는 이유도 같다. 중력이 체계적으로 선수를 돕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목적이 분명하다는 것과, 바로 그 숫자에 생리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50.0%나 1km당 1.000m가 생리학적 단절점임을 증명하는 원래의 기술적 도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현대 생체역학은 경사, 회전, 공기역학적 도움이 성적에 측정 가능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렇다고 이 두 규제 수치에 정확히 들어맞는 자연의 절벽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의 거리가 전체의 49%인 경우와 51%인 경우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1km당 0.9m 내려갈 때와 1.1m 내려갈 때 몸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난다는 증거도 없다.

그러므로 이 두 경계선은 이 연작에서 앞서 살핀 선들과 같은 종류다. 제7편의 10종경기 채점표 계수에는 공개된 도출 과정이 없었다. 제12편의 러닝화 40mm에도 도출 과정이 없었다. 제14편의 테스토스테론 문턱값은 효과의 크기에서 계산해 낸 값이 아니었다. 제16편의 출발 반응시간 0.100초도 안정적인 생리학적 상수가 아니었다. 이번의 50%와 1km당 1m 역시 생리학에서 읽어 낸 숫자가 아니다. 반복해서 재현할 수 있는 비교 가능성을 위해 선택한, 정당화할 수 있는 표준화의 문턱값이다. 인체의 생리학적 상수는 아니다.

이 선들을 한데 놓으면 구축에 관한 일반적인 사실 하나가 드러난다. 구축은 비교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런데 그 선은 거의 언제나 자연스러운 단절점이 없는 연속적인 양 위에 그어진다. 경사도 연속적이고, 두 지점 사이의 거리도 연속적이다. 그러니 구체적인 경계선은 어느 것이든 잘라서 만든 선일 수밖에 없다. 왜 거기에 그었는지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옳은 자리에 그었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런 자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축은 자연의 경계를 먼저 발견한 다음 선을 긋지 않는다. 선을 그어야 하기에, 경계가 없는 곳에 하나를 잘라 만든다.

같은 문제를 두고 도로 달리기와 단거리가 취하는 서로 다른 방법도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단거리는 뒷바람을 막기 위해 풍속을 직접 잰다. +2.0m/s를 넘으면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선도 잘라서 만든 것이다. 2.0과 2.1 사이에 생리학적 절벽은 없다. 그래도 단거리는 적어도 그 바람을 직접 측정할 수 있다. 도로 달리기는 42km에 걸친 코스 전체의 바람을 의미 있는 풍속 하나로 측정할 수 없다. 구간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을 쓴다. 잴 수 없는 바람을 재는 대신 코스의 기하학적 조건을 제한해, 뒷바람이 긴 직선 구간에서 체계적으로 도움을 줄 기회를 막는다. 똑같이 뒷바람의 도움을 제한하려고 단거리는 측정을, 도로 달리기는 기하학을 쓴다. 도로 달리기에서 재야 할 것은 그 방식으로 잴 수 없기 때문이다. 구축이 무엇을 규제할지는 무엇을 측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에 일부 달려 있다.

5. 보스턴은 선 밖에 있다. 그래도 작아지지 않는다

이제 보스턴으로 돌아가자. 보스턴은 이 선의 바깥에 있는 가장 유명한 사례다. 그 처지는 이 경계선이 무엇을 뜻하고 무엇까지 뜻하지는 않는지 정확히 보여 준다.

핵심은 두 판단을 분리하는 데 있다. 보스턴의 거리를 정확히 쟀는가. 보스턴에서 세계기록이 나올 수 있는가.

보스턴은 정확히 쟀다. 인증받은 42.195km다. 이 점에는 논란이 없다. 세계기록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거리가 아니라 기하학적 조건이다. 둘은 별개의 판단이다. 첫 번째에서는 완전히 합격한 코스가 두 번째에서는 불합격할 수 있다. 보스턴이 바로 그렇다.

2011년 무타이가 그 성적을 냈을 때 당시 국제육상경기연맹, 즉 IAAF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코스가 짧다고 하지 않았다. 성적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도 않았다. 그때까지 나온 가장 빠른 마라톤 성적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다만 보스턴은 순낙차와 출발점·결승점 사이의 거리 모두 기준을 초과하므로 세계기록으로 공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표현이 핵심이다. 판정은 ‘기록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였지, ‘성적이 무효다’가 아니었다. 전자는 훌륭한 성적이지만 이 특정한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후자는 성적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IAAF가 한 말은 전자였다.

세계육상연맹은 그레이트 노스 런에 대해서는 더 분명한 표현을 썼다. 그레이트 노스 런의 하프마라톤 코스는 인증받았지만 세계기록을 낼 자격은 없다. 순낙차는 1km당 약 1.45m이고,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의 거리는 경기 거리의 75%를 넘는다. 이곳에서 당시 공식 세계기록보다 빠른 성적이 나왔을 때, 세계육상연맹은 그것이 세계기록을 대체할 수 없다고 설명하면서도 그 사실이 이 성적의 가치를 조금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고 분명히 강조했다.

‘가치를 조금도 깎아내리지 않는다.’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다. 세계기록란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서 성적이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성적을 낸 선수가 덜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 장부에 들어 있지 않을 뿐이다.

선수들도 그렇게 본다. 2011년 보스턴에서 2시간 4분 58초로 4위에 오른 라이언 홀은 자신의 보스턴 성적이 미국기록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흠이 생겼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전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로버트 드 카스텔라는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코스는 저마다 다르며, 그 차이는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지닌 신비의 일부라는 것이다. 표준화해서 말끔히 없애 버려야 할 결함이 아니라.

보스턴을 둘러싼 널리 퍼진 오해 몇 가지도 여기서 걷어 내자.

첫째, 세계기록 자격이 없으니 보스턴은 규정에 맞는 마라톤이 아니라는 오해다. 규칙의 구조를 거꾸로 읽은 것이다. 보스턴은 정식으로 측정하고 인증한 42.195km 코스다. 세계기록 공인을 막는 것은 그 거리의 적법성이 아니라 기하학적 조건이다.

둘째, 내리막이므로 보스턴은 언제나 더 빠르다는 오해다. 순낙차가 140m인 것은 맞다. 하지만 코스의 높낮이를 들여다보면 유명한 뉴턴의 언덕들을 비롯해 상당한 오르막이 있다. 날씨는 겉으로 드러나는 그 기하학적 이점마저 뒤집을 수 있다. 맞바람이 불거나 덥거나 비가 왔던 해들이 그것을 보여 준다. 1897년부터 2018년까지 보스턴의 성적 관측값 38만 건 이상을 살핀 연구에서도 기상의 영향은 컸다. 순낙차는 비교 가능성을 관리하기 위한 대리 지표다. 보스턴이 매년 베를린, 런던, 시카고보다 빠를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다.

셋째, 무타이의 2시간 3분 2초가 무효 판정을 받았다는 오해다. 실제 판정의 범위는 훨씬 좁다. 세계기록으로 공인할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IAAF는 그 전례 없는 속도를 인정했고, 보스턴육상협회는 지금도 코스기록으로 보존하고 있다. 무타이가 부정한 행동을 했다는 판정은 없었다.

6. 하나의 거리, 말 그대로 두 개의 장부

보스턴은 두 장부가 생기는 한 가지 방식이다. 같은 코스를 두고 한 장부에는 코스기록, 다른 장부에는 세계기록이라고 적는데, 보스턴은 앞의 장부에만 들어간다. 하지만 더 문자 그대로 두 장부를 쓰는 경우도 있다. 여자 마라톤 기록이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IAAF 총회는 규정 하나를 바꿨다. 여자 도로 달리기 세계기록은 여자만 출전하는 경기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녀 혼성 경기에서 여자가 낸 성적은 별도의 ‘세계최고기록’ 범주로 옮기기로 했다.

이유는 이랬다. 여자가 남자와 함께 달리면 남자 페이스메이커 집단을 이용해 바람을 피하거나 페이스 조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자만 달리는 경기에서는 얻을 수 없는 도움이다. 따라서 IAAF는 혼성 경기와 여자 단독 경기의 조건이 기록을 비교하는 데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았다.

여기서 당장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이 규정 변경은 폴라 래드클리프가 부정행위를 했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래드클리프가 2003년 런던에서 낸 2시간 15분 25초는 남녀 혼성 경기에서 나온 성적이었다. 그 경기는 당시 규정에 완전히 부합했다. 규정 변경은 그녀가 규칙을 어겼다는 말이 아니었다. 이런 성적을 과거에 소급해서, 또 앞으로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에 관한 기관의 결정이었다. 정책을 세우는 이유와 선수에게 내리는 판정은 별개의 문제다. 이 둘은 구분해야 한다. 최초 안에 따르면 그녀의 2시간 15분 25초는 세계기록 지위를 잃고 세계최고기록이 되는 한편, 2005년 런던의 여자 단독 경기에서 달린 2시간 17분 42초가 여자 단독 세계기록이 될 예정이었다.

반발이 뒤따랐다. 세계마라톤메이저스와 국제마라톤·거리경주협회는 2011년 9월 이 변경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대다수 대중 도로 달리기 대회가 혼성 경기이므로 여자 단독 기록 하나만으로는 통계적으로 이 종목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 합법적으로 낸 가장 빠른 성적들에서 기록 지위를 빼앗는 것은 혼란스럽고 불공정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혼성 경기와 여자 단독 경기, 두 범주를 제안했다.

IAAF는 물러섰다. 2011년 11월 모나코 이사회에서 장부 하나만 두려던 안을 거둬들이고 혼성 경기 성적의 인정을 회복했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쓰이는 병렬적인 기록 범주가 자리 잡았다. 래드클리프의 2시간 15분 25초는 세계최고기록으로 영구히 격하되지 않고 세계기록으로 인정받는 지위를 유지했다.

지금도 세계육상연맹은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을 혼성 경기와 여자 단독 경기로 나누어 표기한다. 같은 거리, 두 개의 장부가 문자 그대로 실현된 가장 선명한 사례다. 둘 다 42.195km의 세계기록이다. 다만 이름 뒤의 꼬리표가 비교 가능성과 관련 있다고 여겨지는 경기 조건을 남겨 둔다.

여기서 벌어진 논쟁은 러닝화를 다룬 글과 같은 구조를 띤다. 다른 사람 뒤에서 달리면 공기저항이 줄고 달리기의 에너지 효율이 좋아진다는 물리적 사실에는 다툼이 없다. 논쟁이 생기는 대목은, 뒤따라 달리기와 페이스 조절이라는 연속적인 상황을 참가자의 성별 구성에 따른 양자택일의 범주로 바꾸는 단계다. 모델링은 래드클리프가 2003년에 실제로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 측정한 것이 아니며, 그녀가 여자 단독 경기에서 달렸다면 어떤 성적을 냈을지도 확정할 수 없다. 그러니 두 범주를 제안한 쪽이나, 처음에 세계기록 범주를 하나만 인정하려던 IAAF나 조건이 다르다는 점은 모두 받아들였다. 서로 갈린 것은 그 차이를 기록 분류에 어떻게 반영할지였다. 여자 단독 성적에만 세계기록 지위를 줄 것인가, 아니면 혼성과 여자 단독 각각에 세계기록을 둘 것인가.

논쟁의 결말도 흥미롭다. IAAF는 처음에 여자 단독 기록만 인정하는 하나의 장부를 원했다. 반대자들은 혼성과 여자 단독을 따로 적는 두 장부를 원했다. 마지막에 이긴 것은 두 장부였다. 이는 러닝화 편의 선택과 멀리서 호응하면서도 방향은 반대다. 러닝화에서는 구축이 신구 장비를 한 장부 안에 남겨 두고 나누지 않았다. 여기서는 혼성과 여자 단독을 결국 두 장부로 나눴다. 똑같이 조건의 차이를 마주하고서 한 번은 합치고 한 번은 갈랐다. 어느 쪽을 택하게 만드는 것은 객관적 원칙 하나가 아니다. 당사자들 사이의 힘겨루기, 그리고 어떤 기록부가 이 종목을 더 잘 대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이런 자리에서 구축이 내놓는 선택은 증거 때문에 다른 길이 막혀 버린 유일한 답이 아니다. 각각 성립할 만한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이다.

7. 규칙이 규제하지 않기로 한 것들

마라톤을 달리는 날에는 바람이 불 수도 있고 몹시 더울 수도 있다. 세계육상연맹의 도로 달리기 기록 규칙은 이 두 가지를 직접 규제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도로 달리기에는 직접적인 풍속 상한이 없다. 단거리와 멀리뛰기에는 +2.0m/s라는 제한이 있어서 이를 넘으면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 도로 달리기에는 그런 식으로 경기 당일의 풍속을 읽어 판정하는 값이 없다. 출발점과 결승점 사이의 거리를 50%로 제한하는 규칙은 부분적으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 42km에 걸친 바람을 수치 하나로 읽기보다 두 지점 사이의 간격을 제한해, 그 지역의 지배적인 바람 방향이 체계적으로 도움을 줄 여지를 줄이는 것이다.

온도의 문턱값도 없다. 도로 달리기 기록 기준에는 최고·최저 기온이나 습도, 또는 그와 비슷한 기상 조건의 자격 기준이 없다. 덥거나 추운 조건은 경기를 더 빠르게도 더 느리게도 만들 수 있다. 그래도 다른 규칙을 지켰다면 공식 기록으로서의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빈칸 하나를 솔직하게 남겨 두어야 한다. 온도를 왜 공인 요건에서 제외했는지 설명하는 세계육상연맹의 원래 결정문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철학적·생리학적 이유를 이 기관의 의도로 돌리는 것은 추측이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규칙이 그것을 규제하지 않는다는 데까지다.

이 선택 자체는 이 연작의 초반부와 이어진다. 제5편에서 보았듯 1976년 IAAF는 통제할 수 있는 계시는 규제하고, 더 중요했던 고도는 규제하지 않았다. 구축은 가장 통제해야 할 것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규제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바람과 기온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분명하다. 앞서 본 보스턴 연구에서도 기온이 올라가면 성적이 나빠졌고, 풍향은 성적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구축은 바람과 기온을 직접 규제하지 않았다. 경기 당일의 날씨는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코스를 설계할 때부터 확정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기하학적 조건을 규제했다.

세계육상연맹은 그렇게 서로 다른 두 표준화 전략을 쓴다. 짧은 종목에서는 특정 장소의 특정 순간에 측정한 바람을 변수로 삼는다. 긴 도로 달리기에서는 코스의 기하학적 조건을 뒷바람의 도움을 막는 주된 구조적 제약으로 삼는다. 날씨의 변화 자체는 여전히 도로 달리기의 일부다. 구축은 그것을 표준화해서 없애지 않았다. 다만 기하학적 조건을 통해 코스가 날씨를 체계적으로 이용하도록 설계될 가능성을 제한했다.

8. 총성과 함께 가는 시계와 나만의 시계

계시 속에도 장부 한 쌍이 숨어 있다. 이 장부는 자주 오해를 받는다.

수만 명이 달리는 대중 마라톤을 완주한 주자는 서로 다른 두 시간을 보게 될 수 있다. 하나는 출발 총성이 울린 순간부터 잰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출발선을 넘은 순간부터 잰 시간이다. 참가자를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출발시키는 대회에서는 총성이 울리고 몇 분이 지나서야 출발선을 넘기도 한다. 그래서 두 시간은 몇 분씩 차이가 날 수 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이 차이가 칩을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트랜스폰더 칩은 시간을 재는 기술이다. 반면 건타임과 넷타임은 시계를 언제부터 돌릴 것인가에 관한 서로 다른 정의다. 하나의 칩 시스템으로 두 시간을 모두 산출할 수 있다. 따라서 칩으로 측정했다는 사실이 기록 공인에 넷타임을 쓴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육상연맹의 공식 기록 시계는 출발 총성에서 선수가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의 경과시간을 잰다. 개인이 출발선을 넘은 때부터 결승점까지 걸린 시간을 따로 보여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기록 공인에 쓰는 시계가 아니다. 개인이 출발선의 계시 매트를 지나는 순간부터 재는 넷타임은 대중 주자에게 그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달렸는지를 가장 공정하게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대중 참가자의 성적을 매길 때는 대단히 유용하다. 그러나 세계육상연맹 세계기록에서는 총성부터 계산하는 공식 시간과 바꿔 쓸 수 없다.

보스턴은 이 구분을 잘 보여 준다. 보스턴육상협회의 기록에 따르면, 2006년 대회는 그룹별 순차 출발을 도입하면서 대중 참가자들의 성적을 넷타임으로 매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운영상의 변화가 세계기록의 계시 규칙을 새로 정의한 것은 아니다. 같은 칩 장비가 엘리트 선수에게는 총성을 기준으로 한 공식 결승 및 구간 통과 데이터를 수집하고, 대중 참가자 한 명 한 명에게는 개인 넷타임을 제공한다.

여기서도 두 장부다. 하나는 총성과 함께 움직이는 시계, 곧 기록의 시계다. 모두를 똑같이 대하며 같은 한 발의 총성에서 시작한다. 다른 하나는 내가 출발선을 넘을 때 시작하는 나만의 시계다. 개인인 나에게 가장 공정한 시계다. 두 장부는 같은 장비를 쓰지만 서로 다른 것을 잰다. 기록은 첫 번째만 인정한다.

이 구분을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아주 자연스러운 직관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대중 주자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총성이 울리고 몇 분 뒤에야 출발선을 넘었는데, 왜 총성부터 내 시간을 세는가. 그 사람에게는 당연히 넷타임이 더 공정하다. 실제로 달린 시간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록이 총성의 시계를 쓰는 이유는 개인에게 더 공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개인에게는 불공정하다. 기록이 원하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통일된 출발점이다. 각자가 출발선을 넘은 순간부터 시간을 센다면 출발선에서의 위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뒤에 밀려 있는 것의 차이가 사라지고, 그것은 경기의 성격 일부를 바꾼다. 그래서 기록은 개인에 대한 공정함을 희생해 하나의 시계를 얻는다. 이 역시 구축의 선택이다. 넷타임이 개인에게 더 공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록의 통일성을 위해 개인에게 덜 공정한 총성의 시계를 택한다.

9. 세계최고기록과 세계기록

이 두 장부의 갈림길은 역사에도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세계최고기록’과 ‘세계기록’이라는 두 표현이다.

20세기의 대부분 동안 도로 달리기에서 공식적으로 쓰던 권위 있는 표현은 세계최고기록, 곧 ‘world best’였다. IAAF가 공인하는 세계기록, ‘world record’가 아니었다. 보스턴육상협회 자체 역사에서도 조앤 베노이트가 1983년 보스턴에서 낸 2시간 22분 43초를 세계최고기록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보도할 때 몸을 사리느라 쓰는 겸양어가 아니었다. 실제 제도상의 지위를 반영했다. 당시 IAAF는 코스 측정과 기하학적 조건에 근거한 도로 달리기 세계기록 공인 범주를 아직 만들지 않았다. 도로 코스는 표준 트랙처럼 기하학적으로 서로 바꿔 놓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IAAF는 도로 달리기 성적에 세계기록을 공인하지 않고, 세계최고기록만 인정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03년이었다. IAAF는 표준 도로 경기 거리에 대해 공식 세계기록 체계를 만들고, 코스 측정과 기하학적 조건을 비롯한 공인 요건을 붙였다. 이 변경은 2004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기존 세계최고기록 가운데 요건을 충족하는 성적은 새 체계의 최초 세계기록이 될 수 있었다. 1월 1일에 역사를 0부터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2003년에 나온 성적을 당시에는 세계최고기록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최초의 공식 도로 달리기 세계기록 가운데 하나로 인정할 수도 있었다.

이 역사는 이 글의 주제를 시간축 위에 펼쳐 놓는다. 도로 달리기에 세계기록이라는 범주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에야 들어섰다. 그것을 세우려면 먼저 선을 그어 코스의 측정 기준과 기하학적 기준을 정해야 했다. 그 선을 긋기 전에는 코스의 기하학적 조건에 매이지 않는, 더 느슨한 세계최고기록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선을 긋고 나자 기하학적 조건에 의존하는 더 엄격한 범주, 세계기록이 생겼다. 반면 보스턴의 편도 경기라는 정체성은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에 세운 기록 체계보다 한 세기 넘게 오래됐다.

10. 비교하려고 선을 긋는다. 그러면 언제나 무언가가 밖에 남는다

이제 이 글의 이야기를 모아 보자.

세계육상연맹은 먼저 선을 그어야 했다. 그래야 2004년에 도로 달리기의 세계최고기록을 공인 가능한 세계기록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 선은 세계기록이라는 통계적 범주를 더 재현 가능하고 더 비교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범주에 들어갈 코스는 정확히 측정해야 하고, 기하학적 조건을 충족해야 하며, 총성에서 시작하는 시계로 시간을 재야 한다. 이 요건들은 경사, 뒷바람, 출발점과 결승점의 상대적 위치처럼 체계적으로 성적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묶어 두었다.

그러나 선을 긋는 순간, 반드시 무언가는 그 밖으로 나간다.

보스턴이 선 밖에 남았다. 거리는 정확히 쟀다. 하지만 홉킨턴에서 보스턴으로 이어지는 편도 코스의 기하학적 조건은 50%와 1km당 1m라는 두 검사를 통과할 수 없다. 이 대회가 한곳에서 출발해 다른 곳으로 가는 전통은 애슐랜드에서 출발했던 1897년에 시작됐고, 출발점이 홉킨턴으로 옮겨 간 것은 1924년이다. 둘 다 2004년의 기록 체계보다 앞선다. 편도 경기의 전통으로 따지면 한 세기 이상 먼저다. 이 코스는 경계선을 어기려고 설계한 것이 아니다. 설계했을 때는 그 선이 아직 없었다. 나중에 선이 건너와 보스턴을 바깥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것이 이 글의 잔여항이다. 그 모습은 앞에서 보았던 것들과 또 다르다.

앞선 잔여항에는 구축이 담지 못한 것, 계산하지 못한 것, 닿지 못한 것, 일부러 남겨 둔 것, 이름 붙이기를 거부한 것이 있었다. 이번 잔여항은 비교 가능성을 위해 긋는 선이 그어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보스턴이 그렇다. 완전히 적법하고, 정확히 측정했다. 다만 그 선보다 먼저 존재했다. 선을 긋자 세계기록란 밖으로 나가게 됐다.

그리고 이 잔여항에는 앞의 잔여항들에 없던 성질이 하나 있다. 밖으로 밀려났다고 해서 작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어떤 성적을 세계기록 밖으로 분류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무타이의 2시간 3분 2초는 여전히 그 시점까지 나온 가장 빠른 마라톤 성적이다. 세계기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세계육상연맹 스스로도 그로 인해 성적의 가치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보스턴육상협회는 다른 장부로 보스턴을 보존한다. 코스기록, 우승자, 이어져 온 세월, 난도, 역사다. 세계기록란에 들어가려고 그 전설적인 코스를 새로 설계하지 않았다. 그 길을 무타이의 코스기록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례 마라톤이라는 지위와 함께, 다른 장부에 고이 남겨 두었다.

이 글에서 말한 두 장부의 뜻은 결국 이것이다. 세계기록 규칙이 정의하는 것은 한 가지 비교 가능성이다. 서로 다른 코스에서 나온 성적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 위해 필요한, 경계를 가진 비교 가능성이다. 그것이 이 종목의 모든 가치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세계기록 장부에 들어가지 못한 코스도 코스기록의 장부, 우승의 장부, 역사의 장부에는 들어갈 수 있다. 이 장부들은 서로 다른 것으로 경기를 헤아리며, 동시에 성립한다.

이 구축은 선 하나를 그어 기하학적으로 지나친 도움을 주는 코스를 세계기록 밖에 세워 둘 수 있다. 그렇게 세계기록란 안의 성적들이 서로 비교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선 하나로 보스턴의 무게를 전부 잴 수는 없다. 그 무게의 일부는 세계기록 장부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장부에 있다. 홉킨턴에서 보스턴으로 이어지는 길의 한 세기 전통 안에, 이 코스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다. 구축이 그은 선은 실재하고 유용하다. 그것이 있어 한 가지 비교가 가능해진다. 그 선 안에 넣지 못한 것들도 실재한다. 다만 다른 장부에 적혀 있을 뿐이다.

자는 아직 정확히 재지 못했다. 그래도 여전히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