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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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조각 · 서양 조각

헵워스의 《Pelagos》: 빈 곳에도 원근이 있다

나무는 휘어 돌고 실은 가로지른다. 밝은 안쪽 면과 실제로 뚫린 틈이 작은 조각 안에 먼 곳을 담는다.

이 글의 구성

아래 작은 이미지는 본문에서 분석한 사진에 해당합니다. 전재 허가는 받지 않았으며 저작권은 해당 권리자에게 있습니다. 누르면 공식 출처가 열립니다.

헵워스, 《펠라고스》, 1946년, Tate T00699/BH133. 회백색 배경 속 목조 형태, 밝은 내벽, 실과 목제 받침대. © Bowness. Photo: Tate. 제공 기관: The Hepworth Wakefield/Google Arts & Culture.
헵워스, 《펠라고스》, 1946년, Tate T00699/BH133. 회백색 배경 속 목조 형태, 밝은 내벽, 실과 목제 받침대. © Bowness. Photo: Tate. 제공 기관: The Hepworth Wakefield/Google Arts & Culture. 전재 허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글의 작품 비평만을 위해 수록했으며 저작권은 해당 권리자에게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자르기, 확대 또는 내용 변경 없음.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가느다란 실 몇 가닥이 빈 곳을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나무는 그 양 끝에서 굽는다.

먼저 테이트가 촬영한 작품 사진을 열어 보자. 오른쪽 위에는 금빛 갈색의 나무 가장자리가 안으로 뻗어 있고, 끝은 오므린 혀끝처럼 모인다. 조금 왼쪽 아래에는 옅은 색으로 칠한 곡면이 위로 뒤집힌다. 실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이어지며 그사이의 거리를 건넌다. 나무의 큰 윤곽을 따르면 눈은 둘러 가고, 실을 따르면 곧장 가로지를 수 있다. 높이가 0.5m도 되지 않는 조각 하나 안에서 두 가지 길이 생긴다.

공식 기관이 제공하는 확대 보기 페이지: The Hepworth Wakefield/Google Arts & Culture, 사진 제공 Tate

그림 1 감상 안내: 갈색의 달걀 모양 목조각이 직사각형 나무 받침 위에 서 있다. 앞에는 넓은 입구가 나고 옅은 내벽은 뒤로 말려 들어간다. 위쪽의 서로 마주 보는 두 끝 사이에는 가는 실이 비스듬히 팽팽하게 걸려 있다. 옅은 곡면과 실제로 배경이 비쳐 보이는 틈을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바버라 헵워스, 《Pelagos》, 1946년. 느릅나무, 채색한 내벽과 실, 참나무 받침. 43 × 46 × 38.5cm. 테이트 소장, T00699, 작품 목록 번호 BH133. 제목은 그리스어로 ‘바다’를 뜻한다. 이 글은 이 목조각 한 점만을 다룬다. 작가 유산 공식 웹사이트의 작품 기록

이 제목은 우리를 쉽게 바닷가로 데려간다. 하지만 각 부분에 해안의 이름을 하나씩 붙이는 일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눈앞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비어 있음’이 곧바로 가볍고 탁 트인 상태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빈 곳에는 안으로 돌아드는 내벽과 돌출된 얇은 가장자리가 있고, 부피는 거의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실이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계속 구별한다. 어디로 더 깊이 볼 수 있는가, 어디는 이미 막혔는가, 어디에서 보이는 것은 사실 더 멀리 있는 배경인가.

이 목조각을 제작한 1946년, 헵워스는 이미 몇 년째 콘월에서 살고 있었다. 1939년 늦여름 런던을 떠나 세인트아이브스 지역으로 왔고, 전쟁 중 제약을 받다가 차츰 나아진 작업 여건 속에서 창작을 이어 갔다. 작가 유산 공식 웹사이트의 연보

1. 세 가지 옅은 색, 세 가지 거리

그림 1의 가운데는 밝아서 얼른 보면 하얀 구멍 하나로 여기기 쉽다. 잠시 머물면 서로 다른 몇 곳으로 나뉜다.

가장 바깥쪽 입구는 갈색 나무 가장자리로 둘러싸여 있고 윤곽은 대체로 세로로 길다. 오른쪽을 따라 내려가면 옅은 곡면이 가장자리에서 안으로 굽으며 점차 폭을 넓히다가 아래에서 펼쳐진다. 이 옅은 부분은 배경이 아니다. 그 위에서는 명암이 천천히 옮겨 가며, 가장자리 가까이는 밝고 깊숙이 굽어 들어가는 곳은 청회색이 된다. 표면 하나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가운데를 보면 옅은 내벽이 끝나고, 조각 바깥의 회백색 배경과 이어지는 영역이 남는다. 실제로 뚫린 곳은 여기다. 창틀처럼 정중앙을 차지하지 않으며 가장자리도 바깥 입구와 평행하지 않다. 그래서 앞쪽의 길쭉한 입구와 뒤쪽의 뚫린 부분은 겹쳐져 단순한 고리 하나가 되지 않는다.

세 번째 옅은 부분은 위에 있다. 얕은 주머니처럼 아래 가장자리가 아래로 부풀고 양 끝은 조금 올라간다. 실은 이 둥근 가장자리에서 오른쪽 위로 펼쳐진다. 주머니 같은 부분 뒤로도 밝기가 다른 곡면과 틈이 보인다. 따라서 비슷하게 밝은 영역 안에 적어도 가까운 가장자리, 안으로 향하는 벽, 내부를 사이에 두고 보이는 외부가 나타난다. 색은 닮았지만 공간에서 맡는 역할은 전혀 다르다.

이것이 채색한 내벽이 실제로 하는 일 중 하나다. 바깥 나뭇결은 복잡하고 갈색은 금빛에서 짙은 갈색으로 옮겨 간다. 안쪽의 넓은 옅은 색은 나뭇결의 간섭을 줄이고 곡면이 굽는 방향을 추적하기 쉽게 한다. 색은 형태 위에 떠서 분위기를 덧입히기보다 눈이 깊이를 구별하도록 돕는다. 명암에 먼저 끌린 뒤, 밝은 곳이 반드시 가깝거나 어두운 곳이 반드시 구멍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뒤쪽의 실제로 뚫린 부분만 바라보자. 경계는 눈앞의 목조각이 정하지만, 그 안의 회백색은 사진 배경에 속한다. 조각은 우리가 밖을 보는 입구를 조직하면서도 그 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바다라는 제목을 빌리지 않아도 외부 공간의 일부가 이미 작품을 보는 일에 들어와 있다.

2. 실은 빈 곳을 막지 않는다

다시 실들을 보자. 한 가닥씩 나무 가장자리의 한 지점에서 출발해 틈을 가로질러 반대쪽 끝에 닿는다. 끝점들은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고 실 사이에는 좁지만 분명한 간격이 남는다. 사진에서는 비스듬히 펼쳐지는 실의 열을 이룬다.

실은 가늘지만 두 끝 사이의 거리를 갑자기 구체적으로 만든다. 상상 속에서 잠깐 실을 치우더라도 두 나무 끝이 서로를 향한다는 것은 볼 수 있다. 다만 그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주로 곡면들이 앞뒤로 가리는 관계에 기대어 판단하게 된다. 실이 더해지면 거리가 한 줄씩 표시된다. 시선은 두꺼운 껍질을 다 돌아가지 않고도 한 끝점에서 다른 끝점으로 갈 수 있다.

동시에 실은 속이 찬 판을 만들지 않는다. 뒤의 옅은 벽면이 여전히 보이며 실 두 가닥 사이에는 통로도 남아 있다. 우리는 실들을 얇은 면으로 보다가, 다시 그 너머를 보며 뒤의 굴곡을 발견한다. 이 얇은 면에는 방향이 있지만 안을 모두 가리지는 않는다.

실과 나무 가장자리는 서로의 모습도 바꾼다. 굽은 나무는 원래 두텁고 느리게 보이지만 실 때문에 양 끝이 서로 당겨지는 듯한 의미를 얻는다. 직선은 뻣뻣해질 수도 있지만 양 끝을 곡선 가장자리가 이끌면서 리듬 있는 배열이 된다. 직선과 곡선은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아주 작은 고정점 하나하나에서 만난다.

‘팽팽하다’는 것은 여기서 매우 직접적인 시각적 느낌이다. 실의 방향은 명확하고 두 끝은 서로 다른 쪽으로 굽어 나가는 듯하다. 이 긴장은 먼저 직선이 곡선 가장자리를 가로질러 잇는 눈에 보이는 관계에서 나온다. 눈은 곧게 가지만 양 끝에 이르면 다시 곡면으로 연결된다.

실은 현을, 굽은 내부 공간은 악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연상은 실 뒤의 공간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며, 소리에 대한 기대를 깊이에 대한 관심으로 바꿀 수 있다. 작품이 눈앞에 내놓는 것은 거의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 연결이다. 빈 곳은 여전히 남고, 떨어진 두 가장자리는 더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

3. 나뭇결은 껍질을 손바닥의 세계에 남겨 둔다

갈색 바깥쪽으로 돌아가자. 완벽한 구 껍질이 아니다. 왼쪽은 풍만하고 오른쪽은 입구를 따라 좁아지며 위에서는 다시 안으로 오므라든다. 곳마다 두께가 달라져 전체에는 옹골찬 둥글림과 분명한 방향 전환이 함께 있다.

그림 1을 확대하면 왼쪽 위에는 곡면을 따라 이어지는 가는 나뭇결이, 그보다 아래에는 더 짙고 불규칙한 선들이 보인다. 기하학적인 단정함을 얻으려고 표면을 균일한 색으로 만들지 않았다. 결은 늘 조각의 윤곽을 따르지 않는다. 비스듬히 가로지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촘촘해지기도 한다. 나무가 원래 지니던 방향과 나중에 깎아 만든 방향이 같은 표면에 겹친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차이는 작품에 나무의 구체성을 남긴다. 옅은 내부를 볼 때 시선은 넓고 연속적인 곡면 안으로 들어가기 쉽다. 바깥으로 돌아오면 결, 빛깔, 부분적으로 깊은 선이 눈을 붙잡는다. 전자의 경험은 공간으로 향하고 후자의 경험은 여기에 실물 하나가 있음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둘 사이의 분명한 색 경계는 보는 일을 안으로 보내고 다시 밖으로 데려온다.

둥근 껍질은 손바닥으로 감싸는 상상도 부른다. 따라 미끄러지기 좋을 듯한 곡면이 있고, 안으로 손을 뻗으면 만날 가장자리가 있으며, 특별히 조심해야 할 듯한 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높이 43cm, 너비 46cm인 작품은 손바닥에 쥘 수 있는 작은 돌이 아니다. 만진다는 상상은 크기 앞에서 조정된다. 촉감을 떠올릴 수는 있어도 몸은 여전히 작품 밖에 서 있다.

아래의 직사각형 참나무 받침이 중요하다. 위의 형태는 끊임없이 굽지만 받침은 곧은 가장자리로 펼쳐져 둥근 껍질에 안정적인 착지점을 준다. 두 나무 모두 결을 드러내지만 맡은 형태는 다르다. 한쪽은 시선을 말아 넣고 다른 쪽은 작품을 측정할 수 있고 전시할 수 있는 위치에 놓는다.

사진에서는 둥근 몸체가 받침에 가까워지며 뚜렷하게 좁아지고 접촉 부근에 작고 깊은 어둠이 생긴다. 껍질은 살짝 멈춰 선 듯하지만 받침의 두께와 너비는 여전히 확실하다. 이 착지점 덕분에 위의 빈 공간은 그저 떠 있는 무늬가 되지 않는다. 무게를 지니고 놓일 자리가 필요한 물체에 속한다. 숨어 있는 고정 방식은 그림자만으로 추정하지 않는다.

4. 해안은 왜 작은 목조각 안으로 들어오는가

콘월에 처음 왔을 때는 거처와 작업 공간, 시간 모두 부족했다. 헵워스는 밤에 그림을 그리고 석고 조각도 만들었다. 1942년 카비스베이의 더 큰 집으로 옮긴 뒤에는 작업실을 갖게 되었고 정원에서 조각할 수 있었다. 1946년의 《Pelagos》는 작업 여건이 차츰 달라진 그 생활 뒤에 나왔다. 작가 유산 공식 웹사이트의 연보

이 배경은 작은 범위에 모인 작품을 주위 자연환경과 구체적으로 연결한다. 코톨드 미술관의 연구 설명은 《Pelagos》를 세인트아이브스의 만과 연결하고, 1940년대 헵워스가 탐구한 색과 실의 맥락 안에 놓는다. 미술관이 인용한 작가의 당시 회고에 따르면, 오목한 곳의 색은 그녀를 물속 깊은 곳과 동굴, 얕은 여울로 이끌었고, 실은 자신과 바다, 바람, 언덕 사이에서 느낀 긴장과 관련되었다. 코톨드 공식 자료, 2쪽

이것은 갈색 부분을 하나하나 땅으로 알아보고 옅은 부분을 모두 바닷물이라 부르라는 요구가 아니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사람이 만 앞에서 어떻게 공간감을 얻는지 생각하는 일이다. 가까이에는 양쪽으로 이어지는 지형이 있고 앞에는 더 멀리 열린 곳이 있다. 몸은 어떤 윤곽에 둘러싸이면서도 시선은 그 너머로 나갈 수 있다. 둘러싸이는 일과 멀리 내다보는 일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Pelagos》는 이런 상호 관계를 훨씬 작은 범위 안에 만든다. 껍질이 안으로 굽으면 시선도 따라 가까워진다. 옅은 곡면은 눈을 깊은 곳으로 보내고 실제로 뚫린 틈은 외부를 드러낸다. 실은 안쪽의 두 끝을 이어 이 통과할 수 있는 빈 곳에 늘 분명한 방향을 준다. 눈은 나무 덩어리의 바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안으로 이끌리고, 제약을 받으며, 다시 멀리 보게 되는지를 경험한다.

여기서 크기는 흥미로운 대비를 만든다. 만을 두 팔로 감쌀 수는 없지만 이 목조각은 가까이에서 전체를 시야에 담을 수 있다. 드넓은 경치의 경험은 크기를 키워 보존한 것이 아니라 몇 가지 거리 사이의 관계로 바뀌었다. 우리는 작품 밖에 서 있지만 눈은 안에서 자리를 찾아보도록 초대받는다.

이 점은 왜 인물을 조각할 필요가 없는지도 설명한다. 몸의 역할은 인체 윤곽 없이도 나타날 수 있다. 안쪽을 볼 때 나는 가까이에 있고, 입구 너머 배경을 볼 때는 그 뒤에도 장소가 있음을 깨닫는다. 조각은 관객의 얼굴을 만들어 주지 않으면서도 보는 일 자체에 ‘여기서 저쪽으로’라는 방향을 준다.

5. 틈에서 정원이 드러난다

같은 《펠라고스》를 정원에서 촬영한 사진. 밝은 내벽과 구멍 너머의 식물. 출처: 작가 유산 관리 공식 웹사이트. 작품 저작권© Bowness. 확인한 작품 페이지에는 사진가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펠라고스》를 정원에서 촬영한 사진. 밝은 내벽과 구멍 너머의 식물. 출처: 작가 유산 관리 공식 웹사이트. 작품 저작권© Bowness. 확인한 작품 페이지에는 사진가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재 허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글의 작품 비평만을 위해 수록했으며 저작권은 해당 권리자에게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자르기, 확대 또는 내용 변경 없음.미술관 작품 페이지에서 이미지 보기 ↗

또 다른 공식 사진: 작가 유산 공식 웹사이트의 정원 쪽 각도

그림 2 감상 안내: 같은 목조각의 다른 쪽이 관객을 향한다. 흰색에 가까운 내벽이 넓게 펼쳐지고 위쪽 끝은 안으로 굽어 돌아온다. 녹색 잎은 작품 둘레에 나타나고 오른쪽 위의 좁게 뚫린 곳에서도 보인다. 내벽과 실제로 뚫린 곳을 비교하기 좋은 사진이며 고해상도 세부 사진은 아니다.

이 사진에서는 변화가 분명하다. 회백색 촬영 배경을 식물이 대신하고 작품의 방향과 구도도 달라졌다. 우리는 다른 쪽의 더 넓은 내벽과, 다른 위치에서 식물을 드러내는 입구를 본다.

나뭇가지와 잎이 목조각 둘레에 있을 때는 환경에 속한다고 쉽게 알아본다. 그런데 좁은 입구로 보이면 같은 초록이 작품 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사실 식물은 여전히 뒤에 있다. 나무의 경계가 식물을 볼 수 있는 작은 자리를 잘라 낸 것이다. 틈은 외부 풍경을 잠시 조각을 보는 일의 일부로 만든다.

동시에 흰색에 가까운 넓은 내벽은 여전히 내벽이다. 배경을 따라 초록으로 바뀌지도 않고, 뒤에 식물이 있음을 안다고 투명한 막이 되지도 않는다. 그림 1에서 비슷하게 밝았던 내벽과 배경은 여기서 더 명확히 나뉜다. 한쪽은 칠해진 실제 면이며 다른 쪽은 작품을 넘어가는 시선이다.

이 변화는 ‘안’과 ‘밖’을 단순한 두 명사 이상으로 만든다. 내부에서 외부가 드러나고 내부에는 뚫고 볼 수 없는 곡면도 있다. 몇 가닥 실은 두 끝을 잇지만 뒤를 전부 막지는 않는다. 곳마다 통하는지 막히는지, 가까운지 먼지를 구체적인 가장자리에서 확인해야 한다.

처음의 실들로 돌아가자. 여전히 빈 곳을 비스듬히 가로지른다. 껍질은 둥글고 받침은 안정적이다. 이런 구조를 분명히 보고 나면 작품의 고요함은 오히려 더 실감 난다. 어느 부분도 실제로 움직일 필요 없이 몇 가지 거리가 동시에 유지된다. 바다의 드넓음이 가까이 왔지만 한눈에 다 볼 수 있는 파란 덩어리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더 읽고 싶다면: 지각의 광선, 배경도 이 드러남에 참여한다

Han Qin의 지각의 광선 에세이 《어둠이 내리자 정원의 모습이 달라졌다》는 해 질 무렵의 정원에서 시작한다. 색은 꽃 혼자서 건네는 고정된 보고가 아니다. 빛, 물체, 감각 조건이 함께 지금 무엇을 구별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준다. 글은 감각이 대상을 알아보는 과제만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한다. 꽃이라는 것을 안 뒤에도 어떻게 드러나는지 계속 볼 수 있다. 지각의 아름다움 에세이, 영어로 읽기

이 방향에서 《Pelagos》를 다시 보면 질문을 더 좁힐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한때 내벽과 빈 구멍을 하나의 옅은 색으로 보았을까?

그림 1의 배경은 회백색에 가깝고 채색한 내벽도 옅어서 사진에서는 둘이 아주 비슷하다. 곡면 위의 명암 변화, 나무 가장자리의 가림, 실 뒤의 작은 틈이 차츰 둘을 가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림 2에서는 녹색 식물 때문에 뚫린 곳의 색이 내벽과 달라지고 입구 방향의 차이도 초록을 드러낸다. 작품에 방금 구멍이 난 것이 아니라 배경과 방향, 구도가 함께 ‘뒤로 통한다’는 사실을 더 쉽게 구별하게 한 것이다.

이 광선은 이번 공간 판단이 무엇에 기대는지 더 분명하게 한다. 조각의 빈 곳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는 조각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빈 곳의 경계는 작품에 속하지만 그 안에 보이는 색과 거리의 단서, 무늬는 환경에서도 온다. 사진은 이런 관계들을 한순간에 고정하고, 우리는 그 공동의 드러남이 만든 결과를 본다.

따라서 색을 비교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그림 1의 내부에는 옅은 청회색이 돌고 그림 2는 흰색에 더 가깝다. 각도와 조명, 사진의 색 표현이 모두 다르므로 두 사진만으로 퇴색이나 덧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그래도 옅은 내벽이 금빛 갈색 나무 껍질과 어떻게 맞닿고, 이 차이가 곡면을 구별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게 논의할 수 있다. 원래 안료와 역대 복원 작업은 별도로 기술 기록을 확인해야 한다.

끝으로 이 광선은 작품이 언제나 새로운 각도를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독자는 나무 벽과 실, 배경을 구별한 뒤에도 같은 사진 앞에 머물 수 있다. 실 한 가닥이 어떻게 가장자리에 닿는지, 옅은 면이 굽은 곳에서 어떻게 어두워지는지, 둥근 몸체가 바닥에 어떻게 작은 그림자를 남기는지 볼 수 있다. 이런 차이는 다시 해안을 입증할 필요도, 자유나 생명의 비유로 환산될 필요도 없다. 나무와 실, 빈 곳 사이에는 이미 자세히 볼 만한 충분히 풍부한 관계가 있다.

이미지와 자료 안내

이 글은 BH133/T00699에 해당하는 공식 출처 사진 두 장을 실제로 확인했다. 작가 유산 공식 웹사이트의 정원 사진과, The Hepworth Wakefield가 Google Arts & Culture에서 제공하며 Tate 촬영으로 명시한 회백색 배경 사진이다. 뒤의 사진은 1200 × 900픽셀까지 확인했다. 두 사진은 촬영 각도와 환경이 다르며 이미지 저작권은 각 출처 페이지의 표시에 따른다.

재료와 제작 연도, 작품 목록 번호는 작가 유산 공식 웹사이트, 크기는 기관 협력 전시 페이지에 근거한다. 생활 배경은 공식 연보, 만과 실과 색에 관한 제작 배경은 코톨드 공식 자료에 근거한다. 현장에서 작품 주위를 돌아보거나 만지지는 않았다. 사진 속 각 부분이 어떻게 원근과 몸의 방향을 조직하는지는 이 글이 제안하는 세밀한 읽기의 판단이다. 자세한 내용은 참고 자료와 이미지 보기 링크를 참조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영어)

English

Barbara Hepworth, Pelagos, 1946, BH133 / Tate T00699. Elm with colour and strings, oak base, 43 × 46 × 38.5 cm. The Hepworth Wakefield provides the Google Arts & Culture presentation; Tate owns the work. Different lighting and viewpoints do not establish repainting.

The linked institutional records supply identification and historical context. The close reading and optional SAE connections are the essay’s interpretation, not claims attributed to the artist.

1. www.barbarahepworth.org.uk

2. artsandculture.google.com

3. www.barbarahepworth.org.uk

4. courtauld.ac.uk

5. www.tate.org.uk

6. nondubito.net

7. nondubito.net

8. nondubito.net

이미지 출처와 이용 안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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