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 《기생수》 읽기
1 / 5

뇌까지 가지 못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문의 논지와 세부를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쓴 글이다. 작품 전체의 결말을 다룬다.

고등학생 하나가 잠들어 있다. 귀에는 아직 이어폰이 꽂혀 있다.

무언가가 그의 귀를 통해 뇌로 들어가려 한다. 이어폰에 막히자 오른팔로 파고든다.

그가 깨어난다. 정체는 모른다. 무언가가 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만 안다. 몸부림치던 그는 팔에 이어폰 줄을 조여, 그것이 손목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다.

이제 그것은 뇌에 닿을 수 없다. 이미 몸 안으로 파고들어 되돌아갈 수도 없다. 결국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다. 오른손이다.

《기생수》의 모든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한 번의 실패에서.

그때 성공했더라면

먼저 그 실패의 반대편에 있었던 가능성을 짚어 두자.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바탕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이 기생 생물들은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뇌를 먹어 치운 뒤 몸을 장악한다.

그 뒤로도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 옷과 직장, 집 주소는 그대로 거리를 돌아다닌다. 안에 있던 존재는 바뀌었는데 겉에서는 전혀 알아볼 수 없다.

몸을 차지하고 나면 배우기 시작한다. 말하는 법, 표정 짓는 법, 그 사람이 평소 동료에게 인사하던 방식까지. 잘 배우는 개체는 몇 년이고 들키지 않는다. 서툰 개체는 가까운 사람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작품에 그런 사례가 있다. 한 여자를 대신한 기생 생물을 보고, 그 여자의 어머니가 단번에 자기 딸이 아님을 알아본다.

이런 일은 작품 속에서 거듭 벌어진다. 뒤에 신이치의 어머니도 그렇게 된다.

그날 밤 침입에 성공했더라면, 이 역시 ‘한 사람이 다른 존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보았다. 한 사람이 시스템의 계산 속에서 지워지고, 프로그램이 정한 규격대로 만들어지고, 진단서 한 장에 의해 어떤 존재인지 규정되는 이야기들.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같은 일을 말한다. 한자리에 있던 본래의 존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것이 차지했다는 일이다.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주 드문 상황이 생겨났다. 한 몸 안에 두 주체가 있고, 어느 쪽도 다른 쪽을 먹어 없앨 수 없다.

각자 무엇이 부족한가

이 상황에서 무엇이 누구를 붙들어 두는지 보자.

그것이 차지한 곳은 오른손 하나뿐이다. 동족처럼 몸 전체를 장악할 수 없다. 자기 다리도, 위도, 폐도 없다. 살아남는 길은 하나다. 신이치가 살아 있어야 한다.

신이치 역시 그것 없이는 안 된다. 이후 다른 기생 생물들의 표적이 되어 거듭 공격받지만, 그 자신에게는 싸울 능력이 전혀 없다. 매번 그의 앞을 막아 서는 것은 그 오른손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다만 필요한 것이 다르다.

신이치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을 지킬 수단이다. 그것에게 필요한 것은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해 줄 숙주다. 둘을 같은 단위로 환산할 수는 없다. 따라서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빚졌는지도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오른쪽이’라고 이름을 댄다. 신이치의 오른손에 있으니까.

이 이름은 따로 기억해 둘 만하다. 원래 지니고 있던 이름도, 종을 가리키는 이름도 아니다. 자신이 자리 잡은 위치를 따라 고른 이름이다.

그때부터 신이치도 그 이름으로 부른다.

이 작품에서 다른 기생 생물들은 모두 자신이 죽인 사람의 이름을 쓴다. 타미야 료코는 한참 뒤 타무라 레이코로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타미야 료코의 이름을 쓴다. 모두 남에게서 가져온 이름들이다.

오른쪽이의 이름은 새롭다. 스스로 고른 이름이, 함께 살아가는 동안 신이치가 그 존재를 부르는 이름이 된다.

그 명령

작품 중반에 밝혀지는 설정 하나가 있다. 돌이켜보면 이 일의 나머지 절반에 해당한다.

타미야 료코라는 기생 생물이 나중에 신이치에게 말한다. 인간의 뇌를 빼앗던 순간, 명령 하나가 내려왔다고.

이 종을 모조리 먹어 치워라.

그리고 신이치에게 묻는다. 인간에게는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느냐고.

이 존재들은 이미 쓰여 있는 명령 하나를 품고 태어난다.

자기들끼리 의논한 것도, 스스로 선택한 것도, 환경에서 배운 것도 아니다. 그들이 그런 존재가 되는 순간부터 이미 안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이는 뇌를 차지하지 못했다.

작품은 그 일이 오른쪽이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오른쪽이에게 ‘그래서 나는 그 명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존재로 남겨 둔다. 사람을 먹는 데 잘못은 없으며 생물이라면 으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한 번도 사람을 먹지 않는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진 것은 손 하나뿐이고, 그 손은 그러기를 거부하는 사람의 몸에 붙어 있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작품도 피하지 않는 질문이다. 처음에 뇌를 차지했더라면, 오른쪽이도 동족들과 똑같았을까?

작품은 독자가 오른쪽이의 말을 직접 돌아보게 한다. 사람을 먹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귀한 것은 오직 자기 목숨이다. 신이치의 도덕적 판단에는 ‘이해할 수 없다’고 답한다.

이런 입장을 가진 존재가 온전한 행동 능력까지 갖췄다면 무엇을 할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처음에 하려던 일

분명히 해 두자. 오른쪽이는 선량한 존재가 아니다.

처음의 행동 원칙은 단순하다. 말에도 한 치의 모호함이 없다. 내 목숨만 지키면 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신이치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동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자신은 실패작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성가신 일이 생길 테니까.

두 번째로 하는 일은 책을 읽는 것이다.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신이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몇 분이면 한 권이다. 생물학, 사회학,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인간의 지식을 읽어 들인다.

앎 자체에 마음이 끌려서 읽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조사하는 중이다. 나는 대체 어떤 존재 안에 떨어졌나. 이것은 어떻게 움직이나.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나.

신이치를 보살피는 모든 행동, 나중에 거듭 목숨을 구해 주는 행동까지 출발점은 같다. 신이치가 죽으면 자신도 살 수 없다. 오른쪽이는 이 사실을 숨긴 적도, 멋쩍어한 적도 없다.

신이치는 동족들이 사람을 먹는 일을 물은 적이 있다. 오른쪽이의 답은 대략 이렇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 동족들은 그저 먹이를 먹고 있다. 생물이라면 하는 일이다.

신이치는 사람의 목숨이 귀하다고 말한다. 오른쪽이는 이렇게 답하는 셈이다. 모르겠다. 귀한 것은 자기 목숨뿐이다.

작품 속 누구도 이 말을 논파하지 못한다. 논파할 인물을 따로 내세우지도 않는다. 말들을 그대로 남겨 두고, 이야기 끝까지 함께 가게 한다.

나중에 했던 그 말

그런 오른쪽이가 작품의 끝 무렵 신이치에게 한마디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너여서, 네 뇌를 빼앗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 말을 첫 글의 끝에 놓는 이유는, 그 한 번의 실패가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비로소 끝까지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날 밤 일어난 일은 당시 양쪽 모두에게 사고였다. 그것에게는 임무의 실패였고, 신이치에게는 재앙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그 일을 좋은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 자신이다.

이 말을 하는 존재는 이야기 처음에 사람을 먹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고, 귀한 것은 자기 목숨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도 그 말을 거두지 않았다.

말을 거두지 않았다. 다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까지 왔을 뿐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머지 네 편에서 다룬다.

그런데 서로를 먹어 없앨 수 없는 두 존재가 한 몸 안에서 살아가려면,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답은 생각보다 훨씬 자잘하다.

다음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