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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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른 한 사람을 남겨 두었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 2026-10-09

이 판본에 관하여

판본 안내: 중국어 원작의 논의를 한국어 독자를 위해 새로 풀어 쓴 글이다.

공안 9과의 대원들은 대부분 전신 의체이거나, 거의 온몸을 의체로 바꾼 사람들이다.

군인 출신, 특수부대 출신, 정보요원 출신. 저마다 한 분야를 극한까지 갈고닦았다. 근접전, 저격, 잠입, 전자전, 정보 분석.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다르다.

토구사. 형사 출신이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며, 몸은 거의 태어날 때 그대로다. 가장 기본적인 전뇌화만 했다. 쓰는 총은 리볼버다. 손에 익었다는 이유다.

이런 조직 안에서는 어느 지표로 보아도 그가 가장 약하다.

그런 그를 모토코가 직접 뽑았다.

그녀가 내놓은 이유

오시이 마모루의 1995년 영화판에서 모토코는 토구사가 필요한 이유를 말한다. 그의 장점을 칭찬하는 말은 아니다. 이 이유는 《S.A.C.》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요지는 이렇다. 우리 모두가 같은 종류의 전문가로 이루어져 있으면 이 시스템은 취약해진다. 지나친 특화는 서서히 죽음으로 이어진다.

공학적 판단이지, 도덕적 판단이 아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자칫 포용에 관한 그럴듯한 말로 읽히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아니다. 같은 부류로만 이루어진 조직은 같은 방식으로 틀린다는 말이다.

최정예 의체 전투원 아홉 명은 같은 상황에서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이다. 대개는 옳은 판단일 것이다. 최정예니까. 그런데 그 판단이 틀리는 순간에는 아홉 명이 함께 틀린다. 틀리는 방향마저 똑같다.

조직이 오류에 얼마나 잘 버티는지는 가장 뛰어난 구성원이 얼마나 뛰어난가에 달려 있지 않다. 구성원들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에 달려 있다.

앞선 글의 타치코마 이야기와는, 같은 문제를 두 방향에서 바라보는 관계다.

타치코마에게는 동일성이 요구된다. 병기이므로 예측 가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9과에서는 동일성을 경계한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맞서야 하는 조직에서 모두 같다는 것은, 사각지대까지 같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을 가로질러 보면, 모토코는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다. 둘 다 옳은 결정이다. 차이는 그것을 어디에 쓰느냐에 있다.

이후 토구사가 한 일

《S.A.C.》는 52화에 걸친 토구사의 활약으로 이 생각이 옳음을 거듭 보여 준다.

토구사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서 있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에서 무라이 백신 접종자 명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이 토구사다.

여러 사건에서 ‘여기는 뭔가 이상하다’는 첫 직감은 그에게서 나온다. 남들은 물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질문을 묻고, 살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실마리를 따라간다.

그의 방식은 형사의 방식이다. 찾아가고, 대조하고, 발로 뛰고, 사람에게 묻는다. 전자전을 주로 하는 부서에서는 우스울 만큼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가끔 전자전으로는 건지지 못하는 것을 건져 올린다.

신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스템이든 해킹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해킹부터 할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안에 없는 것도 있다. 누군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종이 서류가 꽂힌 순서, 전화를 받다가 잠깐 멈춘 그 틈에 있는 것들이다.

토구사가 그런 곳을 들여다보는 까닭은 남보다 잘 알아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쓸모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보지 않을 방향을 보기 때문에 쓸모 있다.

그쪽을 보는 이유는 바로 그가 그들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속한 부분

이제 이 글의 나머지 절반을 이야기하자.

쿠사나기 모토코는 전신 의체다.

아주 어릴 때 의체화되었다. 사고를 당한 뒤,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몸을 거의 전부 바꾸었다.

그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다.

작품은 거듭 이 문제를 건드리지만, 언제나 같은 곳에서 멈춘다. 그녀에게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지금의 자신과 그때의 아이가 같은 사람이라고 증명할 수 없다. 자기 영혼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었는지도 증명할 수 없다. 자기 안에서 자기에게 속한 부분이 어디서 왔는지, 바뀐 적은 없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 줄 것을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다.

전신 의체인 사람의 기억은 전뇌에 저장된다. 전뇌에는 외부에서 내용을 써넣을 수 있다. 거짓 기억을 심고,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얼마나 잔혹한지 보여 주는 예로, 여기서도 1995년 영화판을 참조하자. 그 영화의 모토코는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기억을 주입받은 청소 노동자의 사건을 접한다.

그 남자는 아내와 딸이 있다고 굳게 믿고, 그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 그 인생 전체가 입력된 기억이었다. 감정은 진짜이고, 행동도 진짜이며, 그 가족을 위해 치른 대가도 진짜다. 그런데 그 가족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영화의 이 사례는 《S.A.C.》의 모토코에게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그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S.A.C.》에서 그녀는 계속 수사한다. 그렇다고 그 일이 자기 기억은 변조되지 않았다는 증명을 건네주지는 않는다.

그녀는 자기 조직에 다른 한 사람을 남겨 두었다. 정작 그녀 자신은 자기에게 속한 부분이 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는지, 이 작품에서 누구보다 증명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그 아이

2기에서는 모토코의 과거 일부가 드러난다.

어릴 때 겪은 사고가 또 한 사람과 이어진다.

쿠제다. 두 번째 글에서 살펴본, 사상 유도 바이러스로부터 빠져나온 그 사람. 그 역시 어린 시절 비행기 사고를 당한 뒤 의체화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사고를 겪었고, 같은 병원에 있었다.

모토코에게 남은 기억은 얼마 없다. 그중 하나는 종이학을 접는 소년의 모습이다.

이 기억이 사실인지, 그녀의 기억인지, 나중에 얻은 정보로 채워 넣은 것인지, 작품은 확인해 주지 않는다.

확인하고 싶지만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둔다. 모토코는 쿠제를 찾아간다. 분명히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끝내 확증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의 기억 한 토막이 사실인지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쓸 수 있는 도구가 하나도 없다.

모토코의 처지는 보통 사람보다도 나쁘다. 보통 사람이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원래 기억이 믿을 만하지 못해서다. 그녀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외부에서 내용을 써넣을 수 있다고 이미 입증된 장치에 기억이 저장되어 있어서다. 게다가 그렇게 기억을 써넣은 사건들을 처리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이다.

그 기술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

두 가지를 나란히 놓으면

이제 이 글을 맺어도 좋겠다.

전문가로만 이루어진 조직 안에 다른 한 사람을 남겨 둔 결정. 모토코의 그 결정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명료한 판단이다. 옳은 판단이며, 52화에 걸쳐 거듭 옳다고 입증된다.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은, 정작 자기 안의 ‘다름’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낸 덕분에 내린 판단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인지 전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조직 구조에 대해서는 옳게 판단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는 사람도 어떤 일은 아주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다.

두 가지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 작품도 억지로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어떤 사건을 통해 모토코가 ‘자신을 찾고’, 그 뒤부터 더 정확히 판단하게 되는 에피소드는 없다.

그녀는 끝내 자신을 찾지 못했다. 판단은 줄곧 정확했다.

그런데 그녀가 일부러 남겨 둔 사람, 다르기 때문에 뽑은 그 사람이 마지막 화에서 어떤 일을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했던 바로 그 행동이다.

마지막 글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