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론 · 08
그건 그분께 물으셔야 합니다
예전에 문제를 알렸던 팀 책임자와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중히 여기면서 같은 일을 해보려 한다. 뜻을 같이하는 것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고, 함께 일해도 자기가 한 일의 몫은 바뀌지 않는다.
다시 같은 탁자에 앉았다
그는 그 팀 책임자를 나중에 다시 만났다. 1편에서 문제를 알리러 갔던 팀이다. 그때 그녀는 괜히 끼어들었다고 탓하지도, 실수한 부하에게 떠넘기지도 않았다. 당일 사람들을 모아 하나씩 확인했다. 이후 다른 부서에서 가끔 회의 때 마주쳤다. 올해 회사가 부서 간 데이터 모임을 만들면서 두 사람을 모두 불렀다.
그녀에게는 자기 일이 있었다. 관심은 팀원들에게 있었다. 보고서에 오류가 있으면 실제로는 남이 정한 산정 기준의 문제인데 젊은 데이터 담당자가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 그의 관심은 달랐다. 보고서는 사람이 읽으며 숫자가 독자를 잘못 이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을 중히 여겼지만 첫 회의에서 같은 일을 원함을 알았다. 모든 보고서에 산정 기준을 분명히 쓰고, 바꾸면 바꾸었다고 알리는 일이었다.
다시 같은 탁자에 앉은 데에는 운도 있었고 둘을 이어 줄 회사의 모임도 있었다. 다른 시대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평생 응답할 한 사람을 못 찾는 시대도, 국경 너머로 편지하고 마을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낯선 이를 함께 숨기는 시대도 있다. 서로 찾는 일이 일상이 되는 시대도 생각할 수 있다. 이번 글은 각자 자기 법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찾고, 하나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서 함께 일하는 문제를 다룬다.
찾는 것은 인증하는 일이 아니다
그녀도 자기 법대로 행동하는 사람임을 어떻게 아는가. 그는 모른다. 아는 것은 몇 가지 일이다. 소식을 전한 사람을 탓하지 않았고 부하에게 떠넘기지 않았다. 이후에도 팀원에게 문제가 생기면 먼저 보호하고 조사했다는 말을 두세 번 들었다. 남을 어떻게 대하는지 멀리서 여러 번 보고,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 본다. 보는 통로가 많아지면 꾸민 모습이 드러날 가능성도 커진다.
그래도 단서이지 인증은 아니다. 밖으로 한 일만으로 속에서 인정한 것을 읽을 수 없다. 20년 보아 모든 부분이 맞아 보여도 이제 다 보았다는 판정은 얻지 못한다. 누가 자기 법대로 사는지 밖에서 판정할 시험은 주지 않는다. 그는 개별 일에서 본 것 때문에 그녀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인증서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알아보지 못한 사람도 여전히 목적이다. 순위로 동료를 지목하던 사람과 함께할 생각이 없다고 그가 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찾는 것은 같이 일하기 위해서이지 사람을 두 무리로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 시기에서 서로를 찾는 일
싹트는 시기에는 세대를 건너 찾을 때가 많다. 흩어져 살아 서로의 존재도 모르며 밖에서 질문해 줄 이도 없다. 그때의 한 실패 모습은 외로운 희생이 나중에 성인담이나 비극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러나 남긴 말이 어느 기관에 기대지 않고 세대를 넘어 보존되면 후대 사람이 다시 들어갈 수 있다. 오래전 누군가의 한마디를 읽고 그도 자기 법대로 행동한 사람임을 알아보는 것이다. 앞사람은 자신이 발견되었는지도 모르고 응답할 수도 없으므로 한 방향의 만남이다. 그것도 인증은 아니다. 알아본 것은 그 일과 말이지 완성된 초상이 아니다.
뒤집히는 시기에는 사람들을 이어 줄 자리가 생긴다. 서신·출판·국경을 넘는 공동체가 그렇다. 스기하라 지우네는 통과 비자를 내주며 현지 다른 영사들과 조정했다. 프랑스 의사 아델라이드 오트발이 1943~1944년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학 실험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일에도 저항운동 의사 동료들과의 조정이 있었다. 1939년 미국 동료들은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를 뉴욕으로 초대해 교직과 안전한 길을 주었지만 그는 약 한 달 뒤 독일로 돌아갔다. 조피 숄의 백장미단은 학생들과 교수 한 명이 함께 목소리를 낸 모임이었다. 바빌로프에게도 국경 너머에서 그의 과학을 알아보는 동료들이 있었다. 쉬워진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혼자는 아니게 된 것이다.
조피 숄은 법정에서 누군가는 시작해야 했으며 자기들이 말하고 쓴 것을 다른 많은 사람도 믿지만 감히 말하지 못할 뿐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정확한 문구는 기록마다 조금 다르다. 지금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있음을 아는 것이 이 시기의 한 모습이다. 르샹봉에서는 신뢰가 사슬을 따라 전해지기도 했다. 모두를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믿을 만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말이 서로를 이어 주었다. 전해지는 것은 여전히 단서이지 인증서가 아니다. 실패할 수도 있다. 서로에게서 받은 자극이 운동이나 전략 속으로 흡수되어 사람을 수단으로 다루는 방식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다.
자리를 잡은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때에는 서로 찾는 것이 일상이 된다. 위기를 기다리거나 작은 무리를 먼저 만들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찾고 이어질 길이 기본적으로 열린다. 그래도 단서는 단서다. 모두 존중과 인정을 말하면 바깥 모습은 더 반듯해도 더 읽기 어려울 수 있다. 어느 시기에도 같은 경계가 있다. 서로를 찾았다고, 아직 그렇게 알아보지 못한 이들을 바깥에 두는 울타리를 세울 권한이 생기지는 않는다. 르샹봉과 네덜란드 니울란더가 숨긴 사람들은 모르는 이들이었다. 낯선 사람을 우리 편으로 만든 뒤 받아들이는 것과, 낯선 채로도 목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두 마을이 숨긴 이들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뜻을 같이해도 같아지지는 않는다
두 번째 회의에서 둘은 우선 두 팀의 보고서 첫 장에 산정 기준을 적고, 바꾸면 설명 이메일을 보내기로 합의했다. 진짜 합의였고 이후 행동도 실제로 구속했다. 그래도 같은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그는 독자가 오해하지 않기를, 그녀는 작성자가 남의 오류를 떠안지 않기를 바랐다. 다른 두 관심이 같은 방법으로 이어졌을 뿐, 하나의 관심으로 합쳐지지는 않았다.
합의에는 둘 다 법을 바꾸지 않고 서로의 요구가 함께 실현될 방안을 찾는 경우와, 한쪽 또는 양쪽이 각자 바꾸어 요구가 맞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는 앞의 경우였다. 두 마을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르샹봉에는 두려운 사람, 따라 하는 사람, 말하지 않는 사람, 갈등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들을 넘기지 않는다는 한 가지에서 뜻을 같이했다. 이유도 달랐다. 안드레 트로크메 목사는 복음에 어긋나는 복종을 요구받으면 두려움 없이, 그러나 교만도 증오도 없이 저항하겠다고 말했다. 아내 마그다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거절하느냐고 했다. 신앙과 눈앞의 필요라는 다른 출발점이 같은 행동으로 만났다.
설득은 이유를 주고 상대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설득에 성공했다고 합의까지 대신 성립시키지는 못한다. 각자가 자기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어느 쪽도 상대의 동의를 대신 선언할 수 없다. 르샹봉도 위에서 내린 한 결정이 아니라 집집마다의 작은 결정들이 맞춰진 것이었다. 데이터 모임에서 상급자가 그녀도 전 부서로 확대하는 데 동의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건 그분께 물으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함께 일한 해에 둘은 서로에게서 배웠다. 그녀는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보게 했다. 기준이 바뀌면 오류가 여러 표를 거쳐 결국 누구에게 가는지였다. 그는 독자만 생각했지 작성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독자가 실제 읽을 설명의 형태를 보게 했다. 그녀의 팀은 설명을 절반으로 줄였다. 서로가 자라도록 도운 것이다. 차이는 없앨 불순물이 아니다. 관심이 달라야 그가 못 본 곳을 그녀가 볼 수 있다. 합의도 질문을 멈추는 계약은 아니다. 합의 뒤에도 그녀는 표현을 따졌고 그는 숫자의 출처를 물었다.
함께하되 하나의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그의 목적 A는 독자가 오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의 목적 B는 작성자가 남의 오류를 떠안지 않는 것이다.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는 C는 모든 보고서에 기준을 분명히 적는 일이다. C는 A나 B 중 하나에 속하지 않고 두 목적이 만난 자리에서 나온 방법이다. 둘 다 자기 것으로 인정했다. 한쪽이 다른 쪽까지 인정했다고 대신 말한 것이 아니다. 둘이 함께해야 가능했다. 그는 설명을 쓰고 그녀는 절차를 고쳐야 했다. 어느 쪽도 독점하지 않았다. A가 그녀의 손을 빌리거나 B가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 아니며 방법도 한쪽이 결정하지 않았다. 공동 작업이지 공동의 법은 아니다. 고친 것은 보고서 작성 방식이지 서로의 법이 아니었다.
어느 날 2분기에 먼저 확대할 부서를 두고 판단이 갈렸다. 이런 경우 소집자가 정하기로 미리 합의했으므로 결정에 따랐다. 특정 사안에 한정된 공동 절차다. 그 일의 순서를 정할 힘은 두 사람이 먼저 그 방법을 인정한 데서 온다. 그렇다고 각자의 법까지 대신 세우는 자리가 되지는 않는다. 적격한 외부 절차에 그 일을 맡긴 것은 그 일을 맡긴 것이지, 그 사안에 두 사람이 합의를 이룬 것과는 다르다.
1968년 미라이의 헬리콥터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휴 톰프슨은 착륙하고 주민 보호를 명령했다. 사수 로런스 콜번은 총을 지켰고, 글렌 안드레오타는 시신이 쌓인 도랑에 내려가 살아 있는 소년을 꺼냈다. 셋은 주민을 보호하는 한 일을 했다. 속으로 어떻게 인정했는지는 이 연작이 대신 말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하나의 사람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톰프슨은 보고한 뒤 살해 협박도 받았다. 30년 뒤 톰프슨과 콜번은 훈장을 받았다. 안드레오타는 약 3주 뒤 베트남에서 전사했다. 그날은 함께 행동했지만 이후 각자가 감당한 것은 각자의 것이었다.
1879년 스탠딩 베어는 미국 변호사 존 웹스터·앤드루 포플턴과 연방법원에서 구금을 다투었다. 그가 가져온 것은 아들을 고향에 묻고 살아 있는 부족 사람들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는 자기 일이었다. 변호사들은 법원이 심리하게 할 법적 절차를 가져왔다. 그가 미국법의 ‘사람’이라는 말을 빌린 것은 국가 장치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인정한 것은 그 법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언어를 빌려 함께 행동한다고 그 언어까지 자기 법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회사의 모임 덕분에 둘은 다시 만났다. 제도는 자기 법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보호하며 해치는 일을 처벌할 수 있다. 대신 두 사람에게 ‘우리’를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공동 작업도 둘 위에서 법을 세울 자리를 저절로 만들지 않는다. 네덜란드 드렌터의 작은 마을 니울란더는 점령기 인구가 약 117명이었다. 1942~1945년 거의 모든 집이 어느 시점에 사람을 숨겼고, 전체 약 200~500명을 숨겼다. 요하네스 포스트와 아르놀트 다우어스가 조정했다. 1944년 7월 16일 포스트가 체포되어 처형되었어도 해방까지 숨겼다. 다우어스는 특별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회고했다. 그 ‘우리’는 각자 한 일을 함께 부른 말이지 사람들 위에서 대신 결정한 주체가 아니다. 밖에서는 한 사람처럼 보여도 안에서는 여럿이 각자 같은 일에 참여했다.
자기가 한 일을 남이 한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3분기, 그의 팀 보고서는 새 규칙대로 설명을 썼는데도 독자를 오해하게 했다. 설명은 맞았지만 변경 사항이 3쪽에 묻혀 있었다. 그는 ‘이 보고서는 우리 쪽에서 만들었습니다’라고 했다. 시범 운영이 미숙했다거나 규칙이 덜 자세했다거나 그녀 쪽 절차가 못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각각 일부는 참이어도 그 보고서는 자기 쪽에서 만들었다. 자신이 한 행동의 일인칭 몫을 다른 사람이 감당한 것으로 바꿀 수 없다. 함께했다는 말로 자기가 한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은 ‘우리의 일’로 만들지 않는다.
역사에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1943년 2월 18일 조피 숄과 오빠 한스는 뮌헨대학교에서 백장미단의 여섯 번째 전단을 나누다 교직원에게 발각되어 게슈타포에 넘겨졌다. 심문 중 오빠에게 조종당했을 뿐 참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면 감형받을 길이 제시되었다. 그녀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2월 22일 오빠 및 크리스토프 프로프스트와 함께 인민법정에서 재판받고 그날 처형되었다. 제시된 길은 자기가 한 일을 오빠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함께 행동한 사람을 자기를 조종한 사람으로 바꾸는 길이었다.
이 연작은 이 사건으로 누구도 재지 않는다. 자기 법을 증명하려고 자신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희생은 대가이지 훈장이 아니다. 그런 심문에서 다른 말을 한 사람도 대신 판단하지 않는다. 그 순간 무엇을 말할지는 구체적 행동의 층위에서 그가 판단할 일이다. 이 문장은 바라봄의 층위에 있다. 행동한 사람은 그 행동을 한 사람이다. 설명을 바꾸어도 행위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여기까지만 말한다. 직무·과실·결과·보완은 각각의 근거로 따로 살필 일이다. 나중에 그 규칙을 누가 추진했는지에 관한 공로와 서명도 또 다른 문제다.
다음 해 규칙은 전사로 확대되었다. 모임은 해산했고 둘은 부서로 돌아갔다. 여전히 두 사람이었다. 그녀는 팀원을, 그는 독자를 중히 여겼다. 한 해 동안 함께 이루었고 각자 인정한 일이다. 누가 누구로 바뀌지도, 대신 법을 세우는 ‘우리’가 남지도 않았다. 마을이 4년간 사람을 숨기는 일, 지도자와 변호사들이 소송에서 이기는 일, 학생들이 전단을 나누는 일은 크기와 시대가 달라도 같다. 둘 또는 여럿이 함께 행동하면서도 하나의 주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원논문과 읽는 범위
Qin, Han (2026), 《서로를 찾기》, SAE 행동론 8편을 바탕으로 한 중국어 산문의 한국어 독립 재서술이다. 원논문 · DOI: 10.5281/zenodo.22970783. 역사 사례의 범위를 지키며 외부의 단서로 내면의 인정을 인증하지 않는다. 공동 작업의 일인칭 귀속과 직무·과실·결과·보완·공로·서명을 구별한다. 희생 사례로 타인의 행동을 판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