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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권리론 보론 · 03

자리를 떠나면, 무엇이 끝날까

사직서는 과거를 지우는 지우개가 아니다. 인수인계도 남의 옛 잘못을 떠안는 일이 아니다. 한 자리, 서로 다른 기한을 가진 몇 가지 요구, 조금씩 자라는 아이를 보며 ‘끝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Han Qin ·

그 직원은 결국 회사를 떠났다. 열쇠를 돌려주었지만 목록에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항목 하나가 남아 있다. 인사 담당자는 내일부터 더는 그 직책을 맡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책임자는 다르게 말한다. “몸은 나가도 책임까지 나갈 수는 없죠.”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아니면 두 사람이 애초에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끝을 아주 말끔한 동작으로 상상하곤 한다. 문을 닫으면 안의 모든 것이 나와 상관없어진다는 식이다. 정반대의 생각도 있다. 한때 그 안에 있었던 이상 보이지 않는 끈이 언제까지나 묶여 있다는 생각이다. 두 이야기는 모두 가장 수고로운 단계를 건너뛴다. 무엇이 계속되고 무엇이 이미 끝났는지 나누어 살피는 일이다.

마치는 것, 떠나는 것, 뒷받침을 잃는 것은 다르다

그가 전에 제출해 둔 목록은 퇴직할 때까지 기다려야 완료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이행하면 끝나는 요구라면 직책도 회사도 관련 약정도 계속되는 가운데 그 한 가지가 따로 종점에 도달할 수 있다. 연말까지만 적용하기로 한 다른 요구는 기한이 지나서 끝날 수도 있다. 일이 끝났다고 반드시 누가 망가졌거나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이번 재직 관계를 떠나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끝이다. 논문이 다루는 이 관계의 층위에서, 어떤 요구는 이번 재직에 기대어 성립한다. 그 등록에서 실제로 빠져나왔다면, 거기에 기대어 있던 현재의 부담은 더는 같은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계속 유지되던 항목도 마찬가지다. 원래 지속적인 요구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끝난 동일한 등록을 영원히 유효하게 할 수는 없다.

중요한 말은 ‘거기에 기대어 있던’이다. 현실의 비밀유지 약정에는 별도의 적용 범위와 존속 조건, 독립된 근거가 있을 수 있다. 과거 행동을 처리하라는 요구도 여전히 성립하는 다른 관계에서 나올 수 있다. 각각 알아봐야 한다. 이미 퇴직했다는 한마디로 모든 문제가 함께 취소된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 구분하는 것은 요구의 출처이지, 퇴직 뒤 자동으로 면책된다는 법적 결론이 아니다.

세 번째 경우는 관계를 받치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이다. 원래 실제로 작동하던 요구가 나중에는 이름만 남을 수도 있다. 권리상의 지위를 통해 이루어지던 관계가 단순히 힘을 가하는 관계로 물러날 수도 있다. 어떤 범위만 뒷받침을 잃고 나머지는 계속될 수도 있다. 이 모두를 같은 종류의 끝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뒷받침 하나가 사라졌다고 남은 사정은 보지도 않고 관계 전체가 없어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회사 인수합병도 나누어 보아야 한다. 바뀐 것이 지탱하는 조직의 틀뿐이고 재직과 등록은 그대로 이어진다면, 옛 책무가 끝나고 새 책무가 생겼다고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맡는 사람이나 구체적인 등록이 실제로 바뀌었다면 비로소 다른 하나의 관계가 된다. 새 간판이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같은 사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판단을 끝낼 수는 없다.

‘떠날 수 있다’는 말에도 혼동하기 쉬운 두 뜻이 있다. 그 자리를 떠나면 그에 기대어 성립한 부담이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과, 현실에서 언제든 떠날 길이 열려 있다는 말은 다르다. 앞의 물음은 끝난다면 무엇이 달라지는가이고, 뒤의 물음은 지금 실제로 끝낼 수 있는가이다. 종이에 떠날 수 있다고 쓰여 있어도 실제 절차가 모든 길을 막고 있다면, 그 종이가 출구의 존재를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끝났다고 역사가 바뀌지는 않고, 근거 없는 빚이 남지도 않는다

끝내 확인하지 못한 항목에는 남겨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시 요구는 성립했는가. 기한이 지난 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금까지 무엇이 처리되지 않았는가. 사직했다고 그 시간이 아무 일도 없었던 시간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누군가 물을 때, 자리가 이제 비었다는 이유로 그 일 전체가 없었던 것처럼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니 그는 원래의 책무를 영원히 빚지고 있다’는 말은 다른 주장이다. 원래 등록이 실제로 끝났다면,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같은 부담에 출처 없는 도덕적 빚이라는 새 이름을 붙여 계속 걸어 둘 수는 없다. 뒤따르는 물음이 성립하려면 그 자체의 근거를 밝혀야 한다. 감정이 무겁다는 사실이 근거가 모두 갖추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본인이 여전히 목록을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것 역시 별도로 존재하는 사실이다. 한번 맡은 일을 대충 넘기고 싶지 않아서일지 모른다. 이런 자기 요구는 직책이 계속 남아 있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자신에게 예전에 정한 모든 요구를 영원히 고칠 수 없다는 결론을 끌어내서도 안 된다. 자기 이유를 진지하게 대한다는 것은 어떤 요구가 너무 가혹했거나, 낡았거나, 더는 맞지 않음을 새로 알아보는 일까지 포함한다.

때로는 직책에 붙은 외부의 요구와 스스로 맡으려는 방향이 같은 행동에 겹친다. 재직 중에 맡겨진 일을 누설하지 않는 것은 구체적인 약정에 응답하는 일이면서, 신뢰를 팔아넘기고 싶지 않은 자기 마음에서 나온 일일 수도 있다. 떠난 뒤 앞쪽 근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항목마다 보아야 한다. 뒤쪽 이유가 여전히 적용되는지도 자기 이유로 돌아가 판단해야 한다. 한 겹의 뒷받침이 줄었다고 모든 뒷받침이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끝나지 않은 목록을 받는 후임자에게도 ‘이제 당신 일’이라는 말만 건네서는 안 된다. 그가 과거에 확인을 빠뜨린 당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별도로 유효한 점검이나 보완, 인수 약정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있다면 그 요구에는 자체 내용과 근거가 있다. 일을 넘겨받는 동작이 전임자의 과거 과실을 후임자의 과거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 누가 맡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과 현재 맡는 사람이 없다고 확인한 것도 다르다. 앞은 아직 조사되지 않은 상태다. 성급하게 뒤의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조직 자체가 여전히 응답할 곳일 수 있고, 다른 현재의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당장 특정한 개인을 찾지 못했다고 모든 맡음이 사라졌다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성립한 인수 관계가 없다면, 채워지지 않은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남겨 둘 수도 있다. 기록이 있고, 영향이 있고, 무엇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분명하다. 다만 누군가에게 배정된 것처럼 꾸미지는 않는다. 그 자리가 아직 비어 있음을 인정하는 편이 아무나 끼워 넣거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선언하는 것보다 정직하다. 나중에 새 약정이 생기면 그 새 근거에 따라 다루면 된다.

아이가 자란다고 어른의 묵은 일을 통째로 넘길 수는 없다

장면을 바꾸어 보자. 한 아이가 학교에서 자기 일을 조금씩 직접 처리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부모가 교사에게 연락하고 일정을 확인했다. 나중에는 아이가 자기 필요를 말하고 이견을 제기하며 능력에 맞는 약속 하나를 맡을 수 있게 된다. 중요한 변화다. 그렇지만 아이를 둘러싼 모든 요구가 어느 날 한꺼번에 어른의 이름에서 아이의 이름으로 옮겨 간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시기에도 어떤 약정은 돌봄과 대리의 연결망이 맡고 있고, 다른 약정은 이미 아이가 직접 맡고 있을 수 있다. 살필 것은 이 일의 내용, 실제로 누구의 응답 가능한 범위에 놓였는지, 그에 맞는 출처와 등록이 있는지다. 지금 전화를 거는 사람이 약정 전체를 맡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스스로 말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요구를 그 아이에게 배정할 수도 없다.

부모가 처리했어야 할 일을 오래도록 처리하지 못했다고 해 보자. 아이가 자란 뒤에도 그 일이 미완료라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에 이행되지 않았다는 기록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때 혜택을 받았고 이제는 직접 처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의 미완료 사항을 아이가 물려받았다고 증명되지는 않는다. 지금 그것이 아이에게 요구되는 일로 성립하는지는 새로 근거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옛일이 아이와 관계없다는 보장도 아니다. 독립적으로 성립한 인수 약정이 있다면 그 약정에 따라 판단한다. 배제하려는 것은 ‘다 너를 위해서였다’거나 ‘이제 다 컸으니까’라는 말로 이 단계를 바로 건너뛰는 일이다. 한쪽에서는 기존 대행 관계가 끝났다는 이유로 미처리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된다. 다른 쪽에서도 끝을 이체 버튼처럼 여겨 한 번 누르면 뒤의 사람에게 부담이 넘어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성장을 모든 일에 걸친 단 하나의,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선으로 처리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나이나 절차를 명시한 약정이 있다면 그 쓰임과 근거를 계속 논의할 수 있다. 여기서 반대하는 것은 개별 사실로 수정할 수도 없는 획일적 문턱 하나가 각각의 판단을 대신하게 하는 일이다. 아이가 악기 연습 시간을 혼자 짤 수 있다고 해서 다른 복잡한 관계도 혼자 감당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능력, 응답 방식, 책무가 누구에게 속하는지는 따로 살펴야 한다.

열쇠를 돌려준 직원과 조금씩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 아이의 처지는 다르다. 그래도 둘 다 ‘누군가는 책임져야지’보다 정확한 말이 필요하다. 과거에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현재의 모든 부담에 이미 주인이 정해졌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관계가 실제로 끝났다고 그 일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끝을 끝으로 인정하는 것은 기억을 비우는 일이 아니다. 인수를 인수로 인정하는 것도 한 사람의 과거를 다른 사람의 빚으로 바꾸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매번 맡는 일마다 분명히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몫이며 어디서 왔는가. 또 어떤 조건에서 끝에 이를 수 있는가.

원 논문과 이 글의 범위

이 세 편은 『On Accountability · Wei』를 일반 독자를 위한 산문으로 다시 쓴 글이다. 논문의 스물여섯 명제를 차례대로 번역한 것은 아니다. 직장과 아이에 관한 장면은 모두 가상의 예시다. 원 논문은 accountability, liability, duty를 특정한 범위 안에서 구분하며, 그 구분으로 일상 언어나 법률에서 쓰이는 책임과 의무의 모든 의미를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요구를 분류했다고 정당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현실의 강제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은 실제 근로 조건, 퇴직 뒤에도 유지되는 비밀유지 약정, 구제 수단, 미성년자의 법적 책임을 판단하지 않는다. 한국어판은 중국어 산문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다시 썼다.

『On Accountability · Wei』 원 논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