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는 비워 둔다
정전론과 만나는 지점
정당한 명분, 올바른 의도, 최후의 수단, 성공 가능성, 비례성,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 정전론은 개전과 전투에 높은 문턱을 세워 왔다. SAE도 온건한 길이 닫히고 함양의 담지자가 파괴되고 있음을 개전 조건으로 삼는다. 겹치는 영역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최후의 수단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정전론에서는 평화적 수단을 먼저 시도할 도덕적 의무이고, SAE에서는 그 수단이 관계 안에서 여전히 작동할 수 있는지를 묻는 구조적 조건이다. 비례성과 전후에 상대가 주체로 재조직할 길을 남기는 조건도 일부만 겹친다.
정의를 판정할 사람
정전론을 완전히 적용하려면 “누가 정의의 편인가”를 판정할 자리가 필요하다. 국내 재판과 달리 주권국가 사이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공통 재판관이 없다. 그로티우스와 칸트는 그 부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다루었다.
SAE는 그 자리를 새로 만들지 않는다. “이 전쟁은 정의로운가” 대신 “어떤 비전쟁적 길을 시도했고, 상대는 어떻게 답했으며, 무엇이 아직 남았는가”로 질문을 나눈다. 판정자의 지위가 아니라 보이는 증거와 반박 가능성에 기대려는 선택이다.
빈자리의 대가
그 자리를 비우면 동맹과 후대에 내놓을 ‘정의의 증명서’를 발급할 수 없다. 공동체가 왜 저항하는지를 설명할 언어는 실제로 필요했고, 정전론은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 왔다. SAE의 “온건한 길은 끝났다”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에게 악용될 수 있다.
또 비례성은 출구를 닫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큰 폭력을 막지만, SAE의 연결 조건만으로는 그 부류를 막지 못한다. 규모 기준을 더하면 누가 저울을 들지라는 문제가 돌아온다. 해결한 척하기보다 이 긴장을 그대로 남기는 편이 정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