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흔든 소년
열차 강도가 성공한 직후 드루 샤프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손을 흔든다. 토드도 차분하게 답하고 곧바로 총을 쏜다. 분노나 공포 없이 목격자를 제거하는 업무만 이어진다.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살인 직전에 짧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적도 위협도 아니고 인사를 주고받은 누군가였지만 그 인식이 계획을 멈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타인이 갑자기 ‘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순간은 계산을 흔든다. 토드에게는 보이는 인간이 결정의 무게를 바꾸는 중단이 없다. 그래서 행동은 잔혹한데 표정은 계속 예의 바르다.
모범적인 직원
토드는 시간을 지키고 지시를 기억하며 모르면 묻고 실수하면 배우려 한다. 방역 작업 중 숨은 카메라를 발견해 팀을 위험에서 구하고, 공을 자랑하지 않으며 상사에게 공손하다.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거의 모든 표면적 덕목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를 괴물이라고만 부르면 작품의 날카로움을 놓친다. 괴물 같은 외형은 미리 경고라도 준다. 토드는 유능함과 협조성이 인간을 신뢰할 충분조건이 아님을 보여 준다. 무엇을 효율적으로 하는지, 그 일의 대상이 사람일 때 멈출 수 있는지를 빼면 좋은 동료의 체크리스트는 잔혹함을 아무 문제 없이 통과시킨다.
감정은 있지만 상대는 없다
토드는 무감정하지 않다. 리디아를 좋아하고 월터를 존경하며 삼촌 일당에게 소속감을 느낀다. 감금한 제시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날씨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문제는 감정 속에서 상대의 의지가 독립적인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리디아는 이상화된 대상이고 월터는 스승이며 제시는 자산이자 대화 상대다. 호의와 소유가 충돌하지 않는다. 안드레아를 죽이기 전 미안하다고 말해도 사과가 멈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상대가 두려워하고 아파할 것을 이해하면서도 그 사실에 자기 목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도 없는 푸른색
월터가 사라진 뒤 토드는 푸른 메스를 재현하려 한다. 순도는 낮아도 색을 남겨 시장이 하이젠베르크의 제품이라고 믿게 한다. 이 모조품은 토드의 사회적 표면과 닮았다. 예의와 근면, 충성이라는 푸른색은 있지만 그것을 좋은 관계로 묶는 내용이 없다. 화학 순도를 도덕의 비유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그래도 드라마는 기준 몇 개가 맞으면 사람을 믿는 우리의 습관을 이용한다. 토드는 명령을 잘 수행하고 감정도 표현한다. 바로 그래서 인격을 기능과 호감도로만 판단하는 방식의 빈틈이 드러난다. 보기 좋은 표시는 있어도 그 표시가 약속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슬
토드는 제시를 우리에 가두고 사슬로 실험실에 데려간다. 탈출을 시도하면 안드레아를 죽이고 브록의 사진을 작업대 위에 둔다. 제시의 사랑을 생산 장치에 연결하는 부품으로 만든 것이다. 그래도 토드는 자신을 잔인한 주인이라고 여기지 않고 좋은 결과에는 보상을 준다. 사람을 도구로 대하는 일과 도구를 친절히 관리하는 일은 함께 가능하다. 마지막에 제시는 자기를 묶은 사슬을 토드의 목에 감는다. 정의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지만 토드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관계 하나가 뒤집힌다. 순종하는 몸으로 관리했던 사람이 사슬의 방향을 스스로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