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식민화
영향과 식민화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언어와 기술, 믿음과 생활 방식을 거의 모두 남에게서 배운다. 그렇게 받은 것을 스스로 따져 보고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약한 식민화가 아니다. 가치가 생기는 평범한 방식이다. 모든 영향을 식민화라고 부르면 좋은 교육과 전통, 협박과 고문까지 한 상자에 들어가 버린다.
가치의 식민화는 더 좁은 상태를 가리킨다. 어떤 내용이 이미 ‘그 사람 자신의 가치’로 구성된 것처럼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 구성은 그의 자기 법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외부 목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외부는 가치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만든 것을 그 사람의 가치로 믿게 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세 가지 징후
첫째는 후보 자리의 점유다. 어떤 영역에서 내 원천으로부터 나온 다른 후보가 더는 나타날 수 없다. 둘째는 내면화의 위조다. 집단의 평가가 ‘네가 정말 원하는 것’이라는 반박 불가능한 진술로 바뀐다. 셋째는 잠금이다. 거부, 다시 말하기, 수정, 이탈이 미리 무효 처리된다.
세 징후는 차례대로 생길 필요가 없다. 가족이 하나를, 학교와 회사가 나머지를 만들 수도 있다. 판단 기준은 처음의 선의나 악의가 아니라 최종 구조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잠글 수도 있고, 노골적인 강압은 끝까지 외부 명령으로 남아 ‘네 가치’인 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둘 다 해롭지만 구조는 다르다.
감사가 닿을 수 있는 데까지
제삼자는 다른 후보가 나타날 수 있는지, ‘아니오’가 정말 거부로 받아들여지는지, 선택을 거두거나 관계를 떠날 길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마음속에서 실제로 무엇을 자기 것으로 받았는지 최종 판정할 수는 없다. 같은 행동 뒤에 서로 다른 구성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
이 한계가 모든 판단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니다. 관계의 통로가 열렸는지는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다만 감사는 통로의 상태를 읽을 뿐, 상대의 1인칭을 대신 쓰지 않는다. ‘진짜 너는 이렇다’고 선언하지 않는 것도 정확한 감사의 일부다.
변했다는 사실은 병의 증거가 아니다
한 사람의 가치가 바뀌었다고 해서 식민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가 실제로 수정하거나 철회했다면, 그 순간에는 자기 자리가 작동했다는 증거다. 오래 붙들었다고 진짜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바뀌었다고 가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식민화가 없애는 것은 원천 자체가 아니라 원천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벗어난다는 것은 영향받기 전의 순수한 본성을 캐내는 일이 아니다. 다른 후보가 나타날 길, 거부가 들릴 길, 스스로 다시 받아들일 길을 되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