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움직임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세 가지
한번 열린 가치의 원천은 특정한 내용이 희미해졌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세 가지다. 원천에서 후보로 가는 길이 닿는지, 이미 받아들인 내용이 지금 얼마나 작동하는지, 한 행동이 어느 원천을 중심으로 조직되는지다.
이 구분이 있어야 오랫동안 잊었던 소중함이 돌아오는 일을 새 가치의 탄생으로 착각하지 않는다. 예전에 중요했던 일이 잠잠해져도 그 사람의 목적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쓰지 않는다고 잃는 것이 아니며, 다시 쓴다고 새로 허가받는 것도 아니다.
안에서 저절로 도는 엔진은 없다
왜 하필 오늘 이 가치가 다시 떠올랐을까. 가치 원천 안에 자동으로 사람을 밀어 가는 엔진을 넣으면 질문은 쉬워 보인다. 이 이론은 그렇게 답하지 않는다. 그때 어떤 자리가 열려 있었고 어떤 길이 닿았는지를 묻는다. 몸, 만남, 작품, 제도는 조건이 될 수 있지만 그 조건에서 1인칭 수용을 계산해 내는 공식은 없다.
오래 반복했다고 자동으로 내 것이 되지도 않는다. 반대로 하나의 수용이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 모양을 갖출 수는 있다. 같은 행동의 누적과, 아직 끝나지 않은 하나의 구성 행위가 시간을 통과하는 일은 다르다.
바깥에서는 하나의 답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똑같이 말을 멈춘 사람도 관심을 잃었을 수 있고, 지쳤을 수 있고, 표현을 막혔을 수 있고, 스스로 철회했을 수도 있다. 행동만 더 자세히 보면 언젠가 답이 나온다는 문제가 아니다. 1인칭의 구성과 외부 조건이 서로 다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미결정성이다.
그래도 함께 볼 수 있는 것은 있다. 누가 길을 막고 있는지, 거부가 도착하는지, 다시 선택할 수 있는지다. 외부는 자기가 유지하는 봉쇄를 풀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대신해 ‘당신의 가치가 이제 회복되었다’고 완료 선언을 할 수는 없다.
무게중심은 등급이 아니다
어떤 날의 행동은 경험의 안녕을, 어떤 날은 자기 경계를, 또 어떤 날은 자기 목적이나 타자의 목적을 중심에 둔다. 무게중심은 계속 움직인다. 15DD를 연 사람이 한동안 휴식과 자기 보호를 우선한다고 해서 도덕 사다리 아래로 내려간 것이 아니다.
새 차원을 열 기회가 있다고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항은 가능한 출구의 모양을 제한하지만 단 하나의 길을 명령하지 않는다. 가치의 움직임에는 형태와 방향이 있지만, 자동 진보나 예정된 종착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