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탐구는 끝났는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마지막 장은 책이 끝났는지 묻는다. 덕·우정·쾌락·행복을 개괄했으니 할 일을 다했는가. 실천의 목적은 각 항목을 보고 아는 데 있지 않고 실제로 하는 데 있다는 답이 이어진다. 덕도 마찬가지다. 아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덕을 갖고 사용하거나 우리를 좋게 만드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증의 힘을 시험한다. 말만으로 사람을 좋게 만들 수 있다면 큰 보수를 받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논증은 성품이 좋은 젊은이를 격려하고 고귀한 성향이 선한 것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수는 선으로 돌리지 못한다. 많은 사람은 추함을 부끄러워해서가 아니라 벌이 무서워 나쁜 일을 피한다. 진정 좋은 것을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 더 정확한 문장 하나가 오래된 품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수단에 관한 사실
이 진단은 말을 안 듣는 사람을 모욕하는 데 있지 않다. 무엇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지에 따라 수단을 바꾸어야 한다는 방법론적 사실이다. 두려움에 반응하는 사람에게 더 아름다운 논증을 들려주는 것만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여러 해에 걸쳐 성품에 박힌 습관은 한 문장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성의 길을 다시 연다. 자연·습관·가르침 가운데 자연은 우리 힘에 있지 않고, 가르침은 이미 습관으로 준비된 영혼에만 씨앗처럼 자란다. 법은 습관에 구조를 주고 다수가 논증보다 필요와 강제에 더 잘 따르기 때문에 들어온다. 이 전환은 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들릴 조건을 만드는 제도를 찾는 일이다.
자신을 넘겨주는 책
SAE의 비판 작업은 다른 몸짓으로 끝난다. 주장을 계속되는 심사 아래 놓고, 글쓰기 규칙을 공개해 독자가 위반을 찾을 손잡이를 갖게 한다. 한 번의 논증은 영구 면허가 아니며 근거와 바꿀 수 있는 지점을 드러낸다. 미래의 질문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법정은 닫히지 않는다.
두 책은 ‘말했다’와 ‘했다’를 같게 보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이해하는 것이 덕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SAE는 체계의 효력을 체계 스스로 선언할 수 없고 후대 독자가 결산에 참여한다고 한다. 차이는 그 다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법·입법으로 나가고, SAE는 전제를 공개하고 반론을 초대하고 수정 가능성을 보존하는 이유의 공간 안에 남는다.
비용을 낮추는 일과 동기를 주는 일
SAE에도 실패 조건은 있다. 주소 없이 여러 맥락을 이동한 주장은 미결 책임을 쌓고, 외부 검토가 오래 없으면 사각이 복리처럼 누적된다. 그래서 참여 비용을 낮춘다. 규칙이 보이고 질문자의 신분이 질문의 질을 대신하지 않으며, 여러 사람이 공개 절차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장치도 독자를 오게 하지는 못한다. 한 조직이 전제와 근거를 모두 공개한 훌륭한 초안을 보내도 아무도 답하지 않을 수 있다. 침묵은 초안이 나쁘다는 증거가 아니다. 읽을 시간과 유인과 관계를 보호하지 않는 제도에 놓였을 수 있다. 문턱을 낮추는 것과 들어올 동기를 만드는 것은 다른 성취다.
SAE는 미완성의 나머지가 다음 행동을 강제하지 않는다고 옳게 말한다. 이 절제가 주체의 자유를 지킨다. 동시에 체계가 필요로 하는 마지막 외부 심사는 그 체계가 보장할 수 없는 자유로운 행동에 달린다.
윤리학에서 정치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이 중요하다는 한 줄을 덧붙이지 않는다. 정치가는 경험을 말로 전하지 못하고, 소피스트는 정치의 대상을 오해하며, 법률 모음은 이미 판단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용하다고 본다. 마지막 문장들은 어떤 정체가 도시를 보존하고 파괴하는지, 최선의 배치와 법과 관습이 무엇인지 조사하는 다음 작업을 연다.
누가 법을 쓰며 누구의 덕을 강제하고 누가 시민에서 제외되는가라는 위험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정치 세계 때문에 오히려 더 시급하다. 그럼에도 윤리적 설명 한 장을 더 쓰는 것으로 갚을 수 없는 제도적 빚을 정확히 찾았다.
열세 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SAE의 접점과 갈림길을 보이는 일이다. 그의 구분에 따르면 모두 보고 이해하는 쪽에 있고 좋은 사람이나 진지한 응답자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논증이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라 혼자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으로 간다. SAE는 타인에게 자신을 넘기고, 오지 않을 자유가 있는 타인을 기다린다. 이 글들이 자족하는지는 자기 규칙상 여기서 결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