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은 어디까지 넓어지는가
두 종류의 무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의 사슬에서 시작한다. 의술은 건강을, 조선술은 배를, 전략은 승리를 목표로 한다. 어떤 목적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선택된다. 모든 목적이 다시 다른 목적의 수단이라면 욕구는 공허한 무한으로 흘러간다. 그래서 그 자체로 선택되는 끝, 인간 삶의 행복 또는 에우다이모니아가 필요하다.
곧이어 자족을 설명하면서 그는 혼자 사는 개인을 명시적으로 제외한다. 부모·자녀·배우자·친구·동료 시민은 정치적 동물인 인간의 삶에 포함된다. 그러면 두 번째 무한이 생긴다. 그들의 친구와 친척은 왜 빠지는가. 계속 넓히면 전 인류까지 가야 하지 않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딘가에서 경계를 그어야 한다고 말한다.
목적 사슬과 명단은 다르다
두 무한은 닮았지만 서로 다른 질문이다. 목적 사슬은 모든 행동이 도구라면 방향이 가능한지 묻는다. 사람의 명단은 누구의 삶과 선이 내 행복의 판단 안에 들어오는지 묻는다. 최고 목적은 첫 번째 퇴행을 멈춘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두 번째 명단의 마지막 이름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자족이라는 말은 여기서 위험하다. 최고선의 통일성이 공동체의 올바른 범위도 함께 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삶에는 끝나는 방향이 필요하다”에서 “이 사람들만 그 삶에 속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경계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이 경계가 정당하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입증 책임을 가진다.
정상 없는 SAE
SAE는 모든 행동을 재는 하나의 전지구적 최종 목적을 세우지 않는다. 빌린 권위를 다시 묻고, 미결된 책임에 답하고, 무시된 사람을 목적의 원천으로 인정하는 국소적이고 검토 가능한 획득을 기록한다. 그 획득은 미리 세운 완성에 한 걸음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그 주소에서 실제로 얻은 것이다.
최종점이 없다고 경계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SAE는 한 정의가 누구를 빠뜨렸는지, ‘우리’라는 말이 타인의 요구를 삼켰는지, 실제 관계가 결정의 어느 층을 떠받치는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감사에서도 모든 구성원을 담은 최종 명단은 자라나오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목적이라는 원칙만으로 가족·도시·기관이 각자에게 져야 할 구체적 의무가 자동 계산되지 않는다.
경계의 필요는 회원 규칙이 아니다
정책에는 관할과 예산의 경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행정상 편리한 첫 선이 도덕적으로 옳지는 않다. 반대로 모두를 즉시 포함하라는 요구가 실행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긴급 상황의 좁은 범위가 영구 제도의 배제로 굳는 순간 같은 경계의 의미도 바뀐다. 임시 경계라면 종료와 재검토 조건까지 주소에 들어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SAE에 관계가 완성된 개인 바깥의 부담만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관계 자체가 선택할 만한 삶의 형식이다. SAE는 누가 그 관계의 둘레를 정하고 배제된 사람이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한쪽은 행복의 사회적 짜임을, 다른 쪽은 그 선의 책임성을 선명하게 한다.
두 접근은 고독이 자족의 필수형이 아니며 무한 확장이 곧 정의도 아니라는 데까지만 함께 간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 퇴행을 최고선으로 멈추고 사회적 경계를 실천 판단에 맡긴다. SAE는 최고점을 거부하면서 매번의 배제를 다시 심사한다. 둘 다 마지막 명단을 주지 않는다. 명단이 끝나야 한다는 말은 어디에서 끝나야 하는지 말해 주지 못한다.
경계는 한 번 긋고 끝나는 선도 아니다. 한 사람은 오늘 가족을 돌보느라 연구를 줄이고, 다른 날에는 도시의 부정의 때문에 사적인 안정을 포기할 수 있다. 가까운 관계, 시민적 책임,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은 서로 다른 시간 규모에서 자족의 구성원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누가 경계를 그었는지, 제외된 사람의 목소리가 심의에 들어왔는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을 때 선을 다시 그을 수 있는지다. SAE의 국소적 이득은 바로 이 수정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더 넓게 포함하라’는 말만으로는 돌봄의 우선순위와 자원의 한계를 정할 수 없다. 자족은 고립도 무한한 포섭도 아니며, 함께 살기 위해 반복해서 조정해야 하는 실천적 경계다.
따라서 자족을 평가할 때는 포함된 항목의 수보다 경계 설정의 권한을 보아야 한다. 가족이나 공동체를 말하면서 정작 그 구성원이 발언할 자리를 얻지 못했다면, 넓어진 목록은 한 사람의 선호를 확대했을 뿐이다. 함께 정하고 다시 고칠 수 있는 경계만이 고립과 무한 포섭 사이에서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