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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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와 서양철학의 대화 · 제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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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병이 된 순간

Han Qin (秦汉)

병상에서 받은 다섯 질문

제1권 말미에 철학의 여신은 치료법을 고르기 전에 환자를 검사한다. 세계는 우연에 맡겨졌는가, 이성적 질서에 의해 다스려지는가. 그 질서를 움직이는 키와 자연이 향하는 목적을 아는가. 만물은 어디서 오는가. 보에티우스는 신이 세계를 다스리고 모든 것이 신에게서 온다고 안다. 그러나 슬픔 때문에 통치의 방식과 목적을 잊었다.

마지막으로 여신은 인간임을 기억하는지, 인간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는 자신 있게 답한다. 이성적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 그 이상인 자신을 아는가. ‘아니오.’ 여신은 곧 병의 가장 깊은 원인을 밝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아는 일을 그만두었다. 진단을 부른 것은 정의 자체보다 뒤에 붙은 ‘그 이상은 없다’였다.

참인 문장이 든 가짜 신분증

이성과 죽음은 실제로 보에티우스에게 속한다. 월권은 ‘이 말은 나에 관해 참이다’가 ‘이 말이 나의 전부다’로 바뀔 때 일어난다. 명제가 옳기 때문에 관할의 초과는 더 잘 숨는다. 판단이 만든 초상이 화가의 이름으로 서명하고, 그 사람을 대신해 1인칭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SAE 제1비판』은 이를 산물이 제작자의 권위를 차지하는 환상으로 다룬다. 감사는 정의를 지우지 않는다. 그 문장이 유효한 주소로 돌려보내고, 얻은 진실은 보존하되 증명하지 않은 전체 권한만 거둔다. 철학의 여신도 보에티우스가 이성적이고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정확한 설명이 무엇을 남겼는지 다시 묻는다.

회복되는 기억과 새로 생기는 질문

『위안』에서 병은 망각이다. 보에티우스는 자신과 만물의 목적, 섭리를 알고 있었지만 고통이 기억을 흐렸다. 치료는 되찾는 일이다. 우주는 이성적으로 다스려진다는 건강한 믿음이 아직 불씨로 남아 있고, 여신은 거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SAE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계보를 다르게 쓴다. 구별하는 작용이 구별하는 자 자신에게 돌아올 때 ‘나’가 생긴다. 같은 절단은 그 규정에 다 담기지 않은 잔여항도 남긴다. 질문은 잃어버린 옛 정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 열림에서 새로 발생한다. 기억의 빈칸은 채울 수 있지만, 자기 규정의 잔여는 새 답을 내놓을 때마다 다시 생긴다.

쉽게 나오는 답을 다시 묻기

드러난 공백은 표시하기 쉽다. 보에티우스가 세계의 통치 방식을 모른다는 사실은 누구나 볼 수 있다. 더 위험한 것은 가장 매끄러운 정답 안에 숨어 있다. ‘나는 의사다’, ‘나는 실패자다’, ‘나는 괜찮다’는 상황에 따라 참일 수 있다. 유용한 서술이 화자를 점유하고 부분적 설명을 인간 전체의 목록으로 바꾸는 순간 감옥이 된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답을 취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스스로 다시 물을 수는 있어도, 첫 답을 쉽게 만든 전제 밖으로 나갔다고 보장되지는 않는다. 보에티우스의 가장 깊은 무지는 빈칸이 아니라 정답의 내부에 있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