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과학혁명에서 칸트의 ‘인간은 목적이다’까지
과학혁명: 누가 참을 결정하는가
계몽주의는 하나의 사건도, 한 나라의 교리도 아니었다. 과학혁명이 만든 검증의 습관, 자연권과 사회계약, 종교관용, 공론장이 여러 지역에서 만나 형성된 운동이었다.
과학혁명의 가장 큰 변화는 지식의 내용보다 인식의 정당성이었다. 권위 있는 사람이 말했다는 사실만으로 참이 되지 않았다. 관찰·실험·수학적 설명이 공개적으로 검증되어야 했다. 이 원칙이 자연에서 정치와 도덕의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계몽이 시작되었다.
로크: 왕권을 신탁으로 바꾸다
로크에게 정치권력은 신이 왕에게 준 소유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맡긴 신탁이었다. 생명·자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위임하며, 통치자가 신탁을 배반하면 저항할 권리가 생긴다.
이는 정당성의 방향을 뒤집었다. 백성이 왕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사람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훗날 이 언어를 창건문서의 문장으로 바꾼다.
몽테스키외·볼테르·루소
몽테스키외는 권력을 좋은 사람에게 맡기는 대신 권력이 권력을 막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로마의 혼합정과 영국의 관행을 분석해 권력분립을 제도설계의 원리로 만들었다.
볼테르는 개인의 양심을 강제할 종교권위의 정당성을 공격했다. 루소는 더 급진적으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자유는 공동입법에 참여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의지’를 누가 대표하는가라는 위험도 남겼다. 공동선을 독점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반대자는 공동체의 적이 될 수 있다.
백과전서와 다중심 계몽
『백과전서』는 흩어진 지식, 특히 장인과 기술의 지식을 공적으로 조직했다. 철학·신학만 고급지식이라는 위계를 흔들고 인간 생활에 기여하는 실용지식의 가치를 높였다. 인쇄와 독서모임, 살롱은 국경을 넘는 공론장을 만들었다.
계몽은 파리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상업사회와 도덕감정이, 독일어권에서는 이성과 종교의 체계적 관계가, 여러 지역에서는 법·교육·경제개혁이 중심문제가 되었다. 공통점은 모든 것을 이성의 심사대에 올린다는 태도였지 하나의 정치결론이 아니었다.
칸트: 보편법칙과 인간 존엄성
칸트는 도덕법칙이 개인의 행복이나 욕망, 유용성에 달려서는 보편적일 수 없다고 보았다. 도덕의 근거는 이성적 존재가 스스로 보편적 법칙을 세우고 따를 수 있다는 자율성에 있다.
여기서 ‘인간은 목적이다’라는 명제가 나온다. 정확히는 사람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든 관계를 금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오직 수단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각자는 자신의 목적을 세우고 법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 존재이므로 어떤 집단의 효용이나 국가목표를 위한 순수한 재료로 환원될 수 없다.
판단을 외주화하지 않는 용기
칸트가 계몽을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을 때 핵심은 지식량이 아니었다. 사제·군주·전문가에게 판단권을 통째로 맡기지 않고 자기 이성을 사용할 용기였다.
이 지점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반쯤 보이는 실의 철학적 정점이다. 그러나 논증이 곧 실현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제도에 쓰는 순간 권력·재산·노예제·성별이라는 구체적 조건과 충돌한다. 같은 계몽의 원리에서도 자유를 수용하는 구(構)와 일반의지의 이름으로 폐쇄를 추구하는 구가 모두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