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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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 / 108 · 진리의 경계 긋기

셰익스피어, 작가는 자리에 없다

기록에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무대에서 그를 대신할 인물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다. 대출 부탁 편지에서 두 번째로 좋은 침대까지, 작가는 한 걸음 물러서고 듣고 판단하는 일은 우리에게 남는다.

1. 편지의 반대편

1598년 10월, 리처드 퀴니는 셰익스피어에게 30파운드를 빌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썼다. 편지는 남아 있지만 셰익스피어가 받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백여 년 뒤 우리는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듣는다. 종이를 뒤집어 그의 답장을 읽을 수는 없다.

셰익스피어에게 다가갈 때는 이런 기분이 든다. 자료가 없는 게 아니다. 교구 장부와 부동산 문서, 극단 기록과 유언장이 있다. 누구와 일했고 무엇을 샀는지 따라갈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면 종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그가 직접 썼다고 널리 인정되는 사적인 편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마음의 변화를 따라갈 일기도 없다. 인정되는 여섯 서명은 필적이지 내면을 곧장 보여주는 여섯 창문이 아니다. 돈을 빌릴 만큼 구체적인 사람이, 자기 속을 설명해주지 않을 만큼 멀리 있다.

공동으로 쓴 희곡 『토머스 모어 경』의 원고에는 ‘필적 D’로 불리며 많은 연구자가 셰익스피어의 글씨로 보는 몇 쪽이 있다. 귀속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대사를 고치는 사람의 손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왜 슬펐고 왜 침묵했는지 밝히는 자서전은 아니다.

얼굴에도 근거가 있다. 퍼스트 폴리오의 드로스하우트 판화는 동시대인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챈도스 초상화의 인물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욕심 많은 확실성이다. 얼굴을 보자마자 그 뒤의 사람까지 빠짐없이 알고 싶어 한다.

희곡을 펴면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왕관을 원하는 사람, 딸을 원하는 사람, 술 한 잔을 더 원하는 사람, 그저 믿어달라는 사람. 그들을 쓴 이는 문 앞에 서서 이 사람만 진짜 나이고 나머지는 내 뜻을 돕는 인물이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2. 두 장소 사이에서

1564년 4월 26일, 스트랫퍼드 교구 장부에 그의 세례가 기록되었다. 4월 23일 생일은 전통적으로 기념하는 날짜이지 확정된 출생일은 아니다. 아버지 존은 장갑과 가죽을 다루며 지방 공직을 맡았고, 어머니 메리는 아든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빈 종이에서 나타난 사람이 아니다.

라틴 고전을 중시한 지역 학교에 다녔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마다 그의 이름을 불러줄 입학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배운 문장과 마을의 거래, 집안의 처지는 뒤에 나올 언어의 배경이다. 그렇다고 대사 한 줄마다 확정된 사적 기원을 붙일 수는 없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수재나가 태어났고 뒤이어 쌍둥이 햄넷과 주디스가 태어났다. 햄넷은 열한 살에 죽었다. 아버지의 슬픔은 존중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에 『햄릿』을 암호가 풀린 애도 일기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름의 닮음이 삶과 작품 사이를 다 메우지는 않는다.

쌍둥이 출생 뒤부터 1592년 런던 문단에서 그를 분명히 언급하는 기록까지는 이른바 잃어버린 시기가 있다. 교사, 밀렵꾼, 유랑극단을 따라간 청년. 이야기는 쉽게 빈곳을 채운다. 흥미롭게 들린다는 사실이 그 세월을 확인된 행적으로 바꾸어주지는 않는다.

런던에서 그는 대본만 납품하는 직원이 아니었다. 배우이며 극작가이고 궁내장관 극단의 공동 소유자였다. 극단은 1603년 제임스 1세의 후원을 받으며 국왕 극단이 되었다. 집필과 연습과 수입, 동료의 목소리와 몸은 같은 작업 공간에 속했다.

1597년에는 스트랫퍼드의 뉴 플레이스를 샀다. 황야의 왕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재산과 소득에 신경을 썼다. 그것이 작품을 작게 만들지는 않는다. 큰 상상력을 지녔다고 먹고 계산하고 집안의 앞날을 마련하는 일까지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말년에 스트랫퍼드와 더 밀접해졌다고 1613년에 은퇴의 문을 단단히 닫았다고 할 수는 없다. 플레처와 『헨리 8세』, 『두 귀족 친척』을 함께 썼다. 1616년 4월 23일, 약 쉰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삶이 끝난 날은 짚을 수 있어도 마지막으로 무대를 진지하게 생각한 날은 모른다.

3. 누가 누구를 대신해 말하는가

이 연작에서 톨스토이는 일기와 『참회록』을 남기고, 체호프는 많은 편지를 남긴다. 그 글을 통해 가까워졌다가 익숙한 전기의 윤곽보다 더 큰 사람을 다시 만난다. 사적인 기록은 길이지 그 사람 전체를 열어주는 통행증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길은 더 굽어 있다. 햄릿이 말하면 그 망설임이 작가 자신의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왕자는 복수의 이유를 검토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도 한다. 영리함과 잔인함이 한 문장에 살 수 있다. 망설임이라는 이름표나 작가의 분신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맥베스는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살인의 이유를 말한다고 살인이 씻기지 않는다. 욕망이 한 사람에게 자기를 설득하는 법을 가르치고, 그 뒤로 대가가 도착한다. 인물에게 말을 준다는 것은 무죄를 준다는 뜻이 아니다.

리어는 딸들에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애정을 영토 분배의 증서로 만들면 안심할 수 있을 것처럼. 폭풍이 그 보증을 벗겨낸 뒤에 남는 것은 노년과 배신의 교훈만이 아니다. 가장 원하던 것을 자기 손으로 내쫓은 사람이 남는다.

셰익스피어는 누가 먼저 말하고 누가 끊기며 누구에게 설명할 틈조차 없는지를 골랐다. 그런 선택에는 윤리적 무게가 있다. 그의 부재는 모든 판단을 걷어낸다는 뜻이 아니다. 어느 인물도 쉽게 작품 전체의 공식 정답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뜻에 가깝다.

작가의 결혼 생활에 숨은 비밀을 몰라도 리어의 요구는 들을 수 있다. 배경을 알면 귀가 밝아지지만 살아 있는 갈등을 전기 안에 다시 가둬서는 안 된다. 작가의 손을 나온 인물은 다른 인물과 만난다. 자기 질문을 가지고 온 우리와도 만난다.

4. 배우에게 말을 건네다

작가가 물러서는 구체적인 장소가 있다. 극장이다. 종이의 문장이 배우에게 넘어가면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돌아서는 몸짓이나 긴 침묵과 함께 나온다. 말은 힘을 잃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호흡과 몸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서재에서 완성된 세계를 만든 뒤 남을 구경시키는 일만은 아니다. 극단에는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 배우에게는 잘하는 역할이 있고 관객은 웃거나 한눈을 판다. 작가의 독특함이 모든 참여자를 자기 뜻 하나에 복종시키는 데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많은 희곡이 사절판으로 출판되었다. 본문의 형성과 질은 저마다 달라 전부 해적판이라고 부를 수 없다. 출판 기록의 빈틈에서 작품에 대한 무관심을 확정할 수도 없다. 글은 유통되었고, 그 경로를 언제나 한 사람이 통제한 것은 아니었다.

존슨은 존경과 비판을 담은 증언을 남겼고 폴리오 편집자들도 동료가 쓰던 모습을 기억했다. 그런 온기는 증언으로서 소중하다. 온화한 성격 때문에 스스로 사라졌다는 완성된 심리 진단은 아니다. 친구를 대하는 방식과 인물에게 자리를 주는 방식은 다른 질문이다.

왜 그렇게 숨었는지보다 얼마나 많은 일을 남에게 맡겼는지 보자. 배우는 이 순간 그 사람이 어떻게 숨 쉬는지 찾아야 한다. 관객은 감동적인 말이 믿을 만한지 판단해야 한다. 작가가 주는 것은 빈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답이 만날 구체적인 상황이다.

끝에 훈계를 붙이면 무엇을 집에 가져갈지 지정할 수 있다. 좋은 공연은 두 관객을 서로 반대되는 불편함과 함께 돌려보내 다음 날에도 이야기하고 싶게 만들 수 있다. 작품에는 경계가 있다. 그 안에 작가 혼자보다 많은 목소리가 산다.

5. 체호프 곁에서 듣기

두 사람이 가까운 지점은 침묵보다 인내일지 모른다. 사람이 자기를 드러낼 만큼 말하게 두고 곧바로 교훈으로 줄이지 않는다. 독자는 판단해도 된다. 다만 눈앞의 구체적인 사람을 거쳐서 판단해야 한다. 그를 건너뛰고 결론에 도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세 자매』에서는 모스크바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 되풀이된다. 진짜 무게를 지닌 소망이면서 지금 삶을 미루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체호프의 절제는 자기기만과 무관심과 낭비된 시간을 못 보는 태도가 아니다. 설명을 삼가는 자리에도 날카로운 모서리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종종 음량을 높인다. 왕관과 살인과 폭풍과 착각, 극심한 압박 아래에서 말하는 사람들이다. 폴스타프의 재치는 즐겁지만 대가를 피하는 방법도 보여준다. 한 문장이 끌어당겼다가 물러서게 한다. 목소리를 즐겼다고 그 목소리를 판단하는 일이 끝나지는 않는다.

만능 처방전을 주지 않는 의사는 모든 병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믿을 만한 대변인을 두지 않는 극작가도 선악을 없애지 않는다. 처음부터 옳은 편에 선 착한 독자임을 확인받고 싶을 때, 두 사람은 오히려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체호프는 일부러 여백을 남기고 셰익스피어는 아예 없다고 내면을 확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리듬이다. 체호프는 계속 일어나지 않는 일을 무겁게 만들고, 셰익스피어는 계속 일어나는 일이 말하는 사람을 따라잡게 한다.

모든 인물을 변호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구호보다 세밀하게 판단하자는 요구다. 용서하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들을 수 있다. 듣는다고 동의할 의무가 생기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 목소리에 끌릴 가능성이 자기에게 전혀 없었다고 가장할 필요도 없다.

6. 플라톤도 자리에 앉는다

플라톤의 대화편에도 목소리와 끼어듦과 망설임, 끝나지 않은 질문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역사적 인물이자 글로 쓰인 대화의 인물이다. 모두 속기록으로 읽어도, 인형 하나로 줄여도 관계를 놓친다. 작가의 손이 있다고 나머지 목소리가 모두 장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는 강한 논증의 방향이 있다. 그래도 글라우콘의 질문과 트라시마코스의 분노는 생각이 반대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화는 이유를 다른 입의 압력 앞에 둔다. 허용된 반론의 범위를 비판하더라도 그 형식 자체가 무의미한 꾸밈은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양립하지 않는 이해를 한 무대에 자주 세운다. 샤일록이 당한 모욕은 복수의 잔인함을 지우지 않고, 그 잔인함도 모욕을 없애지 않는다. 모든 일을 판정할 심판을 찾을수록 아직 말을 다 듣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들린다.

그러나 열린 작품이라고 면책장을 줄 수는 없다. 『베니스의 상인』에는 비판할 편견과 승자가 부과한 처벌이 있다. 복잡한 목소리를 썼다는 사실이 작가나 수백 년 뒤 공연하는 사람을 역사와 책임 밖으로 옮겨놓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가 중요하려면 플라톤을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논증으로 생각을 밀고 나갈 수도, 만남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도 있다. 어느 작품도 작가 전기 입학시험을 요구하지 않는다. 배경은 깊이를 주지만 들어가도 된다는 입장권은 아니다.

작가는 쓴 것에 책임이 있고 독자는 읽는 방식에 책임이 있다. 작가가 직접 해설하지 않는다고 모든 해석이 옳아지지 않는다. 말과 행동과 타인의 반문을 견뎌야 한다. 자유로운 독해는 그 수고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7. 종이 위의 침대

1616년 유언장은 앤에게 두 번째로 좋은 침대와 그 부속품을 남긴다. 여기에는 커튼과 침구 같은 것이 포함된다. 먼저 당시 값나갈 수 있었던 살림 도구다. 처음부터 사랑이나 모욕이라는 표지가 붙은 상징이 아니다. 물건에도 물질적인 역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서둘러 앤을 대신해 숨은 뜻을 듣는다. 왜 제일 좋은 것이 아닌가. 오래 떨어져 산 끝에 준 모욕인가. 곧 반대 설명이 온다. 가장 좋은 침대는 손님용이고 두 번째가 부부의 침대였다면, 거절처럼 보인 것이 가장 친밀한 선물이 된다.

당시 생활 관습은 후자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이 부부의 감정을 확정하지 않는다. 유언장이 혼인에 관한 모든 재산 배치를 담는 것도 아니다. 과부의 권리와 소유 형태, 다른 조치들도 배경이다. 오늘날 선물 예절만으로 오래된 법률 문서를 판결할 수 없다.

그 침대가 둘 사이에서 무엇을 뜻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모름에도 윤곽이 있다. 모욕과 애정이 똑같이 입증된 게 아니라, 지금 자료로는 어느 쪽도 사실로 확정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새 문서로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선호가 과거를 바꾸지는 않는다.

희곡 읽기와 닮은 점은 있지만 같지는 않다. 침대의 정서적 의미에는 삶의 증거가 필요하고 『햄릿』 해석은 본문에 답해야 한다. 둘 다 이유를 요구한다. 작가가 돌아와 반박할 수 없다고 편리한 이야기를 마음대로 완성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침대를 종이 위에 조금 더 남겨두자. 앤이 버림받았다고 선언하지도, 영원한 연애편지를 손에 쥐여주지도 말고. 한 사람의 침묵을 그에게 남기는 일이 멋진 결론을 쓰는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존중에 더 가까울 때도 있다.

8. 폭풍이 지난 뒤 누가 남는가

1611년 무렵의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가 혼자 쓴 마지막 시기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프로스페로는 마법으로 옛 적들을 섬에 불러온다. 처음에는 인물과 입구와 출구 모두를 마침내 한 사람이 관리하게 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 통제는 안정적이지 않다. 미란다는 폭풍 속 사람들을 걱정하며 아버지에게 묻고, 에어리얼은 붙잡힌 이들의 고통을 주인에게 상기시킨다. 명령하는 사람이 명령받는 목소리에서 멈출 이유를 듣는다. 이 뒤집힘은 나중의 용서만큼 중요하다.

캘리번은 섬을 단순한 화해의 무대가 되지 못하게 한다. 그곳은 자기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소유와 예속과 저항, 미란다를 향한 그의 위협이 관계를 복잡하게 만든다. 주인이 마지막에 관대해지는지만 보면 누가 자기 삶을 정할 권한이 없었는지를 놓친다.

5막에서 프로스페로는 지팡이를 부러뜨려 묻고 책을 물에 가라앉히겠다고 말한다. 포기의 약속이다. 본문이 모든 동작이 이미 눈앞에서 끝났다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놓아주겠다는 말은 자신이 해방시킨다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아직 응답해야 한다.

그는 에어리얼에게 자유를 약속하고 적들과의 화해로 향한다. 그렇다고 모든 인물이 똑같이 분명한 결말을 얻지는 않는다. 섬의 지배와 캘리번의 처지, 용서하는 쪽의 권력은 이별 주변에 거친 가장자리를 남긴다. 용서를 말했다고 용서에 대한 질문이 끝나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관객에게 자기를 놓아달라고 한다. 인물과 배우의 목소리가 함께 들린다. 무대를 지배하던 이가 이제 객석에 의지한다. 셰익스피어의 작별로 읽으면 감동적이지만 어디까지나 독해다. 작가가 직접 서명한 은퇴 선언은 아니다.

우리 가까이 가져올 질문은 정말 펜을 놓았는가보다 이것일지 모른다. 오래 타인의 움직임을 정하던 사람이 자기가 정할 수 없는 마지막 응답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박수를 청할 수는 있다. 박수마저 복종해야 할 명령으로 만들 수는 없다.

9. 빈 의자 하나를 남겨두기

셰익스피어는 1616년에 죽어 스트랫퍼드에 묻혔다. 유골을 움직이지 말라는 무덤의 문구는 유명하지만 누가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전설을 하나 더 보탤 필요는 없다. 삶이 끝났고, 남은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돌봄이 필요했다.

1623년 존 헤밍과 헨리 콘델 등은 퍼스트 폴리오를 모아냈다. 희곡 서른여섯 편 가운데 열여덟 편은 처음 인쇄되었다. 친구와 인쇄업자들의 노동으로 지금은 잃어버린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전해졌다. 보존은 위대함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보상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책 앞부분에도 사람의 기억이 있다. 편집자들은 그를 친구이자 동료로 부르고 존슨은 찬사를 보낸다. 출판의 이해관계와 함께 지낸 온기가 공존한다. 그 사람이 지워졌기 때문에 작품이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동료와 그의 일을 함께 잃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연작의 상상 속 다리로 돌아가자. 오늘은 새로 온 사람을 서둘러 세우지 않아도 된다. 일생을 요약할 대사도 대신 써주지 말자. 빈 의자 하나를 놓아두자. 어떤 자리에는 완성된 고백이 당연히 딸려오지 않는다는 데 익숙해지도록.

체호프가 의자를 본다. 톨스토이는 그 많은 삶을 쓴 사람이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의자는 셰익스피어 대신 답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리어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오늘 코딜리아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한다.

하이젠베르크와 보어는 끝나지 않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흄은 백개먼 말을 상자에 넣고 잠깐 듣는다. 그들이 셰익스피어의 인물이 될 필요는 없다. 다리 또한 한 작가의 소유가 아니다. 자기 이야기의 소유권부터 내놓지 않아도 사람은 이곳에 올 수 있다.

빈 의자는 셰익스피어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상상이 한 걸음 물러서라는 뜻이다. 이 희곡들을 쓰고 집을 사고 아이를 잃고 침대를 유산으로 남긴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들로 영혼의 지도가 빠짐없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래도 공연은 시작할 수 있다. 누군가 나와 말하고 다른 사람은 기대한 방식으로 답하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은 표지에 있고 인물의 목소리는 이미 우리 앞에 왔다. 빈 의자를 먼저 채우지 않아도 여기서 듣기 시작할 수 있다.

읽기 안내와 출처

여기서 부재란 어떤 인물도 작가 전체의 대변인으로 줄일 수 없다는 뜻이지 역사적 인물이나 자료의 부정이 아니다. 퀴니의 1598년 편지는 남아 있으나 전달 여부는 불확실하며 셰익스피어가 직접 썼다고 인정되는 사적 편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토머스 모어 경』의 필적 D 귀속에는 유보를 둔다. 세례일은 1564년 4월 26일이고 23일 생일은 전통이다. 고정된 작품 수나 1,700개 단어 발명으로 재능을 재지 않는다. 공동 집필과 최초 기록, 발명은 구분해야 한다.

침대 유증은 확인되지만 모욕이나 사랑의 뜻은 확인되지 않는다. 과부의 권리와 재산 배치는 맥락이 필요하다. 『템페스트』 5막의 지팡이와 책은 포기의 약속이다. 에필로그를 작가의 작별로 읽는 것은 해석이며 뒤에도 공동 집필작이 있다. 퍼스트 폴리오는 36편 중 18편을 처음 인쇄했고 동료들의 추모 글도 담았다. 체호프·플라톤 비교는 독해이며 빈 의자와 다리는 실제 언행이 아닌 문학적 상상이다.

셰익스피어 문헌 자료: 퀴니의 1598년 10월 25일 편지 · 폴저 도서관: 셰익스피어의 생애 · 영국도서관: 『토머스 모어 경』 원고와 필적 D · 국립초상화미술관: 드로스하우트의 셰익스피어 초상 · 국립초상화미술관: 챈도스 초상화 · 셰익스피어 생가 재단: 두 번째로 좋은 침대 · 폴저 도서관: 퍼스트 폴리오와 권두 자료 · 『템페스트』: 폴저판 전문 · 『햄릿』: 폴저 본문과 출판 역사 · 『베니스의 상인』 4막 1장: 폴저판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