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 108 · 하나의 세계 만들기
아인슈타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베른의 시계에서 프린스턴의 산책까지. 세계를 새로 지은 사람은 자신이 사랑한 질서가 아직 미완이라는 사실과 어떻게 마주하는가.
1. 특허청
1905년. 아인슈타인은 스물여섯 살이었다. 교수가 아니었다. 베른 특허청의 3급 기술 전문가였다.
그해 그는 중요한 논문 네 편을 발표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해를 ‘기적의 해’라고 불렀다.
첫 논문은 빛이 양자, 곧 에너지의 개별적인 묶음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을 제시하고 광전 효과를 설명했다. 빛의 파동 현상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연속적인 파동만으로는 빛을 다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받은 1921년도 노벨 물리학상의 수상 사유에서도 특별히 지목한 것은 광전 효과의 법칙이었다.
둘째 논문은 브라운 운동을 다뤘다. 액체에 떠 있는 미세한 입자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현상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열운동이 있다. 원자와 분자는 계산하기 편한 가정을 넘어, 측정 가능한 결과를 내는 존재가 되었다.
셋째는 특수 상대성 이론이었다. 관성 기준계가 달라져도 진공 속 빛의 속력은 같다. 그러나 시간 간격과 길이는 더 이상 각각 절대적인 양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쓴다고 믿었던 하나의 시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넷째는 질량과 에너지를 연결했다. 훗날 E=mc²로 쓰이게 된 관계는 정지한 물체에도 그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있음을 말한다. 자연의 장부에서 서로 다른 칸에 적던 두 항목이 연결되어 있었다.
네 편의 논문. 특허 심사관 한 사람. 한 해.
뉴턴의 집에 똑같은 구멍 네 개를 낸 것은 아니다. 광양자는 고전 전자기학의 설명 범위를 물었고, 브라운 운동은 분자를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에 들여놓았다. 상대론은 공간과 시간을 다시 물었으며,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는 물질의 장부를 새로 쓰게 했다. 그는 이미 기초로 굳어 더는 묻지 않던 여러 곳에 정을 댔다.
물려받은 답을 조금씩 손보는 일이 아니었다. 질문을 다시 여는 일이었다.
2. 뉴턴의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뉴턴의 세계를 이렇게 그려 보자. 공간은 고정된 무대이고, 시간은 일정하게 가는 시계다. 물체가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동안 시계는 뒤에서 한결같이 흐른다. 무대는 극에 참여하지 않는다. 배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시계는 서두르지도 늦어지지도 않는다.
이 틀은 이백 년 넘게 물리학을 떠받쳤다. 행성과 사과와 밀물이 하나의 계산 안으로 들어왔다. 인간이 세운 가장 성공적인 구조 가운데 하나였다.
칸트는 다른 방향에서 물었다. 공간과 시간은 경험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형식이었다. 뉴턴의 외부 용기를 그저 머릿속으로 옮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유의 세계에서도 시공간은, 다시 실험해 볼 수 있는 보통 가설보다 훨씬 깊은 곳에 놓여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질문을 시계와 자 사이로 돌려놓았다.
서로에 대해 등속 운동하는 관찰자들은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는지에 관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시간 간격과 길이를 비교해도 측정값이 다르다. 어느 한쪽이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우주 어딘가에 ‘정말로 정지한’ 특권적인 관찰자가 숨은 것도 아니다. 기준계가 바뀌면 측정 사이의 관계가 바뀐다.
종이 위에서 하는 놀이가 아니다. GPS는 운동과 중력이 시계에 미치는 서로 다른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특수 상대론과 일반 상대론이 모두 필요하다. 휴대전화가 길모퉁이를 찾아 주는 일 뒤에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은 시계가 있다.
십 년 뒤인 1915년,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표현했다. 물질과 에너지가 시공간의 휘어짐을 정하는 데 관여하고, 그 기하학이 자유 낙하하는 물체의 경로를 정한다. 무대는 배우를 올려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무대 자체가 극에 들어온다.
이 설명에서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줄에 붙들려 끌려가는 것으로 상상할 필요가 없다. 지구는 태양 주변의 휘어진 시공간에서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라간다. 자유 낙하하는 사과도 그런 측지선을 따라 움직인다.
모든 힘을 없앤 것이 아니다. 중력을 말하는 언어를 바꾼 것이다.
물리학의 깊은 곳에까지 정이 들어갔다. ‘당기는 힘’이 꼭 필요해 보이던 현상을 기하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와 별개라던 무대가 세계의 일부가 된다.
그렇다고 뉴턴이 폐허가 된 것은 아니다. 속력이 낮고 중력이 약한 범위에서는 그의 계산이 여전히 유용하다. 다만 그 집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게 되었다.
3. 짓기
아인슈타인은 파내기만 하지 않았다. 짓기도 했다.
일반 상대론은 ‘뉴턴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장방정식은 시공간의 기하학을 물질과 에너지에 연결한다. 몇 줄의 기호가 새로운 세계의 무게를 짊어진다.
그 세계에서는 중력파도 블랙홀도 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은 1916년에 중력파를 연구했다. 2015년 LIGO는 두 블랙홀의 합병에서 온 중력파를 처음으로 직접 검출했다. 이론의 예측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 아주 미세한 떨림이 측정기에 닿았다.
방정식은 팽창하는 우주도 허용한다. 프리드만과 르메트르가 그 길을 열었고, 이후 은하 관측이 경험적 뒷받침을 제공했다. 1929년 허블의 작업은 그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는 정적인 우주를 선호했다. 그가 지은 구조는 지은 사람이 먼저 가 보지 않은 곳까지 갈 수 있었다.
수성의 궤도, 빛의 휘어짐, 시계의 빠르기, 중력파. 이 이론은 거듭 엄격한 검증을 견뎠다. 가능한 모든 예측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질문이 다 소진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 성공은 놀랍다.
우아하고 정밀하다. 중력과 관련된 넓은 범위에서, 지금도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설명이다.
칸트는 경험의 조건을 묻고 세 비판서를 세웠다. 아인슈타인은 시계와 자와 중력을 묻고 상대론을 세웠다. 물려받은 질서를 열어젖힌 뒤, 건설의 일을 떠맡는다는 같은 움직임을 여기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적 논증은 물리 실험이 아니다. 두 사람은 이 글에서 서로를 비출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성취가 다른 사람에게 진리의 인증서를 주지는 못한다.
둘 다 계속 질문을 받을 수 있다. 이 연재는 칸트에게 자연과 자유 사이에서 생명은 어디에 놓이는지 물었다. 여기서는 질문이 바뀐다. 강한 중력과 양자 현상을 따로 처리할 수 없을 때, 이 시공간의 구조에는 무엇이 더 필요한가.
문밖에 서 있는 것은 반대자만이 아니다. 그 자신이 들어오도록 도왔던 양자도 거기 있다.
4.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이십 세기 물리학은 흔히 두 기둥으로 그려진다. 중력을 다루는 일반 상대론, 물질과 복사의 양자적 거동을 다루는 양자론. ‘큰 것’과 ‘작은 것’은 입구의 표지판이지, 결코 만나지 않는 두 영토가 아니다.
진짜 어려움은 어느 쪽도 물러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블랙홀 깊은 내부, 아주 초기의 우주. 충분히 검증된 양자 중력 이론을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다.
일반 상대론은 연속적인 시공간을 쓴다. 양자역학에는 특정한 측정에서 나오는 불연속적인 결과와 확률이 있다. 그렇다고 시공간 자체가 알갱이로 이루어졌다고 선언하는 것은 아니다. 긴장은 매끈함과 알갱이의 대립보다 깊다.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논쟁도 두 이론의 단순한 영역 다툼이 아니었다. 그는 양자론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성공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으로 물리적 실재를 모두 말한 것인지 물었다.
입자는 중첩 상태에 있을 수 있다. 중첩은 ‘상태가 없음’이 아니다. 그 상태가 우리가 물을 수 있는 모든 물리량에 미리 확정된 측정값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통상적인 양자 규칙은 가능한 결과들의 확률을 준다.
계산이 맞으면, 끝까지 설명한 것인가.
1926년, 그는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문을 드러냈다. 훗날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신학 실험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에 관한 신념이었다.
1935년 아인슈타인, 포돌스키, 로젠은 EPR 논문에서 질문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멀리 떨어진 계를 교란하지 않고 어떤 양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이론도 그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재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양자적 설명에 빠진 것이 있는가.
쟁점은 완전성, 물리적 실재,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계들의 독립성이었다. 확률만 보면 눈을 감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64년 벨은 논쟁의 일부를 검증 가능한 부등식으로 바꾸었다. 국소성, 측정 선택과 숨은 변수 사이의 통계적 독립성 같은 조건 아래에서는 한 부류의 숨은 변수 설명에 명확한 한계가 생긴다. 양자론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상관관계를 예측한다.
실험은 여러 차례 그 한계를 넘었다. 도전받은 것은 이 조건들이 모두 함께 성립할 수 있는 세계상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소중히 여긴 국소적 물리 실재의 관념은, 그가 살아서 보지 못한 엄격한 시험에 놓였다.
그렇다고 모든 숨은 변수가 배제된 것은 아니다. 보흠 이론과 같은 접근은 비국소성을 받아들이는 대신 결정론적 시간 변화를 유지한다. 한 번의 실험으로 모든 해석의 주사위를 대신 던질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은 바라던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도 그 질문은 헛되지 않았다. 오늘날 양자 얽힘 연구 역시 그가 피해 가지 못하게 했던 문을 통과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멋진 응수는 될 수 있다.
무엇을 검증했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설명하는 일까지 대신하지는 못한다.
5. 자신이 지은 것에 정을 댄다는 것?
아인슈타인은 절대 시공간을 열고 중력을 기하학으로 다시 썼다. 그는 분명 이십 세기의 위대한 조각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정이 자신이 지은 구조를 향할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적절한 초기 조건과 적용 범위 안에서 일반 상대론은 결정론적 시간 변화를 준다. 그 질서는 통상적인 양자 설명에서 한 번의 측정에 부여되는 확률과 크게 다르다.
아인슈타인은 기존 확률 규칙을 마지막 말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깊은 통일적 설명을 찾고자 했다. 여기에는 실제 긴장이 있다. 세계를 열어젖힌 사람도 세계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믿음에 충실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일반 상대론을 완결된 마지막 문장으로 모신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물질과 양자 현상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말년의 통일장 이론 연구 자체가, 그가 여전히 다른 구조를 찾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질문은 ‘남은 의심해도 자신은 의심하지 못했다’보다 어렵다. 한 단서에 대한 충실함은 언제까지 연구를 지탱하는가. 언제부터 아직 오지 않은 증거를 대신해 답을 결정하는가.
프린스턴에서 괴델은 그와 자주 산책했다. 두 사람은 연구소와 집 사이의 길을 독일어로 이야기하며 걸었다. 1931년의 불완전성 정리는 이미 오래전에 발표된 뒤였다. 괴델은 나중에 상대론적 우주론도 진지하게 연구했다.
그 정리에는 분명한 범위가 있다. 충분한 산술을 표현하며 효과적으로 공리화할 수 있는 무모순 형식 체계는 그 언어의 모든 산술 명제를 결정할 수 없다. 이것은 일반 상대론이 반드시 양자적 무작위성을 빠뜨린다는 증명도, 어느 물리 해석이 옳다는 판정도 아니다.
산책 친구의 손에는 이 물리학 논쟁을 끝낼 수 있는 수학적 판결문이 없었다.
그래도 같은 길 위의 두 사람을 보면 묻게 된다. 세계를 세우는 일과, 자신이 세운 것이 모든 것을 품지는 못함을 아는 일이 함께 일어날 수 있을까. 이 글이 빌리는 것은 그 질문이다. 정리가 대신 내려 주는 답이 아니다.
자기 구조에 정을 대는 일은 곧바로 그것을 버리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일을 계속하면서도 ‘세계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선언할 허가를 미리 내주지 않는 일일 수 있다.
6. 이 연재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앞서 지나간 인물들을 한자리에 놓아 보자. 위대한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법정이 아니다. 이 연재가 남긴 몇 가지 자세를 모으는 자리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자신에게도 돌아온다. 모른다는 것은 남의 주장을 뚫는 무기만이 아니다.
공자는 자신을 아는 것은 하늘뿐인가 묻는다. 자신의 일생을 기성품 같은 답으로 만들지 않은 사람이, 아직 일을 내일에 건넨다.
노자는 말할 수 있는 도가 늘 그러한 도는 아니라고 쓴다. 전설에서는 그 뒤 관문을 나선다. 남겨진 문자조차 도 자체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장자의 혼돈은 일곱 구멍이 뚫린 뒤 죽는다. 모든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려는 선의가, 도우려던 바로 그것을 죽일 수 있음을 우화는 보여 준다.
칸트는 앎의 경계를 긋고 물자체를 경험 대상의 하나로 만들지 않는다. 그의 구조에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에도 다시 질문할 수 있다.
니체는 가치의 뿌리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나중에 병을 얻었다. 질병은 철학에 대한 벌도, 철학을 입증하는 증거도 아니다.
왕양명은 질문을 양지와 행위 사이로 돌려놓는다. 안으로 파고드는 일이 다른 사람과 마주할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석가모니는 뗏목의 비유를 남긴다. 가르침은 강을 건너기 위한 것이지 등에 지고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집착을 놓는 것은 모든 가르침을 불태우는 일이 아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힌다. 앞선 글의 문학적 풍경에서 그는 다리 위에 있다. 상처 입고도 다른 이를 한낱 도구로 취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반드시 용서하라고 명령하는 말이 아니다.
괴델은 한 부류의 형식 체계에 대해 정확한 한계를 증명했다. 그는 나중에 심각한 건강 위기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수학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큰 구조 하나를 열고, 또 다른 구조를 세웠다.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다만 실재와 질서에 요구하던 어떤 조건들을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여기서 무언가에 매달린 사람이 그뿐인 것은 아니다. 지혜로운 말 한마디를 남겼다고 누구도 집착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 글의 질문을 아름다움에 놓고 싶다.
장방정식은 유난히 우아하다. 서로 흩어져 있던 현상이 하나의 기하학에서 만난다. 이런 것을 직접 만든 사람이 거기서 더 깊은 통일로 가는 길을 계속 믿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아름다움은 길을 안내한다. 길을 막을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질문, 뗏목을 놓는 손, 장자의 우화를 빌려 도구를 최종 목적지로 만들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는 아무 집착도 없고 아인슈타인만 갇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는 물리학적 판단과 철학적 신념이 들어 있다. 질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충실함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층위는 이 글의 읽기이지, 그의 내면에 대한 진단이 아니다.
아름다운 구조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 곳을 남겨 둔 채로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틈을 서둘러 막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든 틈을 진리라고 찬양하지도 않는 일.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라’고 외치는 것보다 어렵다.
괴델은 아름다움에 반드시 구멍이 있어야 한다고 증명하지 않았다. 양자역학도 장자의 우화를 증명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들은 서로를 비추지만, 서로의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프린스턴의 두 사람은 계속 걷는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작업을 알지만, 모든 침묵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 길을 열린 채로 둘 수 있다.
1955년 4월 18일,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전기 작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삶을 더 늘리기 위한 추가 수술을 거절했고, 자신의 일은 했으니 이제 가도 된다고 여겼다. 그 작별의 침착함을 어떤 이론의 마지막 증명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사람은 떠난다. 구조는 남아, 지은 사람의 수명보다 더 오래 질문을 받는다.
신은 과연 주사위 놀이를 하는가. 이번에는 물음표를 남겨 두자.
읽기 안내와 출처
1905년의 네 논문은 광양자,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론,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를 다룬다. 1921년도 노벨상은 1922년에 수여되었고 광전 효과의 법칙을 특별히 언급했다. 빛의 파동 현상을 폐기한 것은 아니다. 특허청 직위는 스위스 연방 지식재산청의 역사 자료를 따른다.
상대론 설명은 막스 플랑크 중력물리학연구소의 Einstein Online을 참조했다. GPS에는 운동과 중력이 시계에 주는 영향이 모두 관계한다. 일반 상대론의 모든 해와 예측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LIGO의 첫 직접 검출은 2015년 9월 14일, 발표는 2016년이다.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이론 작업은 허블 등의 관측과 구별했다.
1935년 EPR 논문과 1964년 벨 논문은 서로 다른 단계다. 벨 실험은 해당 국소성과 독립성 조건을 만족하는 이론에 제약을 주며, 모든 결정론이나 숨은 변수를 배제하지 않는다. 중첩 자체가 상태이고, 붕괴를 이해하는 방식에는 해석의 차이가 있다. 양자 중력 문제도 연속과 알갱이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다.
주사위 문구는 공개된 『보른–아인슈타인 서간집』의 1926년 12월 4일 편지를 통상적으로 요약한 말이다. 산책은 고등연구소 자료로 뒷받침되지만 대화는 재구성하지 않았다. 불완전성 정리의 전제 및 물리 이론과의 구별은 이 연재의 괴델 편을 참조할 수 있다.
정을 대기, 구조를 짓기, 구조 밖에 남는 것은 이 연재의 해석 언어다. 칸트와 장자를 물리학에 비추는 것은 과학적 논증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집착은 저자의 질문이며, 아인슈타인의 동기나 정신 건강에 대한 사실 판정이 아니다. 병과 죽음은 사상의 벌이나 증거가 될 수 없다.
추가 수술의 거절과 작별의 말은 바네시 호프만과 헬렌 듀카스의 전기 Albert Einstein: Creator and Rebel(1972)에 전해진다. 본문은 그 전기 서술을 풀어쓴 것이며, 독립적으로 검증된 임종의 축어 기록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사망 날짜와 장소는 노벨상 공식 전기를 참조했다.
스위스 연방 지식재산청: 특허청 시절의 아인슈타인 · 노벨상: 1921년도 물리학상 수상 사유 · Einstein Online: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 · Einstein Online: 상대론과 위성 항법 · LIGO: 중력파 최초 직접 검출 ·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물리적 실재의 양자역학적 설명은 완전한가(1935) · 벨: 아인슈타인–포돌스키–로젠 역설에 관하여(1964) · 노벨위원회: 벨 부등식과 양자 얽힘의 과학적 배경(2022) ·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괴델과 아인슈타인의 산책 · 노벨상: 아인슈타인 전기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