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Essays in the Self-as-an-E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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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 108 · 하나의 세계 만들기

두보, 시로 깎여 간 사람

태산의 꼭대기에서 비 새는 초가까지. 한 사람의 고통은 시 안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삶을 향해 열리는가.

1. 언젠가 반드시 꼭대기에 오르리라

젊은 두보는 태산을 두고 한 편의 시를 썼다.

동쪽의 큰 산, 그 모습을 어찌 말할까.
제나라와 노나라 땅에 푸르름이 끝이 없다.
조화는 이곳에 신묘한 아름다움을 모았고,
그늘과 햇빛은 저녁과 아침을 갈라놓는다.
겹겹이 솟는 구름에 가슴이 일렁이고,
돌아가는 새를 좇아 두 눈을 크게 뜬다.
언젠가 반드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뭇 산이 작아진 모습을 한눈에 보리라.

언젠가 꼭대기에 서겠다. 발아래 산들이 작아지는 것을 보겠다. 미래는 아직 자기 발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었다.

제나라와 조나라 지역을 떠돌던 스무 살 남짓 청년의 목소리다. 천지 사이에 감히 생각하지 못할 것이 없는 듯하다. 집안의 계보는 진나라 장군 두예로 거슬러 올라가고, 할아버지 두심언은 초당의 시인이었다. 책을 많이 읽은 그는 훗날 자신의 뜻을 분명히 적었다. 임금을 요순보다 높이 이끌고, 풍속을 다시 순박하게 만들겠다고.

관리가 되고 싶었다. 조정에 들어가고 싶었다. 공자가 바라던 정치를 자기 시대에 이루고 싶었다.

그 뒤 삼십여 년 동안 현실은 이 시의 당찬 자신감에 한 번씩 정을 대기 시작했다.

2. 민간에 남은 인재가 없다

진사 시험을 보았다. 떨어졌다.

보통 735년의 일로 본다. 그는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나이였다. 낙방한 뒤에도 여행은 이어졌다. 한 번의 실패가 앞날을 모두 닫지는 않았다.

747년, 현종은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을 불러 시험을 치르게 했다. 서른을 넘긴 두보도 장안에서 다시 도전했다. 앞선 진사 시험을 그대로 한 번 더 보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새로 열어 보이는 문이었다.

『자치통감』은 재상 이임보가 민간 응시자들의 정치 비판을 두려워했다고 전한다. 선발은 여러 단계를 거치도록 짜였고, 결국 한 명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임보는 황제에게 축하를 올렸다. 민간에 빠뜨린 인재가 이제 하나도 없다고.

문이 닫혔다. 문을 닫은 사람은 그것을 태평한 정치의 증거로 내세웠다.

세상에 쓰이고자 수도로 온 사람에게는 웃을 수 없는 농담이었다. 두보는 이미 장안에 머물고 있었다. 낙방 뒤에도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3. 장안에서 보낸 십 년

대략 746년부터 755년까지, 두보는 장안에서 거의 십 년을 어렵게 지냈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시를 바치며 천거를 바랐다. 자기 작품을 들고 힘 있는 이의 문을 두드리는 간알이었다. 장안 생활 초기에 쓴 「위 좌승께 드리는 이십이 운」에는 벌써 그 뒤 세월의 쓴맛이 배어 있다.

임금을 요순보다 높은 곳으로 이끌고
풍속을 다시 순박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 뜻은 끝내 쓸쓸히 시들었으나, 노래하며 걸어도
세상에서 숨어 살 사람은 아니다.
나귀 타고 보낸 삼십 년,
서울의 봄에도 남의 밥에 의지한다.
아침에는 부잣집 문을 두드리고
저녁에는 살찐 말이 남긴 먼지를 따른다.
남은 술과 식은 고기,
가는 곳마다 남몰래 삼키는 슬픔과 괴로움.

먼저 임금을 요순보다 높이 이끌겠다는 뜻이 나온다. 바로 다음에는 그 뜻이 시들었다는 말이 붙는다. 꿈은 무너져도, 기꺼이 세상을 등지는 은자가 되지는 못한다.

아침의 부잣집 문. 저녁의 말발굽 먼지. 남은 술, 식은 고기, 남에게 기대는 생활. 시는 이 경험들을 숨이 막힐 만큼 겹쳐 놓는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르겠다던 사람이 장안의 말발굽 먼지 속에서 해마다 기다렸다.

755년, 마침내 작은 벼슬을 얻었다. 우위솔부 주조참군. 황태자 호위 관청에서 무기와 관련 업무를 맡는 자리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중심이 아니라, 거대한 관료 기구의 한구석이었다.

임금을 요순보다 높이 이끌고 싶었던 사람에게, 오랜 기다림 끝에 무기와 장부가 주어졌다.

그는 받아들였다. 앞서 받은 하서 현위 자리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뛰어다니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일을 꺼렸다. 임관 뒤의 시는 솔직하다. 늙은이는 분주히 다니는 것이 두려우니, 솔부에서 잠시 한가로이 지내겠다고. 봉급이 필요했다. 자기 자신도 조금은 지키고 싶었다.

현실이 낸 첫 번째 상처다. 한 번에 내려친 것이 아니라, 무딘 칼이 십 년 동안 조금씩 문질렀다.

4. 어린아이는 이미 굶어 죽었다

755년 말, 안사의 난이 일어날 무렵이었다. 작은 봉급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두보는 장안을 떠나 봉선현으로 향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서울에서 봉선현으로 가며 마음을 읊은 오백 자」는 한 길 위에 두 세계를 놓는다. 여산 궁정의 온기와 잔치, 비단. 길가의 추위와 굶주림, 죽음. 화려한 비단도 고단하게 일하는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집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서니 울부짖는 소리,
어린아이는 이미 굶어 죽었다.

문을 연다. 울음소리가 들린다. 막내아들이 죽어 있다.

내 어찌 슬픔을 참을 수 있을까.
이웃들도 흐느껴 운다.
아버지인 것이 부끄럽다.
먹이지 못해 어린 목숨을 잃었으니.
아이를 배불리 먹이지 못했다. 살아 있게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이 슬픔을 더 깊이 파고든다.

그는 이미 제국의 말단 관리였다. 그래도 아이는 굶어 죽었다.

같은 시에는 그 두 구절도 있다.

붉은 대문 안에는 술과 고기 냄새,
길에는 얼어 죽은 이들의 뼈.

풍요와 죽음. 둘 사이에는 문 하나가 있다.

시에서는 이 구절이 귀가 장면보다 먼저 나온다. 그러나 고통은 여행 일정표대로 나뉘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궁정과 길, 자기 집을 한 그림 안에 담는다. 불평등은 더 이상 멀찍이서 논하는 문제만이 아니다.

두 번째 상처였다. 막힌 벼슬길보다 더 깊이, 그의 집 안으로 들어온 상처였다.

5. 나라는 무너져도 산하는 남는다

756년, 장안이 함락되었다. 현종은 사천으로 달아났고, 숙종은 영무에서 즉위했다. 두보는 가족을 부주에 두고 숙종을 찾아 나섰다.

길에서 반란군에게 붙잡혔다. 장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수도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예전의 수도는 아니었다.

757년 봄, 「춘망」을 썼다.

나라는 무너져도 산하는 남고,
성에 봄이 드니 풀과 나무가 깊다.
시절을 슬퍼하여 꽃을 보아도 눈물 나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가슴이 놀란다.
전쟁의 봉화는 달을 거듭해 이어지고,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보다 귀하다.
흰머리 긁을수록 더욱 성기니,
이제 비녀조차 꽂기 어려울 듯하다.

산과 강은 남았다. 사람의 질서는 깨졌다. 봄은 어김없이 와서 풀과 나무를 키운다. 꽃과 새마저 가슴 아픈 것이 되었다.

전쟁은 이어진다. 왜 편지 한 장이 그토록 비싼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흰머리를 긁는 손, 점점 적어지는 머리카락. 세상의 파괴가 한 사람의 무심결에 하는 몸짓에까지 내려앉는다.

마침내 그는 봉상으로 빠져나왔다. 삼으로 만든 신을 신고 천자를 뵈었으며, 해진 소매 밖으로 두 팔꿈치가 드러났다고 썼다. 숙종은 그를 좌습유로 임명했다. 황제에게 간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임금을 이끌겠다는 뜻에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말했다. 방관이 재상 자리에서 물러나자, 그를 변호하는 상소를 올렸다. 숙종은 노하여 조사를 명했다. 재상 장호가 그를 벌하면 간언의 길을 막게 된다고 나섰고, 두보는 처벌을 면했다.

그날 곧바로 화주로 좌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뢰는 상했다. 758년 화주 사공참군이 되었고, 759년 수도 주변의 기근 속에서 벼슬을 버린 뒤 가족과 서쪽으로 떠났다.

그 뒤 모든 관직을 영원히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훗날 엄무의 막부에서 일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상으로 가던 큰길은 발밑에서 다시 끊겼다.

세 번째 상처. 조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는 한 사람이 끝내 거두어들이지 않는 말을 조정이 어떻게 다루는지도 보았다.

6. 어찌하면 큰 집 천만 칸을 얻을까

759년 말 성도에 도착했다. 친척과 친구의 도움으로 이듬해 완화계 가에 초당을 지었다. 나중에는 엄무도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다. 떠돌던 사람에게 잠시 머물 곳이 생겼다.

761년 음력 팔월, 가을바람이 불었다.

팔월 높은 가을에 바람이 성내어 울며
내 지붕의 세 겹 이엉을 걷어 간다.
이엉은 강을 넘어 강가에 흩어져,
높이 난 것은 큰 나무 끝에 걸리고
낮게 난 것은 빙돌아 연못가 낮은 곳에 가라앉는다.
남촌 아이들은 늙고 힘없는 나를 업신여겨
눈앞에서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다.
보란 듯 이엉을 안고 대숲으로 들어간다.
입술과 목이 타도록 불러도 소용없어,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어 홀로 한숨 쉰다.

지붕이 날아갔다. 시 속의 노인은 아이들이 이엉을 안고 대숲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도둑이라고 화를 낸다. 목이 마르도록 불러도 돌아오지 않는다.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와서 한숨을 쉰다.

이윽고 어두워지고 비가 내린다.

잠시 뒤 바람은 멎고 구름은 먹빛,
가을 하늘은 아득히 어둠으로 기운다.
여러 해 덮은 이불은 쇠처럼 차갑고
잠버릇 사나운 아이가 안감을 차서 찢었다.
침상 머리로 비가 새니 마른 곳이 없고,
삼대처럼 촘촘한 빗줄기는 끊이지 않는다.
전란을 겪은 뒤 잠을 잔 날이 드무니,
젖은 이 긴 밤을 어찌 다 지새울까.

쇠처럼 찬 오래된 이불. 자면서 발길질하는 아이가 찢어 놓은 안감. 침상 옆에는 마른 자리가 없다. 전란 이후 잠들기도 어려웠는데, 젖은 밤은 끝없이 길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지붕을 잃은 사람이 자기 지붕만 생각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갑자기 가장 높은 곳을 향한다.

어찌하면 넓은 집 천만 칸을 얻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를 모두 덮어 웃게 할까.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산처럼 평안하도록!
아, 언제 이 집들이 눈앞에 우뚝 서리오.
그때라면 내 초가만 무너지고
나 혼자 얼어 죽어도 좋으리라.

그들이 쉴 수 있게. 웃을 수 있게. 폭풍에도 집이 든든하게. 그런 집들이 정말 나타날 수 있다면, 자기 집을 잃는 일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지붕이 부서졌는데, 시선은 그 지붕을 넘어선다. 한사라는 말은 우선 가난한 선비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돌아봄 안에서, 더 많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열릴 수 있는 돌봄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은 개인의 소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목소리이지, 모든 피해자에게 자신을 희생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얼어 죽어야 선하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추위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는 핑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두보에게 나타난 인의 한 모습을 읽는다. 공자는 상대에 따라 다르게 답했다. 두보는 비 새는 집으로 자기 답을 내놓았다. 추상적인 글자 하나에 젖은 이불의 무게가 생겼다.

7. 천지 사이 한 마리 갈매기

765년 엄무가 죽었다. 중요한 버팀목을 잃은 두보는 성도를 떠나 강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여행길 밤에 마음을 적다」는 보통 이 해의 작품으로 본다. 밤의 강가에 가는 풀이 있고, 배 위에는 높은 돛대가 있다.

강가의 가는 풀에 산들바람,
높은 돛대 아래 밤의 외로운 배.
별은 드넓은 들에 낮게 드리우고
달빛은 큰 강 흐름에 솟구친다.
내 이름은 오직 글 때문에 알려졌던가.
벼슬을 놓은 것이 참으로 늙고 병들어서뿐이던가.
떠돌고 또 떠도는 나는 무엇과 같은가.
천지 사이 한 마리 갈매기.

명성은 글에만 달렸는가. 벼슬이 끝난 까닭은 정말 늙고 병들어서뿐인가. 두 물음 아래에는 다 말하지 못하는 울분이 있다.

그가 시 쓰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평생 시의 기술을 다듬었으며, 말이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만두지 않겠다고까지 썼다. 다만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세상에 쓰이고 싶다는 뜻을 대신하지 못했다. 한 길은 좁아지고, 다른 목소리는 깊어졌다.

나는 무엇과 같은가. 넓은 하늘과 땅 사이, 기댈 곳 없는 갈매기 한 마리.

766년부터 768년까지 그는 기주에서 거의 이 년을 지냈다. 767년에 쓴 「높은 곳에 오르다」를 명나라의 호응린은 훗날 고금을 통틀어 으뜸가는 칠언율시라고 평했다. 그 뒤 두보는 다시 호남으로 떠돌아갔다.

바람 급하고 하늘 높고 원숭이 울음 슬픈데,
맑은 모래톱 흰 모래 위로 새가 맴돈다.
끝없는 나뭇잎은 쓸쓸히 떨어지고
다함없는 장강은 굽이굽이 밀려온다.
만 리 밖에서 가을을 슬퍼하며 늘 나그네,
병 많은 한평생, 홀로 높은 대에 오른다.
고난과 깊은 한으로 귀밑머리 서리는 늘었고
쇠약해져 최근에는 탁주 잔마저 놓았다.

만 리, 가을, 늘 나그네. 한평생, 많은 병, 홀로 오르는 대. 열네 글자, 두 줄이다.

만 리는 공간을 멀리 벌린다. 백 년은 일생을 펼친다. 가을의 슬픔은 계절에서 오고, 많은 병은 몸으로 내려온다. 늘 나그네이니 안착한 집이 없고, 홀로 오르니 동행이 없다.

이렇게 읽으면 한 대구 안에 여섯 겹의 고통이 포개져 있다. 고통이 저절로 시가 된 것은 아니다. 시인이 그것들을 이토록 촘촘하게 놓고, 그 곁으로 큰 강을 계속 흐르게 한 것이다.

8. 이룬 것 없어 눈물이 장맛비가 되다

770년, 두보는 쉰 살을 훌쩍 넘겼으며 당시 세는나이로 쉰아홉이었다. 말년의 시에는 쇠약한 오른팔, 잘 들리지 않는 귀, 갈증, 안개 속에서 보는 듯한 꽃이 잇달아 나온다.

호남의 물길 위에서 오래 앓은 사람이 여전히 시를 쓰고 있었다.

「풍질로 배 안에서 베개를 베고 누워 마음을 적은 삼십육 운을 호남의 친척과 친구에게 드리다」는 가장 늦은 시들 가운데 하나다. 제목 안에 병과 배, 병상과 친구들이 함께 남아 있다. 세상과 끊어진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아직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전쟁의 피는 예전처럼 흐르고
군대의 소리는 지금까지 울린다.
갈홍은 틀림없이 육신을 벗어나 신선이 되었겠고,
허정은 늙어서도 일을 맡을 힘이 있었으리.
집안에 전해진 단사의 비결도
이루지 못하니 눈물이 장맛비가 된다.

피는 여전히 흐르고 군대의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전쟁은 그가 지쳤다고 멈추지 않는다.

갈홍의 신선 됨, 허정의 노년 관직, 집안의 단사 비법이 끝 구절에 모인다. 더 살고 싶은 마음, 아직 쓸모 있고 싶은 마음. 무성,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그 미완의 소망들을 받아 내고 눈물은 비처럼 내린다.

낙담은 있다. 그러나 두 글자를 한평생에 대한 서명된 판결로 읽을 수는 없다. 시는 아픔을 말한다. 삶의 결산을 끝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770년에 죽었다. 정확한 장소와 사인에는 여러 설이 있다. 『신당서』는 뇌양에서 술과 쇠고기를 먹은 뒤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더 이른 원진의 묘지명은 객지에서 죽어 악양에 임시로 장사 지냈다고 할 뿐, 병의 원인을 밝히지 않는다.

그는 자기 이후를 볼 수 없었다. 송대부터 높아질 평가, 시성과 시사라는 이름, 천 년 뒤에도 사람들이 큰 집 천만 칸을 바라는 구절을 읊을 일을.

그는 벼슬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임금을 요순에 가깝게 이끌고 싶었다. 현실은 앞날과 가정과 몸을 거듭 상하게 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이루지 못한 많은 것이 시 속에 남았다.

9. 시성

후세 사람들은 이백을 시선, 왕유를 시불, 두보를 시성이라 불렀다. 세 이름은 서로 다른 세 빛처럼 보인다.

『시인옥설』은 양만리의 말을 인용한다. 이백은 시에 신묘하고 두보는 시에 성스럽다고. 이것은 시학의 평가다. 이백에게는 천재성이 있고 두보에게는 없다는 말도, 고생을 충분히 하면 누구나 두보가 된다는 말도 아니다.

후대의 문화적 존칭에서 공자는 문성, 관우는 무성이다. 성이라는 말은 사람이 따를 만한 모범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두보를 그렇게 읽는 까닭은 시가 정교해서만이 아니다. 그 정교함이 사람의 고통을 문밖에 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집 천만 칸. 보호받고 얼굴을 펴는 가난한 사람들. 여기에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독자에게 닿게 하는 기술도 있다. 둘은 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로 깎여 갔다는 말은 선택도 창조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현실이 깎아 낸 것은 포부를 놓으려 했던 길이지, 행동할 힘 전부가 아니다. 남은 경험과 분노와 염려를 시로 구성한 사람은 두보 자신이었다.

그는 관직의 길과 정치, 더 나은 천하도 만들고 싶었다. 시는 그것들이 원래 바라던 모습으로 실현되지 못한 뒤 남은 것을 받아 냈다.

이 연작의 비유를 따른다면 장자는 혼돈으로 밀려 돌아간다. 뚫어 놓은 뒤 남은 것이 너무 커서 틈을 봉할 수 없다. 두보는 시를 향해 밀려간다. 남은 것이 너무 깊어서 그것을 담을 다른 형식이 필요하다.

장자의 나머지는 우리를 다시 혼돈과 마주하게 한다. 두보의 나머지는 우리에게 시를 듣게 한다.

공자는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고, 두보는 큰 집 천만 칸을 바란다. 뒷사람이 앞사람의 실패를 수리한 것이 아니다. 인을 어떻게 실천할지 계속 묻는 목소리와, 그 물음을 추운 밤의 집 안으로 들이는 목소리가 서로를 비춘다.

인에는 단 하나의 정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태도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지금 춥다. 그래도 너에게는 추위를 피할 곳이 있었으면 한다.

이 글이 상상하는 다리 어귀에 또 한 사람이 온다. 여기저기로 떠돌던 배에서 걸어오는 마른 노인. 금빛 외투나 거친 옷감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릴 필요는 없다. 나는 그가 앞서 쓴 시의 찢어진 소매와 드러난 팔꿈치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의 시는 있다. 천이백 년이 넘었다. 아직도, 있다.

읽기 안내와 출처

기본 자료는 두보의 시, 원진의 「당 고 공부원외랑 두군 묘계명」, 『신당서』 권201이며, 홍콩중문대학교 『역총』의 작가 소개 등 기관 자료를 참고했다. 시는 구성된 문학 작품이지 매일의 녹음 기록이 아니다. 정과 세 번의 상처, 다리 장면은 이 글의 해석과 문학적 상상이다.

진사 낙방 735년, 특별 시험 747년, 장안 시기 약 746~755년이라는 일반적인 편년을 따랐다. 747년의 정치적 배경은 『자치통감』 권215에 나온다. 나이는 만 나이와 세는나이를 구별했다. 봉선행은 755년 말 난의 발발 무렵으로 보되, 시의 순서를 실제 목격 순서로 단정하지 않는다. 757년 방관 사건, 758년 화주 근무, 759년 사직, 764년 엄무 막부 근무는 구별해야 한다.

시구는 전래 두보 시집과 『전당시』 등을 대조했다. 나귀를 탄 삼십 년은 『전당시』 권216에 근거하며 십삼 년이라는 이문도 있다. 「망악」의 겹구름에도 이문이 있다. 붉은 대문 안의 취 자는 향기와 썩는 냄새 등 여러 방식으로 풀이되므로 단정하지 않는다. 초가의 시에는 먹구름 두 구절을 보충했다. 한사는 우선 가난한 선비이며 모든 고통받는 이로 넓히는 것은 이 글의 독해다. 아버지의 애도 구절인 「吾寧舍一哀」에서 寧은 반문으로 읽었으며 양보 구문으로 읽는 해석도 있다. 한국어 시는 중국어 원문에서 독립적으로 옮겼다.

「여야서회」는 보통 765년, 「등고」는 767년 기주 작품으로 본다. 고금 으뜸이라는 평은 호응린 『시수』의 비평이지 객관적인 순위가 아니다. 이백과 두보를 대비한 말은 『시인옥설』 권14에 양만리의 말로 실려 있으며 천재와 비천재의 대립으로 환원할 수 없다. 말을 놀랍게 만들겠다는 구절은 「강에서 물이 바다처럼 불어난 것을 보고 잠시 짧게 적다」에 나온다.

풍질과 병갈 같은 옛말만으로 뇌졸중이나 당뇨병을 소급 확진할 수 없다. 배 안의 긴 시는 말년 작품이지만 확정된 절필작은 아니다. 무성은 단사로 장생을 구하는 문맥에 이어지며 더 넓은 생애의 아쉬움도 울릴 수 있지만, 임종 심리의 직접 기록은 아니다. 죽음의 장소와 원인에 관한 전승은 서로 다르고 원진도 특정한 의학적 원인을 적지 않았다.

인, 나머지, 시로 깎임은 이 연작의 해석 틀이지 두보가 직접 세운 이론이 아니다. 혼자 추위를 감수하겠다는 시인의 극단적 소망은 피해자에게 자기희생의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다. 공자나 이백, 왕유를 낮추거나 시인의 의식적인 기량을 부정하지 않고도 두보를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전당시』 권216: 초기 시와 봉선행 · 두보 「춘망」 · 두보 「가을바람에 초가가 무너져 부르는 노래」 · 두보 「여야서회」 · 두보 「등고」 · 두보 「풍질로 배에서 누워 쓴 삼십육 운을 호남 친우에게 드리다」 · 원진 「당 고 공부원외랑 두군 묘계명」 · 『신당서』 권201: 두보전 · 『자치통감』 권215: 747년 특별 시험 · 『시인옥설』 권14: 양만리의 이백·두보 평 · 호응린 『시수』 내편 권5 · 홍콩중문대학교 『역총』: 두보 작가 소개

중문·영문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어 독자에게 맞게 독립적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사료와 상세 주석은 중문·영문 원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