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 영화 읽기 · 2 / 3
그가 안전했던 것은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목차
1949년 봄, 번호판 공장 옥상.
수감자들이 뙤약볕 아래서 지붕에 타르를 바른다. 작업이 끝나 갈 무렵, 해들리 교도관이 차갑게 식힌 블랙 라벨 맥주를 가져오게 한다. 앤디가 받아 낸 조건은 한 사람당 세 병이었다. 이들은 옥상 가장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며 맥주를 마신다. 레드는 회상한다. 그때만큼은 자기 집 지붕을 손보는 기분이었고, 온 세상이 우리 것이었다고.
영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따뜻하고 느긋하며 인간의 존엄이 느껴진다. 수많은 사람이 ‘인간의 정신은 꺾을 수 없다’는 증거로 이 장면을 꼽는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좀처럼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 나머지 절반이 있다. 그 맥주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다. 앤디는 자신의 전문 기술 하나로 값을 냈다.
십 분쯤 전, 앤디는 해들리가 형에게서 물려받은 유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며 투덜대는 소리를 듣는다. 옥상에서 내던져질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 방법을 알려 준다. 아내에게 일회성 증여를 하면 국세청에서 면세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원하느냐는 해들리의 말에 앤디는 대답한다. 제 동료들에게 맥주 세 병씩만 주세요.
거래가 끝나고, 맥주가 왔다.
앤디는 이 체제의 예외가 아니다. 그 안에서 가장 성공한 상품이다. 앞 글에서 본 브룩스는 50년 동안 쓰이다가 맡은 자리에서 벗어나자 살아갈 수 없게 된 사람이었다. 이번 글에서 볼 것은 앤디가 쇼생크에서 누구보다 잘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도 같다는 사실이다. 다만 앤디의 사용 가치가 훨씬 높았기에, 그 대가도 훨씬 후했다.
1. ‘시스터스’는 왜 갑자기 그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앤디는 처음 2년 동안 ‘시스터스’라는 패거리에게 거듭 성폭력을 당한다. 저항한다. 매번 저항하고, 그때마다 더 심하게 맞는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단도직입적이다. 이길 때도 지는 때도 있었지만, 보그스 일당도 원하는 것을 전부 얻지는 못했다고 한다. 승리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 줄다리기다.
저항은 2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실제로 상황을 끝낸 일은 옥상에서 나눈 대화 뒤에 벌어진다. 해들리가 보그스를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될 만큼 두들겨 팬다. 주 북부의 경비가 가장 느슨한 병원으로 옮겨진 보그스는 남은 생을 빨대로 음식을 먹으며 보내게 된다. 그 뒤로 시스터스는 앤디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다.
이 두 사건의 인과관계를 바로 놓아야 한다. 앤디의 안전은 스스로 싸워 얻은 것이 아니라 허가받은 것이었다. 싸워서 얻은 것은 상처뿐이다. 그를 안전하게 해 준 사람은 앤디의 쓸모를 알아본 교도관이었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이후의 모든 일에 어떤 성격을 부여할지가 여기에 달려 있다. 앤디가 누리는 특별 대우, 곧 독방과 교도관의 보호, 도서관 일, 교도관들과 재정 문제를 상의할 자격은 모두 관리자의 허락에 매여 있다. 일부는 그가 여러 해 애써 얻은 성과다. 그래도 교도소 권력에 맞서 내세울 수 있는 권리가 되지는 못한다. 공통점은 하나다. 언제든 거두어 갈 수 있다.
2. 노튼은 가격표를 면전에서 읽어 준다
이것은 내 추측이 아니다. 영화에는 그 가격표를 항목별로 읽어 주는 장면이 있다.
토미가 나타난 뒤 앤디는 노튼 소장을 찾아가 판결을 뒤집을 기회가 생겼다고 말한다. 노튼은 먼저 그를 징벌방에 가둔다. 이후 토미가 죽고 앤디가 더는 장부를 맡지 않겠다고 하자, 그제야 거래 조건을 낱낱이 밝힌다. 모든 일은 지금처럼 계속되어야 한다. 하나라도 멈추면 교도관의 보호는 사라진다. 독방도 잃고 다시 성폭력에 노출될 것이다. 도서관은 봉쇄하고 책은 마당에서 불태울 것이다.
노튼은 앤디가 그동안 얻은 것을 하나씩 열거하며 출처를 확인해 준다. 별도의 형벌을 더하겠다는 협박이 아니다. 그 따뜻했던 것들은 모두 자신이 주었으니, 자신이 모조리 도로 가져갈 수도 있다는 통고다.
그 목록에서 가장 뼈아픈 항목은 도서관이다. 앤디는 6년 동안 매주 주 의회에 편지를 써서 처음으로 200달러와 헌책을 받는다. 이후에는 일주일에 두 통씩 보낸다. 다시 몇 해가 지나 마침내 정기 지원금을 받아 내고, 창고였던 방을 뉴잉글랜드에서도 손꼽히는 교도소 도서관으로 바꾼다. 영화에서 가장 큰 용기를 주는 곁가지 이야기다. 그런데 노튼은 알려 준다. 그것도 보수의 일부이며, 어느 오후 한나절이면 없애 버릴 수 있다고.
언제든 회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당신 것이었던 적이 없다.
3. 토미
토미 윌리엄스는 1965년에 들어온다. 20대 청년으로 절도 때문에 수감되었으며, 들어올 때부터 익살을 부린다.
그는 이 영화에서 삶이 나아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출소하면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기에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인정 시험을 치르고 싶어 한다. 글을 읽지 못하는 그에게 앤디는 알파벳부터 가르친다. 시험 날, 토미는 당황한 나머지 답안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진다. 자신 때문에 모두 일 년을 허비했다며 자책한다. 앤디는 답안지를 주워 우편으로 부친다. 결과는 C+. 합격이다.
토미에게 글을 가르쳐도 앤디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중요한 대목이다. 이 사람을 대할 때 앤디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러던 토미가 그 이야기를 꺼낸다. 예전에 같은 감방을 썼던 엘모 블래치가 여자 하나와 골프 강사를 죽였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죄로 감옥에 간 사람은 은행가였던 여자의 남편이라고도 했다.
토미는 증언할 뜻이 있다.
노튼은 토미를 따로 불러 판사 앞에서 선서하고 그 일을 증언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토미는 그러겠다고 한다. 그날 밤, 탐조등 아래에서 해들리가 토미를 쏴 죽인다. 외부에는 탈옥을 시도하다 사살되었다고 발표한다.
보통은 토미가 너무 많이 알아서 입막음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튼은 처음에 그의 증언을 황당한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하지만 토미가 살아 있는 한 그 말은 법정에 들어갈 수 있다. 앤디의 잘못된 판결을 다시 조사할 수도 있다. 노튼이 조치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증언할 사람도 남는다.
토미를 죽이는 것은 입을 막는 동시에 앤디를 붙잡아 두는 일이다. 증언이 사법 절차에 들어가면 앤디가 나갈 가능성이 생긴다. 앤디가 나가면 노튼은 회계 담당자를 잃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돈세탁의 구조 전체가 드러날 수 있다.
노튼의 ‘안팎의 상부상조’ 노역 사업, 건설업자들이 바치는 뇌물, 돈세탁 장부, 실존하지 않는 인물 랜들 스티븐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 있다. 그 사람은 반드시 담장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날 밤의 일을 좀 더 거북하지만 정확한 말로 바꾸면 이렇다. 20대 청년 하나의 목숨을 회계사 한 명의 사용 가치와 맞바꾼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잔혹함은 냉정한 정산 속에 포장되어 있다.
여기서 한 번 더 칼이 들어온다. 토미의 죽음은 탈옥 시도였던 것처럼 꾸며진다. 그의 죽음까지 한 차례 더 쓰인 것이다. 나가려는 사람의 말로가 무엇인지 교도소 전체에 알리는 데.
4. 그 따뜻한 장면들로 돌아가 보면
이제 옥상으로 돌아가 보자.
맥주는 진짜였다. 햇볕도, 그 5분 동안 맛본 자유의 감각도 진짜였다. 다만 허락된 것이었다. 그것을 허락한 사람은 몇 년 뒤 토미를 쏘아 죽이는 바로 그 사람이다.
오페라도 진짜고, 도서관도 진짜며, 글을 읽게 된 사람들도 진짜다. 하지만 노튼은 도서관을 폐쇄하고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무너뜨릴 수 있다. 반면 허락 없이 틀어 놓은 음악은 그가 베푼 혜택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미 들은 목소리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장면들의 가치를 깎아내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가치가 어떤 조건에 매여 있는지 보자는 것이다. 담장 안에서 누리는 모든 호의가 자신의 쓸모에서 나온다면, 그와 브룩스의 차이는 하나뿐이다. 브룩스는 다 써 버렸고, 앤디는 아직 다 쓰지 않았다는 것.
토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안 뒤 앤디가 레드에게 하는 말도 이 자리에서 읽힌다. 줄곧 자신은 무죄이며 누명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를 죽인 사람은 자신이라고. 방아쇠를 당긴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죽였다고 말한다. 아내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데 대한 자책도 분명히 있다. 동시에 자기 삶과 이곳에서의 위치를 다시 돌아보는 사람의 말이기도 하다.
5.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을 하다
1955년, 주 의회에서 200달러와 헌책, 음반이 담긴 상자를 보내온다. 앤디는 그 안에서 《피가로의 결혼》 음반을 발견한다.
그는 전축을 교도관 사무실로 옮기고 안에서 문을 잠근다. 바늘을 내려놓고 교도소 전체에 방송을 내보낸다.
이탈리아 여자 두 사람의 목소리가 쇼생크 곳곳에 퍼진다. 마당의 수감자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스피커를 올려다본다. 레드는 지금도 무슨 가사였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그 순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이 안으로 스며든 듯했다고.
노튼이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곤봉이 유리창을 깨뜨린다. 앤디는 음량을 더 높인다.
그 대가로 2주 동안 징벌방에 갇힌다.
이 일로 얻은 것은 없다. 식사가 나아지지도, 도서관 사업이 빨라지지도, 누군가의 판결을 뒤집지도 않는다. 앤디 자신이 편해지기는커녕, 결과라고는 2주 동안 어두운 방에 갇히는 것뿐이다.
영화 전체에서 앤디가 자신을 하나의 자산으로 취급하기를 거부한 가장 순수하고 공개적인 순간이다.
오페라를 틀 때 그는 무엇과 교환하려는 것도, 누구를 위해 일을 해 주는 것도, 협상할 밑천을 쌓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소리가 밖으로 나가 모두에게 들리기를 바란다. 처벌받을 줄은 알았고, 그 위험을 감수했다. 결국 내려진 처벌은 독방 2주였다.
나온 뒤 사람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가장 편안한 2주였다고 답한다. 모차르트가 함께 있었으니까. 전축도 없었는데 무슨 소리냐는 말에 머리와 가슴을 가리킨다. 이 안에 있는 것은 그들이 빼앗을 수 없다고.
탈옥은 하나의 공사에 불과하다. 19년의 인내, 작은 망치 하나, 포스터 한 장, 천둥 번개가 치는 밤. 그것은 앤디처럼 대단히 유능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눈부시다. 하지만 앤디에게서 ‘쓸모 있는’ 쪽에 속하는 일이다.
그 2주는 다르다. 그 2주 동안 그는 정말로 한 번 밖에 나갔다 왔다.
6. 그가 가지고 나온 것
1966년의 그 비 오는 밤, 앤디는 500야드의 오물 가득한 하수관을 기어간다. 노튼에게서 가져 나온 것은 세 가지다. 양복 한 벌, 구두 한 켤레, 장부 한 권. 앞의 둘은 자신이 빠져나오기 위한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노튼이 더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장부는 신문사로 보내진다. 경찰차가 문 앞에 도착하자 노튼은 스스로 총을 쏜다. 평생 비용과 이익을 계산해 온 사람이 마지막에 내린 계산은, 이제 자신이 더는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앤디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노튼이 줄곧 사람들을 어떻게 써 왔는지 증명하는 그 책자를 밖에 건넸을 뿐이다.
다음 글은 레드의 이야기다. 그는 영화에서 세 번 가석방 심사를 받는다. 앞의 두 번에는 심사위원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고 거절당한다. 세 번째에는 진실을 말하고 허가를 받는다. 이 일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차갑다.
이 글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1994년 영화 《쇼생크 탈출》을 다룬다. 중국어 원문은 통용되는 중국어 자막의 제목과 대사를 참고했다. 여기 실린 대사는 원문의 뜻을 한국어로 독립적으로 옮긴 것으로, 공식 한국어 자막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