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 영화 읽기 · 2 / 3
그 아이는 말을 잘못 골랐다. 말하려던 것은 틀리지 않았다
이 글의 목차
아파트 건물의 계단.
여자아이가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열두 살이다. 얼굴에는 상처가 나 있고, 코는 부었고, 눈가에는 멍이 들었다.
우유를 들고 올라오던 남자가 아이 옆에서 멈춘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고 묻는다.
“사는 게 늘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이런가요?”
남자는 잠깐 뜸을 들이다 답한다. 늘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씁쓸한 인생의 격언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오래 기억한다.
하지만 격언이 아니다. 열두 살 아이가 복도에서 낯선 사람에게,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1. 가족 모두가 아이를 이용했다
문이 부서지고 가족이 몰살당하기 전, 마틸다의 하루하루는 이랬다.
아버지는 마약 단속 경찰의 물건을 숨겨 주었다. 물건 일부가 없어지자 아이를 때렸다. 새엄마는 걸리적거린다며 밥도 주지 않았다. 언니는 심부름을 시키고, 물건을 빼앗고, 소리를 질렀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에서 마음이 쓰이는 사람은 네 살짜리 남동생뿐이었다. 마틸다는 동생의 얼굴을 닦아 주고, 함께 놀고, 자기 뒤에 숨겨 보호했다.
나중에 레옹에게 한 말 가운데 많은 이들이 흘려들은 말이 있다. 죽은 사람들 중에서 슬픈 건 동생뿐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다.
열두 살 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으레 반항적이라거나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느 쪽도 아니다. 그저 정확한 말이다. 아버지는 한 번도 아이를 딸로 대하지 않았다. 아이 역시 그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았다. 주고받은 것을 따져 보면 분명하다.
그날 마틸다는 물건을 사러 나갔다. 돌아왔을 때 복도는 피투성이였다. 집 문은 열려 있었고, 안에는 시신 몇 구가 누워 있었다. 그중 하나는 네 살짜리였다.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자기 집 문 앞을 지나 계속 걸었다. 복도 끝으로 가서 다른 집 초인종을 눌렀다.
2. 문이 열리느냐에 삶과 죽음이 달려 있었다
문 안의 사람은 한참을 망설였다.
카메라는 문 양쪽을 번갈아 비춘다. 아이는 밖에서 현관문에 달린 작은 렌즈를 올려다본다. 복도에 아직 총을 든 사람들이 있어 소리도 내지 못한다. 남자는 안쪽에서 자물쇠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이 몇 초가 영화 전체의 축이다.
문이 열리지 않으면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는다.
이 사실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이후의 모든 일이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 남자의 삶에 들어온 일을 우연한 만남이나 운명적 인연으로 부를 수는 없다. 낭만적으로 꾸밀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다. 가족을 모두 잃은 아이가 열릴 가능성이 있는 단 하나의 문 앞에서 목숨을 걸어 본 것이다.
문이 열리고 아이는 들어간다.
이 순간부터 아이의 처지는 이렇다. 세상에 더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고, 받아 줄 곳도 없다. 살아갈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이 방의 주인이 계속 머무르게 해 줄 마음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후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는 이 전제가 깔려 있다.
3. 여러 요구가 묻는 것은 하나였다
흔히 국제판이라고 부르는 133분 확장판에는 마틸다의 더 직접적이고, 그래서 더 불편한 표현들이 남아 있다.
아이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이 자고 싶다고 한다. 원하는 것은 사랑 아니면 죽음이라고 한다.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와 함께 일하러 나간다. 식당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 장면들은 곁다리가 아니라 작품의 일부다. 무엇을 보여 주는지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
요구들을 나란히 놓으면 모두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요구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던지며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당신도 나를 버릴 건가요.
‘사람 죽이는 법을 가르쳐 줘요’는 이런 뜻이다.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러면 나를 곁에 둘 이유가 생기잖아요.
‘같이 일하러 갈래요’는 이런 뜻이다. 나를 당신 일의 일부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면 마냥 짐만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사랑해요’는 이런 뜻이다.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모두를 잃은 열두 살 아이는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유일한 구명줄에 자신을 묶으려 한다. 다른 방식으로도 곁에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아이가 평생 인간관계에서 배운 것은 이것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쓸모가 있어야 버림받지 않는다.
자기 집에서도 그렇게 살았다. 심부름하고, 물건을 숨기고, 맞고, 소리 내지 않았다. 그때의 방식을 고스란히 이 문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4. 그는 매번 거절했다
영화에서 가장 쉽게 오해받는 대목이다. 그만큼 가장 똑똑히 보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레옹은 거절했다. 매번 거절했다.
아이가 같이 자고 싶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다그쳐 물으면 피했다. 식당에서 둘의 관계를 선언하자 어찌할 바를 몰라 시선을 둘 곳도 찾지 못했다. 사랑 아니면 죽음이라고 했을 때도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그 선을 한 번도 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려면 앞선 글에서 짚었던 그의 처지로 돌아가야 한다. 레옹의 안에는 거대한 빈자리가 있다.
그의 인생은 열아홉 살, 사랑하던 소녀가 죽은 날 멈췄다. 그 뒤 여러 해 동안 말을 나눌 사람도, 이어 가는 관계도 없었다. 잘 지내는지 물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화분 하나를 가장 친한 친구로 삼을 만큼 외로웠다.
그런데 이제 누군가 제 발로 찾아와 말한다. 사랑한다고. 곁에 있고 싶다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이 아이로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레옹은 그러지 않았다.
정작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얼마나 자제력이 강한가, 얼마나 원칙적인가를 칭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무엇이 없는지 알고, 눈앞의 아이를 가져다 그 결핍을 메울 수 있다는 것도 알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러 해 동안 이용당해 온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용할 기회를 얻고도 손을 멈췄다.
5. 그 아이는 말을 잘못 골랐다
그렇다면 ‘당신을 사랑하게 됐어요’라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내 판단은 이렇다. 아이가 고른 말은 틀렸다. 하지만 말하려던 것은 틀리지 않았다.
열두 살 아이가 전에 없던 감정, 모든 것을 압도하며 자기 목숨을 통째로 내줄 수도 있겠다고 느끼게 하는 감정을 설명하려 한다. 그렇다면 아는 말 중 가장 무게가 큰 말을 찾을 것이다. 마틸다가 찾을 수 있었던 말은 연인 사이의 사랑이었다.
실제로 전하려던 것은 다른 것이다. 나를 이용해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뭘 좀 먹고 싶으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처음이에요. 문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신경 쓰지 않고 방에서 잠든 것도 처음이에요.
이 경험들을 부를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가장 큰 말을 썼다.
영화도 그보다 나은 이름을 찾아 주지는 못했다.
이제 이 영화의 떳떳하지 못한 부분을 말해야 한다. 영화는 이 관계를 연애 이야기의 모양으로 찍었다. 음악은 서정적이고, 편집은 둘 사이에 연애의 기류가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아이가 어른 여성처럼 차려입고 노래하는 장면은 경쾌하고 귀엽고, 추파를 던지는 듯한 장면으로 연출된다. 관객은 이를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로 소비하도록 이끌린다.
문제는 인물이 무슨 짓을 했느냐가 아니다. 레옹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카메라가 이 아이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있다.
두 문제는 나누어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을 지킨 인물에게 엉뚱한 책임을 묻거나, 반대로 떳떳하지 못한 연출을 변호하게 된다. 레옹은 선을 지켰다. 영화의 시선까지 온전히 떳떳한 것은 아니다.
6. 아이의 고통은 진짜다
끝으로 다른 절반도 마저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은 흠만 잡는 글이 되고 만다.
이 영화는 마틸다의 고통만큼은 진지하게 담아냈다.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는 이미 울지 않는 법을 배운 아이가 있다. 자기 집 앞을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몇 걸음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한순간에 깨달은 아이가 있다. 나중에 동생을 이야기할 때의 목소리에서 아이는 영화 내내 유일하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레옹과 영화배우 맞히기 놀이를 하며 아이는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웃는다. 영화에서 열두 살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는 유일한 순간이다.
바로 그 방에서 처음으로 누군가 밥을 해 주었다.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을 걱정했다. 죽으러 가겠다고 할 때 처음으로 누군가 막아 주었다.
그 아파트에서 아이가 얻은 것은 연애로서의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보다 못한 것도 아니다.
연인 사이의 사랑에는 이름이 있고, 형식이 있고, 사회의 인정이 있다. 마틸다와 레옹 사이의 관계에는 이름이 없다. 필요하지도 않다. 연애로서의 사랑보다 하나가 적고, 하나가 더 많다. 적은 것은 그 모든 형식이다. 더 많은 것은 배신당해 온 두 사람이 서로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글은 뤽 베송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1994년 영화 《레옹》을 바탕으로 하며, 고몽이 배급한 133분 확장판도 함께 다룬다. 이 판본은 흔히 국제판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