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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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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 영화 읽기 · 1 / 3

사람을 죽이도록 길러진 남자, 정작 자신은 모른다

Han Qin (秦汉) · 한국어판 공개: 2026년 10월 7일

이 글의 목차

중국어 원작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판

가구라고는 거의 없는 아파트.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잠을 잔다. 누운 것이 아니다. 등을 곧게 편 채 앉아 있다. 선글라스도 벗지 않았고 손에는 총이 들려 있다. 날이 밝으면 일어나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옷을 다리고, 우유를 마신다.

그다음에는 화분 하나를 돌본다.

창턱으로 옮겨 햇볕을 쬐어 주고, 젖은 천으로 잎을 한 장씩 닦고, 물을 준 뒤 다시 들여놓는다. 동작은 느리고 정성스럽다.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도 이 일에 마음을 쏟는다.

화분 속 식물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다. 본인이 그렇게 말한다. 조용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란다.

나중에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자기처럼 뿌리가 없다고.

1. 여러 해 동안 이용당하면서 보살핌을 받는 줄 알았다

레옹은 토니 밑에서 일한다. 토니는 리틀 이탈리아에서 식당을 운영한다. 식당 뒤편에서는 또 다른 장사를 한다.

레옹은 사람을 죽이고, 토니는 일감을 주고 그 값을 치른다.

그런데 레옹은 그렇게 모인 돈을 한 번도 자기 뜻대로 관리한 적이 없다. 토니가 대신 ‘맡아 둔다’. 설명은 그럴듯하다. 은행이나 마찬가지고, 은행보다도 낫다는 것이다. 은행은 털릴 수도, 망할 수도 있지만 자기에게 두면 가장 안전하다고 한다. 필요할 때 언제든 와서 가져가면 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레옹은 믿었다. 오랜 세월을 믿었다.

레옹은 글을 읽지 못한다.

이 두 사실을 함께 보아야 한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혼자 계좌를 개설할 수도, 거래 내역서를 읽을 수도, 적힌 숫자가 맞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자기 돈에 관해 레옹이 아는 전부는 토니의 입에서 나온 ‘내가 맡아 두고 있어’라는 말뿐이다.

후반의 한 장면이 이 관계의 속을 드러낸다. 살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느낀 레옹이 토니를 찾아간다.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돈을 한 여자아이에게 주라고 한다. 토니의 표정이 잠깐 달라진다. 그래도 알겠다고 답한다.

그 뒤 정말로 아이가 찾아온다. 토니는 뭐라고 하는가. 돈은 일단 자기가 관리하겠다며 우선 100달러를 준다. 돈이 필요하면 다시 찾아오라고 한다.

여러 해 동안 사람을 죽여 번 돈이 끝내 토니가 조금씩 나눠 주는 용돈이 된다.

토니는 흉포한 악당이 아니다. 레옹에게 늘 점잖게 말하고, 밥을 대접하고, 오랜 친구라고 부른다. 그가 하는 짓은 강도질이 아니라 훨씬 흔한 일이다. 상대가 글도 모르고 갈 곳도 없고 달리 의지할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람의 돈을 계속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설명이 있고, 설명하는 말투도 늘 부드럽다.

2. 열아홉 살에서 멈춘 인생

영화가 들려주는 레옹의 과거는 짧다. 그마저도 레옹이 직접 아이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다.

열아홉 살, 이탈리아에 살던 레옹은 한 소녀를 사랑했다. 소녀의 집안은 반대했다. 아버지가 힘 있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소녀는 죽었다. 죽인 사람은 아버지였다.

레옹은 그 남자를 죽이고 미국으로 달아나 자기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당시 토니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날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인생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친구도, 집도, 신분증도, 오래 이어 가는 관계도 없다. 언제든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아파트에서 산다. 가진 것 전부가 가방 하나와 화분 하나다. 잠을 잘 때조차 감히 눕지 못한다.

냉혹한 킬러가 고독을 선택한 모습이 아니다. 열아홉 살에 삶이 끊긴 사람이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모습이다.

나중에 아이와 대화하는 레옹을 보고 많은 이들이 서툴다, 어눌하다, 어린애 같다고 느낀다. 실제로 어린애 같다. 감정이 열아홉 살에 멈췄고, 그 뒤 여러 해 동안 그가 더 자랄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토니가 준 것은 일감과 돈을 준다는 말뿐이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레옹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그의 솜씨를 계속 써먹었지만, 그의 삶 한 부분은 그 자신에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자리에 남겨진 듯하다.

3. 화분 속 식물은 레옹의 자화상이다

레옹은 그 식물이 자기처럼 뿌리가 없다고 말한다.

영화 전체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다.

화분 속 식물은 멀쩡히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 물을 주고, 잎을 닦고, 햇볕을 쬐러 밖에 내놓는다. 아주 세심하게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 언제든 통째로 들려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있다. 누가 계속 화분을 들고 다녀 주느냐에 생존의 모든 조건이 달려 있다.

레옹도 그렇게 산다. 토니는 먹을 것을 주고, 일을 주고, 돈을 맡아 둔다고 한다. 이쪽도 겉으로 보면 보살핌을 받는 듯하다.

하지만 자기 것이라고 할 땅은 한 뼘도 없다. 일을 멈출 수도 없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토니를 떠날 수도 없다. 돈이 그의 손에 있고, 글도 모르니 멀리 가지 못한다.

레옹이 하루 중 가장 정성을 들이는 일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잎을 닦는 것이다. 자신과 정확히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존재를 돌보고 있는 셈이다.

그 식물은 꽃을 피운 적도, 열매를 맺은 적도 없다. 레옹에게 쓸모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생활에서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하는 유일한 일이다.

4. 그는 영화관에서 웃는다

아주 짧고,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레옹이 혼자 영화관에 간다. 보는 영화는 오래된 뮤지컬이다. 스크린에서는 누군가 탭댄스를 추며 경쾌한 노래를 부른다.

어둠 속에 앉은 레옹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다가 웃는다.

어른이 예의를 차리느라 짓는 웃음이 아니다. 조금은 바보 같을 만큼 입을 벌리고, 긴장을 완전히 놓아 버린 웃음이다. 열 살 남짓한 아이가 만화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글은 그 얼굴에 가 닿으려 한다.

그때까지 영화는 이 남자가 어떤 처지인지 충분히 보여 주었다. 여러 해 동안 도구로 쓰였다. 유일하게 믿는 사람에게 돈이 묶여 있다. 글도 모르고, 뿌리도 없고, 잠도 앉아서 잔다. 누구라도 그렇게 살았다면 닳고 닳아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영화관에 앉아 탭댄스 한 대목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안에서 웃을 줄 아는 무언가는 살인 솜씨와 아무 관계가 없다. 토니의 장사와도, 누군가 그를 이용하는 일과도 무관하다. 토니의 장사에는 아무런 이익도 보태지 않는다. 그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써먹힌 적이 없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와 영화배우 맞히기 놀이를 할 때도 그렇다. 둘은 거실에서 찰리 채플린과 마릴린 먼로, 존 웨인을 흉내 낸다. 레옹은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웃는다. 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따뜻하게 기억한다. 따뜻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증거다. 오랜 세월조차 빼앗아 가지 못한 커다란 한 부분이 이 사람 안에 남아 있다는 증거다.

다만 아이가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는,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레옹 자신조차도.

이 글은 뤽 베송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1994년 영화 《레옹》을 바탕으로 한다. 고몽이 배급한 133분 확장판도 함께 다룬다. 흔히 국제판이라 부르는 이 판본은 최초 북미 극장 개봉판보다 길며, 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장면들은 뒤의 글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