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 DUBITO · 영화 읽기 · 2 / 3
그날 밤, 그는 끝내 무대에 섰다
이 글의 목차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되었을까
닐과 아버지가 처음 한 화면에 잡히는 곳은 개학 날의 기숙사 방이다. 막 알게 된 학생 둘도 함께 있다. 아버지는 문을 열고 들어와 그들 앞에서 말한다. 연감 편집부의 부편집장 자리를 그만두어라.
닐은 부당하다고 한다. 이제 막 맡은 자리라고, 자기가 애써 얻어 낸 일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답은 짧다. “말대꾸하지 마라.” 그러고는 나가 버린다. 문이 닫히자 닐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더는 말하지 않는다. 룸메이트 토드는 지켜볼 뿐, 감히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한다.
이 장면 하나로 그 집안의 규칙은 다 설명되었다. 뒤따르는 장면들은 그 규칙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채워 준다. 학교도 아버지가 골랐고 수업도 아버지가 정했다. 여름방학에는 화학을 보충해야 한다. 장차 의과대학에 가야 하며, 그에 앞서 하버드를 거쳐야 한다.
이 가운데 의논해서 정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통보다. 통보는 아주 차분하게 이루어진다.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이유를 댈 필요도 없다. 이 집에서는 애초에 아무도 왜냐고 묻지 않았으니까.
학교에서 닐은 누구보다 활기찬 아이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다. 도서관에서 옛 연감을 찾아내 죽은 시인의 사회를 다시 모은 사람도, 한밤중에 앞장서 숲을 헤치고 동굴로 간 사람도 그다.
그의 교복 아래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열정, 아이디어, 사람들을 이끄는 힘. 다만 어느 것도 교복 바깥까지 뻗어 나가지 못한다. 아버지 앞에 서는 순간, 전부 움츠러든다.
그의 삶에서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을 전부 모아 봐야 작은 한 조각이다. 이 글이 보려는 것은 그 작은 영역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가다. 나중에 그가 자기 삶을 어떻게 끝냈는지에 대해서는 이 연작에서 평가하지 않는다.
그 역할은 스스로 가서 얻었다
어느 날 닐은 게시판에서 종이 한 장을 본다. 마을 극단이 붙인 배우 모집 공고다. 《한여름 밤의 꿈》을 무대에 올리며 공개 오디션을 연다는 내용이고, 아래에는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다. 그는 한참 동안 공고 앞에 서 있다가 그 종이를 떼어 낸다.
가 보라고 권한 사람은 없다. 키팅은 연극 이야기를 꺼낸 적 없고, 친구들이 부추긴 것도 아니다. 아버지야 더더욱 그럴 리 없다. 자신이 보고, 시간을 적어 두고, 직접 오디션을 보러 가서 퍽 역을 따낸다. 극 전체에서 대사가 가장 많고 가장 돋보이는 역할 가운데 하나다.
돌아온 그는 온몸에서 빛이 나는 듯하다. 친구들에게 그 일을 알리며, 평생 처음으로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건 자기 것이라고 한다. 그의 입에서 이 말은 수사가 아니다. 그전까지는 정말로 스스로 고른 일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이 행동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정확히 보아야 한다. 반항이 아니다. 닐은 무언가를 부수지도, 누군가를 욕하지도 않았다. 누구와 맞서 싸우지도 않았고, 아버지에게 본때를 보여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공고 앞에 멈춰 섰다가, 거기 적힌 시간에 맞추어 찾아갔을 뿐이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그가 자신에게 직접 일을 맡긴 순간이다. 누구에게 대항하려는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와의 충돌은 그 뒤에 생겼다. 그가 처음부터 바란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그 편지도 직접 썼다
극단은 부모가 서명한 동의서를 요구한다. 미성년자가 공연에 참여할 때 누구나 내야 하는 통상적인 서류다. 아버지가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닐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개학 첫날 기숙사에서 이미 한 차례 겪었다.
그래서 닐은 타자기로 편지를 치고, 아버지의 이름을 써서 제출한다. 확실하게 해 두려고 학교에 낼 편지도 한 통 더 친다. 두 통 다 가짜다. 기숙사 방에서 혼자 작성했고, 미리 의논한 친구도 한 명 없다.
이 일을 영리한 처세로 써서는 안 된다. 위조는 위조다. 그는 극단을 속이고, 학교를 속이고, 나중에는 키팅까지 속였다. 열일곱 살 아이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은 그에게 두 번째 길이 없었다는 뜻이지, 그가 간 길이 떳떳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약함으로 써서도 안 된다. 누군가에게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빌지 않고 자기 손으로 여건을 만들어 낸 것은 처음이었다. 이전에는 무슨 일이든 남의 승인을 기다렸다. 승인이 떨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았다.
한 번도 제 뜻대로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지 못한 사람이 처음 제 뜻을 밀어붙일 때, 그가 만들어 내는 것은 대개 이런 모양이다. 허술하고, 버티지 못하고, 조금만 건드려도 들통난다. 그리고 방 안에서 혼자 만들어 낸 것이다.
기숙사 문 앞에 선 아버지
몇 주 동안 연습이 이어진다. 닐은 날마다 어떻게든 밖으로 나가고, 돌아와서는 친구들에게 대사와 연출가의 말, 헬레나를 연기하는 여자아이 이야기를 한다. 영화 전체에서 그가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장면들이다. 말하는 속도마저 평소와 다르다.
공연 전날 밤, 아버지가 기숙사 문 앞에 나타난다. 어디선가 연극 소식을 들은 것이다. 누가 알렸는지는 영화가 끝내 밝히지 않는다. 아무 표정 없이 문 앞에 서 있는 아버지만 보여 준다.
아버지는 닐을 복도로 불러내, 내일 가서 그만둔다고 말하라고 한다. 이유는 이렇다. 나는 너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그런데 네가 이럴 수는 없다. 의과대학만 마치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해도 좋다. 그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닐이 입을 열어 본다. “하지만 저는…” 말이 반쯤 나오다 끊긴다. 아버지는 자기 말을 마치고 떠난다. 떠나기 전, 다시는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게 하라는 뜻의 말도 남긴다. 대화 전체가 2분이 채 안 된다. 그중 닐이 말한 시간은 5초도 못 된다.
이 장면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지 않는다. 욕설을 하지도, 아버지답지 않은 말을 하지도 않는다. 결정을 통보한 뒤 떠날 뿐이다. 이 집안에는 말다툼이 필요했던 적이 없다. 두 번째 의견이 나온 적부터가 없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그 사람을 보았다
이튿날 밤, 연극은 예정대로 열린다. 닐은 극단에 가서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았고, 아버지와도 다시 한마디를 나누지 않았다. 제시간에 극장에 도착해 분장을 하고, 나뭇가지로 엮은 관을 쓴 뒤, 무대 옆 막 뒤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초반의 장면들은 순조롭다. 닐이 맡은 퍽은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대사를 하고, 몸을 한껏 크게 쓰며, 객석 전체를 웃게 한다. 친구들은 관객석에 앉아 있다. 키팅도 왔다. 무대 아래의 토드는 힘껏 박수를 친다.
공연이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강당 뒷문이 열린다. 아버지가 들어와 맨 뒤에 선다. 자리를 찾지도, 외투를 벗지도 않는다. 무대는 밝고 객석은 어둡다. 그런데도 닐에게는 똑똑히 보인다. 그 사람이 왔다. 그리고 떠나지 않고 저기에 서 있다.
닐은 그를 보았다. 그리고 연극을 끝까지 해냈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 행동 자체를 설명하는 대사는 없다. 배우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제 대사를 계속할 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공연이 남아 있다. 닐은 계속 퍽을 연기한다. 마지막 인사말까지 이어 간다. 우리 그림자들이 여러분의 심기를 거슬렀다면, 그저 여기서 잠깐 잠들었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온 객석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낸다.
그 순간, 모든 계산이 무의미해졌다
이 대목의 무게를 알려면, 무대에 선 닐이 그 순간 따져 볼 만한 셈을 하나씩 대신 해 보아야 한다. 항목마다 계산을 마치고 나면 남는 결론은 같다. 이득이 되는 선택은 하나도 없다. 본전이라도 찾는 선택조차 없다.
아버지는 이미 와 있다. 이제 닐이 공연을 마치든, 중간에 내려가든, 그 자리에서 사과하든 벌은 확정되어 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벌의 강도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끝까지 한다고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 도중에 그만둔다고 나아지지도 않는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연을 마친다고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는 못한다. 전학 계획이 바뀌지도 않는다. 무언가와 맞바꿀 수 있는 대가를 얻는 것도 아니다. 연극이 끝나면 그는 여전히 그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아버지를 본 그 순간 ‘이렇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모든 계산은 효력을 잃었다. 그런데도 그는 연극을 끝까지 했다. 이 두 사실 사이를 잇는 것 중 동기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 이득도 없고 물러날 길도 없을 때 한 사람이 하는 일이야말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드러낸다.
앞서 일이 잘 풀리던 때의 선택에는 다른 설명을 붙일 수 있었다. 주목받고 싶어서, 사람들이 좋아해 주길 바라서, 아버지에게 오기로 맞서고 싶어서. 하지만 아버지를 본 뒤에도 이어 간 연기에는 그 어느 설명도 들어맞지 않는다.
이 글이 보려던 것은 이것이다. 자기 뜻을 펼칠 수 있었던 그 작은 영역에서 그가 내린 마지막 결정은, 아무 보상도 없는 조건에서 자신이 고른 일을 끝마치는 것이었다. 그는 끝마쳤다. 대사 한 줄도 빼놓지 않았다.
그 뒤의 일
공연이 끝나자 친구들이 무대 뒤로 달려온다. 연출가는 닐을 껴안는다. 누군가는 정말 잘했다고, 넌 타고난 배우라고 한다. 키팅도 다가와 한마디를 건넨다. 닐은 아직 분장을 지우지 않고, 머리의 관도 벗지 않은 채 서 있다.
아버지가 사람들 뒤에서 그를 데리고 나간다. 나가는 내내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 차 안에서도 대화는 없다. 집에 돌아온 뒤 아버지는 앞으로의 일정을 발표한다. 내일 자퇴 절차를 밟고, 브레이든 군사학교로 옮긴다. 그곳을 마치면 하버드, 그다음은 의과대학이다. 이 10년이 지나고 나면 내게 고마워할 거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닐은 말을 해 보려 한다. 아버지는 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다그치며 말해 보라고 한다. 어머니가 곁에 서 있다. 닐은 입을 벌리지만, 끝내 아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입을 여는 순간이다. 입에서 나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라는 짧은 대답뿐이다.
그날 밤이 지나고 닐은 죽는다. 영화는 그 방 안까지 따라 들어가 촬영하지 않는다. 나중에 누군가를 시켜 당시 그의 생각을 설명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의 속을 대신 말해 주는 내레이션은 더더욱 없다. 이튿날 아침, 소식이 건물 전체로 퍼진다.
이 연작에는 원칙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어떻게 끝내는가는 그 사람 자신의 일이다. 평가하지 않으며, 그를 대신해 원인에 순서를 매기지도 않는다.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전에 그가 무엇을 했는가다. 그 행동들은 그 자신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날의 무대로
그러니 이 글은 그 방이 아니라 강당에서 끝난다. 영화조차 들어가 찍지 않은 방으로 이 글도 들어가지 않는다. 보려는 것은 그곳에 없다. 강당의 조명 아래에 있다.
나뭇가지 관을 쓴 무대 위 소년은 자신이 찾아가 얻은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자기가 쓴 편지로 참여했고, 자기가 시간을 쪼개 연습한 연극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했던 사람을 무대 위에서 보았다. 그러고도 남은 두 막을 마저 연기하고 마지막 인사말까지 끝냈다.
무대 아래에는 토드와 몇몇 친구가 앉아 있다. 웃고, 박수친다. 다른 누구보다 큰 소리로 웃는다. 강당 맨 뒤에는 박수치지 않는 사람이 서 있다. 빛은 무대를 비춘다. 그 위의 한 사람은 평생 처음이자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것인 일을 하고 있다.
막이 내려오고 박수가 터진다. 앞줄의 누군가가 일어선다. 닐은 무대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인다. 두 번 인사한 뒤, 머리를 들고 관객석을 바라본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맨 뒤쪽이다. 그곳에 박수치지 않은 사람이 서 있다.
이 글은 1989년작, 상영 시간 약 128분인 영화를 바탕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