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들어선 순간 목적이 사라진다. 익숙한 공간인데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춰 선다.
의도는 눈앞의 사물에 쓸모와 방향을 주고 있었다. 책을 찾으러 왔다면 책장이 다른 물건보다 먼저 보인다.
목적이 빠지면 공간은 잠깐 평평해진다. 장소는 알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떠오르는 까닭은 기억이 머릿속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과 몸의 움직임, 보던 장면이 의도를 받치고 있었다.
이 작은 길 잃기는 방향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고 알려 준다. 때로는 시작한 자리로 돌아가야 하던 일을 다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