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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 Dubito

동화 읽기 · 20

고수머리 리케가 공주를 영리하게 만든 뒤―그 지혜로 혼약을 다시 생각해도 될까

《고수머리 리케》 · 도움 덕분에 혼약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면, 그 도움은 달라진 판단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Han Qin ·

공주는 결혼 문제를 혼자 생각하려고 숲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남편을 스스로 골라도 된다고 했고, 청혼자 가운데 마음이 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뜻을 정하지는 못했다. 그때 발밑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렸다. 땅이 열리더니 분주한 부엌이 나타났다. 요리사들이 그릇을 나르고 장작을 더하며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이렇게 바쁘냐고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고수머리 리케 왕자가 내일 결혼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공주는 일 년 전 자신이 리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던 일을 떠올렸다. 숲 밖의 사람들은 그녀가 결정하기를 기다리는데, 숲 아래 사람들은 결정이 벌써 끝났다고 생각한다. 얼마 가지 않아 리케도 나타난다. 화려하게 차려입고 기쁨에 가득하다. 그는 공주가 다른 청혼을 생각하러 왔다고는 짐작하지 못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침내 기한이 된 약속을 지키러 온 줄로 안다.

페로는 이 재회를 흥미롭게 쓴다. 공주가 도움을 받자마자 약속을 어길 궁리를 한 것은 아니다. 새 생활 속에서 일 년 전 대답을 잊었을 뿐이다. 이야기는 그 망각조차 변화의 일부로 설명한다. 영리해진 뒤로 예전에 지혜롭지 못했던 일들을 함께 잊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잊은 말은 다른 사람에게 줄곧 미래였다. 그는 그 말을 믿고 결혼식을 준비해 두었다.

일 년 전 공주에게는 지금처럼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매우 아름답지만 대화를 잘하지 못하고 행동에도 실수가 잦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름다움을 보려고 몰려왔다가 이내 영리한 여동생 곁으로 옮겨 갔다. 공주는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았고 슬펐다. 어머니의 꾸지람은 고통을 더했다. 결국 혼자 숲으로 숨어들었다. 지혜가 없다는 이유로 내면도 없는 사람처럼 그려서는 안 된다. 마법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녀는 다른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았고,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말할 수 있었다.

리케는 반대였다. 외모는 호감을 사지 못하지만 말을 잘하고, 상대를 헤아리며 응대할 줄 알았다. 여러 곳에 퍼진 공주의 초상화를 보고 일부러 찾아왔으며, 만난 뒤에도 매우 예의 바르게 대했다. 공주가 아름다움을 버리고서라도 지혜를 얻고 싶다고 하자 자신이 실제로 해 줄 수 있는 도움을 제안했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영리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니, 공주가 일 년 뒤 자신과 결혼할 뜻이 있다면 그렇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공주가 망설이자 리케는 꼬박 일 년을 주었다. 그때 공주에게 일 년은 영영 다 지나가지 않을 시간처럼 보였다.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서 먼 훗날의 결혼은 잠시 뒷전이 되었다. 공주가 응낙하자 곧바로 지혜가 생겼다. 둘은 막힘없이 훌륭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리케는 자신에게 남은 것보다 더 많은 지혜를 그녀에게 준 듯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도움은 실제 효과를 냈다. 궁전으로 돌아온 공주의 말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인 왕도 의견을 물었고, 그녀의 방에서 나랏일을 의논하기까지 했다. 이웃 나라 왕자들이 잇달아 청혼했지만, 공주는 이제 쉽게 응낙하지 않았다. 말씨와 성정이 어떤지, 함께 지내기에 맞을지 가릴 수 있었다. 리케가 준 것은 잔치에서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더 하게 하는 능력만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삶을 견주어 보는 능력이었다. 도움이 성공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혼을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생겼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 공주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으며, 그가 기대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고 곧바로 말한다. 상처가 될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설명하려 한다. 이유를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면 ‘약속했잖소’라는 말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케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제 더 분명히 보게 되었기에, 전에는 제대로 생각할 수 없던 일을 받아들이기가 도리어 어려워졌다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에는 감사와 되묻기가 함께 있다. 도움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도움으로 얻은 판단을 도움의 조건에 대해서도 사용할 수 있을까? 새 지혜로 나랏일에 참여하고 친구를 고르며 다른 청혼자를 평가해도 되면서, 유독 리케와 자신의 혼약만 다시 생각할 수 없다면 이 능력에는 들어가지 말아야 할 문이 하나 있는 셈이다. 삶 전체를 밝혀도, 준 사람 앞에서는 빛을 꺼야 한다.

리케는 바로 물러서지 않는다. 왜 지혜로운 사람은 거칠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보다 도리어 상대에게 받은 약속을 더 쉽게 잃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자기 행복이 걸린 일이다. 예의 바르게 의논하려 한다고 해서, 그동안의 기대를 없었던 일로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대답에도 무게가 있다. ‘당신은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또 다른 요구로 만들어, 이유를 들으려는 사람만 모든 손실을 삼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한쪽은 옳고 다른 쪽만 고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공주는 리케에게 기다림과 신뢰를 모두 잊어 달라고 할 수 없다. 리케 역시 그녀가 새로 얻은 이해를 혼약 바깥에만 두라고 요구할 수 없다. 전에 한 말에는 여전히 응답해야 한다. 하지만 응답하는 방법이 반드시 그 말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상대를 실망시켰다는 사실을 알고 설명하며 그 실망을 인정하는 일과, 결혼으로 보상해야 하는 일은 서로 다르다.

공주에게 새 선택지가 많아졌다고 해서 자동으로 더 고결해졌다는 증거가 되지도 않는다. 기회가 드물 때 한 약속을 나중에 기회가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간단히 지울 수는 없다. 여기서 특별한 점은 새 능력이 약속과 무관하게 우연히 굴러온 재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주가 약속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것은 바로 리케의 도움이었다. 그는 결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상대가 결혼을 다시 생각할 더 많은 이유를 갖게 되도록 직접 도왔다.

페로는 둘이 여기서 헤어지게 하지 않는다. 리케는 계속 묻는다. 외모 말고 출신, 지혜, 성정과 몸가짐 가운데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공주는 그런 점들은 모두 좋다고 대답한다. 대화는 그렇게 ‘당신은 응낙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더 구체적인 사람에게로 옮겨 간다. 지금 마주한 이 사람의 어떤 점이 가까이 지낼 만하며, 어떤 점 때문에 망설이는가.

뒤이어 리케는 요정이 공주에게도 능력을 주었다고 알려 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공주는 진심으로 그가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기를 바라고, 정말로 그녀 눈에 그는 달라진다. 한편 서술자는 다른 설명도 남긴다. 새로운 마법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공주가 그의 인내와 분별, 여러 좋은 성품을 제대로 보게 되었기에 외모도 더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것일 수 있다.

독자가 두 설명 가운데 하나를 잘라 낼 필요는 없다. 동화는 몸이 실제로 변하게 할 수도 있고, 사랑이 보는 방식을 바꾸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설명을 택하더라도 공주가 이 대화 뒤에 다시 약속한다는 점이다. 아버지인 왕이 허락한다면 리케와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결과는 일 년 전 약속과 같다. 하지만 그 사이에 지금의 그녀가 한 대답이 한 번 더 있다.

그 망설임은 쓸데없이 돌아간 길이 아니다. 도움을 받고, 기한이 오고, 결혼식이 열리는 일만 있었다면 공주가 얻은 지혜는 자기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 일에 제대로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고, 그의 어떤 성품을 좋게 여기는지 설명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하는 ‘원한다’는 말도 일 년 전 말의 메아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같은 대답이 더 충분히 이해한 끝에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조건이 이미 평등해진 대화는 아니다. 리케는 공주가 어떤 결정을 하든 받아들이겠다고 먼저 보장하지 않았다. 스스로 혼약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혼인 잔치는 벌써 준비되었고, 기다림과 신분, 감정도 그 자리에 있다. 끝내 사랑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받아들여도 된다. 경계심을 드러내겠다고 그 감정이 전부 환상이라고 선언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이야기에 없는 무조건적인 자유를 대신 보태 줄 필요도 없다.

리케는 외모가 바뀌고서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할 만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다. 그전부터 말을 나누고 상대를 헤아릴 줄 알았기에 이 대화도 가능했다. 공주 역시 영리해지고 나서야 처음 자기 고통을 갖게 된 것이 아니다. 둘 다 상대가 준 선물을 얻기 전부터 있었다. 다만 그들이 받던 평가가 너무 좁아서, 마법이 마치 처음으로 사랑받고 자신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어 주는 대우를 받을 자격을 주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유익한 도움이 정말 성공하고 나면, 준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상대가 자신에게 더 분명한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각하도록 가르칠 수 있다고 해서 생각의 결론까지 미리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해서 그 끝이 반드시 도움을 준 사람이 예상한 곳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더 능숙하게 동의하게 되어야만 성공한 도움이라면, 그 능력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줄이 달려 있다.

준 사람이 아무 바람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리케는 사랑받고 싶고 공주는 이해받고 싶다. 두 바람 모두 말해도 된다. 관계에 필요한 것은 영원히 실망시키지 않을 대답이 아니라, 실망한 뒤에도 구체적인 이유를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다. 곧장 한쪽은 은혜도 모르는 사람, 다른 쪽은 요구만 하는 사람이라고 판결할 필요는 없다.

마지막에는 아버지인 왕이 리케를 받아들이고, 리케가 오래전에 계획한 대로 결혼식이 열린다. 지하 부엌의 수고가 헛되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사랑을 향한 페로의 가벼운 신뢰도 남겨 둔다. 그러나 독자는 정해진 때에 순조롭게 열린 듯한 그 결혼식이 새로운 되물음에 한 번 멈춰 섰던 것을 이미 보았다. 탁자를 일찍 차릴 수도 있고, 선물을 이미 건넸을 수도 있으며, 약속도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탁자 앞에 앉는 사람에게 지금도 원하는지를 묻고 답하는 일을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출처

현재 중국어 독자용 에세이를 바탕으로 한국어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글이다. 아름다워진 까닭에 관한 원전의 두 설명과 판본 범위는 아래 주석에 남긴다. 실제 도움과 기다림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새로 얻은 판단을 도움의 조건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작품에 쓰이지 않은 무조건적인 혼약 해제는 덧붙이지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판본과 범위: 샤를 페로의 〈고수머리 리케〉(Riquet à la Houppe)를 대상으로 한다. 중국어 바탕글이 근거로 삼은 것은 1697년 《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의 프랑스어 전사본이며, 원책의 149–182쪽에 해당한다. 지하 부엌, 지혜를 주는 일, 일 년 뒤 제기한 이의, 리케의 응답과 마지막에 새로 하는 약속을 중심으로 읽는다. 마법 때문에 아름다워졌다는 설명과 사랑 때문에 보는 방식이 바뀌었다는 설명을 모두 남긴다. 중국어의 이야기 풀어쓰기와 분석은 바탕글 저자가 쓴 것이며, 공주의 변화를 임상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리케가 아무 조건 없이 혼약을 해제했다고 보태 쓰지도 않는다. 아래 자료는 그 바탕글이 사용한 프랑스어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