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읽기 · 19
행복한 왕자는 제비에게 떠나라고 말한다―돕는 이에게도 자기 갈 곳을 남겨 둘 수 있을까
《행복한 왕자》 · 다른 이를 도우면서, 돕는 이가 갈 곳도 남겨 둘 수 있을까
제비가 도시에 왔을 때, 동료들은 이미 오래전에 떠난 뒤였다. 제비는 강가의 갈대 한 포기에 마음을 빼앗겨 여름 내내 머물렀다. 그러나 갈대가 대화도 즐기지 않고 함께 여행하려 하지도 않자, 마침내 혼자 이집트로 가기로 했다. 이 도시에는 그저 하룻밤 잘 곳을 찾아 들렀을 뿐이다. 행복한 왕자의 동상 발치에 내려앉은 제비는 둘레의 황금 장식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여기서 하루 자고 날이 밝으면 다시 길을 떠날 생각이었다.
머리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오나 싶어 올려다본 제비는 왕자의 눈물을 보았다. 도시 사람들이 저마다 칭송하는 동상은 행복하지 않았다. 살아 있을 때 왕자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의 궁전에서 지냈고, 그 밖에 어떤 삶이 있는지 몰랐다. 죽은 뒤 높은 곳에 세워지고서야 골목의 가난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두 눈에 사파이어가 박혀 있고 몸에는 금박이 가득하지만, 발은 기둥에 고정되어 있다. 보이는 사람들 곁으로 걸어갈 수 없다.
왕자는 먼저 칼자루의 루비를 한 재봉사에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재봉사는 바늘에 찔려 손이 상한 채 귀족 아가씨가 무도회에 입을 옷에 수를 놓고 있었다. 병든 아이는 오렌지를 먹고 싶어 하지만 줄 수 있는 것은 물뿐이다. 제비는 이집트에서 친구들이 기다린다고 대답한다. 북쪽 날씨도 이미 춥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제비에게도 아직 다 가지 못한 길이 있다. 동상 발치에 내려앉았다고 해서 그 길이 저절로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왕자는 하룻밤만 더 머물러 달라고 청한다. 제비는 예전에 아이들이 돌을 던진 적이 있어 남자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한다. 그래도 왕자가 몹시 슬퍼하자 한 번 도와주기로 한다. 궁전을 날아 지날 때는 무도회 옷을 기다리는 아가씨가 재봉사는 게으르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듣는다. 더 날아가고 나서야 지쳐 잠든 여자를 본다. 두 곳에서 말하는 것은 같은 옷이다. 하지만 그 옷을 만드는 노동을 이해하는 방식은 한참 떨어져 있다. 제비는 그날 밤 그 사이를 직접 날아갔다.
제비는 루비를 탁자에 놓고 아이 둘레를 날며 날갯짓으로 바람을 보내 준다. 아이는 시원해져 편안히 잠든다. 왕자에게 돌아온 제비는 날씨는 추운데 자신은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왕자는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렇다고 그 설명 한마디에 제비가 곧바로 철새의 길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음 날도 신이 나서 떠날 준비를 한다. 다만 하룻밤 묵고 갈 생각이던 이 도시를 이제는 기둥 위에서 들은 이야기 너머로 직접 알게 되었다.
두 번째 부탁은 추운 다락방의 젊은 작가에게 사파이어 눈 하나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눈을 쪼아 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제비는 울며 거절한다. 하지만 왕자는 명령하는 어조로 뜻을 굽히지 않는다. 세 번째로는 다른 쪽 눈을 가져다 달라고 한다. 팔던 성냥이 젖어 집에 돌아가면 맞을까 두려워하는 소녀에게 줄 것이다. 선물이 사람을 도왔다고 해서 이 두 대화를 아무 압박 없는 다정한 의논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제비의 망설임이 명령에 눌렸던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왕자가 내놓는 것은 자기 보석이다. 그러나 주겠다는 결정만으로 선물이 도착하지는 않는다. 눈을 떼어 내고 다락방과 길모퉁이까지 날아가려면 다른 몸이 필요하다. 제비의 시간이 필요하고, 남쪽으로 갈 날도 거듭 미뤄야 한다. ‘내 눈이고 내가 주고 싶다’는 말로 자기 손실을 택한 까닭은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돕는 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까지 혼자 다 말할 수는 없다. 선의가 진실해도, 그것이 도움받는 사람에게 닿으려면 구체적인 관계를 지나야 한다.
두 번째 눈을 주고 돌아온 제비는 왕자가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자신이 영원히 남겠다고 말한다. 바로 여기서 왕자는 새로 커진 자기 필요를 따라 계속 일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집트로 가라고 권한다. 제비는 다시 한번 남겠다는 뜻을 말한 뒤 동상 발치에서 잠든다. 그전까지 밤마다 붙잡은 쪽은 왕자였다. 이 밤에는 다른 결정이 나온다. 제비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해졌을 때, 왕자는 제비에게 여전히 다른 갈 곳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말이 앞서 내린 명령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다음 관계를 달라지게 한다. 제비는 이제 ‘한 번만 더 도와 달라’는 청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고 싶다는 자기 뜻을 확인한다. 끝내 위험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확인도 반드시 속임수나 죄책감에서 나왔다고 선언한다면, 그것 역시 제비의 말을 대신 지우는 셈이다. 사람의 삶의 방향이 첫 만남 전에 이미 모두 정해져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누군가를 도와본 일이,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이집트는 열등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곳에는 온기와 동료들, 제비가 익숙하게 살아온 세계가 있다. 나중에 남기로 했다고 해서 그 길을 이기적인 쾌락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길이 정말 갈 만한 곳이어야 왕자가 떠나도 된다고 인정하는 말에도 무게가 실린다. 제비 역시 마음을 바꾸기 위해 먼저 이전의 방향이 거짓이었다고 증명할 필요는 없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떠나고 싶었고, 이후 함께 지내며 진심으로 남고 싶어질 수 있다. 두 순간이 서로를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날 제비는 왕자의 어깨에 앉아 먼 곳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한다. 눈먼 왕자는 가 본 적 없는 세계를 듣는다. 그 뒤 왕자는 도시 위를 날며 직접 본 것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제비는 더 이상 지정된 보석을 지정된 주소로 배달하기만 하지 않는다.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이가 된다. 부자들의 잔치와 문 앞에서 기다리는 거지들을 본다. 다리 밑에서 몸을 웅크려 추위를 피하려던 아이 둘이 지키는 이에게 쫓겨 빗속으로 나가는 것도 본다.
이야기를 들은 왕자는 자기 몸의 금박을 한 장씩 벗겨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한다. 동상은 점점 잿빛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빵이 생기고 웃으며 거리에서 놀 수 있게 된다. 이 도움이 도시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몇 개의 보석과 금박은 실제 사람들에게 그날 먹고 몸을 덥히고 일을 이어갈 수 있는가를 바꾸었다. 이 일을 할 가치가 있으려면 세상의 모든 가난이 사라진다는 보장부터 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제비는 점점 약해진다. 빵집 문밖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날개를 퍼덕여 몸을 덥히면서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왕자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나날을 ‘자발적이었다’는 한마디로 건너뛸 수는 없다. 남겠다고 한 이에게도 몸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에는 갈 수 있었던 길이 차츰 가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한때 떠날 수 있게 해 주었던 관계라고 해서, 이후에 소모되는 모든 것이 이미 충분히 이해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와일드는 왕자를 제비의 죽음을 미리 알면서도 계속 일하라고 요구하는 전지적인 인물로 만들지 않았다. 마침내 제비가 어깨에 날아와 작별을 고할 때도 왕자는 이집트로 가는 줄 알고 기뻐한다. 여기 너무 오래 머물렀다고 말한다. 그제야 제비는 자신이 갈 곳이 남쪽이 아니라 죽음의 집이라고 알려 준다. 왕자가 몰랐던 것을 계산으로 바꾸어 써서는 안 된다. 제비가 임종 무렵에야 말한 사실을 왕자가 이미 알고도 일부러 무시한 정보로 만들 수도 없다.
제비는 왕자의 손에 입 맞추고 싶다고 한다. 왕자는 제비를 사랑하니 입술에 입 맞춰 달라고 한다. 마지막 순간 이 관계에는 동상과 심부름꾼, 주는 이와 실행하는 이라는 순서만 남지 않는다. 둘은 입을 맞춘다. 제비는 동상 발치로 떨어져 죽고, 왕자의 가슴속 납으로 된 심장도 둘로 갈라진다. 이야기는 추위와 슬픔을 함께 놓는다. 합리적인 손익표를 꺼내 이 만남이 이득이었는지 대신 설명하지 않는다.
다음 날 광장을 지난 시장과 시의원들은 보석과 금장식이 없어진 동상을 보고 거지처럼 초라해졌다고 한다. 곁의 죽은 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새는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라도 만들면 광장의 체면이 돌아올 것처럼 군다. 미술 교수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동상은 쓸모도 없다고 선언한다. 결국 동상은 끌어내려져 녹여진다. 그러나 이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그 때문에 왕자와 제비가 이미 보았던 도시를 새로 보게 되지는 않는다.
납 심장은 녹지 않아 죽은 새가 놓인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다. 그다음 하느님은 천사에게 이 도시에서 가장 귀한 두 가지를 가져오라고 한다. 천사는 바로 그 심장과 새를 고른다. 이 결말은 동화 안에서 실제로 성립한다. 독자가 혼자 상징적으로만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신이 두 존재의 사랑과 나눔을 명백히 긍정하고, 천국에서 살아갈 삶을 약속한다. 죽음에 반대하는 이유로 효율 계산만 제시하면 와일드가 진정 노래한 방향을 지워 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이 두 생명을 찬미하기 위해 그 선택을 모든 돕는 이의 최소한의 책임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남기로 한 제비의 선택은 소중하다. 그러나 다른 제비가 이집트로 간다고 해서 선량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왕자가 금박을 모두 벗겨 주려 했다고 해서, 도움받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마지막 몫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할 권리를 갖는 것도 아니다. 구체적으로 건넨 선물을 누구에게나 강제로 거둘 수 있는 몫으로 바꾸지 않아야,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내어 준 행동에도 자기 의미가 남는다.
둘을 언제나 올바르게 행동하는 이상적인 관계로 고칠 필요도 없다. 왕자는 여러 번 붙잡았고 명령까지 했다. 제비에게도 허영과 편견, 경솔함이 있었으며 처음부터 모든 대가를 내다본 것도 아니다. 둘은 함께 지내며 변하고, 실제 행동을 통해 다른 세계를 조금씩 알아간다. 완벽한 인물이 실천해야만 선의가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결과가 감동적이라는 이유로 매번의 부탁을 따져 물을 자격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왕자가 눈먼 뒤 제비에게 떠나라고 한 말은 이런 불완전함 속에 중요한 틈을 남긴다. 필요는 더 커졌지만, 왕자는 이제 그 필요가 제비의 운명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도 제비는 남고 싶다고 했다. 도움은 한쪽이 요청하고 다른 쪽이 실행하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도시를 함께 보아 가는 동안 둘이 각자 확인한 방향이 된다. 이후 죽음이 대가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고 해서, 그때의 대답이 애초에 제비의 것이 아니었다고 거꾸로 바꿀 수는 없다.
처음에 제비는 비를 피할 처마 하나를 찾고 싶었을 뿐이다. 끝에는 갈라진 납 심장과 함께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뽑힌다. 제비가 달라졌어도 이집트의 온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왕자의 부탁 역시 모든 돕는 이에게 행사할 권리를 얻은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가 다음 관계에 남겨 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필요에 삼켜지지 않았던 그 권유일 것이다. 너는 이미 나를 도왔다. 그래도 너는 네가 갈 곳으로 가도 된다. 나중에 여전히 남고 싶다면, 그것은 너 자신도 말할 수 있는 뜻이어야 한다.
출처
현재 중국어 독자용 에세이를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다시 쓴 한국어 글이다. 아래 주석은 바탕글의 영어 판본과 해석 범위를 밝힌다. 구체적인 사랑과 나눔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모든 도움을 주는 이의 희생 의무로 만들지 않으며, 왕자가 알지 못한 사실을 미리 계산한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판본에 관한 주석
판본과 범위: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는 1888년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에 수록되었다. 중국어 바탕글이 참조한 완전한 영어 텍스트는 프로젝트 구텐베르크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그 책머리에 1910년 제7쇄라는 표시가 있다. 1888년 초판 실물을 직접 확인했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두 차례 눈을 떼어 줄 때의 명령하는 어조, 눈먼 뒤 제비에게 이집트로 가라고 명시적으로 권하는 말, 제비가 다시 남겠다고 확인하는 대답, 이후 왕자의 눈이 되어 주는 과정, 작별할 때도 왕자가 제비는 남쪽으로 떠나는 줄 알고 있었다는 점을 보존한다. 천국의 결말도 작품대로 남기며 순전히 세속적인 상징으로 바꾸지 않는다. 동화 속 신의 긍정에서 모든 사람이 죽을 때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의무를 끌어내지도 않는다.